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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별신제 - 별신이 내려 앉는 은산마을 스크랩 소스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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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삼국시대 중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백제, 사비시대의 유산을 품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는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 - 유네스코세계유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등 도시 전체가 백제인의 역사와 숨결을 간직한 역사문화도시이다. 별신당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의 별신당, 이곳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은산별신제가 열린다. 은산별신제는 부여군 은산면에서 전승되는 향토신제로 유교적 제사의식에 불교와 민속신앙까지 포함한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별신굿 또는 별신제는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 일원 그리고 경상도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충남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부여 은산에서 전승되고 있다. 특히, 유교적 제사의식 형태에 불교사상과 전통 무속신앙까지 담고 있는 마을 제례의식으로 은산별신제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는 은산별신제는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여 별신제가 진행되는 동안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는다. 이 중 화주, 대장, 지화장, 무녀는 은산별신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화주는 별신제의 제관으로서 제물 일체를 준비한다. 화주는 생기복덕을 보아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그 중 제사의 총 책임자 역할을 맡으며 모든 제물을 주관하는 화주는 마을 사람 중에서 행실이 바르고 덕망 있는 사람으로 선출되는데, 별신제를 준비하고 지내는 동안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한다. 장군제는 대장, 중장, 영장, 선배비장, 통인 등 조선 후기의 군사편제를 갖추고 군사행렬과 진을 치는 장면의 연출은 은산별신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은산별신제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제사를 지내는데 있어 군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무관인 대장과 중장, 영장 등이 복식을 갖추고 제례를 올릴 뿐 아니라 군사행렬까지 이어진다. 은산별신제가 장군제의 성격을 띠게 된 이유와 관련해 마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낮잠을 자던 노인의 꿈에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 나타나서는 마을의 질병을 없애 줄테니, 억울하게 죽은 자신과 부하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했다. 노인이 꿈에서 깨어나 장군이 말한 곳으로 가 보니 오래된 사람 뼈가 잔뜩 널려 있었다고 한다. 노인과 마을 사람들은 유골을 잘 묻어준 후 영혼을 달래기 위한 굿을 했고, 이후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은산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복신장군, 토진대사는 나당연합군의 침입에 대항한 백제부흥군의 수장이었던 복신장군과 토진대사를 신격화하여 영정을 별신당에 모시고 산신제를 지낸다. 이렇듯 신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전설을 담은 탓일까? 은산별신제는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많은 규율을 정해놓고 오랜 시간동안 엄격하게 지켜오고 있다. 대장은 물론 임원들 모두가 부정한 일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상을 당하였거나 시체를 보아서도 안 되며, 살생을 한 사람 역시 참여할 수 없다. 임원들 중에 부정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별신제를 지내도 영검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신령의 노여움을 사서 마을에 화가 생긴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은산별신제는 장군제적인 요소에 상당굿, 하당굿, 진대베기 등 다양한 행사가 복합된 종합예술의 성격을 띤다. 예전에는 장장 스무날이 넘도록 진행됐던 큰 행사였다. 이런 은산별신제를 구경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되며 매년 3월 말, 짝수 해에는 대제를 홀수 해에는 소제를 지내고, 별신제를 지내는 기간도 육일로 축소되어 현재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은산별신제는 보존회에서 선출한 화주 등이 은산천으로 가서 물을 봉한 후 해당 지역에 금줄을 쳐 잡인의 접근을 막는 것으로 시작한다. 둘째 날에는 제관들이 장군복장으로 말을 타고 행진하는 진대베기가 진행되고, 다음날은 별신당에 제물과 함께 올릴 꽃을 받아오는데, 꽃은 화등방이란 곳에서 만든다. 별신제가 치러지는 3월말은 아직 꽃들이 만발하기 전이므로, 제상을 장식할 꽃은 지화, 즉 종이꽃으로 대신하는데 이 지화를 만드는 것 역시 정성스럽고 조심스레 이뤄진다. 꽃을 만들 조화장과 만드는 공간인 화등방이 결정되면 화등방 앞에 금줄을 치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조화장 역시 매일 목욕재계하며 온갖 정성을 쏟아 연꽃, 국화, 목단 등의 꽃을 제작한다. 제사에 쓰인 꽃들은 별신제가 끝난 후 마을 사람과 관광객들에게 만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눠주고 사람들은 다음 별신제가 열릴 때까지 집안에 보관한다. 화주집에 모셔놓았던 꽃과 음식을 별신당으로 옮긴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부정을 막기 위해 한지 조각을 입에 물고 이동한다. 나흘째는 제사술을 비롯해 온갖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별신당에 운반하고 제사를 올리는데, 정갈하고 정성을 다하기 위해 모두가 흰 천을 입에 물고 음식을 다룬다. 말을 하게 되면 침이 튀어 제물에 묻게 되고 그것은 곧 부정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금기를 지키는 것이다. 별신당 앞에 모여 대쌀바지에 방울이 달린 꿩장목을 꽂아놓고 그 곁에서 무녀가 무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이 내리기를 기원. 닷새째 오전 10시경에는 전 제관이 별신당사에 모여 상당굿을 시작한다. 별신당 앞에는 쌀을 가득 부은 대쌀바지에 농기를 꽂아놓고 화주와 대장은 그 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서 있는다. 무녀는 방울이 매달려 있는 꿩장목 밑에서 무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신이 내리면 농기가 흔들리고 꼭대기에 매단 방울이 요란하게 흔들리는데 이런 흔들림이 없으면 제관들의 정성이 부족하거나 부정한 징조로 여겨 모든 제관은 은산천으로 가서 목욕재계를 한다. 장승제는 동서남북 사방의 장승터에 장승과 진대를 세워 사방 들판의 잡신들이 마을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수문장의 역할을 맡아 줄 것을 기원. 상당굿과 하당굿이 끝나고 나면 마을에 장승을 세워 신께 감사 드리며 은산별신제의 막을 내린다. 오랜 준비기간과 까다로운 규율을 따르며 오늘날까지 지켜온 은산별신제. 결코 녹록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은산마을 사람들은 별신제를 마을의 화합과 번영을 위하는 행복한 잔치로 생각하고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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