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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새로운 길을 열다, 정선 필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영상 대본 펼치기 닫기: 자신만의 필치로 우리나라 산천을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다. 그의 손에서 피어난 인왕산과 금강산.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이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세상에 없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광고인, 박웅현. 다양한 관점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그에게 겸재 그림은, 자극제다. # 박웅현 int / 시간이 오목해서요, 모든 것을 이기거든요. 모든걸 잊게 만들어요. 제가 만든 광고물들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거 장담하건데 10년 후에는 기억 못하실 가능성이 높아요. 고전은요 시간의 시련을 이겨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겸재 그림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어 선 그림인거죠. 겸재처럼 모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을 바라보고 거기서 한 세계를 구축한다. 이건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바라는 일이라서 그런 면에서는 사표가 되기도 하고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선 창의적인 화가, 겸재 정선. 그의 대표작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다. ----------------------------------------------------------------------------------------------------- <타이틀> 새로운 길을 열다, 정선 필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겸재정선 미술관. 2009년,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이곳엔 많은 유작과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4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겸재 정선. 그의 초기 작품부터, 노년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는데, 그 중, 박웅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가을의 금강산을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 중 한 페이지다. # 박웅현 int / 저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레이아웃을 보거든요. 이분이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싶었는지, 이쪽은 약간 눌러놓고요, 여기를 중심을 잡고 싶은데 여기 다른 것들이 있을 거란 말이죠. 사진을 보면, 그런데 이걸 운무로 가려버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지금 여기가 텅 비면서 여기에 집중이 되는 맛이 생기잖아요. 이런 것들이 레이아웃이.. 저는 광고를 만들어서 그런지 확 들어온 거죠. 1676년에 태어나 열네 살에 그림에 입문한 후 수많은 작품을 남긴 조선후기 선비 화가, 겸재 정선.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과거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던 이유로 38세가 되어서야 관직에 나갔는데 그의 그림이 너무 뛰어나 학문보다는 화가로서 더 알려진 인물이다.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제시한 겸재 정선. 진경이란 ‘참모습’을 뜻하는 말로, 단순히 실제 풍경이 아닌, 그 풍경 속에 담긴 정신적 감정과 느낌, 본질까지 포함한 ‘참모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천 원 권에 그려진 계상정거도가 있다. # 박웅현 int / 그림을 잘 그리는 분들이 겸재 이전에 있었는데 어떤 시대정신이 있기 때문에 그 시대정신에 맞춰 가느라고 진경을 펼치지 않은 거죠. 겸재 정선은 저희한테 진경산수를 펼쳐보이므로써 비로서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된 거잖아요. 17세기 이전까지, 중국 산수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우리나라 화가들. 조선 전기부터 중기가지 유행했던 관념 산수화는 중국식 화풍으로 실제가 아닌, 관념이나 상상속의 산수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고려시대와 조선 초,중기에 그렸던 실경 산수화. 우리나라의 자연 경관과 지역을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주로 그 당시를 기록하기 위한 실용목적으로 많이 그렸다. 관념과 실경을 함께 화폭에 담아낸 것. 이것이 겸재 정선이 개척한 진경산수화다. # 박웅현 int / 이게 폭포를 그린 거잖아요. 그런데 폭포의 웅장함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더 길게 그린 것 같아요. 이 그림에서 전체적으로 크게 차지하는 게 물줄기잖아요. 이런 게 이제 그림을 그린 사람의 어떤 감흥? 느낌을 레이아웃 같은 걸로 잡은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많은 사람들 그림에서 그걸 느끼는데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보면 그림만큼 하는 감동이 없어요. 이건 놀라운 거죠. 놀라운 겁니다. 그러니까 현장에 가서 실물을 봤을 때 보다 그림이 더 감흥이 큰 경우를 제가 많이 보거든요. 자연을 모방하려고 그림을 그린 건데 그림이 그 실제보다 좋다는 건 그분의 해석 그분이 느끼는 어떤 감흥, 그분의 인상,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간 게 아닌가. 떨어지는 물줄기를 더 웅장하게 표현 한, 박연폭. (마치 폭포소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마저 일게 하는 이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구도와 대담하고 장쾌한 붓질에서 겸재 정선만의 개성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광고인 박웅현. 그가 겸재의 작품 중 가장 사랑하는 그림은 바로, 인왕제색도다. # 박웅현 int / 대담한 필치로 그냥 비온 다음에 인왕산 바위를 팍팍 그어내려갔거든요. 그런 것들이 살아있으니까 어떨 때는 제가 인왕제색도 그림을 볼 땐 진짜 비에 젖어있는 것 같아요. 그림이. 하여튼 제일 좋은 건, 제가 미술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게 뭐 구도가 어떻다 이런 얘기 보다는 그림이 주는 어떤 아우라, 그림이 주는 공간 이동, 숲의 향기까지 전이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좋아요 76세 고령의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 비온 뒤 비가 개는 인왕산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 그림을 그린 날은 1751년 5월 하순. 60년 지기, 이병연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다. 겸재와 이병연,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동문수학한 이래 긴 세월 시와 그림을 통하여 사귄 벗이다. 정선이 그림을 그려 보내면 이병연이 시를 짓고, 이병연이 시를 보내면 정선은 그림으로 화답했다. 그런 벗이 병상에 눕자, 병석을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릴 적 추억 장소, 인왕산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이렇듯 겸재는 그림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담았다. 미술관 위쪽에 자리한 소악루. 겸재가 양천현에서 현령으로 근무 할 당시 자주 찾던 공간으로, 이곳에서 바라본 한강의 풍경에 반해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한강을 그린 그림 중에는 소악루를 그린 작품도 있는데, 소악루가 화재로 소실 된 후 복원 할 때 이 그림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눈길 닿는 곳에 자신만의 미학을 넣어 화폭에 담았던 겸재. 3백 년 전 그가 보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박웅현 int / 훨씬 더 조용하고 자기 세계에 침전할 수 있는 그리고 자연과 대화를 더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았지 않았나? 이렇게 복잡한 도로망 같은 것들, 하루에 부산까지 왔다갔다 하는 건 좋다고 하지만 그게 왜 좋은지도 사실 모르겠어요. 달리면서 보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걷는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삶이 더 좋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해요. 지금 시대가 정말 행복한 시대인가? 잘 모르겠어요. 정선의 그림 중엔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작품이 있다. 금강산의 모습을 그린 ‘금강전도’다. 1734년 완성한 이 작품은, 마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본 모습을 재해석 한 것이다. 직접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우리 땅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던 겸재 정선. 그리고 비로소, 그의 화폭에 피어난 우리의 금수강산. 그 아름다움은 그림 속에 갇히지 않고, 현재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의 풍경과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 박웅현 int / 200년 넘게 이 그림을 살아남게 하고 지금까지도 전혀 시대적 공감이 없는 사람들도 감동을 하게 만드는지를 알아야 되는 거죠.그걸 궁금해 해야 하는 거죠. 그게 저는 고전의 힘이라고 생각 해요. 겸재의 손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300여 년 전의 조선의 산수. 새로운 길 앞에서 주저함이 없었던 그의 강인한 정신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