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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길 50편 - 어둠속에서 피어난 예술혼 일제강점기의 한국미술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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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 나라를 빼앗긴 예술가들 자막 > 그러나 빼앗길 수 없었던 우리의 문화 자막 > 식민지 암흑 속에서 전통예술의 빛을 지켜내다 ---------------------------------------------------------------------------- 어둠 속에서 피어난 예술혼 ? 일제강점기의 한국미술과 문학 ----------------------------------------------------------------------------- # 성북동 골목길 ? 그냥 보고 # ‘최순우 옛집’ 외경 NA) 성북동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근대 도시형 한옥. # 대문 옆 적힌 이름들 NA) 오래된 대문 벽면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빼곡이 적혀있는데요, 이 고택이 헐린다는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이 집을 지켜낸 시민들의 이름입니다. # ‘최순우 옛집’ 간판 NA) 그렇게 보존된 고택은 시민유산 1호, ‘최순우 옛집’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죠. 자막 > 최순우 옛집 (등록문화재 제268호)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지켜낸 ‘시민유산 1호’ 문화재 # 최순우 선생 집에 앉아있는 사진 (흑백사진) NA) 미술사학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집. # 한옥 풀샷 NA) (한옥 전체 조금 보다가) ㅁ(미음)자 한옥의 안채, 대청, 사랑방에는 # 전시된 유품들... 최순우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 수련이 있는 마당 NA) 한국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이 느껴집니다. # 전시돼 있는 유품들 & 옛날 사진들 NA) 광복 이후 최초로 고려청자를 주제로 한, 글을 쓰고, 한국전쟁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유물들을 지켜낸 최순우 선생. NA) 이후 회화, 도자기, 공예 등 전통문화를 발굴하며 우리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집 곳곳 이미지 ‘용用’자 창살 / 밀화빛 장판이 있는 안채/ 정갈한 목가구와 백자로 꾸며진 사랑방... NA)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것. 남의 것이 아닌 내 것...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한 최순우 선생의 뜻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집입니다. “전통을 아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 故 혜곡 최순우 선생 --------------------------------------------------- # 위의 최순우 선생 사진 & # 간송 전형필 선생 사진 NA) 최순우 선생에게 스승이자 조언자였던 (화면 분할) 간송 전형필 선생. # 간송박물관 외경 그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 박물관 ‘간송미술관’입니다. 0521- 마당에 석조물 0516- 문화재 앞에 놓고 둘러앉아 찍은 흑백사진 NA) 우리 문화유산의 수탈을 일삼았던 일제강점기. 전형필 선생은 전재산을 털어 우리 예술품들을 수집했습니다. # 보화각 건축 (흑백) NA) 그렇게 일제로부터 지켜낸 작품들을 보존하고 연구, 계승하기 위해, 4년에 걸쳐 지은 박물관이 ‘보화각’이었습니다. 자막 : <보화각 - 간송 전형필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 # 완공 후 보화각 내에서 찍은 사진 (흑백) NA) 말 그대로, ‘빛나는 보물을 모아두는 집’이었죠. # 고려청자 / 조선백자 / 겸재 정선의 산수화/ 신윤복의 풍속화 / 훈민정음 해례본. NA)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신윤복의 풍속화..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 NA)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이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약 5000여 점의 문화재가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보화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간송미술관 외경 NA) 보화각은 1971년에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됐습니다. --------------------------------------------------- # ‘심우장’ 올라가는 길 NA) 성북동 길 끄트머리, # ‘심우장’ 대문 비탈길에서 만나는 한옥.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을 보낸 집입니다. # ‘심우장’ 풀샷 NA) 1933년. ‘심우장’이라 이름붙인 이 집은 조선총독부를 향하지 않겠다는 그의 뜻을 따라 북향으로 지어졌습니다. # 집안 NA) 이 집에서 불도 때지 않고 살았던 그의 결기는 “조선이 온통 감옥인데 어떻게 따뜻한 곳에 몸을 누일 수 있겠느냐”는 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 만해 한용운 사진 NA) 3·1만세운동을 이끈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만해 한용운. 일제의 탄압과 회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지만 그는 여전히 꼿꼿한 지조를 지켰고, 젊은이들이 그런 그를 존경했습니다. # 만해 한용운 관련 유품 등 NA) 한용운 선생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이 집에서 그는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에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품었던 애끓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여전히 이곳 ‘심우장’에 남아있는 듯 느껴집니다. # 만해 한용운 사진 자막 >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 옥중 독립선언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1919) 中 --------------------------------------------------- # 종로 부암동 길 NA) 성북동 길을 내려와 종로로 오면 또 한 사람이 남긴 빛나는 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윤동주 문학관 입구 NA) 어두웠던 식민지 시대. 맑은 시어로 조국의 아픔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입니다. # 윤동주 문학관 내부 NA) 부암동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은 버려진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공간인데요, 도시 재생의 좋은 사례로도 주목받는 곳입니다. NA) 또한, ‘우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봤던 윤동주의 시세계를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공간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 친필 원고와 시집 초판본 등이 전시.. NA) 친구들이 일본어로 말을 걸어도 꼭 조선말로 답했던, 우리말을 사랑했던 시인.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순간, 그가 느낀 죄책감과 부끄러움은 그대로 깊은 상처로 남아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 하이라이트 편집 NA)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의 열망을 놓지 않고 암흑의 시대를 관통했던 예술인들이 있었습니다. 쓰라린 상처를 안고 탄생한 그 작품들은 그래서 더욱 아프고, 더욱 아름답습니다.
내용
일제강점기, 나라를 뺏겼지만 예술의 혼은 뺏기지 않은 예술가들. 그들 덕분에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I801:1605002-015-V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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