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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하계 내일로 코스 추천(4) 충청도편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충청도로 떠나는 기차 여행 코스.
충청도는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충주부터 단양까지 문화유산 채널과 함께 떠나봅니다.


충청도 내일로 코스 추천
충주역 / 제천역 / 단양역

충주역, 어디갈까?
우리나라의 중앙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과 국내 유일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

충주는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덕분에 과거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통했습니다. 충주의 옛 이름이  '국토의 중심'을 뜻하는 "중원"이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특징을 말해주죠.  그리고 이곳 충주에서도 중심이 되는 탑! 바로 탑평리 칠층석탑입니다.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menu/254?brdType=R&bbIdx=12519

국보 제6호인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을 따라 버스 40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중 가장 크고 높은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답니다.

탑평리 칠층석탑과 관련하여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원성왕은 신라 국토의 중간이 어디인지 궁금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쪽과 북쪽 끝에서 똑같은 걸음걸이를 가진 사람을 두고 같은 시간에 걷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난 장소에 탑평리 칠층석탑을 세워 국토의 중앙임을 표시했다고 해요. 별명과 잘 어울리는 설화죠? 일각에서는 이 일대가 사찰의 터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menu/254?brdType=R&bbIdx=5397

그리고 오늘날 탑이 있는 자리에는 중앙탑 사적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중앙탑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꾸며져 있고, 공원 곳곳에는 조각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옆으로는 남한강의 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으니 충주에 가신다면 한 번 들려보세요!


[문화유산 여행스케치-충청권] 국보 3점을 간직한 ‘국토의 중앙’ 충주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menu/254?brdType=R&bbIdx=12519

중앙탑 사적공원에서 남한갈을 따라 2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면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을 갈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29/L/CATEGORY/2339/menu/375?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2339&bbIdx=11004&brdType=R

충주 고구려비는 절대 흔한 돌이 아니랍니다! 국보 제205호로 남한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의 비석입니다. 사실 충주 고구려비는 천 오백년의 시간을 외롭게 서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큰 돌. 덕분에 이 마을은 '입석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데요. 1979년에 들어, 오랜시간 비석을 덮고 있던 이끼를 벗겨내고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판독하자 고구려 왕을 지칭하는 '고려태왕'이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충주 고구려비 덕분에 우리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고구려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게 되었네요.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충주 고구려비! 충주에서 꼭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추천드리겠습니다. 충주고구려비의 발굴 이야기는 아래 영상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입석에서 고구려비로 - 충주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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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우리 역사상 가장 크고 강대했던 나라, 고구려. 그 기상을 말해주는 것이 충주고구려비다. 이 고구려 비가 발견되기까지 충청북도 지역은 고대사의 공백지대였다. 무려 1500여년- 고구려의 잠든 역사를 깨운 것은 이름 없는 한 답사팀이었다. 충북 충주지역은 삼국시대엔 백제땅이었다가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었던 지역이다.충주시 가금면의 한 작은 마을에 세워진 이 전시관의 주인은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고구려비인 국보 205호 충주 고구려비다. 5세기말,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을 정복하면서 세운 이 기념비는 1979년, 우연히 발견되기까지 평범한 농촌마을인 입석리의 경계석으로 방치돼 있었다. 그런데, 이끼덮인 돌표면에서 글자가 드러났다. 방치돼 있던 비석이 1500여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우연같은 기적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놀랍게도 아마추어 답사팀이었다. 1978년, 이 지역에 검사로 부임한 유창종씨가 중심이 돼서 결성한 답사팀, 유창종 int>> 충주 중원의 문화가 한국의 한반도의 중심이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접경지역으로서 다른 지역과는 독특한 문화를 가졌으니까 전 지역을 열 두 개로 나눠서 한 달에 한 개씩 집중해서 나눠보자 그래서 결성된 모임이죠. 학생부터 교사, 검사까지, 틈날 때마다 지역 역사를 찾아나섰던 회원들은 고려 때 축조된 충주성의 성돌을 발견했고, 햇골산에 잠들어 있던 삼국시대 마애불상군을 발견해 냈다. 또 고려의 광종이 어머니를 기리며 지었다는 숭선사. 그 숭선사 조사의 발판을 마련한 명문이 적힌 기와도 발견했다. 취미로 조직된 모임치곤 놀라운 성과였다. 신문지상에도 이들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됐다. 유적을 찾고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가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이들에겐 공통의 목표가 생겼다. 유창종 int>>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서 찾았던 것은 진흥왕 순수비였어요. 진흥왕은 저희가 중요한 지역을 접령하고 순행을 한 다음에 순수비를 세우는 버릇이 있는 분인데, 중원 소경까지 설치할 정도로 중요시 하던 지역인데 거기에다 비를 안 세웠을 리가 없다. 진흥왕 순수비가 틀림없이 있으니 그것을 한 번 찾아보자. 신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구축했던 진흥왕은 점령지마다 그것을 기념하는 척경비를 세웠다. 그렇다면 삼국통일의 전략지였던 충주지역에 그 흔적이 없을 리가 없다, 간절한 마음으로 진흥왕 순수비를 찾아나선 지 1년째, 그러나 별 소득 없이 동호회는 1979년, 유창종(검사)가 타지역으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송별답사에 나서게 된다. 때는 1979년 2월 25일 토요일, 신라시대에 세워진 중앙탑을 비롯해서 근처의 석불입상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가금면 부근의 한 마을을 지나는 순간, 동호회원 한 명이 갑자기 차를 세웠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돌 하나가 서있어 입석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그 비석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유창종 int>> 마을 입구에 방치 되어 있던 데로 세워있던 거니까 깨끗한 비가 아니죠. 우리 일반 시골에 가서 보면 입구에 돌 들 많이 서 있잖아요. 입구에 세워 동네 이름도 새겨놓기도 하는데 그런 돌 처럼 서 있었습니다. 논두렁에... 첫 눈에 보기엔 여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돌이었다. 그런데 돌아서려는 순간,때마침 돌 위로 석양빛이 비췄다. 그러자 얼핏 얼핏 뭔가가 드러나보이는 것이 아닌가. 놀란 마음에 손 끝으로 더듬어 보니, 돌비석 위엔 뭔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탄성과 흥분이 터져나왔다. 유창종 int>> 글자아냐, 이렇게 하니까 다들 잡담을 하다가 글자가 있나 들어다 보는데 다들 흥분을 몹시 했죠. 여기저기 부서진데다 이끼가 비석 전면에 덮혀 있어 글자를 읽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드문드문 보이는 글자들 사이에 눈에 들어 오는 두 글자가 있었다. 바로 태와 왕이라는 한문자였다.순간 그토록 찾아다니던 진흥왕순수비임을 직감했다. 유창종 int>> 확신을 했죠. 확신을 한 이유는 우리가 아무추어긴 하지만 진흥왕 순수비를 본 적이 있잖아요. 크기도 보고.. 자연석을 손질해서 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머릿속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를 찾아야 있는 데다가 그날 발견한 데다가 그 날 본 자연석을 손질한 것이 진흥왕 순수비랑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초보자인 우리들은 볼 것도 없이 진흥왕 순수비라고 확신을 한 거죠.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회원들은 곧바로 학계에 보고를 했고, 그 해 4월 7일! 마을에 조사단이 도착한다. 낯선 이들의 방문은 조용하던 입석리를 들썩거리게 했다. 누군가는 치성을 드렸던 돌이고,수해로 마을이 잠겼을 땐 떠내려 갈뻔 했던 것을 다시 세워놓기도 했다 그렇게 연유도, 사연도 모른 체 눈여겨 보지 않았던 돌비석이 엄청난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조사팀, 도대체 비석에 적힌 건 무엇일까. 갑작스런 진흥왕 순수비의 출현에 비석 판독은 시급을 다퉜지만- 연구팀의 급한 마음에 제동을 건 건 오랜 세월 비석위에 덮혀있던 이끼였다. 정영호 int>> 앞 뒤에 이끼가 탁 파랗게 끼어있어요. 물을 적셨더니 파란색만 나옵니다. 이끼 때문에.. 이끼가 겹겹이 있어가지고 전혀 이것이 떼어 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손가락과 손톱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나무로 깎아서 하나하나 떼었어요. 우리 여학생들이 혼났죠. 하나하나 이끼가 떼어지니까 그 다음에는 잘 떨어져요. 뜨거운 물을 부어 이끼를 불려가며 속살이 드러난 비석위에서 조금씩 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남은 건 탁본을 한 후 글자를 해독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글자와의 싸움이었다. 돌 자체가 워낙 마모된 상태여서 확실히 판독할 수 있는 글자는 5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정영호 int>> 판독이라고 해서 타병을 놓고 금방 탁 무슨 글자 이렇게 보이질 않습니다. 한참 눈을 감았다 눈을 딱 뜨면 보일때가 있어서 쭉 탑영을 걸어놓고 눈이 피곤하니까 잠깐 눈을 감았다 깨서 확대경으로 확 보면 그 글자가 이 글자로 딱 보인단 말이죠. 그럼 틀림없으면 동그라미를 쳐 놓고 또 동그라미를 쳐 놓고 그렇죠. 보이는 글자와 보이지 않는 글자,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있는 글자를 찾아내고 유추해내는 일, 수많은 토론과 고증이 오갔다. 그리고 확인된 글자들, ‘고모루성’, ‘신라토내당주, ’고려태왕! 그렇다면 이건 진흥왕 순수비가 아니란 말인가? ’고모루성‘은 광개토대왕비에도 나왔던 글자, ‘신라토내당주’는 고구려가 신라영토내에 주둔하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고려태왕’은 고구려 왕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제껏 남한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고구려비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정영호 int>> 고구려비라는 증거가, 고려대왕이라는 글자가 나오는 순간에 깜짝놀랐죠. 아 이게 틀림없이 고구려비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고구려의 남한강유역 점령을 확인하게 해주는 역사적 증거는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창종 int>> 진흥왕순수비 보다도 더 좋았죠. 왜냐면 고구려비라는 것은 그 당시만 해도 광개토 대왕비 하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한반도에서 발견이 되고, 그것도 엉뚱하게도 우리가 삼국지역의 접경으로서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확신하던 또 그렇게 주장하던 지역에서 그 비가 발견이 되니까 훨씬 컸죠. 입석리 입구에 서 있던 평범한 비석은 하루아침에 국보 205호로 신분이 격상됐다. 그 신분에 걸맞게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이 설치되고 2012년 7월 전시관도 생겼다. 아마추어 동호회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돌이켜보니 그 비석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이름없는 비석으로 천 오백년의 풍상을 견뎌낸 후에야 비로소 되찾은 이름, 충주고구려비!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무수한 글자들은 1500년을 시간을 건너 우리를 고구려의 힘찬 기상과 만나게 했다.
 

제천역, 어디 갈까?
가장 오래된 저수지, 제천 의림지

필요에 맞추어 편리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저수지! 농사를 시작한 이래로 저수지는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제천에 우리나라의 대표 저수지라고 할 수 있는 의림지가 있습니다.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76/L/menu/259?brdType=R&thisPage=2&bbIdx=9774&searchField=name&searchText=이영일

의림지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 때 악사인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그 이후 700년이 흐른 다음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의림이 제방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부터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등 우리의 역사 이곳 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만큼 오랜 시간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76/L/menu/259?brdType=R&thisPage=2&bbIdx=9774&searchField=name&searchText=이영일

오늘 날에는 의림지 주변으로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경호루, 영호정 등 곳곳에 누각이 설치되어 있어 의림지를 향유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림지 보트장에서는 오리배를 찰 수도 있답니다. 이제는 단순히 저수지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이 된 의림지! 고요한 제천 의림지의 모습 영상으로 만나볼까요?

제천 의림지와 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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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나레이션)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의림지와 그 제방 위의 제림이다. 그리고 주변의 정자 및 누각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역사적 경승지이다.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고구려 때 제천의 이름이 내토현인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명 임지라고도 불렸다. 992년 고려 성종 11년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별칭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몇 차례 수축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세조 때에 충청도 관찰사 정인지가, 순흥에 귀양 와 있던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운동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제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으면서 호서, 영남, 관동 등 3도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그 뒤 1914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 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수축을 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지자 이듬해에 복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 둘레는 약 2㎞이고 면적은 약 15만8천 제곱미터(㎡)이다. 저수량은 약 6백6십만 입방미터(㎥)이고 수심은 8~13m의 대수원지로 289정보의 농지를 관개하고 있다. 이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한국 고대의 중요한 수리시설로서 그 역사가 오래이다. 또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하여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으로 의림지와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현재는 아름다운 노송이 주종을 이루고 버드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명승지이다. 주변의 영호정, 경호루 등 정자 및 누각과 연자암, 용바위, 홍류동, 홍류정지 등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단양역, 어디 갈까?
김홍도가 사랑한 도담삼봉

여러분은 조선시대 화가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많은 분들이 천재 화가 김홍도를 떠올릴 것 같아요. 이처럼 오늘날에도 재능을 인정받은 화가 김홍도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 단양에 있다고 합니다. 김홍도의 그림으로 먼저 만나볼까요?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29/L/CATEGORY/287/menu/273?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287&bbIdx=10600&brdType=R

​이곳은 단양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도담상봉'입니다.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29/L/CATEGORY/2369/menu/386?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2369&bbIdx=11679&brdType=R


출처 : http://www.k-heritage.tv/brd/board/276/L/menu/259?bbIdx=8604&brdType=R

맑은 남한강 위로 떠있는 기이한 세 개의 봉우리가 너무 독특하고 아름답지 않나요? 도담삼봉은 김홍도뿐 아니라 많은 선조들이 아낀 공간입니다. 퇴계 이황 선생 역시 직접 도담삼봉을 단양팔경 중 으뜸이라고 명명하고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한번 그 시를 감상해볼까요?

산은 단풍잎 붉고 강물은 모래로 빛나는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 노을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은 푸른 절벽에 기대어 자고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진다

금빛파도가 너울지는 도담삼봉에서 꼭 멋진 사진 남기고 오세요! 도담삼봉 외에도 사인암, 구담봉 등 다양한 팔경을 갖춘 단양! 영상에서 그 모습을 한번 확인해보세요.

단원 김홍도, 사랑에 빠지다 - 도담삼봉과 사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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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조선시대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 그가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 1년을 고민한 풍경이 있었다. 과연 단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명경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도 바라만 보며, 1년 여 동안 화폭에 담지 못한 풍광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이라 칭송한 명승 제47호 사인암이다. 사인암은 ‘단양 팔경’ 중 제5경에 속하는 명승으로, 단원은 사인암 외에도 제1경 도담삼봉(명승 제44호), 제4경 옥순봉의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단원을 사로잡았던 고혹적인 절경. 그리고 그의 붓 끝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예술 작품. 단원의 진경산수화와 함께 도담삼봉과 사인암을 감상해본다.
 

3편 돌의 예술, 단양 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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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UHD 숨터 – 한국의 자연유산 자막 -방송일시 : 2015. 11. (5목) 1. 타이틀 UHD 숨터 : 숨터 글자 위에... 2. 좌상단 UHD 숨터 한국의 자연유산 --> 중간 중간에 부제와 change 됨 3. 부제 돌의 예술 단양팔경 4. 설명단양 사인암 / 명승 제47호 (단양 5경)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병풍처럼 절벽을 이룬 바위 5. 말김사옥 / 단양팔경 해설사 일주경천 백천회란(一柱擎天 百川廻瀾)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기둥인 사인암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고 여러 개의 물줄기가 굽이쳐 사인암(주위로)을 흐른다‘ 라는 뜻입니다. 이 글은 순조 때 충청도 관찰사인 정만석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6. 명칭도담삼봉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7. 설명단양 도담삼봉 / 명승 제44호 (단양 1경) 남한강과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원뿔 모양 3개의 봉우리 8. 말김사옥 / 단양팔경 해설사 퇴계 이황 선생님은 단양팔경 중에 제1경으로 도담삼봉을 명명하셨고요. 단원 김홍도 선생님은 영풍 현감시절에 정조의 어명을 받아 사군산수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단양팔경 중에 3경을 그리셨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도담삼봉입니다. 9. 설명단양 석문 / 명승 제45호 (단양 2경)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석회동굴의 통로가 무너지고 천장 일부만 남아서 이룬 구름다리 형태의 지형 10. 설명단양 사인암 / 명승 제47호 (단양 5경)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병풍처럼 절벽을 이룬 바위 11. 명칭하선암 / 단양 6경 12. 명칭중선암 / 단양 7경 13. 명칭상선암 / 단양 8경 14. 설명단양 구담봉 / 명승 제46호 (단양 3경) 절벽 위의 바위가 거북이를 닮아 구담봉(龜潭峰)이라 함 15. 설명제천 옥순봉 / 명승 제48호 (단양 4경) 비가 갠 후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죽순이 돋아나듯 솟아있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짐 14. 상황단양팔경 석회암, 남한강, 시간이 빚어낸 절경, 15. 제작지원 문화재청 / 한국문화재재단 16. 제작 KBS 한국방송 와일드넷 17. 타이틀 UHD 숨터 -끝-
 

지금까지 기차타고 떠나는 충청도 여행 코스 추천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경관을 카메라에 그리고 눈에 많이 담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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