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하계 내일로 코스 추천(3) 경상도편 스크랩

자연의 풍광에 도취하고, 역사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우리 삶의 이야기를 비춥니다.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생활 가까이! 자연 가까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저 도!깨!비!가 여러분과 함께 동행 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문화유산채널입니다. 하계 내일로 코스 추천 세 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함께 경상도를 둘러볼까요? 경상권 내일로 코스는 안동에서 시작해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준비했습니다.


경상권 내일로 추천 코스
안동역 / 경주역 / 부산역



자~ 그럼 안동부터 시작!



안동역, 어디 갈까?
선비들의 '하회마을'과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월영교'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일컬어질 만큼 옛 선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곳곳에 있답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안동 하회마을"입니다. 이곳에서는 풍산류씨 가문이 600여 년 동안 이곳 마을에서 모여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 생활양식과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지 않나요?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한옥이 늘어선 거리, 강가 옆 아담한 솔숲까지 여유롭게 걸어보다 가시면 어떨까요?


하회 마을까지 거리가 부담되신다면~?



안동역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월영교"를 추천해드릴게요! 월영교는 그냥 평범한 다리가 아니랍니다. 월영교는 380m 가량의 길이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교!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정이 위치해있습니다.



밤이면 다리에 불빛이 들어와 더 아름다운 이곳! 유유자적 흐르는 낙동강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을 건져갈 수 있다고 하니 선선하게 저녁에 걸어보시기를 추천드릴게요~

그리고 월영교를 더 특별하게 해주는 것은 다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사실 월영교는 한 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요! 사연은 450여 년 전 조선시대로 올라갑니다. 원이 엄마가 쓴 "원이 아버님께 - "로 시작하는 편지!




"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는가요.

늘 당신에게 내가 말하기를 함께 누어서

이보소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남도 우리 같을까 하며 당신에게 말했는데

어찌 그런 일은 생각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갔나요."


그 내용은 31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남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이 엄마는 애절한 편지와 함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를 남편의 무덤에 묻었다고 합니다. 애잔한 부부의 사연에 눈물이 나지 않나요? 그들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원이 엄마가 만든 이 미투리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 바로 이 월영교입니다! 애틋한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월영교! 한 번 들러보세요~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경주역, 어디깔까?
천년고도 경주, 신라의 숨결 돌아보기
우리나라 학생들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기억이 있을 텐데요. 바로 경주로의 수학여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계속해서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곳에 신라의 역사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주에는 천마총, 성덕대왕신종,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등.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문화유산들이 가득합니다. 지붕이 없는 박물관이라는 비유가 아마 딱~ 맞을 것 같네요!





경주에 가신다면 이 유적지들 중 어디를 가도 감명 깊은 시간이 될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문화유산)채널이가 안압지를 강력하게 추천해드릴게요!




안압지는 통일신라 때의 연못인데요. 연못의 바닥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배수로의 시설도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MC 멘트 ① - 오프닝] #. MC 경주 남산을 잠시 오르며 천년 고도 경주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제가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은 남산입니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봤다고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문화유산이 넘쳐나는 곳인데요. 남산에는 140 여 곳의 절터, 60여 기의 석탑, 80여 체가 넘는 불상이 있습니다. 경주의 축복! 남산을 여행합니다. -------------------------------------------------------------------- VCR ① 산 전체가 보물, 경주 남산 ‣ 7분 다큐 경주 4부 ‘그곳에 가면 신라가 보인다 - 경주남산’ 중에서 (* 프롤로그 부분 영상이 낡은 듯 보이니 뺏으면 합니다.) #. (소나무 숲) 발길 닫는 곳이면 어디든 보물이 있다 해서, 남산을 두고 흔히 야외박물관이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남산을 둘러볼 때는, 미리 작품을 선정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먼저 아름다운 불상을 만나봅니다. #.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삼릉에서 냉골 골짜기를 따라 가다보면 널찍한 자연 암반에 새겨진 불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운 선의 표현을 보여준 작품, 신라인은 어떻게 이 단단한 화강암에 부드러운 부처의 미소를 담을 수 있었을까.. 자유로운 필치가 돋보이는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은, 남산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부처의 미소입니다.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불상의 미소를 따라 오르다 보면 거대한 자연암벽에 한번 놀라고, 암벽에 새겨진 불상에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작품, 높이 6미터로 남산에 있는 불상 중 가장 큰 마애불상입니다. 선각에 가까운 조각으로 단순화 시킨 작품..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불상에서 중생을 보살피는 부처의 그윽함이 전해집니다. 바위 절벽을 부처가 머무는 나라로 보고, 그곳에 불상을 새겨 간절한 바람을 담은 신라인, 그렇게 신라인은 남산의 질 좋은 화강암으로 많은 불상과 탑을 만들었습니다. #. (칠불암 마애불상군) (이 부분은 이미지문화유산 ‘바위에 새긴 부처-경주남산 마애불 1부’를 보면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나옵니다. 7분 다큐와 이미지문화유산을 적당하게 섞으면 좋겠습니다.) 이 중, 국보로 지정된 불상도 있습니다. 남산의 불상 중 대표적인 마애 불상군으로, 절제된 얼굴표정과 유려한 선의 표현이 걸작으로 꼽히는 칠불암 마애 석불상군. 사면석주의, 각 면에는 비슷한 크기의 불좌상을 부조해, 모두 일곱 구로 구성 돼 있습니다. 미소를 머금고 지그시 감은 두 눈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어쩌면 바로, 이런 모습이 신라인이 이상적으로 꿈꿔왔던 부처의 모습이 아닐까요. #. 전문가 인터뷰 (경주 남산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해주신다면...) #. (산 풀샷) 경주 남산은,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으로 여겨져왔습니다. 이제, 신라 천년, 그 융성했던 역사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봅니다. (* 금오정 부분 영상은 너무 낡았으니 빼주세요!) #. (늠비봉 오층석탑) 그리고 신라의 모습을 바라봤을 또 한 곳, 늠비봉의 넉넉한 봉우리 위에 오층석탑이 세워진 곳으로...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이곳의 늠비봉 오층석탑은 남산 8경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바위산을 하층기단으로 삼고 불쑥 솟은 오층탑은, 자연석 위에 일층의 기단을 세우고 5층의 탑을 조성한 모습인데, 태양빛을 받으며 서 있는 이 오층탑을 바라보며, 영원한 불국토를 꿈꿨을 신라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불상의 부처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신라인의 열정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 바위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이 부분 또한 이미지문화유산 ‘바위에 새긴 부처-경주남산 마애불 1부’를 보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나옵니다. 7분 다큐와 이미지문화유산을 적당하게 섞으면 좋겠습니다.)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은 삼면보관, 즉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는데, 풍만한 얼굴에,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오른손으로 꽃을 잡고, 왼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부처를 표현했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은 천상의 보살이 중생을 살펴보는듯합니다. #. (열암곡 마애불) 놀라운 작품이 하나가 더 발견됐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2007년 열암곡에서 발견된 마애불은 놀랍게도 암반 바닥과 불과 5센치를 사이에 두고 기적적으로 발견됐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5센치의 기적으로 불리는 마애불.. 이렇게, 한 구비를 돌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부처가 맞이하고 곳곳에 남아있는 수 많은 절터와 유적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 자연과 예술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는.., 산 전체가 보물인, 경주 남산입니다. -------------------------------------------------------------------- [MC 멘트 ②] #. 안압지를 둘러보는 MC, 안압지를 그리는 MC 경주역사유적지구, 두 번째 이야기를 열어갈 곳은 안압지입니다. 안압지는 왕과 귀족의 연회가 열리던 곳이었는데요. 신라인들은 이곳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었고 진귀한 새와 짐승들도 길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배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재미있는 출토품은 연회 때 흥을 돋우던 놀이기구, 주사위였습니다. 신라인들의 풍류가 배어있는 안압지로 떠나봅니다. -------------------------------------------------------------------- VCR ② 신라인들의 풍류보고서 - 안압지 ‣ 7분 다큐, ‘경주 7부 - 신라왕족의 연회장, 안압지’ 중에서 (* 7분 다큐 앞부분 반팔 옷 입고 사람들이 나오는 부분은 뺐으면 합니다. 맨 뒷부분 반팔 입고 배를 탄 사람 부분도 빼고, 연못 트래킹부터 살리면 될 듯 합니다. *)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것으로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 안압지. 임해전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과 정원이 있었던 안압지는 문무왕이 조성한 인공연못으로, 왕족들이 놀이를 즐기고, 사신을 접대하던 연회의 장소입니다.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어 그곳에 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안압지... 못의 원래 이름은 안압지가 아닌 ‘월지’였습니다. 후에,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었다 해서 ‘안압지’라 불리게 됐는데, 독특한건 안압지가 인공연못임에도 물이 흐르는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겁니다. #. 전문가 인터뷰 (안압지 구조의 특징은? ) * 인터뷰 사이사이에 영상 교차 * “맑은 물이 계속 흐르도록, 배수로를 만들어 두고, 호안의 형태를 굴곡지게 만들었다. 높이의 차이도 두었다. 높이 차 때문에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일반적인 인공연못에서는 느낄 수 없는 탁 트인 전망을 가졌다.” 안압지가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들의 접대장소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안압지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안압지에서는 무려 서른 한 곳의 건물터가 발견됐고, 왕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삼만 여점의 유물이 출토됐습니다. 이 중에, ‘주령구’라는 목제품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주령구은, 모두 열 네개의 면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사위로, 각 면에는 각기 다른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술 석잔을 한 번에 마시기, 요즘 말로 단숨에 마신다는 원샷을 뜻하고,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러브샷을 뜻합니다. 또, 술잔을 비우고 크게 웃어야 하고, 여러 사람 코를 때리라는 내용도 적혀있습니다. 간지러움을 태워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걸 보면, 잔치 때 흥을 돋구는 놀이기구임이 분명한데, 여기엔 음악 없이 춤을 춰야 하는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안압지에서 주사위를 던지며 벌칙을 받았을 신라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안압지에서는 그 규모만큼, 많은 유물이 나왔습니다.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출토된 유물 대부분, 신라왕족의 생활과 깊숙이 관련된 것들로, 이는 당시 왕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금동연꽃 오리장식과 난간을 통해 당시의, 화려했던 안압지의 정원과 정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여기에, 여인들이 사용했던 유물도 발견됐습니다. 청동거울과 비녀, 청동 빗과 반지는 이곳이 왕실의 자리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줍니다. 통인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었던 연못, 안압지를 통해 당시 신라인이 외국과 교류를 활발히 펼쳐나갔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슴, 기러기, 낙타 등 희귀한 동물의 뼈가 발견됐는데, 이는 바다를 통해 수많은 나라와 문물을 교환했던 신라인의 교역망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신라인들의 뛰어난 항해술도 뒷받침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원형 그대로 출토된 목선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길이 6미터에 달하는 목선은 통나무 배 중에서도 가장 발달된 형태로, 우리나라 최초의 목선입니다. 신라 귀족들이 배를 띄워, 유희를 즐겼을 안압지..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지만, 굴곡져 아스라이 이어지는 풍경은 한정된 공간에 역동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넓은 바다를 연못에 담아내고자 했던 신라인. 안압지는 통일신라의 왕실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 [MC 멘트 ③] #. 분황사 형태를 그리는 MC 경주역사유적지구, 세 번째로 찾은 곳은 분황사입니다. 분황사는 한반도 최초의 여성군주, 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사찰인데요. 분.황.사. 보통 이름이 아닙니다. 향기 나는 황제의 사찰이라는 뜻이죠. 선덕여왕은 분황사를 건립하면서 특이한 모양의 탑을 만들게 합니다. 탑을 만들기 위해 중국에서 유학하고 온 승려들을 기용하기도 했죠. 이 사찰과 탑에는 강력한 왕권, 강력한 나라를 염원했던 선덕여왕의 뜻이 어려 있습니다. -------------------------------------------------------------------- VCR ③ 분황사와 모전석탑 ‣ 7분 다큐 분황사 1부 ‘향기 나는 여왕의 절’ 중에서 프롤로그 부분 #. (프롤로그) 서기 632년,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여성군주 시대가 열렸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여왕은 크고 강한 나라의 건설을 천명하며 자신과 꼭 닮은 절을 짓는다. 향기나는 황제의 절, 분황사다. ‣ 7분 다큐 분황사 2부 ‘신라최초의 석탑, 최초의 인왕상’ 중에서 선덕여왕의 원대한 꿈이 담긴 분황사와 모전석탑! 그 모전석탑을 1300여년간 듬직하게 지켜오고 있는 수문장이 있다. 말 한 마디 붙이기 힘든 표정에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위협적인 자세로 서 있는 이 조각상들, 분황사 모전석탑의 숨은 주인공, 인왕상이다. 서기 634년인 신라 선덕여왕 3년,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려는 듯 여왕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을 짓고, 전에 없었던 독특한 탑을 쌓는다. 탑의 꼭대기까지 돌을 다듬어 연꽃장식을 만들어 놓을 정도로, 절과 석탑을 향한 여왕의 애정은 대단했다. 높이 9.3미터의 3층짜리 탑인 분황사모전석탑.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독특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우선, 재료부터가 독자적이다. 언뜻 벽돌로 보이는 이것은 자연석을 일일이 깎아 벽돌모양으로 다듬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하나 쌓아서 규격이 분명한 탑신을 만들어간 양식도 이채롭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왜 신라최초의 석탑으로 이런 양식을 구상한 걸까. #. 전문가 인터뷰 (분황사 모전석탑을 흙벽돌로 쌓은 이유는?) * 인터뷰와 영상 교차 * “분황사 모전 석탑의 모태는 인도에서 시작돼 실크로드를 타고 인도, 중국을 거쳐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은 분황사를 건립하면서 중국에서 유학하고 온 승려들을 기용하는데, 이 유학파 승려들이 쌓은 탑이 모전석탑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흙으로 벽돌을 구워서 탑을 쌓는 전탑이 유행했다. 모전석탑은 바로 그 전탑을 모방한 탑이라는 뜻으로, 벽돌을 구울 기술이 없던 신라는 흙벽돌 대신 돌을 다듬어 쓴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 태어난 셈인데 이 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최초의 석탑이자, 우리나라 모전석탑의 시초가 된다. 기단의 네 모퉁이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장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는데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사자들이다. 그런데 동해쪽으로 고개를 든 두 마리 사자상은 사자라기보다 물개의 모습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는 바다로부터 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물개상을 세웠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모전석탑에는 금수의 왕이라는 사자보다 더 무섭고 강력한 주인공들이 있다. 탑 1층의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문의 양쪽에서 굳건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주인공, 다름 아닌 인왕상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표정에 금방이라도 내려칠 듯 불끈 쥔 주먹 흔히 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는 인왕상은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대개는 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모전석탑에는 한 면에 두 구씩, 모두 8개의 인왕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표정과 모양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건 얼굴의 미세한 표정이며 우람한 팔뚝에 잡힌 자잘한 근육까지. 돌에 새긴 생동감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모전석탑의 인왕상들이 굳세게 지키고 있는것, 저 문 너머 감실에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원래 인왕상이 부처와 부처님 말씀을 수호하는 수호신이라 그런지 대개 권법자세이거나 무기를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표정이 분노형으로 표현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1915년, 모전석탑을 수리하던 중 돌로 된 사리장엄구가 발견됐다. 그 함속에는 금바늘과 은바늘, 침통, 가위와 사리 다섯알이 든 은상자가 들어있었다. 곧, 문 앞에 새겨진 인왕상의 주된 임무는 부처님의 사리와 장엄구를 지키는 일이었던 것이다. 모전석탑의 인왕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인왕상으로 이후 통일 신라시대을 거치며 한국 고유의 독자적 개성을 확립해 간다. 몸짓도 더 역동적이 되었으며, 얼굴 표정은 더욱 세밀해 졌다. 그리고 석굴암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룬다. 모전석탑의 인왕산이 등장한 후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751년, 김대성에 의해 완성된 석굴암, 자연스러우면서도 숭고한 본존불상의 미소를 지키는 것이 두 구의 인왕상이다. 공격과 동시에 방어를 하는 역동적인 모습, 그러나 표정엔 악의가 없다. 바로 우리나라 인왕상 만의 고유한 특징이 나타난 것이다. 더 크고 강한 부처의 땅, 부처의 나라, 모전석탑의 인왕상들은 선덕여왕과 신라인들이 꿈꾸던 아름다운 나라의 수호신이었다. -------------------------------------------------------------------- [MC 멘트 ④ - 클로징] #. 경주 능 앞에서 경주 역사유적지구를 둘러보았는데요. 경주는 문화유적지 몇 군데를 살펴보았다고 해서, 혹은 며칠 동안 머물렀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곳은 아닌 듯합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요. 문화유산이야말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인 듯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경주는 오늘도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자막 (지도에 스팟 표시)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지도에 스팟 표시) (위)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아래)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칠불암 마애불상군 / 국보 제312호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 / 경북 경주시 황지웅 / 경주국립공원 자연 환경 해설사 남산은 신라의 시조였던 박혁거세가 태어났던 ‘나정’이라는 곳이 있고 신라의 마지막을 알렸던 ‘포석정’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신라의 시작과 끝을 알린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남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불상 개수가 약 119기, 절터가 150여 군데 정도 있기 때문에 이곳 남산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될 수 있었고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뜻으로 ‘노천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압지 경상북도 경주시 류지명 해설사 안압지의 원래 신라 시대 이름은 ‘월지’였다고 하고요 문무왕 14년, 궁궐 안에 만들어진 인공연못입니다 안압지는 아주 독특한 구조의 입수로와 배수로를 갖추고 있어서 항상 맑은 물이 흐르게 했고요 또 직선과 곡선을 적절히 이용해서 어디서 봐도 이 연못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데요 그래서 마치 끝없이 흘러가는 것과 같은 그런 효과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대편 호안과 연못보다 건물지의 높이를 높게 해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다른 인공연못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주 탁 트인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1975년 안압지 발굴조사 당시 주령구 삼잔일거 (三盞一去) 술 석잔을 한 번에 마시기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 음진대소 (飮盡大笑) 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 중인타비 (衆人打鼻) 여러 사람 코 때리기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 간지러움을 태워도 참기 금성작무 (禁聲作舞) 노래 없이 춤추기 녹유 귀면와 (綠釉鬼面瓦) 치미 연꽃무늬 수막새 소루 첨차 금동연꽃봉오리장식 난간 청동거울 청동비녀 나무 빗 뼈로 만든 가리마 도구청동 반지 산양 뼈맹금류 뼈개 뼈 사슴 뼈꿩 뼈기러기 뼈 유리잔 중국 도자기 나무 노 나무 물마개 목선 분황사 /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사 모전 석탑 / 국보 제30호 김명순 / 경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이 모전 석탑은 신라 527년, 이차돈이 순교하고 528년에 불교가 공인됩니다 그때 세워진 탑은 전부 나무로 만든 목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무로 탑을 세우다 보니까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아니면 썩어서 없어지는 이러한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어요 그 탑에서 다시 석탑으로 옮겨지는 중간과정에 이렇게 전탑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탑이긴 한데요, 이것은 벽돌로 만든 전탑이 아니고요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만든 탑이라고 해서 전탑을 모방한 석탑이라고 해서 모전 석탑이라고 부릅니다 인도 중국 신라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 국보 제236호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 / 사적 제502호 경상북도 경주시 석굴암 본존불상 석굴암 인왕상 ▶원고 ---------------------------------------------------------------------------------------------- [프롤로그 + MC 오프닝 첫 부분] #. 프롤로그 18초신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주.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곁에 남아있는 빛나는 문화유산이다. #. 오프닝에서 소나무 길 걸어오는 MC 17초 경주의 남산. 신라인들이 광활한 영토를 굽어보며 영원한 불국토를 그리던 명산이다. ---------------------------------------------------------------------------------------------- VCR ① 산 전체가 보물, 경주 남산 #. 구름+산 전경(보고) #. 소나무 숲~발길 닫는 곳마다 보물이 있다. 그래서 남산을 지붕 없는 야외박물관이라고 한다. 남산이 품은 대표적인 보물은 불상이다. #. 바위에 새긴 불상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삼릉에서 냉골 골짜기를 따라 가다보면 널찍한 자연 암반에 새겨진 불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반에 새겼지만 마치 붓으로 그린 듯한 작품. 신라인들은 단단한 화강암에 부드러운 부처의 미소를 담았다. 자유로운 선이 돋보이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은 남산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부처의 미소다. #. 산 절벽에 있는 마애불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부처의 미소를 찾아 산을 오르다 보면 거대한 자연암벽에 놀라고, 암벽에 새겨진 불상에 또 한 번 놀라는 작품. 높이 6미터! 남산에 있는 불상 중 가장 큰 마애불상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에서 중생을 보살피는 부처의 마음이 전해진다. 바위 절벽을 부처가 머무는 나라로 보고, 그곳에 불상을 새긴 간절한 불심. #. 산 전경+핍 파고신라인은 남산의 질 좋은 화강암으로 많은 불상과 탑을 만들었다. #. (칠불암 마애불상군) 이 중, 국보로 지정된 불상도 있다. 절제된 얼굴표정과 유려한 선이 걸작인 칠불암 마애 석불상군이 대표적이다. 사면석의 각 면엔 비슷한 크기의 불좌상을 부조해 모두 일곱 구로 이루어져 있다. 중생을 껴안는 편안한 미소. 신라인이 꿈꿔왔던 부처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 황지웅 인터뷰 (경주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 “(남산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 지금까지 발견된 불상 119개, 절터 150여 군데. 지붕 없는 노천박물관이다.” #. (산 풀샷)경주 남산은, 산 속의 바위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이 되었다. 그리고 신라 천년, 그 융성했던 역사와 함께 했다. #. (늠비봉 오층석탑)늠비봉 봉우리에 세워진 오층석탑.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오층석탑은 남산 8경으로 꼽힌다. 바위산을 하층기단으로 삼고 자연석 위에 일층의 기단을 세운 후 5층의 탑을 조성했다. 백제식 석탑으로 멸망한 백제의 석공들이 통일신라 때 세웠다고 한다. #. 산 풀샷~바위로 pan 불상을 통해 불국토를 이루고자 했던 신라인의 열정은 깎아 지르는 벼랑도 문제 삼지 않았다.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은 삼면보관, 즉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있다. 풍만한 얼굴에,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오른손으로 꽃을 잡고, 왼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려 설법하는 부처를 표현했는데, 마치 구름을 타고 앉은 듯 절벽에서 중생을 굽어보고 있다. #. (열암곡 마애불)2007년, 놀라운 작품이 하나 더 발견됐다. 열암곡에서 발견된 마애불은 놀랍게도 암반의 바닥과 부처의 얼굴이 불과 5센티미터 간격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5 센티미터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 불상들 몽타쥬한 구비를 돌면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부처가 맞이하고 또 한 구비를 돌면 수많은 절터와 유적이 나타나는 곳. 자연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경주 남산은 신라인의 불국토이자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보물이다. -------------------------------------------------------------------- VCR ② 신라인들의 풍류보고서 - 안압지 #. 건물 pan~ 연못 (30초) 안압지는 신라 문무왕 때 만들어졌다. 기록에 의하면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안압지엔 여러 건물들이 있었고, 호화로운 연못이 있었다. 그래서 왕족들이 놀이를 즐기고, 사신을 접대하던 연회장소기로 추정된다. #. 연못 pan~연못 구조 타이트 본래 이름은 ‘월지’였다.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었다해서 ‘안압지’라 불렸다. 안압지는 인공연못이지만 물이 흐르는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 류지명 (자연환경해설사) 인터뷰 “(안압지 구조의 특징)” #. 건물안압지가 연회장소로 이용된 건 출토 유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출토 당시 사진1975년, 발굴 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된 안압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서른 한 곳의 건물터가 발견됐고, 삼만 여점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왕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들이었다. #. 주령구 이 중에, ‘주령구’라는 목제품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주령구은, 모두 열 네 개의 면으로 이뤄져 있다. -주령구 던지는주사위 각 면엔 각기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 -자막) 삼잔일거술 석 잔을 한 번에 마시기. 요즘 말로 단숨에 마신다는 원샷을 뜻하고, -자막) 곡비즉진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 러브샷을 의미한다. -자막) 음진대소술잔을 비우고 크게 웃어야 하고, -자막)중인타비여러 사람 코를 때리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자막) 농면공과간지러움을 태워도 가만히 있어야 하고, -자막) 금성작무 음악 없이 춤을 춰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잔치 때 흥을 돋우는 놀이기구로 추정된다. #. 연못 줌인(보고) #. 기와 등 유물출토된 유물들은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전달하고 있다.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유물들은 신라 왕족의 생활과 깊이 관련있는 것들이다. 이는 당시 왕실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오리장식~난간금동연꽃 오리장식과 난간은 당시 화려했던 안압지의 정원과 정자의 일부다. -거울, 비녀 등 여인들이 사용했던 유물도 발견됐다. 청동거울과 비녀, 청동 빗과 반지는 이곳이 왕실의 자리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 꽃외국과 활발히 교류했던 사실을 증언해주는 유물들도 발견됐다. -동물 뼈들사슴, 기러기, 낙타 등 희귀한 동물의 뼈가 발견됐는데, 바다를 통해 수많은 나라와 문물을 교환했던 흔적이다. -목재, 목선여기엔 신라인들의 뛰어난 항해술도 뒷받침했다. 가장 특별한 유물로 꼽히는 목선. 원형 그대로 출토됐다. 6미터 길이의 목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목선이기도 하다. #. 배 가는 신라의 왕족들이 배를 띄워, 유희를 즐겼을 연못.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길은 연못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지 않고, 서서히 드러낸다. 한정된 공간에 역동적인 효과를 더해 연못에 넓은 바다를 담아내고자 했던 의도다. 안압지는 신라의 숨겨진 왕실과 호방한 풍류를 비추는 거울이다. -------------------------------------------------------------------- VCR ③ 분황사와 모전석탑 #. 일출+묘+분황사 탑 몽타쥬 서기 632년,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여성군주 시대가 열렸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여왕은 크고 강한 나라의 건설을 천명하며 자신과 꼭 닮은 절을 짓는다. #. 석탑으로 pan 분황사는 선덕여왕의 원대한 꿈이 담긴 사찰이다. 그래서 이름도 ‘향기 나는 황제의 절’ 분황사다. (나머지 보고) #. 사찰 경내 F.S 서기 634년인 신라 선덕여왕 3년. #. 모전석탑 S.K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려는 듯 여왕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을 짓는다. 그리고 전에 없었던 독특한 탑을 쌓는다. -탑 꼭대기 탑의 꼭대기까지 돌을 다듬어 연꽃장식을 만들 정도로, 사찰과 석탑을 향한 여왕의 애정은 대단했다. -탑 Z.O 높이 9.3미터, 3층 탑인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독특한 양식이다. -벽돌 타이트 우선, 재료부터 독자적이다. 언뜻 벽돌로 보이지만 자연석을 일일이 깎아 벽돌모양으로 다듬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하나 쌓아서 탑신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왜 신라최초의 석탑으로 이런 양식을 구상한 걸까. #. 김명순 (지역환경해설사) 인터뷰 “신라 시대 이차돈 순교 후 불교공인되면서 목탑 많았다. 목탑은 화재발생 등으로 소실되기 쉬워. 목탑에서 석탑으로 건너가는 중간과정에 전탑을 세웠다.” #. CG / 이동경로 이 석탑의 모태는 인도에서 시작돼 실크로드를 타고 인도, 중국을 거쳐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은 분황사를 건립하면서 #. 경내 pan 중국에서 유학하고 온 승려들을 기용했는데, 이 유학파 승려들이 쌓은 탑이 모전석탑이다. #. 탑으로 pan 당시 중국에선 흙으로 벽돌을 구워 탑을 쌓는 전탑이 유행했다. 모전석탑은 바로 그 전탑을 모방했는데, 벽돌을 구울 기술이 없던 신라는 흙으로 만든 벽돌 대신 돌을 다듬어 쓴 것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 태어났다. 이 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최초의 석탑이자, 우리나라 모전석탑의 시초가 된다. #. 기단기단의 네 모퉁이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장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사자들이다. -pan 물개모양 사자장 그런데 동해 쪽으로 고개를 든 두 마리 사자상은 사자라기보다 물개에 더 가까워보인다. 그래서 바다로부터 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물개상을 세웠다는 해석도 있다. 이 모전석탑엔 금수의 왕 사자보다 더 무섭고 강력한 수호신들이 있다. -탑에서 T.D 인왕상탑 일층의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문의 양쪽에서 굳건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인왕상이다. -인왕상 얼굴 pan~주먹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표정에 금방이라도 내려칠 듯 불끈 쥔 주먹. 흔히 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는 인왕상은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존재다. 대개는 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모전석탑에는 한 면에 두 구씩, 모두 8개의 인왕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표정과 모양이 각기 다르다. #. 탑 T.D + CG (출토 유물들) 1915년, 모전석탑을 수리하던 중 돌로 된 사리장엄구가 발견됐다. 그 함 속에는 금바늘과 은바늘, 침통과 가위, 그리고 사리 다섯 알이 든 은상자가 들어있었다. 문 앞에 서있는 인왕상의 주 임무는 #. 산에서 감은사지로 pan 부처님의 사리와 장엄구를 지키는 일이었던 것이다. 모전석탑의 인왕상은 한반도 최초로 등장한 인왕상이고,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며 독자적인 개성을 확립해 간다. 몸짓도 더 역동적이 되었으며, 얼굴 표정은 더욱 세밀해 졌다. #. 불국사 + 석굴암그리고 석굴암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룬다. 분황사가 세워진 후 100여 년이 지난 751년, 석굴암이 탄생한다. -본존불+인왕상자연스러우면서도 숭고한 본존불상을 지키는 것이 두 구의 인왕상이다. 공격과 동시에 방어를 하는 역동적인 모습, 그러나 표정엔 악의가 없다. 바로 우리나라 인왕상 만의 고유한 특징이 나타난 것이다. #. 분황사 모전석탑경주 곳곳에 탑과 불상과 사찰을 남긴 신라인들. 그들은 더 크고 강력한 부처의 나라를 원했다. 부처의 땅이 현세에 구현되길 꿈꾸었다.
 

더불어 낮에 보실 수 있는 물 위로 반사된 파란 하늘의 모습!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그리고 안압지가 가진 반전 매력 하나 더!




사실 안압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밤이 깊어야 나타난다고 해요. 밤이 깊고 연못 옆으로 불빛이 드리워지면 만날 수 있는 안압지의 야경은 다른 어떤 연못에서도 만나실 수 없는 절경이랍니다. 안압지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친구, 연인과 함께 노래를 들으면서 산책하면 너무 좋을 것 같지 않나요? 게다가 안압지는 경주역과는 버스로 15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어 방문하시기도 부담 없으실 것 같아요!

그리고 경주를 찾는 여행객분들에게 드리는 TIP 하나 더! 경주는 도로가 평평하고 관광지 곳곳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고 하니, 자전거를 타고 경주 곳곳에 흩어진 문화유산들을 만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부산역, 어디 갈까?
해운대 바다 그리고 동백섬

드디어 경상도 내일로 코스의 마지막! 부산입니다. 부산은 매년 여름이면 해수욕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죠. 특히나 해운대 해수욕장은 부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꼭 찾는 명소 중의 명소! 바로 그 해운대 해수욕장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동백섬"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섬이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답니다!! 동백섬은 원래 육지와 동떨어져 있던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떠내려온 흙과 모래 그리고 자갈 등이 섬과 육지 사이에 점점 쌓이게 되었죠. 결국 동백섬은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의 육계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덕분에 지금은 산책로를 통해 쉽게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해요. 섬이 그리 크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대마도까지도 보인다고 해요.




울창한 나무와 바다가 있는 곳! 해운대 동백섬을 추천해드립니다.

해운대동백섬(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6호)

지금까지 하계 내일로 코스 추천 경상도편이었습니다! 안동부터 경주 그리고 부산까지 재미있는 여행 다녀오세요~
 

댓글등록 비밀댓글

(0 / 300)

전체댓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