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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하계 내일로 코스 추천(2) 전라도편 스크랩

자연의 풍광에 도취하고, 역사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우리 삶의 이야기를 비춥니다.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생활 가까이! 자연 가까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저 도!깨!비!가 여러분과 함께 동행 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문화유산채널 입니다!

오늘은 저번 강원도편에 이어서 전라도 내일로 코스를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문화유산채널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볼거리가 가득한 전라도 내일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전라도 내일로 코스 추천
군산역 / 전주역 / 남원역 / 순천역


이번 전라도 코스는 근대문화의 도시 군산에서 시작해서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순천까지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그럼 군산부터 알아보도록 합시다.


군산역, 어디 갈까?
스탬프 투어로 돌아보는 근대 역사 문화의 도시 군산


전라도 첫 추천 장소는 군산입니다. 군산은 근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들이 모여있어 "근대문화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사실 이 근대적 건축물들에는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군산은 1889년 개항 이후, 쌀 수탈의 기지로 활용되며 일본이 군산 곳곳에 일식 건물들이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군산에 얽힌 슬픈 이야기 영상으로 더욱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1. 프롤로그 -시마타니 귀중품 창고 자막> ‘시마타니 금고’ 미스테리한 느낌 이 금고에 무엇을 숨겼던 것일까? -이영춘 가옥 자막> ‘이영춘 가옥’ 이 집엔 어떤 사연이 남겨져 있을까? -군산항 모습, 임피역 모습 자막> 군산에 남겨진 일제 수탈의 역사 --------------------------------------------------------------------------------------------------- 2. 타이틀 문화유산 여행길 – 수탈의 역사 서린 군산 근대유적을 찾아 --------------------------------------------------------------------------------------------------- 3. 임피역 -임피역 모습 NA> 1912년에 세워진 임피역은 -재건축 시기 써야 하나?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입니다. 자막> 군산 구 임피역(등록문화재 제208호) -철길 NA> 1912년에는 이리, 즉 지금의 익산과 군산항을 잇는 철도인 군산선이 개통되었는데요. 일본은 곡창지대와 항구마다 철도를 놓고 역을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옮겼습니다. NA> 임피역 역시 인근 농장에서 생산한 쌀을 군산으로 실어내는 역이었는데요. 당시 화물의 80% 이상이 모두 쌀이었다는 것으로 볼 때 얼마나 많은 수탈이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발길 끊긴 쓸쓸한 역 이미지 NA> 2008년 5월 이후, 임피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게 되었는데요.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채 -망루, 시계탑 역은, 쓸쓸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4. 발산 초등학교 -초등학교 전경 NA> 임피역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발산초등학교에서도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자막> 군산 발산초등학교 /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시마타니 귀중품 창고 NA> 학교 교사 뒤에는 일본인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에 의해 건축된 일본인 농장 창고가 있는데요. 자막> 군산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등록문화재 제182호) -건물 이모저모 NA> 반지하를 포함해 3층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건물은, 흔히 ‘시마타니 금고’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농장경영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일본인 시마타니는 우리나라 문화재 수집에 열을 올렸고, 불법적으로 거둬들인 우리의 문화재를 보관하기 위해 이 창고를 지은 것인데요. NA> 미국에서 철제금고를 수입해 설치하고, 창문에는 이중 잠금장치를 둘 만큼, 이 건물에 많은 돈과 정성을 쏟았다고 전해집니다. -학교 뒤편 NA> 학교 뒤편에는 시마타니가 자신의 집 정원을 꾸미기 위해 수집한 석탑과 석등 같은 문화재가 남겨져 있는데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완주 봉림사지에서 가져온 군산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입니다. 자막> 군산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 -오층석탑 NA> 특히 오층석탑은 지붕돌이 낮고 평평한 백제계 양식의 고려시대 석탑 모습이 특징인데요. -다양한 석탑, 석등 모습들 이 외에도 독특한 형태의 육각 승탑과 대리석을 사용한 석등, 비석 등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자막>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 군산발산리육각승탑(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83호) NA>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수탈하려한 흔적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집니다. --------------------------------------------------------------------------------------------------- 5. 이영춘 가옥 -이영춘 가옥 들어서는 NA> 군산에 살던 일본인 농장주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요. -군산전문대학 모습, 이영춘 가옥 전경 NA> 군산간호대학교 안에 자리한 이영춘 가옥입니다. 서양의 통나무 집을 닮은 독특한 모습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촬영장소로 간간히 등장하는 건물인데요. -건물 이모저모 NA> 이 건물은 1920년대에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의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가 건립한 것으로, 가을 수확기가 되면 그가 일본에서 건너와 머물던 별장이었습니다. 자막> 구마모토 리헤이가 NA> 벽은 백두산에서 가져온 낙엽송을 이용해 올렸고, 지붕에는 얇은 박석을 깔아 기와를 대신했는데요. 내부엔 온돌방과 다다미방을 두고, 서양식 거실을 만들어 천장에는 샹들리에를 걸었습니다. NA> 또한 집 안의 가구는 모두 유럽에서 수입한 것이었다는데요. 당시 이 건물의 건축비가 총독부 관저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하니, 일본 농장주들이 수탈을 통해, 얼마나 많은 부를 쌓았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당신 진료모습 사진 NA> 농장주였던 구마모토는 농장일꾼들의 건강이 생산력 증대로 이어져 자신의 부를 키워줄거라 생각하고, 농장 일꾼들을 돌볼 조선인 의사를 초빙했는데요. 그가 바로 이영춘 박사였습니다. NA> 이박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곳에서 농장일꾼들의 -이영춘 모습 건강을 돌봐왔는데요. 광복 후에도 이 집에 머물며 농촌진료활동을 펼치게 되면서, 이 별장은 이영춘 가옥이 되었습니다. NA>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릴만큼 헌신적이었던 그는, 평생 가난하고 병든 농민들의 의사로 살며, 후진양성에도 힘써 지금의 군산간호대학교의 토대를 일구기도 했습니다. 자막> 이영춘 가옥(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00호) 자막> 이영춘 박사(1903~1980)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릴만큼 헌신적으로 진료활동을 펼친 의사로, 군산간호대학교의 토대를 일구었다 --------------------------------------------------------------------------------------------------- 6. 구 군산세관 본관 / 구 일본 제 18은행 -군산세관 앞 거리 NA> 군산 거리를 걷다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요. 구 군산세관 본관을 중심으로 군산항 일대에는 그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구 군산세관 본관 NA> 구 군산세관 본관은 통관과 세무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1908년에 지어졌는데요.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벽돌을 수입해 지은 2층 신식 건물로, 지금은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막> 구 군산세관 본관(전라북도기념물 제87호) NA> 군산세관 본관을 둘러보고 신항쪽으로 걷다보면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볼 수 있는데요. 경제수탈을 위해 세운 금융기관들을 보며 아픈 세월을 견뎌야 했던 우리 민초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자막>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제372호) --------------------------------------------------------------------------------------------------- 7. 에필로그 -하이라이트 NA> 수탈의 역사가 서린 군산의 근대유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아픈 근대사의 한자락을 들여다 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군산 코스를 알아보겠습니다. 군산 근대문화유산 거리는 스탬프 투어를 통해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군산역에서 버스로 40분 거리 군산 근대역사 박물관에서 스탬프 투어를 시작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선사시대부터 시작하여 근대시대까지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재미있는 사진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말그대로 곳곳이 포토존인 곳이죠.

군산 근대역사 박물관에서 나오시면 옆으로는 구 군산세관과 현재 근대 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구 조선은행이 있습니다.




군산세관은 1908년에 건립된 건물로, 서양식 단층 건물입니다.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특징입니다. 구 군산세관에서는 과거 세관으로 사용할 당시의 사진과 물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있습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조선은행이 바로 이곳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입니다.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의 본거지인 군산에서 감시를 위한 기능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군산 근대 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어, 근대 시기 건축물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군산에서는 군산 근대역사 박물관을 중심으로 ​'신흥동 일본식 가옥', '진포해양공원', '(구) 미즈상사'​ 등 많은 곳을 둘러보실 수 있답니다.


전주역, 어디 갈까?
순교터에 지어진 전동성당


전주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한옥마을 입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다양한 먹거리들도 있고 한복체험도 할 수 있어 많은 분들이 끊이지 않고 찾고 계신 명소입니다. 그리고 이 한옥마을 사이에 인생샷 명소, 전동성당이 있습니다.




전동성당의 겉모습은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비잔틴 양식의 특징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도 함께 찾아볼 수 있는데요.




건물 정면에서 보실 수 있는 종탑은 비잔틴 양식이며, 건물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둥근 아치형 천장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의 전동성당, 이곳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순교터에 지어졌던 것인데요. 1791년 (정조 15년)에는 윤지충과 권사영이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후,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신부가 설계를 하여 지어진 것이 바로 전동성당입니다.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근대건축의 백미, 전동성당에 꼭 한 번 방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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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Na / 건축물은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릇’에 비유됩니다. 건축은 그 그릇을 빚는 작업이죠.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이 서린 전주 전동성당은, 시대와 종교를 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 조선 왕실의 본향에 세워진 천주교회, 전동성당, 세 가지 비밀 -------------------------------------------------------------------------- 김연수 / 한국 천주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양 선교사들이 파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조선의 개화기, 서 양의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근대식 성당이 지어졌는데 전동성당은 우리나라 교회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자막 / 전주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1914년 준공,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로 꼽힌다 Na / 오래된 건축물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에 갑니다. 때론 세월의 흔적들이 말을 거는 듯 느껴져 발걸음을 멈추게 되기도 합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설계한 프랑스 신부는 명동성당의 설계도 담당했는데, 그런 이유로 전동성당과 명동성당을 자주 비교하곤 합니다. 안창모 /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 문화재위원) 전동성당 같은 경우에는 성당이라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비슷하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다 서양건축양식으로 굉장히 근사하기 때문에 똑같다고 보지만 창의 모습을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고딕성당은 뾰족한 아치를 사용했고 전동성당은 반원형 아치를 사용을 해서 하나는 고딕시대, 하나는 로마네스크 건축양식, 로마풍의 건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Na / 적색과 진회색의 벽돌이 서로를 받쳐주며 질서정연한 조화를 이루고, 성당의 상징과도 같은 돔 지붕은 전동성당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합니다. 성당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요? 김연수 / 실내에 들어와 보니 고풍스럽고 또 격조가 있습니다. 이런 석조 건물의 무게감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한 느낌이 드네요.. Na / 아름다운 빛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상징합니다. 성당 특유의 장엄함과 함께 불을 밝힌 전동성당의 내부 공간은 밝고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김연수 / 와, 무채색 그림에 색칠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네요. Na / 우리나라 초기 성당건축의 수작으로 불리는 전동성당. 그런데, 음향시설이 없었던 시대에 이 큰 성당에서 어떻게 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반원형 천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 ▶ Why ① 전동성당의 천장은 왜 둥근 반원형일까? -------------------------------------------------------------------------- Na / 성당의 구조에는 천국을 향한 인간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고딕 양식의 높고 둥근 천장은 천상의 공간을 뜻하고, 채광과 장식을 겸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신비함을 더해줍니다. 이런 성당 구조의 건축적 특징은 내부 음향효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높은 반원형 천장은 성당 안의 소리를 반사 시켜주고 성당 안 기둥은 소리의 울림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막 / 반원형의 높은 천장은 성당 안 소리를 반사시켜 줌 성당 내부의 기둥은 소리의 울림을 조절 Na / 1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 온 전동성당은 성당을 찾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 탄식과 슬픔을 함께 해왔을 것입니다. 종교적인 엄숙함과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또 다른 요소는 성당의 창을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데, 12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해 교회건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건축기법이 되었습니다. 전동성당의 유리창은 성서의 인물과 성당의 역사를 담은 상징적인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김연수 /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를 배반하고서는 갈 곳이 없습니다. 김연수 /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Na / 전동성당이 품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곳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지라는 점입니다. 자막 /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Na / 1791년, 조선 정조 15년, 천주교 신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전주 풍남문 밖에서 참수당합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입니다. 김연수 / 그 당시에 천주교는 왜 그렇게 박해를 받았습니까? 이철수 / (전동성당 신앙문화유산해설사) 1790년경 한국 천주교 첫 박해로 신해박해를 들 수가 있습니다. 자막 / 신해박해 1791년(정조 15년)에 일어난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사건 이철수 / 이때 이곳에서 순교하신 윤지충 바오로라는 분은 정약용과 고종 사촌 간이죠. 그분들을 통해서 교리를 받아들이고 천주교 신자가 됩니다. 천주교에서 (주장했던) 조상 제사의 금지를 직접 실천을 하게 됩니다. 당시 사회상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유교 근본이나 전통사상에 크게 반하는 행위로 순교를 당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Na /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지에 어떻게 전동성당과 같은 큰 성당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 ▶ Why ② 천주교 첫 순교지에 어떻게 성당건축이 가능했을까? -------------------------------------------------------------------------- 자막 / 보두네 신부(한국명 윤사물) 전동성당 초대 주임신부 Na / 전동성당은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 신부의 오랜 노력 끝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서툰 조선말을 숨기고 전주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보두네 신부는 17년에 걸쳐 성당을 건축할 땅을 매입합니다. 자막 / 17년간 부지를 매입한 보두네 초대 주임 신부 자막 / 조불수호통상조약 1886년 (고종 23년) 조선과 프랑스가 체결한 통상조약 프랑스가 요구한 천주교 선교를 허락하고 교인들의 신분보호를 수용 Na / 신해박해 이후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천주교 선교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조선과 프랑스 정부 간의 조불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지고,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자 지금의 자리에 전동성당의 터전이 마련됩니다. 자막 / 신앙의 자유 허락 순교지에 성당 건축 허용 자막 / 전주 경기전 (사적 제339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 김연수 / 전동성당의 맞은 편에는 이성계의 초상을 모신 경기전이 있습니다. 전주는 이성계의 본향이고, 한양,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징적으로 천주교 박해가 심했을 것입니다. Na / 성당건축이 시작되자 중국인 벽돌공 100여 명이 동원됐습니다. 그런데 전동성당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전주부성 풍남문 성벽의 돌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 ▶ Why ③ 전주부성 성벽의 돌을 왜 전동성당 주춧돌로 사용했을까? -------------------------------------------------------------------------- 자막 / 전주 풍남문 (보물 제308호) Na / 일제강점기, 통감부는 성벽처리위원회를 설치해 전국의 도성과 읍성의 성벽을 헐기 시작합니다. 전주 역시 신작로를 닦는다는 명분 아래 풍남문을 제외한 전주부성의 성벽을 모두 철거해버립니다. 자막 / 신작로를 닦기 위해 성벽을 헐어버린 일제 Na / 전동성당은 그때 헐린 성벽의 돌을 가져다 주춧돌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자막 / 허물어진 성벽의 돌을 가져다 성당의 주춧돌로 삼았다 이철수 / 이 돌이 풍남문 성곽에 있던 돌을 가져다가 기초석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 돌의 의미는 초대 순교자들의 목이 베어져 피가 스며들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연수 / 아 그러니까 순교자들의 피가 스며든 돌이 이 성당의 주춧돌이 된 셈이네요. Na / 전동성당은 천주교 순교의 역사 위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동성당의 초석을 마련한 이들이 겪었을 고난의 역사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세월을 품은 채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성당의 외형이 완성되고도 17년 동안 내부공사를 진행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전동성당.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보급창고로, 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전주 민주화의 성지로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함께 해왔습니다. 전쟁의 군수물자로 사라질 뻔했던 종은 매주일 오전 미사 때마다 그 창연한 종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김연수 / 건축물은 그곳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시대상,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박해는 끝났으나 일제의 침탈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태동한 전동성당, 100여년의 세월을 품은 전동성당은 이 순간에도 묵묵히 우리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막 / 한국 천주교 첫 순교지 전주 전동성당 100여년 역사의 시간을 품다
 
 

남원역, 어디 갈까?
춘향이와 몽룡이 그리고 견우와 직녀가 있는 곳, 광한루원

여러분 모두 춘향이와 몽룡이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 <춘향전> 아시죠? 이번에 소개드릴 곳은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가 처음 인연을 맺은 장소로 유명한 광한루가 있는 관가의 정원, "광한루원"입니다. 광한루원은 사극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광한루원은 남원역에서는 버스로 20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습니다.




춘향이의 이야기로 유명한 광한루!

1419년(세종 원년)에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600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만큼 우리나라의 여러 누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광한루는 처음에는 "광통루"라고 불렀다가, 1434년(세종 16년)에 정인지가 고쳐 세우면서 "광한청허부"라고 부른 이후에 "광한루"로 이름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광한루원에는 광한루 외에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더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이 오작교입니다.




서로를 그리워해도 만날 수 없었던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에만 오작교를 건너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하죠. 바로 그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형상화한 다리입니다. 1582년, 남원 부사 장의국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춘향이와 몽룡이의 이야기, 그리고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있는 이곳!섬 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님께서도 이곳 광한루를 사랑하는 문화유산으로 꼽았다고 하니, 한 번 들러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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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감동적이네” ‘천천히 낯설게 보라’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자연과 일상의 삶을 소재로 대중들의 감성을 깨우고, 진실한 울림을 전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그런 그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문화유산이 있다. 세월의 낭만이 있고, 상상을 더할 수 있는 곳. 바로 광한루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저희 집하고 가깝기 때문에 1년에 한 두 번씩은 반드시 오게 되죠. 광한루하면 성춘향과 이도령, 춘향전을 알게 되고 영화와 판소리로 계속해서 접하기 때문에 유명한데, 사실 유명한 문화재일수록 사람들이 그 유명한 이름만 알지 그 깊이 있는 문화재의 맛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거예요. 자세히 볼수록 깊이 있게 다가오는 공간, 남원 광한루다. ----------------------------------------------------------------------------------------------------- <타이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상상의 공간, 남원 광한루 ----------------------------------------------------------------------------------------------------- ‘하늘이 정해준 땅’이란 별칭을 가진 전라북도 남원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관아정원, 광한루원이 있다. 그 정원의 중심에 자리한 광한루.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늘 올 때 마다 (생각하는 건데) 오작교에 서서 (광한루를) 바라볼 때마다 광한루 자체가 별 욕심 부리지 않는 단아한 루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언제 와서 봐도 편한 루다. 그런 생각이 들죠. 겹겹이 쌓인 세월에도 건재함을 보이는 광한루는 1419년 ‘광통루’란 이름으로 황희정승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 이후 정인기가 이름을 고쳐지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광한루’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소실 됐다가 중찬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현존하는 우리나라 누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광한루와 역사를 나란히 해 온 정원.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연못과 세 개의 인공 섬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처음 이곳에는 월매집도 춘향이 집도 없었겠죠. 광한루와 오작교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뿐이었겠죠. 상상해보는 겁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이곳을 조성할 때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신선사상과 천상의 우주관을 담은 광한루원. 달을 상징하는 광한루를 중심으로 은하수를 상상하며 연못을 만들고, 신선이 사는 세 개의 인공 섬, 삼신산과 오작교를 놓았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었던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야기를 구현한 것이다. 이곳에는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대표적인 고전 사랑의 서사시, 춘향전이다. 언제,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구전과 판소리, 소설로 전해져 내려와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야기로, 주인공 성춘향과 이몽룡이 첫눈에 반해 사랑을 키워나간 곳이, 바로 이 오작교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사람들이 연애할 때 광한루를 많이 오죠. 왜냐하면 춘향전 자체가 어려운 난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의 승리’이기 때문에 사랑의 해답을 찾으러 광한루를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결혼 할 때 처가에서 굉장히 반대를 했어요. 대게 반대 안하는 결혼이 없잖아요. 무의식적으로도 ‘아 광한루를 한 번 가보면 거기서 사랑의 힘을 얻어올 것이다. 답을 얻어올 것이다.’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죠. 저도 연애할 때 춘향제에 몇 번 왔습니다. 정문을 벗어나면서 ‘아! 파이팅!’ 하는 힘을 얻어갔죠. 소설 속 배경이 된 남원에서는 춘향의 굳은 절개를 흠모하기 위해 1931년부터 춘향제를 개최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저희가 어릴 때부터 춘향제 축제가 굉장했죠. 춘향제를 하면 임실, 순창, 남원, 곡성, 두레 이 근방 고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남원으로 다 쏟아져 들어왔죠. 놀라울 정도로 남원 시내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춘향제야 말로 진정한 민중의 축제였죠. 2015년에는 김용택 시인도 축제에 참여해 낭만을 더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라는 제 시가 있습니다. 그 시를 낭독했습니다. 광한루가 달의 궁전이잖아요 사람들이 되게 좋아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광한루를 찾은 김용택 시인. 그는 이곳을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문화재라는 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제 시도 제가 쓰지만 독자들이 마음대로 상상하는 걸 이해하게 되죠. 중요한건 어디를 가든 자세히 보는 겁니다. 광한루를 자세히 보다보면 작은 조각상들이 광한루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작은 조각에는 각각의 의미와 선조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자라를 타고 한 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이 연못을 한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네요. 상상이 되네요. 많은 것을 보기보다, 하나를 깊이 있게 보는 것. 그것이 시인 김용택이 말하는 문화재를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광한루엔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계관입니다. 달나라 궁전에 왔습니다. 남원부사 이상억이 썼다는 계관. 이 뿐만 아니라, 광한루 풍경에 반한 많은 시인들이 시문과 현판을 남겼는데, 현재 여든세 점의 편액이 누각에 걸려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제가 광한루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유명한 대가들의 시가 빽빽하게 걸려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들이 잘 아는 송강 정철 선생의 시가 여기에 걸려있습니다.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놀라운 것은 이 공간 안에 기생의 시가 걸려있다는 겁니다. 보면 봉선과 연옥이라는 기생의 시가 걸려있습니다. 놀랍죠? 오색 무지가 치마로 춤추기를 멈추고 홀로 누대에 기대니 가을밤 대밭사이로 오작교의 절반쯤 걸린 밝은 달이 비치네 소첩의 몸으로 성춘향 낭자의 절개 지키고저 하지마는 이몽룡 같은 낭군을 찾을 수 없어 공연히 수심만 이는구나 # 김용택 시인 인터뷰 / 많은 시인들이 광한루에 와서 시를 많이 짓는데 광한루 하면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난제이고 숙제인 사랑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에 시인들에게 시적 감정, 감성을 자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저도 여기를 자주 왔는데 오랫동안 ‘광한루에 대한 시를 한 편 써야 겠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언젠가 저도 편액을 만들어서 걸지는 않겠지만 아름다운 시를 한 편 쓰겠습니다. 시인들이 사랑했던 공간. 선조들의 이상향이 녹아있고 소설 속 배경이 된 무대. 광한루는, 천천히 보고 즐기며 사랑 이야기를 음미하는 곳이다.
 
 
순천역, 어디 갈까?
생태계의 보고, 순천만

'세계 5대 연압습지', '한국관광공사 선정 최우수 경관 감상형지', '국가 재정 명승 제41호', '천연기념물들의 고향'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지 못 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인지 감이 오시나요? 정답은 바로 '순천만습지'입니다.

 

순천만은 남해안 지역에 발달한 연안습지들 중 우리나라를 대표할 정도로 큰 규모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합니다. 드넓은 습지에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갈대밭이 명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 그 보전 상태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순천만의 아름다움은 동물 친구들에게도 알려졌답니다. 국제적인 보호 대상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저어새, 황새, 민물도요 등 많은 새들도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넓은 순천만 어디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습니다. 순천역에 들리신다면 순천만 국가 정원에 들리시기를 꼭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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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 초록을 머금고 바람을 이고 빛을 안는다 #. 햇살이 여물어 저물도록 계절이 바뀌고 변하도록 갈대는 습지는 물은 생명을 품어낸다 #. 세계 5대 연안습지 생태계의 보고 그 어떤 수식어도 표현할 수 없는 가슴으로 담는 그곳, 순천만
 

내일로 추천 코스 전라도편! 어떻게 보셨나요? 빨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문화유산채널에 추천드린 명소에서 행복하고 예쁜 추억과 사진 많이 남기고 오세요. 그럼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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