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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황후의 품격> 촬영지 부여로 떠나는 백제여행 - 백제문화역사유적지구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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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품격> 촬영지 부여로 떠나는 백제여행 - 백제문화역사유적지구


안녕하세요 문화유산채널입니다!

넓은 평야 지대와 풍족한 생활, 온화하고 세련된 문화를 꽃피운 백제.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 중 하나로 제일 먼저 전성기를 맞이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하고 아름다운 문화대국을 이뤄냈던 국가입니다. 위례성, 웅진, 사비로 세번의 천도로 현재 공주시와 부여군, 논산시, 계령시 일대에서 백제의 문화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화제의 드라마 <황후의 품격>의 촬영 배경지이자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서 그 역사와 숨결을 느껴볼까요?

정림사지



세번의 천도 후 마지막 도읍지가 된 부여의 심장부에 백제사찰을 대표할 수 있는 정림사 절터가 남아있습니다. 정림사지는 중문과 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에 놓이고 건물을 회랑이 감싸고 있는 구조인 '일탑식가람' 배치입니다. 오늘날에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이 남아있습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 (국보 제9호)

정림사지 한 가운데 서 있는 정림사지 석탑을 통해 백제의 옛 위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700년 유구한 백제의 역사에 비해 현존하는 백제 석탑은 익사의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 단 두 곳 뿐입니다. 그 중 이 정림사지 5층석탑만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석탑이지만 목탑의 양식을 따른 모습으로 백제석탑이 목탑의 번안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로서 한국 석탑의 계보를 정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미학. 세련되고 정제된 정림사지 5층석탑의 모습에서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탑신의 높이가 서서히 줄어드는 비례미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탑의 균형미와 율동미를  보여주고 탑의 네 귀퉁이가 가볍게 하늘을 향하는 상승미가 더해져 백제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석조 여래좌상 보물 제108호




궁남지



궁남지 사적 제135호

궁궐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의미의 궁남지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과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유명합니다.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

삼국사기에는 궁남지가 무왕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을 정도로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관광지인 이 곳에서 7월에는 천만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출처 :

다리를 건너가면 연못 중앙 섬에 세운 정자, 포룡정에 닿습니다.




신선이 사는 방장선산을 모방해서 무왕이 만들었다는 이 섬은, 불로장생을 꿈꾼 무왕의 염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부소산성




부소산성은 금강의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입니다.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해 이중으로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이지만, 500년경 동성왕 때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을 무왕이 605년경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 합니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백제가 멸망할 당시에 궁녀들 중에 일부는 백마강에 몸을 던져 죽은 비극을 간직한 곳이 바로 부소산성입니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 시절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될 때 백제의 3천 궁녀가 이곳에서 백마강을 향해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바위입니다. 자살한 궁녀에 대한 내용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아래와 같이 최초로 언급되었습니다.

『백제고기(百濟古記)』에서는 ‘부여성(扶餘城)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아래로 강물에 닿아있는데, 전해오는 말로는 의자왕과 모든 후궁(後宮)이 함께 (화를) 면하지 못할 줄 알고 서로 말하기를, 차라리 자살할지라도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하고, 서로 이끌고 와서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고 하여 세상에서는 타사암(墮死巖)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속설(俗說)이 잘못된 것이다. 다만 궁인(宮人)이 떨어져 죽었더라도, 의자왕이 당(唐)에서 죽었다는 것은 당사(唐史)에 명백히 써있다.

가장 아름답게 꽃피웠다 지고 만 나라 백제. 하지만 백제인의 역사와 숨결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채널 영상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1400년 전 부여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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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역사 세계를 품다 부여 백제역사유적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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