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문화유산여행

[세계문화유산 여행] 일성록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조선시대 왕의 일기 _일성록 모습

정조에 의해 시작되어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151년간에 걸쳐 기록된 조선시대 왕의 일기 <일성록>은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오늘은 조선왕조 3대 연대기 중 하나로 꼽히는 <일성록>의 빛나는 가치를 확인해봅니다.

일성록 펼치는 모습

정조에 의해 시작돼서,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151년간에 걸쳐 기록된 조선시대 왕의 일기 일성록은 ‘날 일(日)’에 ‘살필 성(省)’, 곧 하루를 반성하는 기록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왕의 일기에 담긴 내용들은 무엇일까요?

상세 내용

"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6월 3일까지 공부를 중단했다" 감기에 걸려서 공부를 중단했다는 소박한 일상이 적혀 있는 내용이 있는가하면, 홍수피해를 입은 지역을 고민하고 조치한 내용 치세에 대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나 여 1인칭

그런데 일성록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글씨가 있습니다. 나를 가리키는 여 자(子)입니다. 이것은 이 일기가 일인칭 시점, 곧 왕의 시점으로 써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조선의 역대 기록물 중에 왕을 ‘나’라고 표현한 것은 <일성록>이 유일합니다. 조선의 왕들은 국정을 다스리는 와중에도 평범한 필부필녀처럼 매일같이 일기를 썼던 것입니다.

정조의 모습

그 시작은 조선의 22대 왕이었던 정조가 세손시절부터 써온 일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긴 정조는 왕위에 오를 때까지 경희궁 내의 존현각에서 일기를 썼습니다.

왕의 일기_존현각

정조의 존현각 시절의 일기라 하여 불린 <존현각일기>가 그것인데, 정조는 즉위 후에도 일기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즉위 5년이 되던 해까지 일기를 쓴 정조는, 이 일기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규장각에 책임자들을 정합니다. 바로 이때부터 일성록은 이제 왕이 직접 쓰던 일기에서 신하가 왕을 대신해서 왕의 일과와 치세내용을 쓰는 국정일기로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왕의 일기_존현각

일성록은 특히 주제별로 제목을 붙여서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하는 독특한 집필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당대의 역사를 후세가 판단하도록 임금도 볼 수 없게 비공개로 관리된 반면, <일성록>은 왕이나 관료가 국정운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알아보기 쉬운 편집체제를 갖추었습니다. 일성록은 그날그날의 국정일기이자 전국의 민심동향을 보여주는 민심일기이기도 했습니다.

동영상 대본보기
대본보기 #프롤로그 10“

-왕의 의자
구중궁궐 깊은 곳, 조선의 왕들이 앉았던 의자다. 조선의 왕들은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고민했던 것일까.

-의자 위로 일성록 7“

조선시대의 왕들이 썼던 왕의 일기, 일성록이 그 내용을 말해준다.
타이틀/ 조선시대 왕의 일기 -일성록

#규장각 외경 11“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일성록>이 공개됐다.

#놓인 일성록 한권 13“

정조에 의해 시작돼서,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151년간에 걸쳐 기록된 조선시대 왕의 일기,

#종이에 적혀지는 한자 하나씩 15“

일기는 날 일(日)에 살필 성(省),
곧 하루를 반성하는 기록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왕의 일기에 담긴 내용들은 무엇일까,

#일성록 펼쳐 16“

(“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6월 3일까지 공부를 중단했다”) 감기에 걸려서 공부를 중단했다는 소박한 일상이 적혀 있는 내용도 있는가하면,

#영인본 7“
( 삼남지방에 홍수가 나서...)

홍수피해를 입은 지역을 고민하고 조치한 내용, 치세에 대한 내용들도 있다.

# ‘予’ 부각 23“

그런데 일성록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글자가 있으니 나를 가리키는 여 자(子)다.

이것은 이 일기가 일인칭 시점, 곧 왕의 시점으로 쓰여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할 화면
조선의 역대 기록물 중에 왕을 ‘나’라고 표현한 것은 <일성록>이 유일하다.

#붓 이미지 13"

조선의 왕들은 국정을 다스리는 와중에도 평범한 필부필녀처럼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 ... #정조 어진 z.in 6”

그 시작은 조선의 22대 왕이었던 정조가 세손시절부터 써온 일기에서 비롯됐다.

#경희궁 13“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긴 정조는 왕위에 오를 때까지 경희궁 내의 존현각에서 일기를 썼다.

#서궐도안 z.in 되면 8“

정조의 존현각 시절의 일기라 하여 불린 <존현각일기>가 그것인데,

-카메라 무빙

정조는 즉위 후에도 일기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의자 20“

즉위 5년이 되던 해까지 일기를 쓴 정조는,
이 일기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규장각에 책임자들을 정한다. 바로 이때부터 일성록은 이제 왕이 직접 쓰던 일기에서

#좌측에 ‘입직 건교직각 신이만수....’ 적힌 7“

신하가 왕을 대신해서 왕의 일과와 치세내용을 쓰는 국정일기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손으로 가리키는 부분 12“
일성록의 가치 1. 일목요연한 11개의 주제 분류

일성록은 특히 주제별로 제목을 붙여서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하는 독특한 집필방식을 택하고 있다.

#경상좌수영의 누선 3척을 거북선으로 개조할 것을 명함 20“

거북선 개조를 언급한 어느날의 일기를 보자.
먼저 주제가 되는 제목이 쓰여지고, 그 아래에 비변사에서 보고한 내용, 임금이 신하의 청을 허락한 내용 등이 정리돼 있다.

#재연행사 17“

-임어소견류

주제는 제례, 제사에 관한 내용부터 왕이 관리를 만나고 관원을 포상하거나 재해를 입은 백성을 구휼한 내용까지.. 모두 11가지로 나뉘어있다.

#상평통보 20“
일성록의 가치 2. 당대 국정 운영 자료로 활용

<조선왕조실록>이 당대의 역사를 후세가 판단하도록 임금도 볼 수 없게 비공개로 관리된 반면, <일성록>은 왕이나 관료가 국정운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알아보기 쉬운 편집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왕 자리 z.in 13"

일성록은 그날그날의 국정일기이자 전국의 민심동향을 보여주는 민심일기이기도 했다.

정조당시의 일성록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글자가

#<일성록> 펼쳐진 26”

바로, 격쟁이라는 글자다.

격쟁- 이것은 꽹과리나 징을 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일종의 상소제도로 정조가 즉위하면서 허용한 제도다.

정조치세 당시 일성록에 등장하는 격쟁의 횟수가
조선왕조실록의 40배,

#꽹과리, 화성행차 반차도 16“

백성의 뜻을 살펴 억울함을 달래주고, 그 눈물을 닦아주고자 했던 정조의 생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붓 글 쓰는 이미지 13“
일성록의 가치 3. 민의에 기초한 정부기록자료

권위적인 왕의 일기가 아니라 백성들의 목소리와 백성의 뜻이 반영된 왕의 일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다.-
#창덕궁 z.in 20“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일기가 151년동안, 지속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을 살피는 국가경영, 국가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국가경영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어서)
#에필로그
-실내 24“
부국한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꿈꾸면서 하루하루 반성하며 써내려간 왕의 일기 - 일성록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류의 자산이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권위적인 왕의 일기가 아니라 백성들의 목소리와 백성의 뜻이 반영된 왕의 일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을 살피는 국가경영, 국가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국가경영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부국한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꿈꾸면서 하루하루 반성하며 써내려간 왕의 일기 - 일성록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류의 자산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댓글등록 비밀댓글

(0 / 300)

전체댓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