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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항일독립투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한 임청각과 내앞마을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안동은 가슴 아픈 도시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는 곳마다 역사유물이 많은 곳이라 뿌듯하면서도,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분들의 발자취를 찾노라면 마음이 먹먹하다.

 

안동의 항일투쟁 대명사는 임청각(臨淸閣)이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 1858. 11. 24~1932. 6. 15) 선생이 태어나 19111월 만주로 망명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일제는 임청각 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내앞마을은 한 동네 150 가구가 한꺼번에 집단망명한 곳이다. 김대락 선생과 일송 김동삼(一松 金東三) 선생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서거했다. 임청각과 함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내앞마을에 안동독립기념관이 세워진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항일독립투쟁의 아픔을 봉정사에 아늑함에서 달래본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이 방문에 친필 사인을 남겼고,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개 사찰 중 하나다. 안동 남쪽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촬영지로 유명한 만휴정도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임청각(보물 182호): 이상룡 선생 생가

<임청각(보물 182): 이상룡 선생 생가>





고성 이씨의 종손으로 태어난 석주 이상룡은 일제의 의해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기자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했다. 을미왜변과 단발령, 그리고 을사늑약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에 나섰지만 더 이상 국내에서는 항일투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태어나 살았던 99칸 임청각을 떠나야 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는 이동녕 이시영 이회영 김대락 등의 추천을 받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학사(耕學社) 사장이 되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임청각 안채와 군자정

<임청각 안채와 군자정>





임청각은 석주가 떠난 뒤 일제에 의해 훼손됐다. 강원도 지역의 목재와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놓은 중앙선 철로를 깔면서 임청각의 행랑채와 부속채를 마구잡이로 철거했다. 99칸 임청각은 50여칸으로 줄어들었다.

 

안채는 자형의 독특한 평면을 하고 있다. 건물 가운데 몇 개의 작은 중정을 배치해 길함을 추구했다.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그 양쪽에 작은 방들이 있다. 동쪽으로 나 있는 문을 나가면 사랑채인 군자정이 있다.

 

군자정은 별당형식의 정자 건물이다. 를 옆으로 뉘워 놓은 평면을 하고 있다. 군자정 동쪽에 네모난 작은 연못이 있다. 석주 선생이 일제 침략과 망국의 아픔을 달래며 집안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만주로 망명을 결심한 곳이다.

 




법흥사지 7층전탑: 국보16호

<법흥사지 7층전탑: 국보16>





임청각 옆에 법흥사지7층전탑이 있다. 구운 벽돌로 17m 높이로 쌓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탑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어 목탑을 모방해 전탑이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법흥사라는 절에 있던 탑으로 추정되나, 현재 주위에는 절터는 남아 있지 않고 인가가 들어서 있다. 바로 앞으로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어 진동과 소음이 심해 무너질 우려가 높다. 일제의 침탈은 국보16호를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내앞(川前)마을 김동삼 생가

<내앞(川前)마을 김동삼 생가>





안동 내앞마을은 의성 깊씨 집성촌으로 안동지역에서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인 협동학교가 처음 열렸다. 내앞마을 앞 공동우물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김동삼(金東三, 1878~1937)의 생가가 있다.

 

일송의 본명은 긍식(肯植), 자는 한경(漢卿)이었는데, 1911년 만주에 망명한 뒤 이름을 동삼(東三)이라고 고쳤다. 동삼은 동북삼성의 줄임말이다.

 

1931년 북만주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733일 순국했다. 일가족이 모두 만주로 망명해 시신을 거둘 사람이 없자, 만해 한용운이 시신을 심우장에 모셔 5일장을 치렀다. 19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안동 독립기념관

<안동 독립기념관>





안동 내앞마을에 1894년 갑오동학농민의병으로부터 시작해 안동 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자료를 전시하는 기념관이 20078월에 설립됐다. 지방자치단체로서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된 것은 안동이 처음이다. 내앞마을 150가구가 집단적으로 만주로 망명한 곳에 독립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뜻이 깊다.

 

1전시실은 안동출신 독립운동가들의 국내 활동상황을, 2전시실은 만주로 망명한 항일투사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영상관인 3전시실은 안동의 독립운동가 1000명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운용되고 있다.

 




용계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175>





내앞마을에서 <만휴정>으로 가다보면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눈에 번쩍 띄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만난다. 나이가 700살을 넘었으며 키는 37m, 가슴둘레는 14.5m나 되는 멋진 나무다. 한국의 은행나무 가운데 줄기가 가장 굵어 1966113일에 천연기념물 175호 지정됐다.

 

원래 용계초등학교 앞에 있었는데, 이 지역에 1991,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학교는 철거됐고 이 은행나무는 수몰을 피하기 위해 15m 높이로 흙을 쌓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

 




만휴정(晩休亭): 명승82호

<만휴정(晩休亭): 명승82>





조선 전기의 문신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누각. 정면 3, 측면 2칸이며 정면은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해 앞으로 지나는 계곡의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게 했다. 김계행의 호는 보백당(寶白堂)인데, ‘내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 뿐이다라는 吾家無寶物寶物惟淸白(오가무보물보물유청백)’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이다.

 

계곡의 맑은 물이 만들어 내는 폭포가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한제국의 의병을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1018. 7. 7~2018.9.30. 방영)>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봉정사 극락전: 국보 15호

<봉정사 극락전: 국보 15>





안동시 서후(西後)면 태장(台庄)리 천등산(天燈山, 576m)에 있는 봉정사에 있는 극락전은 현재 한국에 전해지는 목조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추정된다. 1973년 해체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에 ‘1363(고려 공민왕 12) 옥개(屋蓋,지붕)만 중수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어, 13세기 이전에 세워진 것이 확실하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목재를 층층이 쌓아 만든 구조가 보이는 한국건축의 구조미를 잘 보여준다. 극락전 앞 마당에 삼층석탑이 서 있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는 사진과 함께 안내판이 있다.

 



봉정사 대웅전: 국보311호

<봉정사 대웅전: 국보311>





봉정사 대웅전은 조선 전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 본존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처음 지었을 당시의 단청이 아직 남아 있고 보존 상태도 좋아 당시 불교 건축물 장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63121, 보물 55호로 지정됐다가 중요성이 다시 평가돼 2009630, 국보 311호로 승격됐다. 대웅전 안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을 때 남김 친필 사인이 전시돼 있다.

 




봉정사 영산암

<봉정사 영산암>





대웅전 왼쪽에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영산암이 있다. 영산암이란 이름은 석가모니 부처가 법화경등의 경전을 설법했던 영취산을 줄여서 영산이라고 부른데서 왔다. 19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암은 응진전 송암당 우화루 삼성각 등 건물이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마당에 멋진 소나무를 심어 한국에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히고 있다. 주위 자연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공간배치의 멋이 뛰어나다. 나한을 모신 응진전의 한 나한상의 턱에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봉정사 통일나무

<봉정사 통일나무>

 



통일나무/ 如心 홍찬선

 


통일나무가 자란다

봉황이 머물렀던 봉정사에

키와 나이와 몸무게가 다른

느티나무들이 서로 뿌리를 나눠

하나 된 나무로 자란다

 

하나 가운데 여러 개 있고

많은 것은 곧 하나임을 알려주며

막힌 머리와 딱딱한 가슴과

좁아진 마음을 한꺼번에 깨뜨리는

망치가 되어 쑥쑥 큰다

 

여럿이던 우리가

뜻을 한 곳으로 모아

다르면서도 하나로 살 듯

본디 하나였던 너희들도

이제 하나로 돌아가라고

 

하나 되어

다른 것 수두룩하게 품으라고

온전한 하나 되어

목마른 사막에 단비 뿌리라고

통일나무가 참된 화두 던진다





 






: 안동에 가면 임청각은 대부분 가지만 내앞마을을 가는 사람은 드물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내앞마을 김동삼 선생 생가를 가서 먹먹해지는 가슴을 옆에 있는 독립기념관과 그 뒤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재현해놓은 곳에 가서 달래볼 수 있다. 봉정사를 가면 시간을 좀 내서 천등산을 올라, 신라 문무왕 때 능인대사가 천등굴에서 수도하다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려 머문 곳에 봉정사를 지었다는 설화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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