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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순천에서 자연의 신비를 보고 역사의 유구함을 느끼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순천(順天)이란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땅이 본받아 펼쳐놓고, 사람은 그것에 맞춰 살아간다.

하늘에 따르는 사람은 살아남고 거역하는 사람은 망한다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에서 나오는 순천도 바로 그 순천이다.

습지와 갈대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전남 순천은 백제 때는 감평(欿平)군으로 신라 때는 승평(昇平)군으로 불렸고 승주(昇州) 또는 승화(昇化)로 불리다 고려말 조선초부터 순천이란 지명을 얻었다.


순천 조계산(884m) 서쪽에는 조계종의 본산이며 유명한 국사를 많이 배출해 승보(僧寶)사찰로 불리는 송광사(松廣寺), 동남쪽에는 태고종의 본산이며 쌍무지개다리(보불 400)로 유명한 선암사(仙巖寺)가 자리 잡고 있다.

낙안면에는 조선시대 읍성으로 사적302호로 지정된 낙안읍성(樂安邑城)이 조선전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땅과 사람이 어울러 사는 곳, 순천의 맛을 즐겨보자.

 

 


순천만습지 갈대

<순천만습지 갈대>




순천만습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갈대 군락지다. 순천시내를 흐르는 동천과 상내면에서 흘러 온 이사천이 만나 바다로 흘러들기까지 약 3km에 이르는 물길 양옆으로 갈대밭이 50ha(15만평)이나 펼쳐진다.

낙조를 즐길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 갈대밭 사이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갈대의 순정을 느낄 수 있다. 새벽에는 안개에 젖어 흐느적대고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가을 오후에는 햇살과 함께 춤을 춘다.

생태공원과 순천만을 오가는 탐사선을 타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역까지 감상할 수 있다. 흔히 억새와 헷갈리기 쉬운데, 갈대는 물이 많은 습지에 억새는 산이나 들에 살며 꽃과 잎이 다르다.




순천만습지

<순천만습지>




순천만의 연안습지는 국내 최초로 20061월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이 습지엔 연간 2백여 종의 철새 6~7만 마리가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검은머리갈매기와 큰고니처럼 멸종 위기에 처한 철새도 끼어 있다. 썰물 때 하구 일대의 넓은 갯벌이 드러나 철새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가 풍부하고 바다를 접한 남쪽이라 따듯한 날씨 덕분이다.

습지 주변의 육지에는 논과 염전, 갯마을 양식장, 낮은 언덕과 산이 이어지며 독특한 생태계와 경관 및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넓게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보이는 순천만 제방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가 되었다. 세계적인 여행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2011년판에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소개됐다.

 



순천만 용산전망대 석양

<순천만 용산전망대 석양>




순천만하면 떠오르는 자 물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물 빠진 갯벌을 발갛게 물들이며 서쪽 산 아래로 넘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보는 마음은 행복 그 자체다.

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게 가장 좋다.

용산전망대까지는 순천만 갈대밭길이 끝난 뒤부터 제법 가파른 산길을 20분 가량 걸어 올라야 한다. 인생 샷을 위해 그 정도 어려움은 견딜만하지만, 쉽게 생각하고 올랐다가는 좀 지칠 수 있다.

 



노을 속의 순천만

<노을 속의 순천만>




용산전망대 아래로 펼쳐지는 드넓은 갯벌에 이제 막 쉬러 서쪽 산으로 숨은 해가 마지막으로 연출하는 멋진 저녁노을이 이어진다. 아직 덜 빠진 물이 기지개 켜는 햇살을 받아 윤슬로 반짝인다.

갯벌 이곳저곳엔 길게 늘어진 S자 물길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어둠이 내리고 있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갯벌은 게와 새와 물고기들이 한바탕 맛난 저녁만찬을 즐길 것이다.

그렇게 화려한 날은 저물고 밤이 깊어 가면 순천만은 내일을 위해 달콤한 잠에 빠질 것이다. 자지 말고 나랑 놀자는 파도의 은근한 꾐을 이겨내며, 내일의 멋진 삶을 위해 오늘 밤은 쉬어야 한다.

 



낙안읍성 초가집

<낙안읍성 초가집>




용산전망대에서의 환상적인 저녁노을과 해넘이의 감흥을 가슴에 고이 안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갯벌에 오늘과 내일이 있듯, 우리 삶에도 오늘만 있는 게 아니라 내일과 모레가 이어지므로.

순천만습지 부근 식당에서 맛있는 장뚱어 탕으로 비었던 배를 꽉 찬 가슴과 균형을 맞추고 낙안읍성으로 간다.

초가집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붙어 있는 곳. 고려말과 조선초에 왜구침입이 잇따르자 낙안벌에 토성을 쌓고 왜구침입을 막았다. 그 뒤 토성을 돌로 더 쌓아 방위력을 높였다. 성벽의 길이는 1406m, 높이는 3~5m, 면적은 223108(약만8800)이다.

 



낙안읍성 동헌

<낙안읍성 동헌>




낙안군수가 정사를 보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해 파괴된 것을 1628년에 임경업 장군이 이곳 군수를 지낼 때 복구되었다.

동헌에는 사무당(使無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백성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의역하면 그런 의미를 도출할 수 있겠으나 언뜻 봐서는 부림이 없는 집으로 들린다.

정사가 없는 집일까. 이런 의심은 동헌 마당에 만들어져 있는 형틀과 사무당 앞에 무릎이 꿇린 채 사또의 질책을 받고 있는 백성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생겼다. 동헌은 군수가 백성을 다스리는 곳인데, 굳이 자주 있지도 않았을 죄인 다루는 모습을 연출해 놓았을까.

관리는 즐겁고 백성은 편안하다는 관락민안(官樂民安)을 줄인 낙안이란 이름에 맞게 사또와 백성이 어울려 함께 즐거워하는 장면을 연출해 놓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낙안읍성 은목서

<낙안읍성 은목서>




이런 생각에 찬성한다는 듯이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향기의 정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이윽고 눈에 띈 하얀 꽃.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보니 은목서(銀木犀)란다. 어제 밤 낙안읍성에 들어올 때부터 코를 간질였던 그 향기가 바로 은목서였다. 아마도 전생에서 맡은 향기였을까.

모르고 지나칠지도 모른다는 조급증이 동헌 정원에서 환히 피어 더 많은 향기를 뿜어냈을 것이다. 달콤한 사랑으로 은은히 퍼지며 사랑은 늦게 와서 사나운 추위 오들오들 떨면서 한 살 한 살 키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동문 앞에는 황금색 꽃이 피고 향기도 더 진한 금목서(金木犀)가 있는데 이미 꽃은 지고 잔향만 묻어 있었다.

 



낙안읍성 임경업 선정비

<낙안읍성 임경업 선정비>




낙안읍성 동헌 옆에 객사가 있고 그 앞에 조그만 건물이 서 있다. 그 앞쪽에 이어져 있는 음식점에 얼이 팔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다.

안내판에는 임경업장군비각이라고 적혀있다. ‘병자호란 때 정주산성에서 청군을 맞아 싸웠던 임경업장군 비각이 왜 여기에라는 의문을 갖고 읽어본다.

임경업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인 16265월에 낙안군수로 부임해 16283월까지 110개월 동안 부임했다. 그동안 낙안읍성을 굳게 수리하고 어진 정치를 펴 백성들이 그를 위해 공덕비를 세웠다. 또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임경업 군수에게 제사를 올린다.

어진 정치를 베풀면 백성들이 마음으로부터 따라 스스로 복종한다는 것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낙안읍성 은행나무

<낙안읍성 은행나무>




임경업장군선정비 옆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나이가 육백 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전남기념물133(낙안읍성노거수).

이 은행나무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살렸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의병을 모집하자 낙안읍성에서 지원자가 많았고 군량미도 많이 냈다.

이 장군이 이를 고맙게 여겨 이곳을 방문해 의병과 군량미와 함께 돌아가려는 데 이 은행나무 앞에서 마차의 바퀴가 빠져 잠시 머물렀다. 마차를 수리하고 좌수영으로 돌아가는데 길목에 있는 커다란 다리가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시간을 따져보니 수레바퀴가 빠져 잠시 쉴 때였다.

1960년대엔 주민들이 은행나무를 서울 목재상에게 큰돈을 받고 팔았다. 목재상이 나무를 베기 위해 오자 커다란 구렁이가 나무를 휘감고 지켜냈다.

 



낙안읍성 아침노을

<낙안읍성 아침노을>




낙안읍성/ 如心 홍찬선

 

역사는 지나가 죽은 게 아니다

그때 이곳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저곳으로 떠났지만

물도 흐르고 풀 나무도 스러졌지만

역사는 여전히 숨결로 살아 있다

 

현재는 멈춰 있는 게 아니다

그날 이곳에서 왜구에 맞서 싸운

백제 고려 조선 사람들 얼과 넋

천년 은행나무에 짹짹 참새에

살아 올 날과 이어준다

 

미래는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동녘 하늘 발갛게 불사르며 뜨는

햇살 받아 은목서 금목서 향기

고을 전체에 고루 퍼지듯

어제 오늘 버무려 힘찬 내일 연다








: 낙안읍성에서 초가집에서 민박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호텔이나 기와집 한옥과는 다른 서민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 겉만 초가집이고 안은 현대식으로 바꿔 약간 아쉬움도 있지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민박집도 있다.

낙안읍성 북쪽에 있는 진산이 금전산이다. 느긋하게 금전산에 올라 순천만까지 펼쳐지는 모습을 보는 맛을 느껴보면 좋다. 순천만 갈대밭은 아침과 저녁 모두 보면 느낌이 다르다.

겨울에 철새를 보러 가는 것도 좋다. 여름과 가을이라면 순천국가정원도 함께 거니는 맛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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