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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KBS] 천상의 컬렉션 34회 - 삼인문년, 자격루, 도문대작

영상 대본 펼치기 닫기: 한상헌 /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천상의 컬렉션! 불광불급(不狂不及).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치지 않고서는 이루지 못한다는 의민데요. 곧 만나보게 될 보물의 주인공들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천상의 컬렉션은 그림에 미치고, 발명에 미치고, 맛에 미쳐 자신의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간 대가들을 만나보는 <미쳐야 미친다> 특집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투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보물이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되고요. 우승을 한 호스트는 문화재 보호기금에 기부자로 등록됩니다. 미친 듯한 열정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룬 대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지금 시작합니다 1.서경석 <장승업 삼인문년> 서경석 / 여러분은 오늘, 다양한 분야의 여러 미친분들을 만나게 되실 텐데요. 제가 소개해드릴 분은 조선의 마지막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입니다. 아하!! 그림에 미친 사람을 소개하려는구나, 싶으시죠? 물론 그림에 미친 사람일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원 장승업은 설명이 필요 없는 조선 최고의 화가였습니다. 당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고객 리스트를 한 번 보시죠. 영의정 김병시. 우의정 정범조. 한성판윤,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장인 변원규. 대단한 권력자들이죠? 그런데 이들도 장승업의 그림을 받으려면 번호표 뽑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왜냐? 바로 고종 임금도 장승업의 고객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잘 나가던 권력자들은 물론이고 임금까지도 꼭 갖고 싶어 했던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장승업의 신선 그림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할 보물은 장승업의 신선 그림 중에서도 가장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삼인문년>입니다. <삼인문년>. ‘세 신선이 서로의 나이를 묻는다’는 중국 고사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건데요. 지금으로 치면 ”야, 너 주민등록증 까!“ 이 정도가 되겠죠. 그림 왼쪽에는 세 신선이 있고, 오른쪽 밑에는 아주 젊어 보이는 친구가 쭈그리고 앉아있습니다. 그럼 먼저 신선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들어보겠습니다. “이 세상을 처음 만든 녀석 있지? 내가 걔하고 아주 죽마고우라니까 글쎄” 자기가 중국 전설 속의 조물주인 ‘반고’라는 신과 친구였답니다. 자, 다음. “나는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때마다 집에 나뭇가지를 하나씩 갖다 놨는데 그게 벌써 방 열 칸을 다 채웠지 뭐야"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려면 엄청난 세월이 필요하겠죠. 그 때마다 나뭇가지 하나인데, 그게 방 열 칸이라^^ 저 너머에 그 집이 보이네요. 자, 그럼 마지막. “나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먹고 씨를 저 산 아래 버렸거든. 근데 복숭아씨가 벌써 저 산만큼 쌓였어” 여기 젊어 보이는 청년 머리 위에 보이는 열매가 삼천 년에 한 번 나는 복숭아인데, 먹고 뱉은 씨가 산만큼 쌓였다는 거죠. 셋 다 어마어마하게 나이를 먹은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신선들의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여기 쭈그려 앉아있는 젊은이는 누굴까요? 네, 바로 동방삭입니다. 맞습니다.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할 때의 그 동방삭입니다. 그럼 동방삭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삼천갑자죠. 일 갑자가 60년이니까 3000 곱하기 60하면 18만입니다. 18만 살 먹은 동방삭은 이 신선들 사이에 끼지도 못하는 거죠. 어떻습니까, 여러분. 조금 유치한 것 같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원래 <삼인문년> 고사에는 동방삭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림을 그리던 장승업이 좀 더 재미있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슬쩍 끼워 넣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이든 척척 그려냈던 조선 최고의 화가, 장승업. 하지만 그는 규칙에 따르고 체면을 지키는 허울만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웃기고 싶으면 덧붙이고, 과하다 싶으면 빼버리는 그만의 자유로움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장승업의 그림이 갖고 싶었던 고종 임금은 장승업을 궁으로 불렀습니다. 쾌적한 작업 공간과 질 좋은 미술재료들을 아낌없이 지원했죠. 행여나 배 고플까, 또 술 고플까. 좋은 음식과 적당량의 알코올도 모두 제공했습니다. 보통 화가였다면 그야말로 얼씨구나~ 했을 겁니다. 왕의 특별지원을 받는 화가!! 이보다 더한 가문의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장승업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궁에서 도망치고 잡혀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화가 난 고종은 장승업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장승업의 재능을 아까워한 신하들이 고종을 말린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죠. 이렇듯 장승업은 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목숨을 위협해도 절대 붓을 들지 않았던,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이것은 <풍진삼협>이란 작품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의 세 협객을 그린 건데요. 좀 이상하죠? 제목은 세 협객인데, 그림에는 두 사람밖에 없어요.제자가 묻습니다. “나머지 협객 한 명은 어디 있습니까? 그랬더니 장승업은 ”어- 아직 도착 안했어, 저 뒤에 있어“ 이렇게 대꾸 합니다.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장승업이 게를 그렸는데, 집게발이 세 개인 게를 그린 거예요. 역시 사람들이 이상해서 왜 집게발이 세 개냐고 물어봤겠죠? 그랬더니 ”야 이 사람아, 다른 게 좀 있어야지. 똑같으면 볼 재미가 있나“ 라고 했답니다. 어떻습니까, 그가 남긴 그림 하나하나에서 자유인 장승업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장승업의 그림에 열광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도 어쩌면, 장승업의 그림을 통해서 자유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했던 것이 아닐까요? 장승업의 마지막 순간이 어땠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겨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장승업이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죠. ”사람의 생사는 뜬구름과 같다. 그러니 어디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장승업에게 신선은, 그저 오래 살아서 신선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자유롭게 살아서 신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선처럼 살며 신선 그림을 그리다 마침내 신선이 되어 버린, 자유인 장승업의 <삼인문년>이었습니다. 한상헌 / 조선 최후의 천재화가 장승업의 세 신선 이야기, <삼인문년>을 만나봤습니다. 신선이 동양적인 소재잖아요. 다니엘 씨는 이 그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합니다. 다니엘 /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거든요. 스님들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스님들 얼굴 치곤 좀 웃기게 그려진거예요. 전 아직 ‘신선’이 뭔지 잘 몰라서 ‘신선’했습니다. 박영진 / 다니엘이 처음 접하는 신선이 하필 오늘 장승업의 그림인 거? 처음부터 난이도가 좀 세네. 우리가 익숙히 보고 알던 신선과는 느낌이 좀 다른데. 솔직히 요괴 같기도 하고. 강아랑 / 신선들 얼굴 색 때문에 더 그런것 같아요. 너무 오래 살아서 얼굴을 칙칙하게 그렸을까요? 안현정 / 장승업은 신선의 피부를 하얗게 표현하려 한거같아요. 당시 유행하던 백분을 썼는데 하필 그 안에 납이 있었던거. 납성분은 시간이 지나면 어두워지거든. 그래서 지금처럼 기묘한 신선의 얼굴이 된 것. 홍경민 / 그림 자체가 크고 굉장히 길어. 이만한 걸 집에 걸어놓고 본다고 해봐. 집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선... 장승업이 고객 맞춤형 화가였잖아? 이 그림의 주인은 꽤 부자겠다? 이기환 / 장승업의 주고객층 왕실, 사대부, 부유한 중인층. 삼인문년 내용 자체도 조선 말기 부유층의 입맛에 잘 맞는 내용이지. 장승업 그림은 조선 말기 최신유행 그림. 박영진 /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봤던 조선의 화가들 그림은 여백의 미-라고 하죠? 그림보다 빈 공간이 더 넓거나. 그랬는데 이 그림은 빽빽하니 여백이 거의 없네요? 서경석 / 정확히 보셨네. 빈틈없이 빽빽하죠. 바위나 나무, 인물 묘사가 아주 꼼꼼하고 정교한데 어느 하나 소홀히 그린게 없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장승업이 이렇게 정성을 들인 경우가 흔치 않아요. 아마도 장승업에게 큰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그려준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홍경민 / 얼마나 대단한 은인이기에. 아니면 그림 값을 엄청 후하게 미리 줬다거나? 제가 볼 땐 좀 과한 것 같은데. 여유로운 느낌이 없어 안현정 / 전 <삼인문년>이야말로 장승업의 기발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야기꺼리를 쉬지 않고 던져줘. 게다가 동방삭의 위치를 봐. 화면 밖을 보고 있지? 그래서 그림의 경계를 더 넓히고 있어. 강아랑 / 장승업의 신선 그림이 유행이긴 유행이었나봐요. 똑같은 삼인문년 그림이 또 있는 것도 그렇고요. 서경석 / 아까 고종이 궁에 불러들여 그림을 그리라고 했는데 장승업이 계속 궁을 탈출했다는 이야기 했죠? 결국 장승업에게 그림을 받아냈는데, 그것도 역시나 신선이었습니다. 보시죠!!! 추남극노인, 춘남극노인이라는 작품입니다. 강아랑 / 장승업의 신선 그림이 정말 당시 대단한 인기였나봐요? 고종이 원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거 방에 걸어두면 저는 좀 무서웠을 듯? 여기 신선은 삼인문년보다 더 무섭게 생겼어요. 안현정 / 이 그림 원했던 이유가 있다. 추남극노인 한켠에 예서체로 이런 글귀가 있어요. “남극성이 보이면 임금께서 오래 사시고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 왕 맞춤형 신선 그림이었던거죠! 다니엘 / 오늘의 보물 삼인문년과 비교했을 때 고종에게 진상한 건 좀 힘을 덜 준것 같아서 의외. 보통 사람이라면 왕에게 진상하는 그림에 온 정성을 다 할 것 같은데. 홍경민 / 장승업은 신선처럼 살면서 그저 느긋~하게 내키는대로 그림 그리고. 왕이라고 뭐 더 특별할 것도 없고. 자기가 좋은 사람은 좀 더 신경써주고. 진짜 신선은 장승업. 한상헌 /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취화선>, 술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신선이라는 뜻이잖아요. 정말 장승업의 삶과 딱 맞는 제목이 아닐까요? 이번에 장승업을 소개하면서 서경석 씨도 남다른 애정을 보이시는 듯한데. 서경석 / 솔직히 일반적인 삶의 태도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요. 하지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형식,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만큼은 예술인이 갖추어야할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림을 그릴 땐 꼭 술이 있어야 하고. 옷을 훌러덩 벗고 책상다리로 착 앉아서, 물감도 그냥 방바닥에 쓱쓱 풀어놓고 그렸다는 거. 오늘 <미쳐야 미친다> 특집에 정말 딱 맞는 분 아닌가. 자유에 미치고 그림에 미친 분. 홍경민 / 듣던 애기 아빠 깜짝 놀랍니다. 방바닥에 물감을 풀었다고요? 벌써부터 잔소리가 상상. 가정생활이 평화롭지 못했을 텐데? 이기환 / 그랬겠지? 장승업은 가정이 없었어. 풍문에 따르면 나이 40이 되어서야 장가들었는데 첫날밤만 보내고 도망가서 안돌아왔대. 강아랑 / 부인이나 가정도 장승업을 잡을 수 없었나봐. 하긴 왕이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도망쳤던 사람이니, 남들처럼 사는게 참 힘든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다니엘 / 왕은 달래고 협박해도 제대로 받기 힘든 그림을, 일반 백성들은 술 한잔만 사줘도 기분 좋아서 그려줬다고 들었어. 장승업은 그런 눈치같은걸 보지 않았잖아요. 진정한 자유 영혼인 것 같다! 박영진 / 진짜 자유로운 영혼은 아이부터 대통령까지 똑~같이 대할 수 있어야해. 그러면 진짜 인정! 홍경민 / 청와대에서 박영진씨 초대해서 개그 공연 요청이 들어온다고 생각해봐요. 박영진 / 어유 뭘고민해. 그럼 바로 나가야지~ 내가 진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웃겨 드릴 수 있거든! 홍경민 / 천상의 컬렉션 녹화중이어도? 박영진 / 전 그리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여러분, 저는 권력을 향해 가겠습니다. 안현정 / 장승업의 유머러스함과 자유분방한 기질은 다른 그림에도 녹아나 있어. 말을 그릴 때는 다리 하나를 빼먹고 그리고, 꽃을 그릴 때는 잎을 그리지 않고 일어나버렸다고 하거든. 못 그린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 그린 것! 홍경민 / 어디 얽매이는게 없으니 그리는 화가도 자유롭고, 그림도 자유롭고. 삼인문년 속에도 전혀 상관없는 동방삭을 끼워넣은 것도 그래. 그러고보니 동방삭? 개그맨인 박영진 씨는 잘 알겠네? 박영진 / 삼천갑자 동방삭은 잘 알죠. 서영춘 선배님, 배삼룡 선배님. 대선배님들의 전설적인 개그. 배삼룡 선배님 버전은 김수한무가 아니라 배수한무. ‘배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후배들에겐 신선 같은 존재. 이기환 / 더 놀라운 건? 저 동방삭 실존인물이었어. 황제를 즐겁게 해주던 궁정개그맨이었다. 박영진씨의 진정한 대선배님. 한상헌 / 승업은 그림 교육도 정식으로 받은 적 없고, 그냥 이리저리 떠도는 방랑 화가였는데 당대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비결, 무엇이었을까요? 서경석 / 일단 장승업은 천부적인 실력을 타고났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천재를 알아봐주는 후원자가 있었다는 것. 장승업은 이응헌이라는 사람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이응헌이 우연히 장승업의 그림을 본겁니다. 이응헌은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장승업의 작품활동을 후원합니다. 게다가 이응헌의 집에는 온갖 명품 그림들이 많았어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장승업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던 거죠. 다니엘 / 운이 좋았네요. 자신의 집 머슴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그렇게까지 후원해줄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았을 것. 이응헌은 장승업의 ‘키다리 아저씨’였네. 이기환 / 당대 사대부들의 후원도 이어졌고. 부유한 중인층도 그랬고, 예술에 일가견 있는 지인들도 많고. 근역서화징을 쓴 오세창 같은 분도 친구이자 후원자. 강아랑 / 엄청난 매력을 가진 마성의 남자인가?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린다고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데. 홍경민 / 좀전에 술을 좋아한다고 했지? 역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력이 넘치지 따르는 사람도 많고 ^^; 안현정 / 장승업 그림을 배우겠다며 제자들까지 줄을 서. 중국 유학까지 다녀온 안중식, 조석진 같은 당대 미술 엘리트들이 장승업을 그렇게 따랐어. 장승업의 화풍 따르려고 노력. 이후 이분들 한국 근대 전통 회화의 근간을 이루지. 박영진 / 그런데 말입니다. 자유가 좋아서 결혼도 마다하고 왕한테서 도망친 사람인데, 손도 많이 가고 신경 많이 쓰이는 제자들을 두었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되는 걸? 홍경민 / 제자라기보다 어울리며 여러 조언을 주고받던 사이가 아니었을까? 술도 같이 한잔씩 하면서. 서경석 / 그랬던 것 같아요. 후배들이 장승업을 얼마나 존경했는 지는 <삼인문년>의 제발에서도 드러나. ‘선생이 돌아가신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휘호하시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제자 안중식이 그림에 쓴 글인데요. 스승을 향한 제자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어요. 제자들에게 장승업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강아랑 / 솔직히 남편감으로는 빵점! 그래도 그림 스승으로서의 장승업은 인정! 제자들이 하나같이 미술계의 대가들이잖아. 나도 ‘장승업 미술 교습소’에 들어가고 싶어~ 한상헌 / ‘신선처럼 살다가 신선이 되어버린’ 조선 최후의 대가 장승업. 자유에 미치고 재미에 미친 장승업의 생애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어서 ‘기술에 미친’ 두 번째 광인, 바로 만나보시겠습니다! 2.데니스 홍 <장영실 자격루> 데니스 홍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데니스홍이고요. 저는 미국 유씨엘에이 로봇연구소 로멜라, Robotics and chanisms Laboratory 의 소장으로 있습니다.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 왜 천상의 컬렉션에 나왔을까요? 오늘 여러 분들에게 조선시대에 로봇에 미친 두 명의 덕후를 소개하고 싶어섭니다. 여러분, 조선시대 왕 중에 가장 많은 업적을 쌓은 사람 누군가요? 네 바로 세종대왕이죠. 세종대왕은 많은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힘없는 백성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사채 이자를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고요. 한글도 만들고, 정치도 안정화하고, 영토까지 넓혔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따로 있습니다. 뭔지 아세요? 바로 장영실의 등용입니다. 왜냐? 저랑 같은 로봇 공학자라서. 세종은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에서 아무도 가진 적 없던 것을 처음으로 가지려고 했던 사람이거든요. 그게 뭘까요? 네 바로, TIME, 시간입니다. 조선이 무슨 나라인가요? 농업 국가였죠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날씨죠.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읽는 것. 조선의 왕은 날씨와 시간, 하늘의 움직임에 아주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조선만의 시간’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중국 땅을 기준으로 한 중국의 역법으로 시간을 계산했기 때문이죠. 일식이나 월식 같은 천문현상 관측도 당연히 조금씩 어긋납니다. 하늘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백성들의 농사도 잘 안되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세종은 조선을 기준으로 하는 조선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켜줄 사람을 찾은 겁니다. 그게 바로 장영실인거죠. 제가 오늘 소개할 보물, 세종과 장영실이 만들어 낸 조선의 시간, 조선 최초 디지털 시계 자격룹니다. 어떤가요? 교과서에서 많이 보셨죠? 딱 보기에도 뭔가 복잡한 장치들이 눈에 띕니다. 제가 기계공학적으로 설명해드릴게요. 유체의 Laminar flow를 사용하여 constant flow 를 유지하면서 potential energy 를 kinetic energy 로 바꾸는 장치이지요. 밀도의 차이에 따른 bouncy force 를 사용하여 구슬들을 움직이고, 이에 따라 연속적인 아나로그 시그널을 Discretize 합니다. 많이 놀라신 표정인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오늘 아주 천천히 쉽게 자격루가 왜 위대한 ‘로봇’인지 알려 드릴게요. 우선 시계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한 이 장치,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세종과 장영실 둘 다 천재니까 뚝딱하고 그냥 만들었을까요? 절대 아니겠죠. 조선엔 이런 기계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일단 세종은 장영실을 명나라로 유학을 보냅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비 장학생이죠. 장영실은 유학 중에 아라비아와 중국에서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장영실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뭘 했을까요? 곧바로 물시계를 만들어봅니다. 경점기라고 하는 건데요. 실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록에 따르면 이런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떻습니까? 기계식 물시계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하죠. 그냥 일정하게 물이 차오르면 막대기가 떠오르고 거기에 적힌 눈금을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겁니다. 뭐, 이래가지고는 로봇이라고 하기엔 민망하겠죠. 시간도 당연히 부정확합니다. 국비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만든 게 고작 이거? 세종은 물론이고 장영실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분 제가 가장 처음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여드릴게요. 바로 이겁니다. 어떤가요? 허접한가요? 로봇 공학자들은 진짜를 만들기 전에 시험하기 위해 만드는 모델을 프로토 타입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디어가 생겨서 신나게 만들어봤는데 막상 결과는 이렇게 초라한 경우가 많죠. 그런데, 로봇을 만드는 과정이 그러합니다. 실패를 해보고, 거기서 배우고, 그리고 다시 또 일어나 도전하는 것이지요. 오히려 실패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만드는 것은 “연구”라 부르지 않고 “숙제”라고 부릅니다. 가능한지 아닌지 모르고 도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덕후들이 하는 “연구”입니다. 장영실은 어땠을까요? 장영실은 저보다 더한 로봇 덕후였습니다. 처음 프로토 타입의 물시계를 만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민하고 실험하면서 조금씩 고쳐갔습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0년. 그리고 마침내 조선 최초의 디지털 시계 자격루를 완성한 거죠. 자~ 이게 왜 위대한 로봇일까요. 일단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항아리로 물을 일정하게 흘려보냅니다. 여기까진 프로토 타입과 비슷하죠. 그렇게 해서 고인물이 잣대를 밀어 올려 나무틀에 있는 작은 구슬을 떨어뜨려요. 작은 구슬은 경사를 타고 굴러 내려가다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큰 구슬을 내려보내고이게 낙하하면서 운동량은 더욱 커지죠. 이렇게 커진 힘이 인형 팔과 연결된 장치를 움직여 북과 징을 치고 시간을 알려주는 인형도 밀어 올립니다. 물의 힘과 정교한 기계장치를 이용해서“D to A converter”, 다시 말하면,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낸 겁니다. 당시 이런 자동 물시계를 만든 곳은 중국과 아라비아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의 프로토 타입과 완성된 자격루, 비교해보세요. 어떻습니까? 자격루는 아무런 기술도 없는 변방의 과학 덕후들이 10년 동안 작업실에 틀어박혀 만들어낸 거대한 성취였습니다. 그 10년의 세월동안 세종이 장영실을얼마나 들볶았을까요? 마침내 완성된 자격루를 보고 세종이 이렇게 말합니다. 장영실이 아니었으면 자격루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10년을 기다린 사람이나 10년을 틀어박혀 기계에 미친 사람이나, 둘 다 정말 어휴~지독한 덕후들입니다. 그래도 이 둘은 정말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종은 조선의 시간을 바로 세웠고 장영실은 역사에 남는 로봇을 만들었으니까요. 우리가 흔히 덕업일치라고 하잖아요. 너무 좋아하는 일을 밀어붙여서 성공까지 했으니 이 두 덕후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뒤에 이 두 사람 어땠습니까?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해시계 앙부일구, 별자리를 측정하는 혼천의, 옥루,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까지 온갖 역사적인 발명품들 줄줄이 쏟아냈습니다. 덕질이 역사가 된 거죠. 여러분 조금 전에 제 프로토 타입 로봇 보여드렸죠. 그걸 만들고 10년 뒤 제가 만든 로봇입니다. 공학자이기 때문에, 머리가 좋아서, 많이 배워서 할 수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사람이 하기엔 위험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로봇을 만들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 그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온 거죠. 저는 로봇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게 기술을 “왜” 개발하는지 잊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바로 인간을 위한 거라는 걸 세종과 장영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신했죠. 제가 세종과 장영실을 존경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한 따뜻한 기술을 만드는 덕후들! 멋지지 않나요? 지금까지 조선의 두 과학 덕후가 만들어낸 조선 최초의 디지털 시계 자격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상헌 / 우리는 장영실을 천재 발명가로 알고 있지 않았나. 장영실에게도 이런 끈질긴 집념과 실패의 역사가 있었다니, 의외의 면모로 느껴지는데요. 같은 로봇공학자인 데니스홍 교수님은 오히려 더 공감했을 것 같다. 데니스 홍 / 장영실에 대해 공부하면서 같은 로봇 덕후로서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방청객분들도 역사덕후, 패널분들은 각 분야의 덕후지 않나. 다들 덕후로서 많은 공감을 했을 것 같다. 한상헌 / 정확하게 보셨네요. 여기 날씨덕후, 문화재덕후, 그림덕후.. 온갖 분야의 덕후가 다 있다. 우리 음악덕후 홍경민 씨는 어떻게 들었나? 홍경민 / 음악덕후 홍경민입니다. ‘프로토 타입‘은 우리 음악가들로 치면 데뷔 음반인데, 나도 내 옛날 노래는 아직 못 들어. 한 걸음 나가기 위한 도약이자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시작이잖아. 끈질기게 도전한 장영실을 보며 시대를 떠나 덕후는 똑같구나 싶네. 강아랑 / 전 현대의 날씨덕후로서 반가웠다. 장영실 하면 측우기, 측우기하면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로 기상청의 상징 아닌가. 천재 과학자 장영실도 실패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신기. 다니엘 / 저는 해시계, 물시계에서 바로 자동 알람시계로 건너뛰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다. 자격루의 인형은 뻐꾸기시계랑 비슷한 것 같아. 뻐꾸기시계의 원조는 독일~ 안현정 / 자격루 원리를 현대 기술로 짚어주니 더 대단해보여. 저 자격루 복원하는 데만 23년이 걸렸다고. 굉장히 정교하고 섬세한 기계였던 것. 박영진 / 내가 드라마 장영실을 진~짜 열심히 봤거든. 그래서 자격루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최첨단의 상징, 로봇이랑 선뜻 연결이 안 됐어. 데니스 홍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까, 진짜 자격루가 트랜스포머처럼 보인다~ 데니스홍 / 사람들은 로봇이라고 하면 다들 인공지능이나 에이아이처럼 복잡하게 생각.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모델링을 거친 자동 제어식 장치를 모두 ‘오토마타(automata)’라고 한다. 가전, 자동차, 로봇은 물론 자격루도 오토마타에 해당된다. 이 오토마타는, 사람들의 편리한 생활을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의 산물인거지. 여기 장영실의 노력이 빛을 발한, 또 다른 발명품이 있다. 앙부일구. 이 앙부일구가 대단한 시계인 이유를 아시나요. 박영진 / 장영실이 만든 거라서 그런 거 아닌가? 브랜드 가치라는 게 있잖아. 메이드 인 장영실! 홍경민 / 오목한 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앙부일구가 ‘오목 해시계’ 여서 대단한 거라고 들은 것 같다. 데니스홍 / 맞아. 앙부일구 이름 뜻도, 가마솥처럼 오목한 해시계라는 뜻. 앙부일구 이전의 해시계들은 이렇게 평면이었어. 그래서 시간만 볼 수 있었지. 그런데, 장영실이 오목하게 만들면서 그림자의 길이도 쉽게 볼 수 있게 해 시간과 절기계절의 흐름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된 것. 사소한 생각의 전환이 또 하나의 발명을 한 거지. 다니엘 / 백성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이 사용했나요? 위대한 발명이지만 상용화되지 않은 경우도 많잖아. 이기환 / 세종代에 여러가지 시계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 앙부일구가 가장 인기가 많았어. 원래 앙부일구 시계 위에는 글자 대신에 각 시간에 해당하는 12지신의 그림을 그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오롯이 백성들을 위한 시계였던 것. 안현정 / 앙부일구는 종로 1가의 혜정교와 종로3가의 남쪽 거리에 설치했어.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였다. 궁중에만 있던 시계를 백성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한 거지. 한상헌 / 장영실이 이렇게 백성을 위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장영실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장영실은 어떻게 국가적 과학자가 될 수 있었나? 박영진 / 드라마에서 보면, 장영실이 노비출신에서 벗어나려고 발명을 시작하던데, 그런 신분상승을 위한 열망이 장영실을 키운 거 아니야? 홍경민 / 노비 출신이었으니까 백성들이 뭐가 필요한지 더 잘 알았을 것 같다. 그런데, 조선은 신분제도가 엄격했잖아. 아무리 그 기술이 뛰어나도, 일개 노비가 왕의 사람이 되는 게 가능해? 이기환 /장영실은 관노였지만, 아버지가 외국 사람이었거든. 원나라에서 귀화. 근데 그 아버지가 중국의 무기 기술자였고, 조선에서 그 기술 때문에 영입했다는 추측도.. 그래서 장영실의 궁중입성은 어렵지 않았을 것. 다니엘 / 조선시대에 외국인 기술자가 있었다는 것도 신기한데. 장영실이 그 아들이었다니 놀랍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딱! 데니스홍 / 맞아~ 우리 아버지도 과학자였거든!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아버지의 가르침과 지지덕분. 어렸을 때 궁금한 건 다 뜯어서 분해해 원리를 알아야 직성이 풀렸는데, 집안 가전제품 다 뜯어도 아버지는 단 한번도 혼내지 않으셨어. 장영실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세종대왕같은 든든한 지원군까지, 재능을 꽃 피우기에 최고의 환경! 이기환 / 장영실을 발탁한 건 태종, 키운 건 세종이다. 세종은 장영실을 전문 기술자로 키울 마음을 갖고 명나라로 유학을 보낸거 거든. 그리고 돌아와서 받은 임무가 궁궐의 시계를 보수하는 것. 그렇게 만든 게 경점지기다. 박영진 / 맞아, 맞아, 장영실이 세종의 밀명을 받아서 명나라로 가더라 거의 세종의 개인 특파원같은 느낌이던데? 안현정 / 세종의 장영실 편애는 어마어마~ 세종이 개인 사냥을 나갈 때도 곁에 두고 명령을 전달할 정도. 게다가, 장영실은 뇌물을 받아도 봐줘, 몰래 사냥을 나가도 다른 사람들은 곤장 90대 받을 때 혼자 벌금형. 그러고도 궁중에서 계속 일했으니까, 얼마나 특별대우야? 강아랑 / 세종 때 우리가 다~ 아는 장영실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잖아. 교과서에 나오는 것만 해도 앙부일구, 자격루, 혼천시계, 밤낮으로 볼 수 있는 시계 일성정시의! 이게 다 세종의 특급대우덕분이었구나 다니엘 / 보통 정부에서 경제적 혹은 군사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수학이나 실용적인 기술, 임상 의학 같은 실용과학을 전폭 지원하는 경우가 많잖아. 세종도 과학적으로 이루고자 하는게 있었을 것 같은데? 데니스홍 / 당시 세종은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시간으로 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어. 장영실이 함께한 세종의 천문 프로젝트팀은 조선에 딱 맞는 역법서인 칠정산내외편을 개발해. 일식과 월식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이만한 수준으로 천문학 계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아랍, 그리고 조선! 딱 세 나라 뿐. 한상헌 / 세종치세, 장영실 전성시대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빛나는 업적을 남긴 장영실. 근데, 이 장영실이 활동했던 기록이 고작 20년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던데, 그럼 장영실의 마지막은 어떻게 된건가? 이기환 / 그게 정말 미스터리다. 세종실록에 보면 장영실이 ‘임금의 가마가 무너져 벌 받았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 행방이 묘연해. 그래서 장영실의 생몰년에 대해 추측만 할 뿐 아는 사람은 없지. 홍경민 / 아니, 이렇게 갑자기? 세종이 엄청 예뻐했다고 했잖아. 그리고, 뇌물을 받아도 봐줬다더니, 타지도 않은 가마가 무너졌다고 벌을 줬다고? 박영진 / 세종에게 혹사당한 장영실이 일부러 가마를 망가뜨리고 잠적한 거 아니야? 제발 놔 줘! 하고. 다니엘 / 장영실도 외국으로 귀화한 건 아닐까? 장영실의 명성이 알려져서 중국에서 탐냈던 걸 수도 실록엔 차마 장영실이 중국에 붙잡혀갔다고 못 쓴 거지. 안현정 / 장영실의 명성이 알려져서 일부러 내쳤다는 추측도 있어. 가마의 총 책임자가 장영실이 아니었음에도, 큰 벌을 받은 거거든. 게다가, 장영실이 만든 천문관측기구를 허물도록 해, 당시 세종은 천문사업 말고도 훈민정음같은 국책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중국에 눈치를 본 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있지. 강아랑 / 조선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안타깝네. Q5.비록 장영실은 사라졌지만, 그의 기술은 계속 이어졌겠지? 데니스홍 / 제가 공부하면서 장영실의 생애에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장영실이 사라지자 그의 기술을 복원할 수 없어 그가 발명한 수많은 발명품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은 공유되고, 발전되어야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아직 복원되지 못한 장영실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후손이자 과학자인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한상헌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 과학 덕후의 발명품, 장영실의 <자격루> 잘 봤습니다. 다음은 어떤 호스트가 어떤 덕후를 소개할지 궁금한데요. 지금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3.이정진 <허균 도문대작> 이정진 / 안녕하세요. 이정진입니다. 저는 오늘 보기만 해도! 아니 듣기만 해도! 군침이 싹~ 도는 아주 맛~있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이 사진 한번 볼까요? 제가 인정하는 먹방의 신, 두 분입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막 고이죠? 그런데.. 먹는 거로는 이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재야의 고수가 있습니다. 네, 바로 접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이렇게 무장해제 됩니다. 행복한 표정도 절로 나오죠. 저는 소문난 맛집은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찾아나서는 미식가이고요. 맛있는 음식 앞에선 먹고 또 먹고~ 끝까지 먹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탐식가이기도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밥 잘 먹는 미식 오빠’라고 할까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도 저처럼 맛에 미친 오빠가 있었다면.. 믿어지십니까? 때는 조선 중기입니다. 그때 지배 이념이 뭐죠? 네, 성리학. 맞습니다. 당시 양반들은 음식을 탐하지 말고, 음식의 맛에 대해서도 논하지 말라는 성리학의 이념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선비가 맛을 이야기한다? 경박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 받는 그런 사회였죠. 이러니 대부분의 양반들은 식탐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당당하게 선언한 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냐? 바로 조선의 괴짜 미식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칼럼니스트! 들어는 보셨습니까? 바로 이 사람, ‘허균’입니다. 허균. 누군지 아시죠? 홍길동전을 쓴 그 허균, 맞느냐고요? 네, 맞습니다. 허균이 한글 소설만 최초로 쓴 줄 아셨죠? 음식 품평서도 ‘최초로’ 썼습니다.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보물이기도 한데요. 조선 시대 미슐랭 가이드! 도문대작입니다. 도문대작.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쩍쩍 다신단 뜻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산해진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종류만 무려 170가지가 넘습니다. 가장 놀라운 건요. 여기 기록된 모든 음식들은 허균이 사십 평생 두루 찾아다니며, ‘직접’ 맛본 음식들이라는 겁니다. 재료는 산지별로! 만드는 과정은 일목요연하게! 일품요리부터 간식, 음료, 과자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웅장(熊掌). 이게 뭔지 아세요? 곰 발바닥입니다.녹설(鹿舌)과 녹미(鹿尾)는 뭘까요? 사슴의 혀와 꼬립니다. 그렇다면 표태(豹胎). 감이 오시나요? 네, 표범의 태아. 왕 정도는 돼야 먹을 수 있는 이 진귀한 음식을 맛봤을 정도면, 허균이 먹을 복은 타고났던 것 같죠? 실제로 허균의 아버지가 그 유명한 강릉의 명물! 초당두부를 만든 허엽입니다. 아버지의 대단한 권세 덕에 허균은 어릴 때부터 먹고 싶은 건 원 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홍시가 먹고 싶어요.’ 그러면 온양에서! ‘전복이 먹고 싶어요.’ 그러면 제주에서! 말만 하면, 조선 팔도의 별미를 구해다 바치는 전담팀이 따로 있을 정도였죠. 자, 그럼 여기서 잠깐! 여러분, 질문 하나 드릴게요. 허균은 도문대작을 언제 썼을까요? (청중 반응)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잖아요. 잘 찍은 음식 사진 한 장! 안 먹어도 배부르고,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죠. 그렇다면 허균도 우리처럼 음식을 눈앞에 두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이 책을 썼을까요? 아닙니다. 허균은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에 이 책을 썼습니다. 허균의 나이 마흔셋. 과거 시험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조카와 조카사위를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시켰다는 혐의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바로 함열이란 곳으로! 지금의 전라도 익산입니다. 재미있는 건, 함열은 허균이 가고 싶다고, 콕! 집은 유배지였단 겁니다. 왜 함열로 가고 싶어 했냐고요? 여러분, 웃으시면 안 됩니다. 이유는 딱 하나!! 방어와 준치가 많이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인 신세로 귀양을 가는 마당에 음식 타령이라니, 철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미식가로서 열정으로 봐야 할까요? 어쨌든 허균은 그토록 먹고 싶은 방어와 준치를 상상하며 머나 먼 유배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선택은 쪽박이었습니다. 이건 허균이 함열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인데요. 잘 도착했다는 말 빼곤 이 내용이 전붑니다. ‘새우도 부안 것만 못하고, 게도 벽제 것만 못해. 음식을 탐하는 사람으로서 굶어 죽을 판이야.’ 상한 생선과 감자, 돌미나리뿐인 초라한 밥상,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해 굶주린 채로 밤을 지새우길 여러 날.. 마침내 허균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불러내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 시대 미슐랭 가이드! 허균의 도문대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제가 도문대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허균의 배고픔이 현실적으로 심하면 심할수록 그의 상상력은 더욱 풍성해졌다는 겁니다. 유배 생활이 험난하면 험난할수록 음식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나는 어떤 음식을 어느 계절에 먹어야 하는지부터 그 음식의 크기, 생김새, 맛! 심지어 음식에 담긴 추억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죠. 여기 보면 서울의 음식들이 쭉 적혀 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오르는 대로 적은 것 같아요. 아마 유배지에서 가장 그리운 음식들이었을 겁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이 책의 제목인 ‘도문대작’처럼.. 푸줏간 앞에서 그저 입맛을 쩍쩍 다시며 고기를 씹어 먹는 시늉밖엔 할 수 없는 처집니다. 먹고는 싶은데 먹지를 못하니, 먹는 흉내라도 내서 위안을 삼는 것만이 험난한 유배 생활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법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허균이 도문대작을 쓰면서 가장 먼저 내세운 음식이 뭔지 아세요? 바로 방풍죽입니다. ‘강릉에는 방풍이 많이 나는데 이른 봄에 나는 방풍의 새싹으로 죽을 쑤어 먹으면, 달콤한 향이 3일 동안 가시지 않는다.’고 극찬을 합니다. 이런 고급 정보를 지나칠 제가 아니죠.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요. 안타깝게도 요즘엔 팔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허균이 도문대작을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방풍죽. 여기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허균은 외가인 강릉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당시 그의 아내는 만삭이었는데요. 피난길에 아이를 낳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며칠 뒤, 갓난아기마저도 젖을 먹지 못해 세상을 뜨죠. 전쟁 통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고, 고향에 다다른 허균의 마음, 어땠을까요? 아마 만신창이였을 겁니다. 그런 허균을 위로해준 음식이 바로 이 방풍죽입니다. 가족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상실과 슬픔을 달래준 따뜻한 죽 한 그릇. 허균이 유배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가장 먼저 방풍죽을 떠올렸다는 건, 어쩌면 그 옛날, 방풍죽에게 받았던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죠. 언뜻 보면 허균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호위호식만 하며 산 것 같지만.. 그의 마지막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역모를 꾀한 반역자로 몰려 능지처참에 처해지거든요. 능지처참은 죄인을 죽인 뒤, 시신의 머리, 몸, 팔, 다리를 토막 내서 각지에 돌려 보이는 아주 잔혹한 형벌입니다. 하지만 도문대작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허균이 꼭 사회를 개혁하거나 불의에 맞서는데 일생을 걸었던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방 수령 자리 하나 꿰차고, 지인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어요. ‘다만 바라는 것은 동이에 술이 비지 않고 부엌에 연기가 끊이지 않으며, 띳집이 새지 않고, 포의를 늘 입을 수 있으며, 숲에서 나무 하고, 물에서 고기 낚을 수만 있다면 영화도 욕됨이 없이 그 낙이 도도할 것이다. 이만하면 일생이 만족하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참으로 작고, 소박한 꿈, 아닙니까? 요즘 ‘소확행’이란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 원조가 바로 허균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400년 전에 알고 있었으니까요. 조선 시대, 억눌려있던 탐식 본능을 깨운 팔도 미식 기행의 선구자 허균. 그가 남긴 최초의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상헌 / 개인적으로 오늘 정말 반가운 보물을 만났어. 나도 먹는 거엔 절대 빠지지 않는데 이정진 씨가 이렇게 밥 잘 먹는 미식 오빠인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정진 / 지방으로 촬영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맛집 수배야. 내 별명이 ‘제철 밥상 사전’이거든! 또, 촬영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서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자가 신조! 보시다시피 난 양도 많아. 홍경민 /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 음식 크기가 예사롭지 않더라고. 푸드 파이터야 뭐야? 그냥 인증 샷인 줄 알았더니 저걸 다 먹어? 박영진 / 에이~ 저 정도가지고 대식가라고 할 수 있나? 내 주변에 대식가 양대 산맥 알지? 김준현, 유민상! 이정진 씨, 얘네들 이길 수 있어? 이정진 / 겨뤄본 적은 없지만 이길 수 있을 지도 난 남들 다 숟가락 놓을 때 한 번도 먼저 놔본 적이 없어. 무조건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는 스타일. 다니엘 / 아하~ 맞아. 그런 친구 꼭 있는데, 정말 많이 먹긴 하는 것 같아. 이정진 씨 별명이 제철 밥상 사전이라고 했는데 요즘엔 뭘 먹어야 하는지 추천 좀 해줘! 이정진 /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민어가 최고의 보양식. 그리고 이 방송이 나갈 때쯤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 강추! 다니엘 / 한 번쯤 들어본 생선들이긴 한데, 아직 한 번도 안 먹어봤거든. 설명을 들으니까 너무 먹어보고 싶어졌어. 강아랑 / 여름엔 민어! 가을엔 전어! 이정진 선배님 제철 밥상 사전이란 별명이 딱인 듯 허균의 도문대작에서는 민어와 전어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궁금한데? 이정진 / 좋은 질문이야! 여러분,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민어와 전어가 전혀 언급되지 않아. 이기환 / 그게 재미있는 포인트인데 전어는 아예 언급조차 안 하고, 민어에 대해선 이렇게 적혀 있어. “서해안에서 널리 잡히기 때문에 특별하게 기록할 것이 없는 물고기”라고. 당시 민어가 그만큼 흔한 물고기였던 거지. 요즘에는 너무 귀해서 맛보기 힘든 음식이 되어 버렸지만. 한상헌 / 지금 홍경민 씨가 들고 있는 책이 허균이 유배지에서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 품평서인 도문대작이지? 홍경민 / 네, 맞아요. 나는 이 책을 보니까 군대 시절이 자꾸 생각나더라. 내가 이렇게 책을 안 냈을 뿐이지. 음식 이름 적긴 정말 많이 적었거든. 박영진 / 나는 먹을 거 써놓고 하는 빙고 게임 시간이 제일 좋았어. 빈칸을 채우면서 그게 진짜 맛있었지. 아냐 이건 더 기가 막혔어. 이렇게 적다 보면 25칸이 뭐야? 100칸 빙고도 끄떡없었다니까? 홍경민 / 나는 음식으로 쿵쿵따 끝말잇기도 했는데.. 정말 추억 돋는다. 다니엘 / 음식으로 끝말잇기 하는 거야? 어떻게 해? 한번 해볼까? 홍경민 / 나부터 갈비찜 쿵쿵따 → 찜닭(박영진) 쿵쿵따 → 닭볶음탕(이기환) 쿵쿵따 → 탕수육(다니엘) 쿵쿵따 → 육개장(안현정) 쿵쿵따 → 장조림(강아랑) 쿵쿵따 → 임연수어(한상헌) 쿵쿵따 박영진 / 이제 우리가 찰떡궁합이 되어 가네! 우리도 이렇게 척하면 척인데? 도문대작에 적혀 있는 음식 가짓수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은데? 홍경민 / 그러게. 군대 시절의 나라면 음식 170가지는 눈 감고도 다 적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기환 / 허균은 음식경전인 하증의 <식경>과 서공의 <식단>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예처럼 우리도 이름만 기록한다면 음식의 수가 1만은 족히 될 것’이라고 했지. 허균은 양보다 질로 승부한 것! 강아랑 / 그러니까 이게 전국 어디서나 공통으로 맛볼 수 있거나, 흔한 음식은 기록하지 않고, 엄선 또 엄선된 진짜 맛있는 음식만 적혀있단 거잖아. 남자 분들은 군대~ 군대~ 하는데 나는 이게 요즘 아주 핫한 이영자 씨의 메뉴판이 생각나더라. 다니엘 / 아, 나도 그거 정말 탐나더라고 ^^ 이영자 씨가 콕 집은 특별한 메뉴들이 너무 많아서 갖고 싶더라고.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만점일 듯! 안현정 / 실제로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각 지역 특산물로 가득한데 요즘의 기준과도 일치해. 밀양·상주의 밤, 정선의 금색 배, 지리산의 먹감, 충주의 수박, 예천의 모과, 보은의 대추, 순천 작설차, 경주 약밤! 이것이 바로 조선 팔도에서 허균의 입맛을 다시게 한 음식들이야. 홍경민 / 도문대작의 음식들 중에서 궁금한 게 석용병이란 떡인데 방풍죽 다음으로 설명이 길더라고. 나는 처음 들어보는 떡인데 어떤 떡이야? 이정진 / 도문대작에서는 석용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내가 풍악에 구경 가서 표훈사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 절의 주지가 저녁상을 차려 왔다. 상에 떡 한 그릇이 있었는데 이것은 귀리를 빻아 체로 여러 번 쳐서 곱게 한 뒤에 꿀물을 넣어서 석용과 반죽하여 놋쇠시루에 찐 것인데, 맛이 매우 좋아 찹쌀떡이나 감떡보다도 훨씬 낫다.’ 박영진 / 석용(石茸)이 뭐야? 이기환 / 석용은 석이버섯이야. 석용병은 주재료가 석이버섯인데 해발 천 미터 높이의 바위틈에서 꼼꼼 숨어서 자라는 아주 귀한 버섯이라 요즘에는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어. 박영진 / 아까 방풍죽도 그렇고, 요즘엔 못 먹는 음식 얘기만 하니까 그림의 떡. 그 맛이 정말 궁금한데? 이정진 / 박영진 씨,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내가 누구냐? 미식 형아잖아. 오늘 여러분들을 위해 내가 직접 요리연구가에게 부탁해서 석용병을 그대로 만들어 왔다. 한상헌 / 떡 현장평가단에게도 주세요 허균이 조선의 프로 먹방러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허균의 초상을 주의 깊게 봤거든요. Q6) 그런데 뭐.. 먹을 복이 있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지 않아요? 홍경민 / 생각보다 날씬하네? 안 먹게 생겼어. 박영진 / 그렇지? 식탐이 많아 보이는 것보다는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것 같은데? 안현정 / 실제로 허균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어. 허균의 아버지가 당시 권세가였던 초당 허엽! 집안에는 늘 뇌물로 바치는 각 지역 특산물이 끊이질 않았대. 결혼한 이후에는 처갓집이 그렇게 부자여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고. 이기환 / 잦은 외직생활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원접사의 종사관으로 의주에 머물며 다양한 중국 음식을 먹기도 하고, 시험관이 되어 호남 각지를 돌기도 하고, 또 해운판관이 되어 세금을 거둬들이러 돌아다녔어. 그렇게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산해진미는 모두 다 맛볼 수 있었지. 강아랑 / 허균에게 가장 기쁜 일은 음식을 선물로 받는 것이었는데 맛있는 걸 보면 시상이 절로 떠올랐나 봐. ‘병어를 실처럼 잘게 썰어 회를 쳤더니 군침이 흐르더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국수나 먹던 창자가 깜짝 놀라 천둥소리를 냈습니다.’ 홍경민 / 허균이 벼슬자리 갖고도 로비도 했는데 뭐라고 한 줄 알아? ‘나으리~ 거 제가 이번에 남원으로 좀 가고 싶습니다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시죠?’ 박영진 / 에헴. 남원으로 가고 싶은 이유가 무어냐. 나도 명분이 있어야 널 보내주든 말든 하지~ 홍경민 / 남원이 맛의 고장 아닙니까. 가서 맛있는 것 좀 먹게.. 아! 어려우시면 부여도 괜찮습니다. 거기는 생선이랑 게가 참 맛있거든요. 박영진 / 허, 참나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예끼 이놈~~ 남원도 부여도 넌 안 된다. 공주로나 가버려라~!!! 이정진 / 허균은 자기 스스로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나는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했어. 방어랑 준치 때문에 함열로 유배를 보내달라고 하더니, 생선이랑 게 때문에 관직 로비까지 하는 것 봐봐. 못 말리겠지? 그러니까 허균의 절친 한석봉도 그런 허균을 보고 ‘음식에 환장한 사나이’라고 했다는 거 아냐~ 다니엘 / 허균이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고 음식은 생명과 관계된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철학자답지 않게 엄청난 대식가였다. 혼자 2인분을 먹으면서 ‘난 두 사람 몫을 먹지만 두 사람 몫의 생각을 한다’고 하기도. 식탐의 명분을 찾는 게 허균과 비슷하지? 강아랑 / 허균은 오히려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먹방, 쿡방 섭외 1순위였을 것 같은데? 이정진 / 그러니까 글로 쓰는 먹방이라고. 허균의 도문대작을 보면 마치 이영자나 김준현의 맛 표현에 절대 뒤지지 않아. 예를 들어서 죽실이란 음식인데 ‘스님이 가져온 빠알간 감에 노오란 밤 가루를 잘 섞어서 몇 숟갈만 딱 먹으면 온종일 든든하다~’ 어때? 기가 막히지? 박영진 / 이야~ 백 주부도 울고 갈 허 주부의 등장인가요? 홍경민 / 집밥 허선생, 허균의 골목식당, 허균미식회 이거 다 떼어 놓은 당상인데? 안현정 / 허균이 살았던 조선 중기에는 허균이 식탐 때문에 정말 많은 욕을 먹었지만, 지금이라면 음식에 대한 지식도 많지, 잘 먹지, 잘 쓰지! 요즘 시대엔 훌륭한 맛 칼럼니스트로도 손색이 없을 듯. 이기환 / 사실 도문대작은 음식 품평서로도 가치가 있지만 허균의 사상도 담겨 있는 작품. 좋은 음식을 먹었던 한 때의 부귀영화도 이렇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쫄쫄 굶게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도문대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단 네 글자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다니 허균의 글 솜씨를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상헌 / 먹스타 허균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이렇게 도문대작이 전해져 ‘글로 보는’ 조선 판 먹방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스튜디오에서 먹방도 찍고, 오감을 사로잡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허균의 도문대작을 소개해준 이정진 씨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한상헌 / 천상의 컬렉션! <미쳐야 미친다 특집> 호스트 세 분의 무대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순서만 남았죠! 바로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을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세 개의 보물을 떠올려 볼까요? 신선이 그린 신선 그림 장승업의 <삼인문년>,과학 덕후가 만든 조선 최초의 디지털 시계 장영실의 <자격루>, 조선시대 미슐랭 가이드 ,허균의 <도문대작>을 차례로 만나봤는데요. 여기 계신 100인의 현장평가단 여러분들은 이제 마음의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잠시 후에 호스트 세 분을 무대에 모시고, 최후의 한마디를 들어볼 텐데요. 세 분의 최후 한마디를 모두 듣고 난 뒤,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단 하나의 보물에 투표해주시면 됩니다. 세 개의 보물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보물이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되고요. 우승을 한 호스트는 문화재 보호기금에 기부자로 등록됩니다. 자, 준비되셨나요? 서경석 / 오늘 최후의 한마디는 장승업의 삶을 그린 영화 취화선의 한 대사를 패러디하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세상이 뭐라 하던 난 서경석이오! 1번이 최고요, 최고가 1번인데, 내 1번을 두고 어찌 망설이시오!!“ 감사합니다. 한상헌 / 시대가 원했던 장승업의 자유로운 신선 그림!서경석 씨가 소개한 <삼인문년> 은 1번입니다. 이제 데니스 홍 박사님의 최후 한마디 들어보겠습니다. 데니스홍 / 여러분 요새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열정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우리 모두를 바꿔내기도 하죠. 한 번 상상해보세요.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없었다면? 조선의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정말로 덕후가 세상을 바꿔낸 거죠. 저 역시 두 사람의 열정을 가슴 깊이 담고 로봇을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 열정에 공감하셨나요? 그럼 열정적으로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한상헌 / 장영실이 만든 조선 최초의 디지털 시계! 데니스 홍 박사님의 <자격루>는 2번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정진 씨의 최후 한마디 들어보겠습니다. 이정진 / 도문대작에 적힌 음식들은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감싸주는 허균의 진정한 소울 푸드였습니다. 요즘 SNS에서 가장 핫한 말이죠. ‘기분이 저기압일 땐, 반드시 고기 앞으로 가라!’ 정말 명언 아닙니까? 이런 저런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면 오늘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힐링하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한상헌 / 자, 결과가 나왔습니다. 100분의 현장평가단을 사로잡은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른 보물은 무엇일까요.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데니스 홍씨의 자격루가 올랐습니다! 오늘 우승한 호스트 데니스 홍씨는 문화재 보호기금에 기부자로 등록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용: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우리 문화재도 애정을 가지고 오래, 자세히 보았을 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기적처럼 전해진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 그에 얽힌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호스트의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단 하나의 보물을 선정한다. 서경석이 소개하는 '장승업 삼인문년' 데니스 홍이 소개하는 '장영실 자격루' 이정진이 소개하는 '허균 도문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