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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천상의 컬렉션 24편 - 침구경험방, 경신척, 야묘도추

영상 대본 펼치기 닫기: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오늘은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역사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조선의 숨겨진 천재들’을 만나볼 텐데요. 뛰어난 천재에 가려져 평생 2인자로 살아야 했지만, 자기 분야에서 누구보다 멋지게 살다간 숨겨진 천재의 이야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100분의 현장 평가단은 호스트 세 분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보물을 선택해주시면 되는데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보물이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조선의 숨겨진 천재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1. 노영학 <허임 – 침구경험방> 노영학> 때는 조선, 한 노비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합니다. 얼른 의원을 찾아야하는데, 누가 천민 계급 노비의 사정을 봐주겠어요? 노비의 아들이 필사적으로 의원을 찾아다닙니다. 천만다행으로, 노비의 아들을 눈여겨 본 어느 의원이 기회를 줍니다. 노비의 아들은 의원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었죠. 그는 이후에도 의원의 어깨 너머로 의술을 배웁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의원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며 길을 찾았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난 겁니다. 천민, 노비였던 이 사람은 훗날 조선의학사에 길이 남을 책 한 권을 남깁니다. 혹시 어떤 책인지 아세요? 힌트 드릴게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의고요. 성은, “허씨” 예요. 동의보감? 아닙니다! 하지만 동의보감만큼이나 동아시아에 조선 한의학의 붐을 일으켰죠. 오늘의 보물, 허임의 <침구경험방>입니다. 허임은 침구의 달인이었습니다. 침. 구. 침은 말 그대로 우리가 한의원 갔을 때 치료받는 그 침이고요. 구는 뜸이에요. 침과 뜸인거죠.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바로 침과 뜸 치료법에 집중한 조금, 특이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의서, 동의보감만 봐도 약초의 효능, 탕약 만드는 법에 병의 증상까지... 말 그대로 25권짜리 백과사전이거든요. 허임은 단 한 권! 그의 모든 의학적 경험을 단 한 권의 책에 집약시켰습니다. 한 권에 그것도 침과 뜸에 집중한 이유는 뭘까요? 허임이 살던 시대, 일반 백성들은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약초 값은 치솟고, 몸이 아파도 약 한 첩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았죠. 그런데 침술은 비싼 약초 없이 바로 이 침!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요. 천민 출신이었던 그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거죠.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백성들에겐 허임의 치료법은 한 줄기 빛과 같았고, 허임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집니다. 결국, 가장 낮은 곳에 있던 거리의 의사는 조선의 가장 높은 곳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최고의 권력자, 왕이 사는 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당시 조선의 왕은 선조였어요. 그의 곁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당대 최고의 의사 허준이 있었죠. 허임은 허준보다 서른살쯤 어렸습니다.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허준과 한창 떠오르는 신예 허임, 이렇게 두 사람은 함께 왕을 치료하게 된 겁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선조는 편두통을 자주 심하게 앓았는데 허준을 비롯한 의원들이 다 달라붙어서 치료를 해봐도 나을 기미가 없는 겁니다. 왕은 아프다고 난리고 치료는 효과가 없고, 진땀나는 상황이죠. 이때 허준이 이야기 합니다. “소신이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하니 허임이 침을 놓게 하시옵소서” 천하의 허준이, 적어도 침술에서만큼은 새까만 후배, 허임의 능력을 인정한 겁니다. 곧바로 허임을 불러 침을 놓았고, 거짓말처럼 선조의 편두통은 싹 사라집니다. 천민, 노비였던 허임은, 철저한 신분사회 조선에서 왕에게 인정받는 어의가 됩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앞날 창창한 젊은 천재 의사 허임에게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또 다른 시련이 닥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제 별명이요. 또래 친구들 중에서 사극을 가장 많이 출연했다고, 사극 아이돌이거든요. 제가 조선시대 왕 역할을 많이 했어요. 예종, 중종, 인종, 고종. 광해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왕은, 역시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광해군이었습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 선조의 명에 따라 전국을 다니며 민심을 수습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을 겁니다. 그때 광해군과 함께 전장을 누빈 신하이자, 의원이자, 전우가 바로 허임이었습니다. 허임 역시 광해군의 건강을 보살피면서도 수많은 백성들을 치료하면서 전장을 헤쳐 나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광해군이 왕이 되니, 허임을 당연히 챙겼겠죠. 마전, 영평, 양주 같은 수도권의 수령 자리를 내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시장, 군수쯤 되는데요. 조정 대신들이 얼마나 반대했겠어요. “허임은 아비는 관노고 어미는 사비로, 비천한 자 중에서도 더욱 비천한 자입니다” “분수에 넘친 것으로 그의 공로에는 과합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매일! 상소가 올라왔다고 하니, 당시 상황을 알만하죠? 허임이 관직에 오르고 물러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광해군도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고 허임도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전란들을 겪으며 더욱 피폐하게 사는 백성들을 위해 거리의 의사로 돌아갑니다.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었죠. 그리고 그의 나이 75세 때. 허임 일생일대 침술의 경험을 담은 단 한권의 기록, 침구경험방을 완성하게 됩니다. 거리의 의사부터 왕을 치료하는 어의까지, 그의 의술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덕분에 누구보다 많은 임상 경험을 토대로 조선 최초의, 침구 전문의서, 침구경험방을 쓸 수 있었죠. 침구경험방이 출판되자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는데요. 단 한권으로 엮어져있으니 손으로 옮기기 쉬웠을뿐더러, 비싼 약재 대신, 침과 뜸으로 치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문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언해본, 한글판까지 발견됐으니 그야말로 모두의 베스트셀러였죠. 침구경험방의 인기는 조선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의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어 두 나라에 수출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허임은 침구경험방 서문에 이렇게 밝힙니다. “읽는 사람들이 뜻을 더해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데 보탬이 되길 바랄뿐이다” 그야말로 허임이 걸어온 삶을 압축해둔 문장 같아요. 의술을 인술이라고 하잖아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마음을 쓰는 어진 기술이라고요. 왕과 양반, 백성 구분 없이 인술을 펼쳤던 의사.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침, 하나로 시대를 뚫고 간 명의 허임! 그리고 그의 철학과 삶이 녹아있는 한권의 책, 오늘의 보물, 침구경험방이었습니다. MC 한상헌> 허준도 인정했던 당대 최고의 침구의였다는데, 허임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극 아이돌^^ 노영학 씨. 오늘 소개한 허임에 대한 애정 남다른 것 같은데요. 노영학> 실력으로 거리의 의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분이잖아요. 흙수저,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 한마디로 천재. 임진왜란이 일어나 허임이 선조를 호종한 때가 24살.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요. 근데 허임은 이미 어느 경지에 오른 것이니까요. 존경하는 마음으로 허임과 침구경험방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박영진> 그런데 말이죠. 허준하고 허임. 똑같이 허씨에 외자. 이름도 비슷해. 혹시, 이 두 분 친척 아냐? 홍경민> 아니래요. 저도 혹시나 해서 알아봤죠. 허준은 양천 허씨, 허임은 하양 허씨. 두 분 전혀 관계 없으시다고~ 박영진> 아, 역시 먼저 찜 하는 사람이 임잔가. 같은 의원인데 허준이 압도적으로 유명하잖아. 먼저 책 썼어, 먼저 드라마 나왔어, 먼저 태어났어... 누가 하던 유행어 떠오르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기환> 허준이 조선 한의학을 중의학에서부터 독립시킨 인물이라면 허임은 중국으로부터 침구학의 자주화를 이끈 주인공. 같은 명의지만 두 사람의 역할은 달라. 게다가 허준은 신분도 명문가의 서얼 출신. 물론 양반보다야 차별을 받았지만, 천민 노비였던 허임에 비할까. 다니엘> 궁금한 것 있다. 허준과 허임의 역할이 다르다면, 일종의 내과 외과 같은 것인지? 침술이 외과의 영역인가? 강아랑> 아, 그건 제가 찾아봤는데요. 조선도 의원은 전문화 되어 있었나봐요. 왕이 병이 나면 ‘내의’는 탕제와 환약 등 약제 처방을 다루고, ‘침의’는 침 치료만을 담당했다고 한다. 종기 담당하는 의사도 ‘치종의’라고 해서 따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기환> 주로 많이 다루는 것이지 현대의 대학병원처럼 딱 잘라서 자신의 전문분야만 보진 않았을거다. 실제로 허준의 경우 침도 잘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 나온 허임의 실력을 인정해서 한수 무른 것이지 침을 그렇다고 정말 아에 못놓는건 아니었다. 내의는 딱 내의의 일만 한게 아닐 것이다. 팀으로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침 전문의를 추천받아서 함께 내의원에서 일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니엘> 독일도 의사들 내과 외과 나뉘어져 있었고 차별대우 심했다. 외과의들은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들이 의사 역할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상처를 꿰매거나 고름을 짜는 일은 이발사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이발사들이 외과의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박영진> 아니, 그러면 머리카락 자르는 분이 수술도 한거야? 홍경민> 당시엔 가위 쓰는 일이나 칼 쓰는 일이 비슷하다고 생각한건가. 황당하네. 채솔> 그러니까요. 지금은 의사 선생님이라고 하면 오히려 사회적으로 명망 높고 아무도 무시못하는데. 의사 되려고 얼마나 공부하고 애쓰는데. 박영진>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공무원들이 의사라고 무시한거. 그것도 대통령 전담 의사를. 어휴. 홍경민> 아 그러면 허임은 20대때 대통령 전담의사가 된건가? 신분의 한계를 넘어 그렇게 젊은 자리에 정점에 섰다는 것 대단하다. 박영진> 그런데 조선시대는 부모 중 어느 한쪽만 노비여도 자식은 자동으로 노비 신분이라며? 제가 이 때 쓰려고 외워뒀나봐. 일천즉천! 허임은 어떻게 내의원도 들어가고 어의까지 될 수 있었을까? 이기환> 어머니는 사노비, 아버지는 관노비 악공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굉장히 유명한 연주자로 벼슬까지 했어. 아마 그때 면천이 되었던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확실한건 허임이 출세할 때마다 노비 출신이라고 대놓고 명시하며 무시하는 상소 글들이 종종 올라왔다는 것을 봐선 허임의 출신에 대해선 다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채솔> 신분까지 뛰어넘은 실력이라는거네요. 아무런 기반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대단해요. 이 정도까지 되는 분인데. 저는 오늘에야 허임에 대해 알았다. 안타깝네. 강아랑> 확실히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한 사극 드라마가 많이 나와야 하는 것 같다. 허준은 아직까지도 드라마가 회자되잖아. 홍경민> 우리나라 사람들은 침 맞는다. 뜸을 뜬다. 부황을 붙인다 같은 표현 낯설지 않은 친숙한 표현이다. 아직까지도 이런 치료가 이어져 내려오는 것 새삼 신기하다. 허준 허임 같은 조선시대 의원들 덕분이겠지? 혹시 다니엘도 한의원 치료 받아봤나? 다니엘> 아직 치료 받아본 적은 없다. MC 한상헌> 노영학 씨는 광해군 역할만 두 번이나 하셨다고. 그러면 혹시 광해군이 왜 이렇게 허임을 편애하리만큼 좋아했는지 이해가 좀 되실까요? 노영학> 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세자로 책봉되잖아요. 선조는 나라를 버리고 망명까지 생각할 정도였고. 갑작스레 세자가 된 광해군은 전장 한복판으로 내려가 민심을 살피고, 의병들을 독려해야했던 상황이니 겉으로는 의연해도 속으로는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었겠어요. 극도의 피로감, 불안감을 안고 있었을테고 광해군이 실제로 종종 아프기도 했고요. 그렇게 아플때마다 허임이 침으로 치료해주니, 믿음과 신뢰가 엄청났을 것 같아요. 박영진> 그렇지, 힘들 때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생각나는 법이야. 노영학> 네, 게다가 당시 광해군의 나이는 고작 10대 후반이고, 허임은 20대 중반. 지금 제 나이와 비슷할 땐데요. 두 청년은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 국난을 극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신임 한거겠죠. 홍경민> 임진왜란은 비극이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허임도 많은 환자를 돌 볼 수 있었고, 광해군의 신임도 얻게 되었네. 전쟁으로 의사가 명성을 얻게 된거잖아? 이 전쟁이란게 참... 채솔> 그래도 의원에게 군수나 시장 자리 좀 과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이기환> 문제는 수도권 지역, 누구나 탐내는 지역의 수령자리라는 것. 왕 입장에선 아플 때 부르면 빨리 와서 치료해줄 수 있으니 가까운 곳의 벼슬을 주려고 한건데, 사대부들이 그걸 가만 뒀겠나. 내내 반대 상소를 올려댔지. 내가 봤을 때도 좀 과했어. 허임이 침술에는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한 고을의 수령역을 맡긴 어렵지 않았을까. 강아랑> 그냥 의원으로 있으면 가만히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벼슬과 직책들인데. 선조의 편두통을 낫게 하고 받은 직책이 당상관이라니 지금으로 치면 거의 차관급이라잖아. 학문의 길을 평생 닦은 선비도 올라가기 힘든 자리니, 얼마나 질투가 심했을까? 박영진> 그래서 제가 알아본 바로는 허임도 약간 반항도 했대. 불러도 안오거나, 아주 느릿느릿 왔다고. 홍경민> 그런데 광해군 인조반정으로 쫓겨났잖아. 그럼 인조가 집권하면서 광해군의 사랑을 받았던 허임도 귀양가거나 그런거 아닌가요? 이기환> 물론 처음엔 관직 뺏기는데. 그냥 쫓아내기엔 인조도 허임의 침술이 너무나 탐났나봐. 궁에서 왕복 6일이나 걸리는 충청도 공주에 있는 허임에게 처방전 요청까지 해. 인조가 이런 증상인데 어떤 처방을 하면 좋겠냐 이거지.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처방전을 써서 올리는데 그게 또 효과가 있었나봐. 인조가 허임에게 포상했다는 기록도 있어. 조선시대에 이미 원격의료, 원격진료가 있었다. 강아랑> 엥. 처세술과는 거리가 먼 올곧은 양반인줄 알았는데 허임은 결국 선조, 광해군, 인조까지 세 왕을 치료한 의원이었네. 채솔> 천민출신이라 주변에서 출세하는걸 아니꼽게 생각했는데도 바뀐 왕마다 벼슬 내리거나 상을 내리거나 하는 것보니 허임의 침술 실력이 정말 어마어마했나봐요. 욕심을 조금만 부렸더라면 엄청난 권력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니엘> 아마 그랬으면 침구경험방 같은 오늘의 보물도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책 한권에 경험을 담았다고 했잖아요. 애초에 출세보다는 자신이 아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후세에 잘 알리고 싶어한 것 아닐까. MC 한상헌> 우리에게 낯선 침구경험방이지만 일본과 중국에선 여러번 출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면서요. 심지어 표절 시비까지 있었다고요? 노영학> 네, 조선에 유학왔던 일본 오사카 출신의 의사 ‘야마가와 쥰안’은 일본에 돌아갈 때 침구경험방을 가져가서 일본에서 판본을 내며, “조선의 침술이 최고다! 중국까지 그 명성이 자자하다!” 라고 했다고 해요. 중국에선 ‘랴오륜홍’이라는 명의가 있었는데요. 그가 집필했다고 알려졌던 ‘침구집성’이 허임의 침구경험방과 허준의 동의보감 침구편을 짜깁기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홍경민> 의사들이 봤을 때도 이건 너무 훌륭했나보다. 그래도 표절은 아니지~ 출처만 명확하게 썼어도 말이야! 박영진> 요즘 같은 시대라면 어림없었을텐데. 논문 베끼면 바로 바로 들키는 세상인데 아휴. 근데 중국에선 자신들의 한의학 중심이다 라고 한다던데, 허임의 침구경험방 내용은 부러웠나봐? 이기환> 침구경험방의 발문을 보면 내의원 제조였던 이경석이 남긴 글이 있다. “태의 허임은 평소 신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평생 치료한 사람은 다 꼽을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경우도 많아 침의들 사이에서 으뜸으로 추앙됐다” 신이 내린 의술이라는 평만 봐도 다른 나라 의사들이 얼마나 탐을 냈겠나 생각해볼 수 있다. 강아랑> 침구경험방! 책 이름 그대로 경험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임 평생의 임상을 적어둔 것. 이전 의학서의 잘못된 정보나 본인이 경험해본 것들을 담아낸 것이니, 얼마나 정확하고 실용적이었겠나. 홍경민> 맞아. 게다가 왕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신분고하 할 것 없이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으니, 얼마나 치료 정확도가 높겠나. 그러니 너도나도 베껴서 가지려고 했겠지. 다니엘> 저는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천민이라는 최하층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는걸 알게 돼서 놀라웠다. 처음엔 그냥 왕과 친해서, 총애 덕분에 높은 자리에 올라간건가 했는데 본인이 가진 실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 해솔> 허임이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어차피 실력이 있는 사람은 끝내 성공하겠죠? 뭔가 저도 좀 더 노력해서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C 한상헌> 침술의 대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허임의 일생과, 조선 최초의 본격적인 침구전문서의 탄생에 대해 배운 뜻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영학 씨의 <침구경험방>, 최후의 한마디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으며, 여쭤봤어요. 허임에 대해 아시냐고 말이죠. 단박에 잘 알고 아주 유명하고 한의학계의 중요한 분이라고 이야기 해주시더라고요. 하아, 안타깝더라고요. 이런 분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침 하나로 백성부터 왕까지 차별 없는 인술을 펼쳤던 조선의 명의 허임. 그가 남긴 임상 의학서, 침구경험방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조선제일침! 허임의 침구경험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노영학 씨의 <허임 침구경험방>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 노영학 씨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노영학 씨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2. 김진애 <최천약 – 경신척> 김진애> 안녕하세요. 도시건축가 김진애입니다. 71학번으로 건축과에 들어갔는데요, 서울공대 여학생으로는 9번째 기록이랍니다. 그땐 캠퍼스에 여자 화장실도 없었어요. 그래도! 그래서! 더 씩씩하게 활동했던 사람이 접니다. 그 귀-한 여자 공대생이 소개하는 세상을 바꾼 보물,^^ 궁금하시죠? 어마어마합니다. 장난이 아니에요. 자 여길, 한번 봐주시죠. 오늘의 보물입니다. ‘에게~’ 다들 ‘저게 뭐지’하는 표정이신데요. 이게 대체 어떤 보물일까요? 막대기, 정의봉 등등... 바로, 자예요.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 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 자, 맞습니다. 조선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은 자! 오늘의 보물-경신척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선이 어떤 사횝니까. 사농공상! 백성들 직업 줄 세우기! 한마디로 기술자 천시 사회였죠. 그런 사회에서 기술이 어디 발달했겠습니까? 경신척이 탄생하던 시절, 조선의 기술수준이 어땠냐면요. 여러분, 바늘 아시죠. 얇고 작은 바늘. 그 바늘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외국에서 바늘을 수입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술자는 제대로 돈도 못 벌고 무시 받던 그 때!! 경신척이 탄생한 겁니다. 어떻게? 바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돌연변이 천재가 등장했거든요. 최.천.약. 우리가 조선의 과학기술자 하면 세종 시대 장영실만 떠올리는데, 사실 장영실 못지않은 조선 최고의 기술자가 영조 시대에 있었습니다. 그가 요즘에 태어났다면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사람이었어요. 사실 그는 평민 출신의 무인이었거든요? 하지만 손에 칼을 쥐어주면 못 새기는 게 없고 못 만드는 게 없다보니, 뭐든 뚝딱 탄생시킵니다. 오죽하면 환술, 마술을 한다고까지 소문났어요. 조선판 맥가이버? 발명가 에디슨?! 저리 가라였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영조에게 중국에서 들여온 자명종 시계가 하나 있었거든요. 집 한 채 값이 넘는 귀한 물건이었죠. 그런데 그 귀한 자명종이 고장 나자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기술자가 없던 겁니다. 결국 ‘신의 손’! 최천약에게 SOS를 칩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본 자명종을 그 자리에서 단박에 고쳐내요! 왕의 물건인데다가, 까딱 잘못하면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쫄지 않고 완벽하게 고쳐버리죠! 어디 이것 뿐 인줄 아세요? 그의 손을 거치면 못 만드는 게 없었죠. 왕릉에 세우는 돌 조각상, 왕족이 쓰는 도장을 새기는 옥공예, 천문 기구에 궁중 악기까지!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만들어냈답니다. 전 최천약이 서양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합쳐놓았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봐요. 예술과 건축과 과학과 기술을 종합한 창조적 인간! 그만큼 최천약은 조선 시대의 불가사의한 천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조에겐 고민이 있었습니다. 세종 때 만든 표준 ‘자’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에 거의 다 사라져버린 거예요. 그러다보니 전국 팔도에서 쓰이는 자의 눈금이 제멋대로 다-달랐어요.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어요? 한 번 상상해보세요. 비단 1마를 사려고 하는데, 가게마다 다 달라서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아파트 생각해보세요, 왜 가끔 분양면적을 속이기도 하잖아요. 33평 아파트를 샀는데 알고 보니 30평밖에 안된다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근데 항의할 방법이 없어요. 왜? 자가 다 다르니까, 자를 믿을 수 없으니까. 확 이해되시죠? 더 큰 문제는 탐관오리들이었습니다. 조선 사회에선 현물로 세금을 거두는데 그때마다 눈금을 조작한 거예요. 백성들한텐 더 걷고 조정에는 덜 내는 식으로, 탐관오리들 뒷주머니 채우기 딱 좋았죠! 그러니 부정부패를 막으려면 영조 입장에선 어서 사라진 자! 기준이 될 눈금!을 만들어야 했던 겁니다. 이 때 영조의 구원투수, 최천약이 다시 등장합니다. 최천약은 새로운 자의 재료로 ‘놋쇠’를 집어들어요. 정교하고 변형이 없는 재료를 선택한 거죠. 사각형의 쇠기둥에 종류와 쓰임새가 다 다른 다섯 종류의 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다용도 자가 된 것이죠. 바로 이것! 경신척을 그렇게 탄생시킨 겁니다.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은 혼란의 조선을 바로 잡을 이 작은 막대기를 말이죠. 이 경신척에 새겨진 눈금이 얼마나 정교했냐면요, 현대에 쓰이는 기술 기준으로 봐도 눈금 간격, 눈금선 굵기가 딱 떨어지게 맞아요. 여러분들, 암행어사 아시죠. 암행어사 출두요. 그 암행어사의 상징이 뭐죠? 그쵸. 마패죠. 근데 그 때 암행어사들이 마패와 함께 꼭 들고다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경신척입니다. 그럼 암행어사는 경신척으로 무엇을 했겠어요? 정교한 자로 실측을 하는 겁니다. 혹시 눈금을 늘이거나 줄이거나 해서 백성이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세를 부담하는지, 탐관오리가 빼먹는 건 아닌지 조사하는 거죠. 성벽을 제 높이로 쌓았는지, 집을 면적대로 지었는지, 강바닥 준설을 계획대로 제대로 팠는지, 실측도 합니다. 그리고 형벌 도구들도 측정해요. 혹시 지방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학대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구요! 결국 이 모든 게 억울한 백성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옷감을 잴 때 쓰는 1마, 집 면적을 가늠할 때 쓰는 6자 곱하기 6자, 1평이 바로 이 경신척 기준이랍니다. 당시 경신척이 세웠던 기준은 아직까지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표준이 되어 쓰이고 있는 게 신기하잖아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백성의 삶을 지켜준 이 자, 경신척! 여러분, 아직도 이 자가 심심하고 밋밋해 보이시나요? ‘잣대’가 세상을 바꿉니다. 과학기술이 세상의 정의를 세우고 민생이 편안해지고 예술을 키우는 겁니다. 장영실을 키웠던 세종의 르네상스, 최천약을 키웠던 영조와 정조의 후기 르네상스였지만 그 정치 리더들이 떠난 다음 조선의 기술은 다시 예전처럼 천시 받았고 나라의 힘도 약해졌습니다. 전 이게 왜 이렇게 씁쓸할까요? 공학자, 더욱이나 여성 공학자로서 겪었던 여러 차별이 떠올라서일까요? 지금의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없어지지 않고요, 대학 진학 대신 기술을 배우려고 하면 문제아 바라보듯 쳐다봅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조선시대가 가졌던 편견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요. 이제 그 편견을 깨고 일어서서 21세기 이 시대의 수많은 최천약들이 우리 세상을 정의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최천약의 경신척이었습니다. 한상헌> 우리는 흔히 기술에 있어서 으뜸은 장영실로만 생각했는데 또 다른 인물이 있었군요. 장영실의 그늘에 가려진 숨겨진 천재가 최천약이었구나 싶어요. 보면 볼수록 전설의 달인 느낌이 드는데...홍경민 씨는 어떠셨나요? 홍경민> 쭉- 보는데 진짜 어릴 적 티비에서 봤던 그 맥가이버! 최고의 외화 드라마였거든요. 무슨 일이 닥칠 때마다 맥가이버가 손으로 뚝딱 해결해버리잖아요. 근데 저 조선시대에 미드의 주인공 못지않은 분이 계셨다니 반갑고! 놀랍고! 고맙고~그렇네요 박영진> 맥가이버하면 칼이잖아요! 칼! 근데 최천약도 칼을 손에 쥐면 뭐든 못하는 게 없다고 하니, 현실과 드라마를 뛰어넘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평행이론이 이뤄진건가 싶네요. 김진애> 사실 최천약이 무인 출신이에요. 그러니까 장인으로 인정받기 전부터 칼을 휘두르던 인물이었죠. 큰 칼이든 작은 칼이든 저 사람 손에만 들어가면 뭔가 이루어 진거죠. 손에 칼만 들려주면 못 고치는 게 없고 못 만드는 게 없다고 하니 보통 인물은 아니었을 거예요. 이기환> 칼로 옥도 조각하고 석상도 만들고 악기까지 다뤘으니 섬세한 이미지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외모는 상당히 터프합니다. 얼굴이 괴걸스럽고 수염이 많으며 키가 컸다고 하면서 정반대의 느낌이에요. 그러니 무인이 되기로 한 것 같은데, 결국 자기 끼를 발산할 길을 찾게 된 거죠. 홍경민> 아니 낮에는 큰 칼을 붕붕 휘두르다가 밤 되면 책상이나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은칼로 사각사각 뭔가 조각하거나 만들고 있던거잖아요. 반전 매력이 기가 막히네~! 다니엘> 아까 악기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제가 알기론 옛날 궁중에서 피아노 역할을 하던 악기를 이 경신척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또 피아노 연주를 하다보니 그 부분에 관심이 가고 놀라웠어요. 어떤 건가요? 박영진> 아니 다니엘? 피아노도 쳐요? 다니엘> 그럼요 저 연주 음반도 냈어요. 홍경민> 이 친구 보게~ 이러다 나중에 가수까지 한다고 하는거 아냐?!? 만능이야 만능~! 그런데 저 ‘자’랑, 피아노랑 대체 무슨 연관인지 궁금하네~ 김진애> 저도 경신척으로 악기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거든요. 이게 수학과 음악이 결합한 결과인거예요. 제작한 악기이름이 편경인데, 두께가 각기 다른 돌이 매달려있고 그걸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거예요. 이게 작은 오차라도 나면 고급진 표현으로 ‘삑사리’가 나는데, 경신척으로 측정을 하니까 그럴 일이 없던 거죠.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경신척이 이뤄낸 겁니다. 홍경민> 그렇죠. 악기가 정말 예민하거든요. 조율이 살짝 안되어도 이상한 소리가 나거든요. 제가 또 기타를 좀 알지 않습니까. 예상컨대 악기를 만드는 자라면 눈금이 상당히 촘촘했을 것 같아요. 김진애> 네 그렇죠. 경신척이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공학자. 4개의 면에 5개의 다른 눈금이 그려져 있는데, 악기를 만드는 건 가장 촘촘한 눈금이 그려진 황종척. 눈금의 크기에 따라 사용 용도가 다 달랐어. 박영진> 그럼 아주 유용한 자였겠네요. 말 그대로 만능 자였던거네요! 촘촘한 건 악기 만들 때 썼다고 하면~~!그럼 다른 자들은요? 눈금의 크기에 따라 어디에 어떻게 사용된 건가요? 김진애> 악기 제조와 음률을 맞추는 자, 측우기 같은 측정 기구를 재는 자, 종묘와 관련된 내용을 재는 자 등등 다양한데, 그 중 백성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는 포백척이에요. 바느질자라고 하는데 의복을 잴 때 쓰였죠. 이기환> 영조도, 최천약도 진짜 백성을 위해 이 경신척을 만들었거든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죠. 특히 과거엔 홍수가 많이 났는데 이 경신척을 이용해서 수표, 강물이 얼마나 불어나는지 다리에 표시를 해서 홍수가 범람하는 걸 대비했다고 해요. 정말 보기엔 밋밋하지만 백성을 위한 대단한 보물임은 분명합니다. 홍경민> 그런데 아까 암행어사 이야기 하셨잖아요. 그때 제가 한 가지를 딱 발견했습니다. 박사님 오늘 목걸이...그거 마패? 아닌가요?? 채솔> 오! 저도 아까 똑같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말도 그려진 것 같구요. 오늘...암행어사 코스프레 하고 오신건가요? 김진애 뭐 암행어사 코스프레까지는 아니고 제가 정치인으로 활동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받은 선물인데 오늘 때마침 경신척으로 절 불러주셔서 깔맞춤은 아니지만, 완벽 암행어사 맞춤을 위해 제 개인 마패 목걸이를 착용해 봤습니다. 박영진> 말이 총 몇 마리나 그려졌나요? 김진애> 세 마리예요 이기환> 감사원에 가면 실제로 저 경신척과 같은 유척이 놓여져 있어요. 감사원이 지금으로치면 옛날 암행어사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올바르게 기준을 세우고 백성을 위한 한치의 오차도 없는 판단을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강아랑> 그리고 전! 경신척을 꼭 좀 자세히 보고 싶어서, 오늘 박사님이 들고 나오신 경신척을 박사님 프리젠테이션 끝나고 제가 잽싸게 가져왔습니다. 김진애> 진짜 경신척은 고궁박물관에 있고요. 이건 제작진이 따로 만든 모조품인데 크기는 아주 똑같다고 합니다. 박영진> 이걸들고 이제 암행어사들이 한손엔 마패! 한손엔 경신척! 딱 들고 “암행어사 출두요~~~!”한 거 아니에요. 폼 좀 나나요? 홍경민> 가끔 마을 관리들이 명령에 불복하면 한 대 때리기도 했을 것 같네요. 생긴 것 보니. 때리기 딱 적합한 사이즈네요. 강아랑> 그니까요. 보니까 꼭 자의 용도로 사용한게 아니라, 무기처럼 도망가는 탐관오리를 잡을 때나 자기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겠어요. 홍경민> 오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 이게 그때는 암행어사 꺼 였지만 지금...우리가 쓴다면 뭐, 다양한 것을 잴 수 있겠죠? 얼마나 정확한지 재봐야겠는데...뭘 재봐야 하나... 강아랑> 키 재보는 게 어때요? 키키! 순위 정하기! 다니엘> 아니 굳이 왜 키를 재나요! 박영진> 그럼요! 그런데 쓰라고 만든 보물이 아니잖아! 그리고 저-기 한상헌 엠씨가 제일 긴 거 알면서 재긴 뭘 재~ 한상헌> 저는 괜찮을 것 같은데 다들 원치 않으신가보군요! 이 경신척이 이룩한 일이 도량형, 그러니까 무언가를 측정할 때의 단위를 통일시킨거잖아요. 처음엔 이게 뭐가 중요한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중국 진시황제가 왕권을 잡자마자 먼저 시작한 일이 도량형 통일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만큼 전 세계가 이 도량형 통일에 관심이 많았더라고요? 다니엘> 맞아요. 길이 중에 미터(M)가 있잖아요. 이 미터법 시초가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에 제안된 단위거든요. 그 후에 17개국이 미터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제적인 단위로 발전돼요.근데 이 협약을 체결하기 이전에 미터 단위를 쓰는 나라들이 있었는데, 자기 나라의 미터원기가 얼마나 정확한지 프랑스에 검사를 요청해야 했던거예요. 덕분에 프랑스가 강대국 노릇을 할 수 있었죠. 박영진> 공짜로 해주진 않았을 것 아니에요? 다니엘> 그럼요, 아마 돈을 좀 내야하지 않았을까요? 홍경민> 특허권 같은 건가? 어떤 발명품이든 뭐든 딴 만들어내면 우리만 쓸 수 있게 특허를 받잖아요. 그럼 그걸 가지고 이걸 쓰는 나라에 돈을 받는건데...그렇게 생각하니까 경신척이 대단한 일을 한거네!! 강아랑> 인류의 문명사를 측정이랑 함께 시작하기도 했대요. 최초 측정 도구는 인체였다고해요. 예를들면 손을 이렇게 들어서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를 한 큐빗이라던가...처음엔 발이나 손으로 길이를 쟀다고 해요. 우리가 말할 때도 한줌, 한웅큼, 한 짐, 이라고 하잖아요. 그런게 다 옛날 측정의 단위가 인체였음을 증명하고 있어요. 박영진> 그랬으면 문제가 많았겠네요! 이렇게 제 팔을 이용해서 5큐빗이다! 이러고 설명을 했는데, 한상헌 씨 긴 팔로는 같은 5큐빗은 또 길이가 달랐을 거 아니에요? 홍경민> 저도 사실 말씀 듣기 전에는 단위나 기준이 뭐가 중요한가 싶었는데, 이게 공기 같았던 거네요. 너무 일상적이라 중요함을 모르지만 없으면 정말 혼란스웠을 거 같아요. 박영진> 그러니까요. 아까 아파트 얘기 들을 때 감이 확 오더라고요. 35평 아파트를 샀는데 30평 아파트를 사게 된다니... 가끔 뉴스에 피해자 인터뷰 나오잖아요. 아파트 평수 속이는 거. 근데 그게 도량형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을 거 아니에요. 참. 이기환> 나라가 힘이 세고 통일되면 도량형이 안정적이고 단순하지만, 힘이 약하고 갈라져 있으면 도량형은 지리멸렬했다는 말이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으면 권력 있는 자와 세력이 멋대로 농간을 부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표준 도량형이라는 건, 군주와 그 나라의 권위의 상징이자,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척도가 되었던 것! 채솔> 영조가 최천약을 정말 아꼈다고 하잖아요, 그럼 벼슬도 높은자리까지 하고 그런건가요?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홍경민> 사실 미스터리한게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면 여기저기 이름이 나올 것 같은데 없더라구요??저도 오늘 처음 들었어요! 강아랑> 사실 그가 만든 조형물이나 여러 악기가 있지만 굳이 거기에 이름을 새기진 않았거든요. 그리고 당시에 자신이 장인이나 공인으로 불리길 거부했대요. 영조가 상을 내리려고 해도 장인과 다른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더라구요?? 박영진> 하긴 이해는 가요! 기술을 가치있게 보지 않으니 스스로 자기의 기술이 자랑스럽지 않고 부끄러웠던거 아닐까?? 거 참! 안타까운 현실이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같은 처지 아니었을까? 홍경민> 그건 좀 과하지 않나~싶긴한데...조금 이해는 가요. 내가 저 대단한걸 만든 사람이야! 그런데 딱 나서서 이걸 내가 만들었소~못한거 아냐~피하고. 다니엘> 독일은 기술을 가진 장인에 대한 대우가 남다르거든요. 그러다보니 자동차나 시계를 제조하는 사람들을 인정해주고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천약도 그 시대에 인정을 해주고 더 밀어줬다면 한국의 기술이 지금보다도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기환> 최천약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없다고들 하지만 승정원일기를 보면 그 마지막이 언급되어있어요. 무관 종2품까지 벼슬을 하고 세상을 떠나죠.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나서 정조가 한참동안 그를 그리워합니다. 왜냐면 전설적인 마이스터로 후대에도 인정을 받고 그만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미 죽은 최천약 같은 자를 어디서 구해올 수 없느냐~!고까지 할 정도였어요. 한상헌> 시대적 편견 속에 스스로를 부인하기도 했지만 최천약은 경신척과 함께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인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진애 박사님의 최후 한마디 들어보시죠. 김진애> 크고 거창한 것들이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작은 기본과 원칙이 세상을 바꿔가죠. 평범해 보이는 작은 자, 경신척 안에는 세상을 바꾼 기본과 원칙이 담겨있습니다. 별 거 있는 보물, 최고의 가치! 최천약의 경신척이었습니다. MC 한상헌> 김진애 박사님의 <최천약 경신척>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 김진애 박사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진애 박사님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3. 김수로 <김득신 – 야묘도추> 김수로> 조선의 풍속화를 논하려면 이분! 꼭 알아야 합니다. 가장 유명한 세 사람이 있는데요. 넘버 원? 옳지~ 김홍도! 넘버 투? 그렇지~ 신윤복! 그러면 넘버 쓰리? 여러분 이분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김. 득. 신. 선생입니다. 김득신이 누군데? 다들 이런 반응이신데요. 김득신 선생이 지금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네, 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죠.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풍속화를 대표하는 양대 거장 사이에서 김득신의 존재가 미미한 건 사실이니까요. 자, 이 그림들을 한번 보시죠. 천상의 컬렉션 애청자라면, 이 그림들을 그린 화가가 누군지 바로 아셨을 것 같은데요! 조선 시대 풍속화의 대가? 그렇죠! 김홍도. 그런데 여러분, 혹시 눈치 채셨습니까? 이 중에 김홍도의 작품이 아닌 게 딱~ 하나 있었는데!? 이게 무슨 얘기냐고요? 다시 한 번 천천히 봐 보죠. 찾으셨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아니, 없다고요? 아니오! 있습니다. 김홍도가 그린 듯, 김홍도가 안 그린 듯, 김홍도가 그린 것 ‘같은’ 그림! 바로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두고, 어떤 이들은 적막이 깨졌다고 해서 <파적도>. 또 어떤 이들은 <야묘도추>라고 부릅니다. 야묘野猫. 까만 들고양이가 도盜. 훔쳤어요. 뭘? 추雛. 병아리를! 만일 저라면 이런 제목을 붙였을 것 같아요. ‘범죄와의 전쟁’ 새끼 병아리를 훔쳐간 고양이 때문에 모두가 동분서주! 야단법석! 전쟁을 치르고 있잖아요. 이 소동의 원인! 요~ 깜찍한 녀석 좀 보세요. 입에 앙~ 물고 있는 노란 병아리.. 아휴, 불쌍해서 어쩌죠? 그런데 이 녀석! 도망치느라 바쁜 와중에 고개를 홱 돌립니다. 얼마나 위급하지? 나 혹시.. 죽을 수도 있는 건가? 사태를 파악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 잡아 봐라~’ 이러는 것 같기도 하죠. 아유~ 얄미워!! 여러분, 여기까지!! 아주 살짝, 살~짝만 봤는데 웃음이 나지 않습니까? 이러니 더 놀랍죠, 이 신통방통한 그림을 ‘김홍도’가 ‘안’ 그렸다는 게!?? 자, 점점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김득신!! 누구냐 넌!!! 여러분이 잘 모르는 김득신은 사실 듣보잡 화가가 절~대 아닙니다. 조선 후기 화단을 주름잡았던 개성김씨 출신이죠. 지난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팀 별명이 ‘팀킴’이었잖아요? 영미와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의 친구.. 그런데 김득신도 아버지, 큰아버지, 동생, 세 아들까지 모두 내로라하는 화원이었습니다. ‘팀킴’의 원조죠!! 실제로 개성김씨는 무려 4대 동안! 스무 명 이상의 화원을 배출한 탑 오브 탑! 조선 최고의 명문 화가 군단이죠. 김득신은 가문의 기대주였습니다. 도화서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만 그릴 수 있었던 의궤! 언제 처음 그렸는지 아세요? 열아홉!! 믿어지십니까. 열아홉!? 심지어 서른여덟 살엔 왕의 초상화룰 그리는데 발탁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촉망받는 화가가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이 좀 의욉니다. 당시엔 거~의!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분야! 잠시 짬이 있을 때나 슬~쩍! 손댔던 그런 그림! 바로 서민의 일상을 그린 풍속홥니다. 김득신의 풍속화. 어떻습니까? 희~~한하네?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 같죠? 이거? 이거! 심지어 이것도!! 주제, 소재, 등장인물, 얼굴 표정, 손동작, 구도, 심지어 그리는 방식까지!! 김홍도 그림과 완~전 판박입니다. 이 정도로 똑같이 그렸다는 건, 제 생각엔 김홍도에 푹~~ 아주 푹~~ 빠져있단 뜻이에요. 김득신이 어느 정도로 ‘김홍도바라기’였냐면요.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란 풍속화는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그리고! 수천 번을 따라 그렸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냐고요? 뭐겠어요? 그냥! 좋아서! 좋으니까! 호기심이 작동하니까! 하지만 어떤 건 너무 똑같다는 이유로 김홍도의 아류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고, 또 어떤 건 역시 풍속화는 김홍도야~ 오히려 김홍도의 명성만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됐죠. 김득신의 풍속화는 늘 요~~~만큼 아쉬웠어요. 딱 한 끗이 모자랐죠. 딱 한 끗이!! 김홍도의 후광이 그만큼 컸단 뜻이겠죠? 이렇게 김홍도라는 천재의 그림자에 가려져 2인자로 묻히는가.. 했더니? 이게 웬걸? 여러분, 김득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김홍도를 뛰어넘고야 말았던 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 화가 중 누구도! 심지어 김홍도조차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그림! 바로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그림으로 말이죠.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그림으로 말이죠 이산저산 꽃이 피니 / 분명코 봄이로구나! 따뜻한 봄볕 / 내리쬐던 어느 날!! 야옹~ 야옹~ 슬금슬금 등장하는 / 침입자 좀 보소! 날렵한 몸매 가진 / 들고양이 되시겠다! 눈 깜짝 하는 사이 / 새끼 병아리를 덥썩! 고양이!! / 게 섰거라~~~~ 꼬꼬댁~ 꼬꼬꼬꼬~ 꼬꼬댁~ 꼬꼬꼬꼬~ 금쪽같은 새끼 잃어 / 암탉은 인사불성~ 두 눈이 시~~~~뻘개져서는 겁도 없이 고양이 뒤를 /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어미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 혼비백산 병아리들 삐약~ 삐약~ 삐삐~ 약약~ 부딪치고 넘어지고 / 걸음아~ 나 살려라~~ 난리 부르스를 추는 중에! ‘예끼! 이놈의 고양이가!!!’ 자리틀을 내던지고 / 탕건까지 훌러덩~ 이내 한 몸~~~ / 미련 없이 날렸지만 기다란 담뱃대는 / 허공만 휘적휘적~ 우당탕탕 소란 통에 / 허겁지겁 나온 아내 ‘웬 소란이유~?’ 발을 동동 구르면서 / 노심초사 하는 말이 ‘하~~~~이고~~~~ 영감!!’ 김득신의 <야묘도추>, 어떠셨나요? 저는 이 영감님 너무 안타까워요.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최소 전치 5주는 나올 걸요? 제가 장담합니다~ 분명 정지한 그림인데 영상이 플레이 되는 거 같죠? 심지어 음성도 지원되는 아주 신기한 그림이에요. 김득신 특유의 넉살과 해학, 독창성이 느껴지죠. 하지만 김득신에겐 언제나 김홍도의 아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김홍도와 화풍이 유사하단 이유 하나만으로! 하지만 단 한 사람! 정조 임금의 평가만은 달랐죠. ‘김득신은 김홍도와 더불어 백중하다!!’ 저 역시 정조 임금과 같은 생각입니다. 김득신이 <야묘도추>를 그린 그 순간만큼은 김홍도를 뛰어넘은 것 같거든요. 고양이가 병아리를 낚아채며 벌어진 한바탕 소동극! 그 정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을 이토록 리얼하고!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는 화가는 김홍도 이전에도 김홍도 이후에도 단 한 명!! 온리 원!! 김득신이 유일하니까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조선의 풍속화를 이야기할 때 김득신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선 최고의 풍속화 거장 김홍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들어 준, 김득신의 불후의 명작! <야묘도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김수로 씨는 정말 매 회가 레전드인 것 같아요. 오늘은 마치 조선 시대 최고 이야기꾼! 전기수가 환생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Q1) 홍경민 씨 어떠셨나요? 홍경민> 그러게. 나는 보는 내내 수로 형 맞춤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어. 저 그림이 김수로고, 김수로가 저 그림이로구나. 박영진> 나도 딱 한마디만 하고 싶네. 다른 건 몰라도 <김득신의 야묘도추>는 김수로의! 김수로에 의한! 김수를 위한 그림이다! 강아랑>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 한양의 저잣거리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니까! 이번에 저 정말 김수로 씨 팬 됐어요! 김수로 최고! 최고! (엄지 척!) 김수로>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건 제가 설명을 잘했다기보다 이 그림이 리얼리티가 대단하기 때문에.. 저는 숟가락을 얹었을 뿐.. 하하하 다니엘> 그런데 김득신의 호가 ‘긍재’던데 긍재가 무슨 뜻이야? 김수로> ‘두려워하여 경계하고 조심하는 생활태도를 지니라는 전전긍긍에서 따온 거거든요. 김득신이 어디 나서는 거 딱 싫어하고, 조심조심 하는 성격이었대. Q3) 혹시 김득신은 자기가 2인자인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굿데이(채솔)> 모든 조심하는 성격이었다면 천재의 그림자에 가려 있는 거에 크게 스트레스 안 받지 않았을까? 박영진> 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난 이랬을 것 같은데? 강아랑> 맞아. 김득신이 정말 전전긍긍의 아이콘이었다면 2등으로 사는 것,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 어쩌면 김홍도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마냥 좋았을 수도.. 다니엘> 맞아. 누군가를 동경하면 그와 닮았단 칭찬이 제일 좋잖아. 내가 이루마를 정말 좋아하는데 나보고 이루마처럼 피아노를 친다고 하는 칭찬이 제일 좋거든. 홍경민> 1등이 되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다면 이런 그림 안 나왔을 것 같아. 그냥 김홍도를 동경하고, 그걸 따라 그리는 그 과정을 즐겼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야묘도추 같은 그림도 그리게 된 거고. MC 한상헌> 저는 이 그림의 제목 두 개 다 마음에 들어요. 양이가 병아리를 훔쳐간다고 해서 <야묘도추>, 그리고 정적이 깨졌다고 해서 <파적도>. 여러분은 어떤 게 더 좋으세요? 홍경민> 모든 사건에는 원인 제공자가 있잖아. 영화에서 흥행하는 게 주인공 이름을 넣으면 일단 흥행 보장! 그러니까 야묘도추가 더 맞는 듯 박영진> 나도 야묘도추에 한 표~ 야! 거기서! 야! 묘도추! 굿데이(채솔)> 그런데 너무 직접적이지 않아?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엄정화 선배님의 배반의 장미 외마디가 생각났는데! 꺄악! 외마디 비명으로 시작되는 노래. 봄날의 평온함을 일순간에 깨드린다는 파적도가 더 잘 어울려. 강아랑 > 나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총알 피하는 장면이 생각났어. 키아누 리브스가 총알 막 피하는 그거! 그런 의미에서 순간적인 장면을 스냅 사진 찍듯 포착했다는 의미의 파적도에 한 표! 이기환> 나도 파적도! 지금으로 치면 캡처 사진 같은데 이걸 200년 전에 구현해냈다는 게 놀라워. 동영상도 없던 시절, 정지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 리얼한 순간을 더 강조한 듯한 파적도가 좋아. MC 한상헌> 아까 김수로 씨는 이 그림에 <범죄와의 전쟁>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야이기를 한번 나눠보고 싶은데, Q5) 여러분은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홍경민> 아무래도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인 검은 고양이지~ 쟤 이름을 네로라고 하자고? 네로가 훔쳤지, 도망쳤지, 힐끗 뒤돌아 봤지! 네로가 이 모든 걸 전두지휘 하는 키맨! 굿데이(채솔)> 맞아. 이 그림에서 열일 하는 건 바로 검은 고양이, 네로인 것 같아! 추리 영화로도.. 범인은 바로.. 너!! 이렇게 하려면 고양이가 주인공!! 다니엘> 나는 저 네로 입에 문 병아리 같아. 지금 쟤 하나 구하려고 영감, 아내, 암탉.. 모두가 다 돌격 앞으로! 이러고 있잖아. 병아리 일병 구하기라고나 할까. 강아랑> 나는 이상하게 암탉에게 마음이 가. 암탉의 눈을 빨갛게 그린 게 핏대를 세우고 날개도 크게 푸드득 거리는 게 모성 본능이 느껴져. 엄마와 정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는 병아리 모습을 보니,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는 생각도 들고. 김수로>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내가 양계장 집 아들! 닭에 대해서 좀 잘 아는데 김득신이 진짜 대단한 게 닭이 화가 났을 때를 정말 정확하게 표착했어! 빨간 눈이며 날갯짓이며.. 그래서 난 김득신이 정말 예리하다 관찰력 짱이다 싶거든. 홍경민> 그런데 닭이 그렇게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며. 고양이랑 상대도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자기 새끼 되찾겠다고 고양이를 무섭게 쫓는 게 엄청 뭉클하긴 하다. 박영진> 마루에 있던 영감이 자리틀을 내던지고 병아리를 구하려는 걸 보니 주인공은 영감이 아닐까? 자세히 보면 저 영감이 실소유주! 눈앞에서 내걸 훔쳐가는 도둑~ 게 섰거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기환> 내 생각엔 부인! 아까 김수로 씨가 영감이 전치 5주는 나올 거라고 했는데 영감이 다칠까 봐 뛰어나오는 아내에게서 남편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부부애가 느껴지기도 해. 김수로> 나도 이 그림에는 정말 조연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저 나뭇가지나 공중 부양 중인 탕건도 얼마나 중요하냐면, 저게 없다고 생각해 봐. 뭔가 허전하지? 요기 병아리 한 마리만 지워도 아쉬워져. 이토록 완벽하게 치밀한 그림은 김득신 그 자체인 것 같아. MC 한상헌> 조선에 김홍도-김득신이 있다면 서양에는 밀레-고흐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저는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이렇게 많이 따라 그렸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거든요? 다니엘> 고흐는 밀레를 엄청 동경했고, 평생 그의 그림을 따라했어 아까 낮잠이라는 그림은 90번이나 따라 그렸는데 심지어 밀레의 삶 전체를 동경했고 그대로 따라서 살고자 했대. 좋은 롤 모델이었던 것 같아. 굿데이(채솔)>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들이 하는 말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인가? 안무를 할 때도 모방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 내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의 경험 이야기) 홍경민> 파블로 피카소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말을 남겼어. 어쩌면 창의성은 '전혀 새로운 어떤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베끼고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 속에도 있는 게 아닐까. 강아랑> 사실 나는 김홍도와 너무 비슷한 그림이 많아서 Q7) 이건 백퍼센트 김홍도에게 족집게 과외라도 받은 줄 알았다? 김수로> 맞아요. 핵심만 콕콕 집어 줘서 그걸 제대로 그린 것 같죠? 그래서 저도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접점이 반드시 있을 것 같은데 정말 희한한 건 김득신이 김홍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는 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기환> 맞아. 하지만 1790년 용주사 후불탱화, 1791년 정조 초상,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국가의 대대적인 행사에 두 사람이 함께한 기록이 많더라고. 특히 30대 후반에 김득신의 화풍이 김홍도스러워지는데 아마 이즈음이 김홍도를 깊이 탐구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굿데이(채솔)> 그리고 김홍도와 김득신의 유일한 공통점이 ‘김득신의 큰아버지인 김응환에게 그림을 배운 거’라 아냐? 강아랑> 김홍도는 선배 화가인 김응환에게 금강전도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을 청했고. 김응환은 정선의 「금강전도」와 유사한 작품을 김홍도에게 그려줄 정도로 두 사람이 정말 각별했더라. 《복헌백화시화합벽첩(復軒白華詩畵合璧帖)》 “歲壬辰春澹拙堂爲西湖倣寫金剛全圖”(1772년 담졸당 김응환이 서호 김홍도에게 방하여 준 금강. 산전도) 홍경민> 김응환과 김홍도가 일본의 지도를 그려오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떠났는데 김응환이 부산에서 갑자기 횡사를 했는데 김홍도가 직접 장례를 치렀다고도 하더라. 그러니 같이 도화서 활동하는 김득신을 보면 애틋하고, 선배 생각도 나고 그러지 않았을까? 각별했을 듯! 다니엘> 나는 김득신이 2인자가 아니라 ‘김홍도 키즈’였던 것 같아. 만일 김홍도가 없었다면 김득신도 없었을 것 같아. 천재가 천재를 낳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조선의 풍속화도 끊어지지 않고 명맥을 이은 것 아닐까. 김홍도를 충실히 계승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어 보여. 박영진> 내 마음속의 1인자는 사실 *년째 단 한 사람, 이경규 선배님! 김득신을 보니 평생 김홍도바라기로 산 것 같은데 나도 열심히 이경규 선배님처럼 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그걸 뛰어넘는 순간이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야묘도추 정말 멋진 그림이야. MC 한상헌> <야묘도추>! 보면 볼수록 천재를 뛰어넘은 또 한 사람의 천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단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 이제 김수로 씨가 준비한 최후 한마디, 들어보겠습니다. 김수로> 여러분, 저는 오늘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오늘 이 그림을 소개할 때, 다들 이렇게 이렇게! 정말 환하게 웃고 계셨거든요. 나도 모르는 사이, 빙그레 미소 짓게 되는 거! 저는 이게 바로 김득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을 잡아 낸 조선에서 가장 독창적인 풍속화! 김득신 화백의 야!! 묘도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여러분, 멋진 무대 준비해주신 김수로 씨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제 호스트 세 분의 무대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즐거우셨죠? 침 하나로 시대를 뚫고 나간 조선제일침 허임의 <침구경험방>, 자 하나로 세상을 바꾼 최천약의 <경신척> 천재 김홍도를 뛰어 넘은 생애 단 한 순간을 포착한 김득신의 <야묘도추>까지 ‘조선의 숨겨진 천재 특집’ 답게 지금껏 우리가 잘 몰랐던 독특한 보물들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천상의 컬렉션! 이제 아주 중요한 순서만 남았습니다. 이 주의 천상의 컬렉션을 결정할 시간인데요. 오늘 만난 세 개의 보물 중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의 번호를 누르고, 옆에 있는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노영학 씨의 <허임 침구경험방>은 1번, 김진애 씨의 <최천약 경신척>은 2번 김수로 씨의 <김득신 야묘도추>는 3번입니다. 자, 여러분, 마음의 결정! 하셨습니까? 천상의 컬렉션!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에 불을 밝혀 주세요! 이제 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는데요. 딱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게 고민스럽겠지만 이제는 결정해주셔야 합니다. 지금 집계 중이니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이미 번호를 누르신 분들은 다시 한 번 해당 번호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자, 100인의 현장평가단의 투표가 모두 완료됐습니다. 그럼 이제 세 분의 호스트를 무대 위로 모셔볼까요? 호스트 세 분 나와 주세요! 천상의 컬렉션에서 멋진 보물을 소개해 준 세 분의 호스트를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자, 그럼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른 보물은 무엇인지, 바로 확인해 봐야겠죠?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보물! 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OOO씨의 OOOO가 올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등 하신 OOO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쉽게도 이주의 천상의 컬렉션엔 오르지 못했지만 멋진 무대 준비해 주신 두 분의 소감도 들어봐야죠?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은 치열한 경합 끝에! 000의 00000이 선정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내용: 한국 예술 천년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기적처럼 전해진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 그에 얽힌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호스트의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현장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을 매혹시킬 단 하나의 보물을 선정한다. 배우 노영학이 소개하는 '침구경험방' 건축가 김진애가 소개하는 '경신척' 배우 김수로가 소개하는 '야묘도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