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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KBS] 천상의 컬렉션 13편 - 노근묵란도, 호동서락기,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영상 대본 펼치기 닫기: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시간! 천상의 컬렉션! 오늘도 아름다운 보물과 그 속에 숨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100분의 현장 평가단은 매력적인 세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드셨다면, 옆에 놓인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과연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되는 보물은 과연 무엇이 될까요? 지금 시작합니다. 2. 이현우 -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이현우> 세월과 함께 사라져버린 절이 있습니다. ‘감은사’라는 절인데요, 그 절의 흔적은 절터에 남겨진 ‘쌍둥이 석탑’만이 증명하고 있죠. 이 쌍둥이 석탑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라고 불리는데요, 어느 날, 이 낡은 돌탑 아래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유물이 발견됩니다. 찬란한 황금빛에 화려한 장식이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죠? 이 보물의 이름은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이름이 꽤 길죠?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바로 ‘사리’예요. 즉, 부처의 사리를 담는 함을 말합니다. 이 사리를 지켜 내기 위해 마치 봉인하듯 겹겹으로 싸 놓았죠. 외함 안에 또 다른 함이 있고, 그 내함 안에는 사리를 담은 유리병이 있습니다. 처음 이 사리장엄구는 흙투성이 채로 발견됐어요. 1,300여 년의 세월을 지탱한 흔적이었죠. 그 흙을 씻어내서 수습을 하는데 한눈에 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어요. 워낙 작았거든요. 대체 얼마나 작았길래 그런 걸까요? 먼저 이 내함의 높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약 20.3cm, 한 뼘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리를 담은 수정 사리병은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높이였죠. 자, 여러분, 지금부터는 숫자의 단위를 헷갈리시면 안 돼요. 우리는 이제 초미세, 밀리미터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 사리병에는 금으로 된 받침대와 뚜껑이 있는데요, 그런데 그곳을 만져보니 오돌토돌하더랍니다. 분명 뭔가 있는데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과학 실험실의 온갖 도구들까지 총동원했습니다. 특수현미경으로 자그마치 100배나 확대합니다! 그제서야 조금씩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여기 보이시죠? 아-주 작은 금 알갱이가 꽃 모양으로 박혀있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보니 잘 보이는데, 뭐가 문제였나 싶죠? 이 뚜껑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을까요? 지름이 1.2cm. 손톱 크기 정도 되는 거죠. 현미경으로 100배 확대한 거에다가 지금 여기 또 100배 정도 더 확대한 걸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이 알갱이 있죠. 그럼 이 알갱이는 얼마나 컸을까요? 지름이 무려, 0.3mm! 0.3cm가 아니에요, 3mm가 아닙니다! 0.3mm! 자, 홍경민 씨 지금 머리카락 하나 뽑아보실래요? 자 지금 들고 계신 그 머리카락 굵기만 한 겁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금속 알갱이. 여러분, 상상이 되시나요? 이 어마어마한 0.3mm의 기적! 벌써 놀라시면 안 돼요. 사리내함에는요 아랫부분에 네 마리의 사자와 신인상, 보살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눈, 코, 입, 하나하나, 심지어 표정까지 다 보여요. 온화한 부처님의 모습이죠. 이 정도로 표현하려면, 이 얼굴, 아무리 작아도, 적어도 3cm는 되어야 눈, 코, 입 하나씩 새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얼굴! 무려 5mm입니다. 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러분 cm 아닙니다! 분명 5mm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미경의 세계에 있는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천장에는 이런 종이 달려있었는데요, 바람이 불면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풍경입니다. 이 크기도 어마어마-합니다. 그나마 좀 커서, 무려...쌀알 크기였다고 하는데요.^^ 이 풍경도 현미경으로 한 번 봤습니다. 이번엔 100배 확대로는 어림도 없어서, 200배 확대까지 이르렀는데요. 그러자 그 표면에, 아주 짝-은 금 알갱이가 붙어있더랍니다. 그런데! 이 알갱이의 크기는 또 어느 정도였을까요? 네 역시나 0.3mm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요, 이걸 세 개씩 이어 붙여놨는데, 그 이음새가 아주 매끈합니다. 이렇게 미세하게 땜질을 했는데 옆에 묻거나 튀어나온 흔적이 전혀 없어요. 이건 불가능하거든요. 이 땜질은 현대의 장인들도 재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거 정말 인간이 만든 게 맞는 걸까요. 천 년 전 인간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니, 지금의 장인들이 만들었다 해도 쉽게 믿기 어려운, 신의 경지, 0.3mm의 기적. 혹시 외계인이 왔다 간 건 아닐까요? 아니면 혹시 진짜... 신의 손길이 닿은 걸까요? 이 기묘한 사리함, 대체 누가 만든 걸까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 사리장엄구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우~ 그러니까 더 막-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씩, 단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리장엄구 외함입니다. 사면을 둘러싼 우락부락한 사나이들 보이시죠? 사천왕이라고 불리는 부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이에요. 아주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죠. 작은 얼굴에 눈썹이며 눈이며 부리부리합니다. 상당히 짙은 인상이에요. 저와는 정반대죠. 콧수염도 국내에 흔치 않은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이 얼굴이 의외의 곳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자, 손톱, 발톱은 물론이고, 허리라인도 돋보이죠.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얼굴. 부리부리한 눈매 하며 콧대, 이국적인 이 느낌. 낯설지 않죠? 경주 낭산 사천왕사에서 발견된 녹유 소조상인데요, 앞서 만나본 ‘감은사지 사리장엄구’의 사천왕과 매우 흡사합니다. 다행히 이 소조상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데요, ‘양지’라는 스님이 만들었다고 해요. 하지만 역사를 다 통틀어도, 양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남은 딱 한 번이 전부입니다. “신기하고 괴이하며 잡다한 기예에도 두루 통달하여 그 신묘함이 비할 데가 없었다.” 듣고 보니 진짜 외계인 아닌가 싶으시죠? 심지어 양지가 요술을 부렸다는 설화도 전해지고요, 양지를 따르는 무리들이 불렀다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가족은 누구인지, 마지막에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몰라요. 다만 한 가지. 그가 남겨놓은 이 작품을 통해 그를 상상할 뿐이죠. 서양의 유명한 박물관에 가면 르네상스 시대 작품을 보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은 예술이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천 년 전, 신의 경지를 보여주는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통일신라의 화려한 르네상스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신라의 미켈란젤로, 양지의 ‘감은사지 사리장엄구’입니다. MC 한상헌> 이현우 씨의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잘 들었습니다. 이 화려한 예술작품 속에 과학과 수학까지 담겨있는 게 놀라운데요. 볼수록 통일 신라 예술의 정체가 궁금해졌는데, 패널분들 어떠셨나요? 홍경민> 아까 높이가 얼마라고 했었죠? 20.3cm? 한...손바닥 한 뼘 정도 높이잖아요?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루브르 박물관도 제대로 보려면 하루 정도 걸린다잖아요? 근데 사리장엄구는 워낙 작아서 하나하나 보다보면 24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키썸> 저는 처음에 생긴 것만 보고 불을 켜는 램프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수정 유리병이 전구고! 외함에 새겨진 네 남자는 램프의 요정 지니를 닮은 것 같기도 하잖아요? 박성광> 저는 수정 유리병을 보는 순간, 손오공이 생각났어요. 손오공 만화를 보면 저렇게 생긴 유리병에 악귀를 가두거든요. 저 유리병 안에도 악귀의 영혼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다니엘> 저는 절에 가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요. 시간 날 때마다 북한산 승가사에 들를 정도! 사리함 자체가 제가 자주 가는 불당이랑 똑같이 생긴 것 같아요. 불당 미니어처 느낌? 이지연> 저는 진짜 계속 와- 감탄만 하면서 봤거든요. 진짜 이 0.3mm, 어떻게 만든 건지 믿어지지가 않아요. 키썸> 진짜 이걸 만들려면 시력이 얼마나 좋았던 거예요? 지금 현미경으로도 100배, 200배 확대해야 보이는 그 0.3mm 알갱이를 그땐 어떻게 본 거예요? 이현우> 양쪽 시력이 50 이상이 되지 않고서야 육안으로는 한참 동안 보기 힘들죠. 신라의 이런 초미세 세공 기술이 가능했던 이유는 돋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미 당시에 돋보기가 있었던 거죠. 다같이> 돋보기?? 그때 돋보기가 있었다고요??? 이다지> <동경잡기> 라는 책에 보면 신라 사람들이 수정을 갈아서 돋보기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등장해요. 수정 돋보기로 빛을 모아 불을 냈다는 이야기도 있죠. 홍경민> 아니 근데 생각해봐요! 0.3mm래잖아.0.3mm! 돋보기가 있어도 그렇지, 사실 그렇게 보려면 엄청 밝은 불빛도 있어야 하거든요. 웬만해서는 눈이 침침해~ 0.3mm인지 1mm인지 구분이 안 되거든요. 박성광> 확실한건 양지는 수전증은 없었을 거예요. 자, 제가 이렇게 한다고 해봐요! 점 하나 딱 찍는데... 숨도 못 쉬었을 것 같아. 조금이라도 흔들리고 삐끗하면 망치는 거잖아요. 홍경민> 이쪽에서 0.3mm 만들려고 초집중 하는데... 옆에 지나가다가 살짝 친다고 생각해봐요! 어이 밥은 먹고 해야지! 박성광> 어이쿠! 하고 망하는 순간! 그럼 이제 싸움 나는 거거든요! 키썸> 그리고 저는 아까 그 땜질도 진짜 이해가 안 되거든요. 학교 다닐 때 기술가정 시간에 납땜하는 거 있거든요~ 근데 땜질을 하는 게 진짜 힘들어요. 주변에 다 튀어나오고 난리 나거든요. 근데 어떻게 0.3mm 알갱이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다 연결이 된 거예요? 이기환> 이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후에 그 땜질을 재현해보는 실험이 있었는데요.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 이게 금과 합금과, 금속들의 녹는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가능한 거라고 합니다. 당시의 과학 기술 수준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주 높은 수준이었다는 걸 말해주죠. 이지연> 근데 신라 하면, 황금의 제국이라고들 하잖아요. 신라 금관도 있고, 또 천마총에 수학여행 가서 보면 금색 장신구도 어마어마해요. 근데 그 귀걸이들도 이렇게 미세하게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이다지> 맞습니다. 신라 무덤에서 발견된 장신구들을 보면요 당시의 세공기술이 어마어마했다는 걸 알 수 있거든요. 황금을 귀히 여기고, 또 이런 금속 공예에 엄청난 공을 들였던 신라의 높은 예술 감각을 알 수가 있죠. 이현우> 실제로 사리장엄구는 그 나라 최고의 기술과 예술을 모두 집대성한 거거든요. 불교국가에서 부처님의 사리라니, 얼마나 귀하게 모셨겠습니까. 최고의 장인을 데려다가 최고로 귀하고 멋진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거죠. 그러니 이 사리장엄구를 보면, 당시 통일신라의 예술 수준이 엄청 높았구나 생각이 듭니다. 키썸> 아니 그럼 이걸 만든 양지는 진짜 사람이 맞긴 맞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외계인이 아닌가 싶은데, 이게 진짜 인간의 솜씨가 아니거든요! 이현우> 양지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 당시 동남아나 인도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많아요.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도 서역인을 닮았어요. 그래서 당시에도 양지가 서역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많았어요. 저도 양지가 외국인이 아닐까 싶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박성광> 사천왕상을 보면 진짜 외국인 같아. 저 정도 곱슬머리는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도 어렵고, 콧대도 성형을 하지 않고선 저렇게 생기기 힘들잖아요. 다니엘> 저도 이 사천왕을 보고 놀란 게, 서양 역사책에서 본 16세기, 17세기 사람들 외모와 비슷한 점이 있어요. 모차르트 머리카락, 다들 아시죠? 소라빵 모양이잖아요. 그렇게 좀 과장되게 기록된 서양인 외모가 여기 이 사천왕 조각에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거든요. 홍경민> 잘 보면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생기신 분들 많아요. 대표적인 예로 배우 신현준 씨. 대표적인 아랍 왕자 상이죠. 신현준을 시작으로, 권오중 씨도 비슷한 것 같고...안 그래요? 키썸> 맞아요! 저희 매니저 오빠도 딱 저렇게 생겼어요.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보면 볼수록 닮았네 박성광> 혹시 그분들 양지 후손들 아닌가요? 이지연> 지금까지 신라에 없던 조각 양식을 선보인 거 보면 외국인일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신라가 로마랑도 교역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외국인이 신라로 파견 나왔을 수도 있고! 이기환> 사실 양지가 서역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는 데에는...실크로드라고 하죠? 신라가 서역과 활발한 무역을 했다는 데 있어요. 신라의 유리병이나 황금 보검도 사실 서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당시 서역인들이 신라를 이상향이라고 부르면서 살던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양지를 기이하다, 신묘하다고 표현한 것 같아요. 다니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라고 하거든요. 양지 조각을 보니까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신라의 미켈란젤로가 아닐까 싶은데, 근데 미켈란젤로는 진짜 다재다능했거든요. 양지에게도 다른 재능이 있었나요? 이현우> 양지는 기록으로 남겨진 우리나라의 최초의 조각가로 보시면 돼요. 승려 출신인데, 조각, 서예, 각종 공예까지 섭렵한 종합 예술인이었죠. 현판 글씨도 쓰고, 탑도 만들고, 불상도 만들고, 정말 다재다능한 천재 아티스트였어요. 그리고 그 작품들은 모두 신라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주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양식이었죠. 이지연> 그런데 기록이 많지도 않고 몇 줄로만 양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거잖아요. 진짜 존재했던 사람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혹시 양지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이현우> 양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한 가지! 양지와 관련된 노래가 전해지는데요, 양지는 ‘풍요’라는 이름의 노동요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때마다 부르게 했대요. 그럼 성안의 남녀가 웃으면서 양지의 작품에 쓰일 흙을 앞 다투어 날랐다고 해요. 이다지> 제가 가사를 한 번 읽어드릴게요.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슬픔 많은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양지 스님의 '진흙 나르는 시주'에 너도나도 동참함으로써 극락으로의 환생을 희망하는 신라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노래라고 보시면 돼요. 홍경민> 진흙을 이고 나르면서 웃었다? 혹시 최면을 건거 아니었을까요? 양지 이 분! 뭔가 수상한데요~ 박성광> 그러니까! 아까 요술을 부렸다고 했잖아요. 어떤 요술을 부렸던 거예요? 이현우> 굉장히 신묘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항상 막대기를 들고 다녔는데, 막대기 끝에 포대를 걸어두면 포대 혼자 저절로 날아가 시주를 받아서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홍경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지팡이가 스스로 날아다닌 다뇨? 신라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도 아니 잖아요. 이기환> 실제로 신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신라 사람들 눈에 양지라는 사람이 신기해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이 양지의 출신 성분에 대해 논란이 많거든요. 삼국유사에서도 양지의 조상과 고향을 알 수 없다고 표현하죠. 다니엘> 근데 이 사리장엄구가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거라고 했잖아요. 근데 서양도 마찬가지예요. 가톨릭 국가에서는 신부님이나 성인의 무덤이 있는 곳이 굉장히 성스럽다고 해서 그곳에 성당을 짓곤 해요. 독일 쾰른 대성당에도 동방박사 3인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사리장엄구 주인도 엄청난 사람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키썸> 저두요! 이 화려한 사리장엄구를 가진 주인공이 누구였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현우> 일단 이 사리함이 발견된 감은사를 지은 왕은 통일신라의 문무왕이고요. 처음에 감은사에 쌍둥이 석탑이 있다 했잖아요. 서탑에서는 단 한 과의 사리가 나오고 동탑에서는 50과 이상이 나왔거든요. 그중 일부는 당시 감은사를 짓게 한 문무왕의 사리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어요. 홍경민> 그러니까 이 사리함의 주인이 문무왕이다... 문무왕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화려한 사리함을 만들어 준 건가요? 이다지> 이 문무왕이 바로 삼국을 통일한 왕입니다. 통일 신라의 대업을 이룩하고, 호국정신이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살아생전에 감은사를 다 완공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아들 신문왕이 이어서 완공을 시켜요. 그리고 죽으면서까지 나라를 생각한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고 이름을 짓죠. 이지연> 그래서 문무왕이 약속도 하거든요.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서도 신라를 지키겠다고!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왕이었네요. 이기환> 그래서 문무왕은 죽어서도 스케줄이 바쁜 왕이었다고 하거든요. 감은사 터 밑에 지하 공간이 발견돼요. 그 지하 공간에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닷물을 통해 감은사를 드나들며 국가 안위를 걱정했던 것이 아니었느냐. 하는 이야기들이 있죠. MC 한상헌> 감은사지 사리장엄구! 이현우 씨의 최후의 한마디와 함께 투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현우>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아주 거대한 작품들을 보고 세계 10대 불가사의라고 하죠. 하지만 저는 신라의 0.3mm의 기적이야말로 세계의 그 어떤 미스터리와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의 경지, 초미세 예술의 궁극. 천 년 전, 통일신라의 불가사의, 감은사지 사리장엄구입니다. MC 한상헌> 과연 이현우 씨가 소개한 <감은사지 사리장엄구>는 몇 분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감은사지 사리장엄구>를 천상의 컬렉션에 올리고 싶으신 분들은 지금! 불을 밝혀주세요! 여러분 아직 불을 끄시면 안 됩니다. 혹시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미 누르신 분들은 확인차 다시 눌러주셔도 좋습니다. 집계가 모두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이제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불을 꺼주시면 됩니다. 이현우 씨, 감사합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MC 한상헌> 여러분 천상의 컬렉션 투표는 중복 투표가 가능합니다. 다음 호스트의 발표는 듣고, 또다시, 불을 밝혀주실 수 있죠. 자, 그럼 다음 호스트는 어떤 보물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만나 보시죠! 3. 황보라 - <호동서락기> 황보라> 한국을 유난히 사랑했던 독일인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는 1925년, 꿈에 그리던 금강산에 오릅니다 한 권의 책을 들고 말이죠 ‘기암절벽이 나를 감옥에 가두는 듯 거대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금강산은 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독일인 베버를 금강산으로 안내한 책, 바로 여행 서적 분야 베스트셀러이자 100년 넘게 인기를 누린 스테디셀러, <호동서락기>입니다 <호동서락기>, 재미있는 이름이죠? 충청도 호서지방의 호(湖)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동(東) 평양과 의주, 관서지방의 서(西) 한양의 락(洛) 이 지역을 다 다녀온 여행기다~ 해서 호동서락기입니다 이 책의 여행 코스가요~ 제천 의림지에서 금강산, 설악산.. 절대 만만한 코스가 아닙니다 직선거리로만 1,000km가 넘어요 변변한 교통수단도 없었으니 여행보다는 고행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심지어 여행 기간? 한 달이 훨씬 넘습니다 보통 양반들도 여행할 땐 아무리 길~어도 스무날을 넘기지 않았거든요 이러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호동서락기>의 저자, 대체 누굴까요? 그의 이름은 김. 금. 원. 그런데 이 분!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예요! 조선에서 여자의 여행은, 절대 금지였습니다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절에 오르는 여자,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여자는 곤장 100대에 처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조항까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규방에 갇혀 지내야 할 여자가 금강산을 여행했다? 조선사회가 발칵 뒤집혔겠죠? 그런데! 별일 없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금원이 여자라는 거.. 아~무도 몰랐거든요 때는 춘삼월~ 강원도 원주에 살던 금원은 머리를 사내아이처럼 땋고, 남자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여행길에 오르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 고작 열네 살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엔 열다섯 살이 되면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비녀를 꽂았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조선 여인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죠 그러니 열다섯 살을 코앞에 둔 금원에게 이 여행, 얼마나 절실했겠습니까 남장을 해서라도 가고 싶은, 지금이 아니면 영영 갈 수 없을지 모를, 그런 여행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금원은 끈질기게 부모님을 설득합니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규방 깊숙이 들어앉는 게 옳은가요?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옳은가요?’ 하고 말이죠 그리고 금원은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열네 살 소녀의 눈에 비친 금강산은 너무나도 신비로운 곳이었습니다 ‘물소리가 마치 산이 무너지는 것 같고 골짜기는 쪼개지는 듯하다’ 이게 열네 살 소녀의 감상입니다, 멋지죠? 금강산에 아름다운 곳, 정말 많은데요 기암절벽 사이로 흐르는 계곡, 이 만폭동의 풍경을 본 양반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이를 찬양하는 글을 경쟁하듯 너럭바위에 새겼습니다 이제 질세라 금원도 그 옆에 글을 남기는데요 뭐라고 썼을까요? 자기 이름을 새겼습니다 ‘나도 왔다 감!’ 인증 샷을 남긴 거죠 열네 살의 천진난만함이 느껴지죠? 이곳은요, 관동팔경의 핫스팟, 총석정입니다, 뭔가 신비롭죠? 이 풍경을 금원은 단 한마디로! 명쾌하게 묘사합니다 ‘여섯 면 천만 기둥’ 어떤가요? 그림이랑 같이 보니까 정말 기가 막히죠? 금원은 여행하는 곳마다 그 감상을 시로 남길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이 정도 문학소녀라면 이 스펙터클한 경험을 어떻게든 글로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공부를 하면, 쓸 데가 없고, 여자가 시를 쓰면, 알려지기는커녕 사라져야만 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 아시죠? 그녀의 유언은 자기가 쓴 시를 모두 불태우라는 거였대요 또 다른 여류시인, 임윤지당은 자기가 쓴 글이 제~발 장독대 덮는데 쓰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고요 그래서 금원도 20년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른한 살, 그녀의 운명을 바꿀, 네 명의 친구들을 만나죠 운초, 경산, 죽서, 경춘.. 하나같이 시문에 뛰어나고, 풍류를 좋아하는 ‘조선의 언니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를 쓰는 여자에 대한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해 지금의 용산 성당 자리에 ‘삼호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아지트로 삼는데요 이게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시 모임, ‘삼호정시사’입니다 이곳에서만큼은 다섯 여인 모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원 없이 발휘할 수 있었어요 서른넷, 금원 역시 20년 전에는 쓸 수 없었던, 아니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호동서락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한문을 쓰는 건 금지였고, 여자가! 생전에 자기의 문집을, 자기 손으로 직접 내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던 시댑니다 하지만 이 모든 금기를 뚫고 마침내 <호동서락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모든 금기를 뚫고, 높은 벽을 넘어, 자신의 꿈을 이룬 조선의 언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진짜 조선의 걸 크러쉬(Girl Crush)죠? 열네 살,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서른네 살,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금원.. 그녀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 호동서락기였습니다 MC 한상헌> 제가 만일 김금원의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황보라 씨를 꼭 캐스팅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멋진 프레젠팅이었습니다. 김금원이 조선의 걸 크러쉬, 조선의 언니쓰!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홍경민 씨, 어떻게 보셨나요? 홍경민> 황보라 씨는 조선의 언니라고 했는데 남자인 내가 봐도 ‘누나’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멋져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 딸도 이렇게만 컸으면~ 박성광>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딸이 그렇게 크길 바라지 말고! 형이 그렇게 키워야 하는 거 아냐? 홍경민> 아, 내가 금원의 부모님처럼 돼야겠구나? 키썸> 홍경민 선배님! 간단한 테스트! 딸이 열네 살에 혼자 여행가겠다고 하면 보내 줄 수 있어? 홍경민> 어어...? 그건 좀... 이기환> 사실 나도 딸이 둘인데, 둘째가 대학생이거든 대학생 딸도 혼자 어디 가겠다고 하면 마음이 철렁해 영, 불안하거든 그런데 14살 딸이 여행 보내 달라? 난 반대야~ 금원 부모님 대단한 게, 어떻게 여행을 허락했지? 키썸> 일단 금원은 한 번 마음 먹은 건 어떻게든 해야 하는 고집불통 같아! 그러니 부모님이 말리다가 포기한 듯? 박성광> 맞아! ‘여자라고 규방에 갇혀 지내는 게 옳은가요?’ 만일 내 딸이 저렇게 조목조목 설득하면 난 항복!! 다니엘> 그런데 나는 이런 성격은 백 퍼센트 유전이라고 봐! 한국에 부전자전이라는 말 있잖아? 조선시대에 법을 어기면서 여행 보낸다는 거.. 부모님도 엄청난 용기가 있었던 분 아니었을까? 황보라> 금원의 부모님이 좀 깨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게 금원이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부모님은 바느질 같은 여자의 일보다는 글공부를 시켰대 조선에선 공식적으로 여자에게 글을 안 가르쳤는데! 이지연> 게다가 금원이 엄청 똑똑했대 글을 배운지 얼마 안 돼서 사서삼경 등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통달하고, 시까지 지었다더라고 홍경민> 그러니까 저렇게 능력 있는데 여자로 태어나 꿈을 못 펼치니까 얼마나 안타까웠겠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 아마 눈물을 머금고 보내줬을 거야.. 이기환> 맞아, 그것이 평생소원이라고 하는데 어쩌겠어 제주 여인 김만덕이 백성을 구제하고 그 선행이 조정까지 알려져서 정조가 소원을 말하랬더니 김만덕이 금강산에 가게 해달라고 하거든 제주 여자들은 죽을 때까지 제주 밖을 못 나가던 시절, 결국 김만덕은 58세에 임금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금강산 여행을 다녀와... 이런 용기 있는 시도, 도전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여인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 키썸> 김만덕이 58세에 간 여행을 14살의 금원이 도전, 그것도 당시 조선의 핫스팟, 호동서락을 다 돌았다?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 듯! 박성광> 아까 황보라 씨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난 고행에 한 표! 이건 뭐 여행이 아니라 국토대장정이야.. 홍경민> 맞아, 저런 여행은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도 있잖아? 다니엘? 다니엘> 너무 저를 콕 집어 말하는데? 그런데 사실 그렇지도 않아 고생하긴 하지만 내 인생에 아주 값진 경험, 내가 24살에 한국에 와서 벌써 9년째.. 사실 한국 생활 다이나믹, 매일 여행하는 기분이거든 황보라> 서른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그 전까진 무슨 일이 생길까 여행은 엄두도 못 냈는데 일단 떠나니까 너무 좋았어 사실 나는 여행을 통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배웠거든 키썸>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황보라 선배님이 하와이 여행 마니아더라고 그래서 황보라 선배님 금원이랑 닮았단 생각이 들었어 금원이 가는 곳마다 시를 남겼는데 황보라 선배님은 가는 곳마다 그림을 그렸더라고 황보라> 사실 내가 이 보물을 듣자마자 출연 결정, 금원이 나랑 닮아서 계속 생각나더라고~ 이 드로잉 북은 나의 보물 1호인데, 나는 여행을 통해서 내게 주어진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어 금원의 여행도 그래 호동서락기를 보면 한 인간의 성장기 같거든 박성광> 그러니까 대체 얼마나 가고 싶으면 그것도 남장을 해서 갔을까? 그런데 남장 여인,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조선에 남장 여인이 정말 있었어? 이다지> 남장 여인은 조선 후기 크게 유행한 코드 중 하나야 실제로 남장을 한 여자가 주인공인 여성 영웅소설이 엄청 유행하면서 규방 여인들의 마음을 많이 달래줬지 <방한림전>, <옥주호연> 같은 소설은 당시의 답답한 가부장제적 현실을 벗어나려고 했던 여성들의 열망과 상상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어 키썸> 남자로 태어나지 못해 남장을 생각해 낸 조선 시대 여인들의 용기 때문인가,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지금도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남장 여인 소재는 시청률 보증 수표 아냐? 다니엘> 유럽에도 남장 여인은 인기야 홍경민> 남장 여인이란 소재가 전세계를 강타했네! 그런데 이렇게 금강산 여행을 할 정도면.. 어느 정도 사는 집 자식이었나 봐? 황보라> 제가 보기에도 한 달 넘는 유람 기간? 경비 만만치 않았을 거거든요. 아주 부자는 아니었지만 딸 하나 조금 무리해서 여행 보내줄 수 있는 집안이긴 했던 것 같아요. 이기환> 그게 정말 미스터리인 게 호동서락기를 보면 ‘푸른색 휘장을 두른 가마 안에 앉았다’ ‘돈을 주고 백어를 사서 회를 쳐 먹었다’ ‘차 끓이는 아이에게 차를 내오라 했다’는 표현이 있어 혜원 신윤복이 그린 <연소답청>, <주유청강>을 보면 사대부들이 기녀와 종자, 아전, 악공, 승려 등을 대동하고 유람을 떠나는 게 트렌드였거든 그래서 양반들의 여행에 동행한 기녀라고도 추측! 이지연> 어쩐지! 호동서락기를 보면, 금강산 여행기 이후에 29살에 김덕희의 소실이 된 지 몇 해라고 밝히잖아 결혼하기 전 10여 년의 세월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어 시를 너무 잘 지어서 원주 기생 금앵과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있더라고 홍경민> 하긴, 금원이 정식 사대부 규수였다면 이런 여행은 아마 더더욱 꿈도 못 꿨을 것 같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MC 한상헌>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고 20년 뒤.. 금원이 만든 시 모임은 후대에 <삼호정시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다지 선생님, 19세기에 여성이 주체가 되어 시 모임을 만든다.. 저는 굉장히 선구적인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다지> 조선 후기 유행한 게 시 모임이었는데 이 모임을 주도한 건 양반이 아니라 서얼, 중인, 평민, 이런 분위기에 여자들도 모인 거지 그런데 삼호정시사의 다섯 여인에겐 공통점이 있어 양반 사대부의 소실이라는 것, 이들이 가슴에 품은 한은 여자로 태어난 것 서녀 혹은 기생으로 소실로 살아야 한다는 것 비슷한 처지, 서로 의지가 되어주었던 것 이지연> 안타까운 건 이렇게 금기에 도전하면서도 자기 처지나 신분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 금원의 절친 죽서의 호는 반야당, 반벙어리라는 뜻이고 허난설헌은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란 뜻, 호에서도 조선 여인의 슬픔, 한이 느껴지다니.. 이기환> 그래서 삼호정시사 여인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해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서 우정을 나누자고 남자가 되는 꿈을 꿀 수밖에 없었던, 조선은 김금원 같은 여인이 뜻을 펴고 마음껏 훨훨 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던 거야 다니엘> 그래도 삼호정시사에서 나온 호동서락기는 독일인 신부가 읽을 정도로 널리 읽혔잖아? 삼호정시사도 드러내놓고 활동하진 못했잖아 약간 비밀스럽게 활동했고, 그러니까 책을 내고도 자기들만 돌려 봤을 것 같은데 이게 어떤 루트로 유명해진 거야? 키썸> 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생각나더라고 왜 아이돌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나만 알고 싶은 그런 보석 같은 가수들! 삼호정 언니들도 조선에선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 이지연> 당시에 막 대놓고 읽힌 건 아니었지만 뒤로는 엄청 유명했던 것 같아 지금 전해지는 게 두 권, 필사본이라는데 이게 그만큼 유명했던 증거라던데? 황보라> 맞아요. 사실 금원의 글은 양반들 사이에서 유명했어요, 양반들은 금원이랑 엄청 친해지고 싶어 했어 금원이랑 글을 주고받으면 그게 자랑거리였고, 금원이 호동서락기를 냈다! 하니까 양반들이 이 책을 필사해서 소장하고, 돌려봤대요. 이다지> 맞아! 호동서락기가 이렇게 필사될 정도로 널리 읽혔던 이유 중 하나가 금원은 당대 최고 문학가, 글솜씨가 어찌나 뛰어났는지 별명이 ‘규수 사마자장’ 중국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처럼 문장력과 학식이 매우 뛰어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야 이기환> 양반들은 금원과 친해지는 게 소원이었어 그래서 명망 높은 사대부들과의 교류도 활발했어 특히 김정희도 그녀를 알았는데 금원의 남편 김덕희와 김정희는 6촌 지간, 금원의 글을 보게 된 김정희가 그녀에게 ‘선비’라는 호칭까지 붙여 줄 정도였지 다니엘> 삼호정시사는 조선 판 살롱 같아, 홍경민> 조선의 언니들, 정말 실력도 재능도 대단했지만 호동서락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남편들의 외조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거든? 이기환> 나도 동의! ‘백락일고’라는 말이 있잖아 결국엔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빛을 본다는 것, 다섯 여인들의 만남, 그녀들의 후원자 남편..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사람을 만나서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키썸> 조선 시대 남편의 외조가 웬 말이야~~ 허난설헌은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남편에게 미움 받았고, 이옥봉이라는 여인은 시를 쓴다고 소박맞았다는 이야기만 듣다가 이런 신개념 남편이 있었다는 거~~~ 놀라워! 이다지> 하지만 결국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진 못했어 삼호정시사에 모인 다섯 명의 여성은 모두 자식이 없었다고 해 조선 시대에는 기생 출신의 소실이 아들을 낳으면 노비가 되고 딸을 낳으면 기생이 되는 까닭에 자식을 소원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 MC 한상헌> 규방에 갇혀 지내야 하는 조선의 여인으로서 운명과 금기를 깨트리고, 여행 작가, 시인으로 후대에 기억되기 원했던 조선의 걸 크러쉬! 김금원이 쓴 호동서락기, 숨어 있는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데요. 이제 황보라 씨의 최후 한마디와 함께 호동서락기, 투표를 마감하겠습니다. 황보라> 금원은 자신이 호동서락기를 쓴 이유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금원이 호동서락기를 남겼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금원을 기억하고, 또 그를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금원의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신다면, 스튜디오를 환하게 밝혀주세요!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여러분, 황보라 씨가 소개한 <호동서락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지금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여러분 잠시 집계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고요, 누르신 분들은 혹시 누락됐을지 모르니까 다시 한번 꾹! 하고 버튼을 눌러주세요 이제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불을 꺼주시면 됩니다. 황보라 씨,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MC 한상헌> 아까도 알려드렸지만 마지막 호스트의 보물 역시 마음에 드신다면 또 투표하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보물 만나보시죠! 4. 김수로 - <노근묵란도> 김수로> 그는 조선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때가 어떤 때냐, 차가 있었겠어요? 비행기가 있었겠어요? 태어나면 평생 동네 밖을 벗어날 일이 없던 시기죠. 그런데 그는 팔도유람이 아니라, 세계를 일주합니다. “나는 광명의 세계를 보았다!” 300여 일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청년이 외친 말입니다. 보고도 믿기 힘든 엄청난 세상이었어요. 그야말로 눈이 뜨인 거죠! 그러나 당시 조선은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었어요.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온갖 나라들이 한반도에서 힘겨루기를 하던 때였죠. 세계를 유람한 청년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조선의 변화!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조선이 앞서나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청년의 이름은 민영익. 명성황후의 조카였고요, 열일곱에 과거에 급제해 열아홉에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 엘리트였어요. 제가 오늘 들고나온 그림은 바로 그 청년이 즐겨 그리던 그림입니다. 전 세계 신상 문명을 보고 돌아왔으니 당시로 치면, 조선의 ‘트렌드 세터’였겠죠. 그런데 이 청년이 뭘 그렸느냐? 난 그림! 의외죠? 좀 고루한 것 같단 말이에요. 사실 민영익은 19세기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난 그림’의 대가였어요. 그는 자신의 호를 ‘난개’라고 붙였는데, 무슨 뜻이냐? ‘난초 미치광이’란 뜻입니다. 오늘 들고 나온 그림의 제목은 <노근묵란도> 이슬 ‘노’, 뿌리 ‘근’ 자를 썼고요, ‘묵란’이라는 것은 ‘먹으로 그린 난’을 말하죠. 그런데 그림이 좀 독특해요. 두 무리의 난이 비스듬하게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요, 이게, 난(蘭) 그림에선 찾아보기 힘든 구도에요. 그리고, 이파리를 한번 볼까요? 사실 난(蘭)그림은 일필휘지! 가늘고 길게 쫙! 쫙! 뽑아내야 맛이죠. 그런데 여기 이파리는 좀 거칠어요. 팍팍~하죠. 솔직히 저는 ‘대파’가 생각나더라고요. 난초를 그렸는데 대파를 한 네 단 세워둔 거 같단 느낌이 들어요. 아니, 난을 그렇게 사랑했다더니 뭐 이렇게 그림이 엉망인가 싶죠? 민영익 선생이 원래 이렇게 난을 못 치는 사람이었냐? 아니에요! 민영익이 그린 <노엽풍지도>라는 작품인데요, 난이, 살아 있습니다. 이파리가 ‘툭’ 치면 ‘탁’하고 튕길 듯, 탄력 있죠. 매끄럽고 생기가 넘칩니다. 그리고 꽃망울을 보세요. 캬~ 여기까지 향이 나는 것 같아요. 이 두 작품... 같은 사람이 그린 게 맞는 걸까요?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고종 황제는 강제로 폐위되고, 황후는 일본 자객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500년 조선왕조는 하룻밤 꿈처럼 사라졌죠. 민영익도 이 피바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자주적인 개화를 꿈꾸다 열강의 위협을 받고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 뒤로, 중국 상해와 홍콩을 떠돌며 객지 생활을 했죠.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조국만을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수감되자, 엄청난 재산을 쏟아부어 외국인 변호사를 선임합니다. 망명 중에 자신의 호도 새로 지었는데요, 그 똑같은 이름을 상해에서 머물던 집에도 붙입니다. ‘천심죽재’... 꿈속에서나마 천 번이라도 한양 죽동의 고향 집을 찾아가는 방... 비록 지금은 내가 이역만리 타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태어나 자라온 강산, 살아온 자리, 편히 쉴 수 있는 고향에 다시 돌아갈 거라고 믿고, 또 믿었을 겁니다. 그런데 1910년! 조선왕조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하루아침에 조국을 잃은 그 마음.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민영익은 붓을 듭니다. 붓을 들고 그려낸 그림이 바로 이 <노근묵란도>입니다. 이 그림의 꽃을 보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이 꽃들... 어떻게 보이시나요? 저는 이 꽃들이 울고 있는 것 같아요. 우두커니 서서 뚝뚝~ 눈물을 흘리는 사람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 그림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 바로 이 산발한 머리 같은, 뿌립니다. 땅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 될 뿌리가 어떻습니까?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죠. 왜? 자리 잡을 땅이 없으니까. 그래서 선생은 뿌리내릴 곳이 없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이 그림에 단 한 줌의 흙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심정.. 어땠을까요..? 자신의 뿌리가 통째로 뽑힌 것같이 아팠겠죠. 그래서 그린 겁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이 뿌리 없는 난을 그린 거죠. 그런데! 저는요, 이 그림이 좌절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난’은 어떤 식물입니까, 쉽게 죽죠. 지켜주고 보듬어줘야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는 연약한 존재죠. 그런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난은 어떻습니까? 빽빽하게 선 이파리를 보세요. 철사를 잘라 놓은 것처럼 꼿꼿해요. 매섭고 옹골차죠. 아래쪽 꽃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선으로 쭉~!! 올곧게 서 있어요. 꺾이지 않으리라는 강인함! 한 때 전 세계를 돌고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젊은 청년의 기개와 의연함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이 이파리를 한 번 보세요. 끝없이 뻗어가고 있죠. 종이 밖으로 쭉, 뻗어가는 이 이파리를 그을 때, 그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오늘은 울지만! 내일은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되찾겠다! 내 나라는 명을 다했지만, 나는 스러지지 않겠다! 이제 조선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어제의 세계’가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통탄하고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다시 일어서야만 합니다. 여기, 험난한 세파에 강철처럼 맞선 뿌리 뽑힌 난초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1910년 고향을 잃은 한 청년이 그린 그림, <노근묵란도>입니다 MC 한상헌> 아주 뜻깊은 난 그림을 만나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는데요, 다들 어떻게 보셨나요? 특히 고향 땅을 떠나 사는 다니엘 씨는 어떠셨나요? 다니엘> 저는 저 심정이 이해되더라고요. 제가 어린 시절 자라온 동네의 독특한 공기가 있거든요. 지금은 한국에서 살지만 언젠간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는데, 그 동네가 없어진 거잖아요? 저는 그러면 정말 너무 슬플 것 같아요. 박성광> 그림을 보면 난 그림의 뿌리가 풀어헤치고 산발한 머리 같아 보이는데, 제 경우는 정체성 중에 가장 확고한 게 KBS 공채 개그맨이란 사실이거든요. 행여 KBS 공채 개그맨이 없어진다거나 개콘이 폐지되면 저 그날 저 뿌리처럼 머리 산발합니다! 이지연> 여기 패널분들도 제각기 예능적 장기가 있으신 분들이시잖아요. 만약 민영익 선생님 같은 처지에 처해졌다면 뭘 하셨을 것 같으세요? 키썸> 제 경우에 만약에 우리나라가 없어졌다고 하면, 나는 물 없는 물고기에 관련된 노래 가사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박성광> 저는 아마도 콩트를 짜서, 이 억울함과 울분을 개그로 소화해서 세상을 비판하지 않을까... 홍경민> 저는 그거 생각나더라고요 사운드 오브 뮤직 보면 폰 트랩 대령이 오스트리아가 망하니까, 에델바이스 노래 부르잖아요. 그렇게 국민적인 정서가 담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다니엘> 저도 그럴 거 같아요. 제 취미가 피아노 연주인데요 만약 독일이 사라진다면 여기 한국에서 독일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너무 아픈 마음을 달랠 거 같아요. 홍경민> 그런데 저는 저 그림을 그린 분이 세계 일주 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대체 어떻게 가신 거예요? 김수로> 1880년대에 고종이 ‘보빙사’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파견하는 사절단을 만드는데요, 민영익도 그 중 한 명이었어요. 미국만 갔다가 오는 줄 알았는데,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군함을 타고 세계 일주를 해보자고 하는 거예요. 만일 이런 상황이다, 여러분은 가실 거예요? 키썸> 냉큼 가야죠! 미국 보는 것만 해도 신나는데 세계 일주라니! 홍경민> 아.. 저는 마음은 함께 가고 싶은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바로 저희 부인... 우리 딸내미.. 박성광> 저는 총각이라 마음에 걸리는 사람은 없고 다른 게 마음에 걸립니다. 비쌉니까? 얼마나 들었나요? 김수로> 공짜였습니다. 여행비용 전액을 미 해군 경비로 부담하는 조건으로 세계 유람을 시켜줘요. 갈만한가요? 박성광> 야! 너무 좋다. 바로 가야겠네! 전 갑니다 백퍼 갑니다!! 근데 미국이 왜 조선 사람들 여행을 시켜주는 거예요? 이기환> 미국은 조선의 개화파가 서구 문물을 보고 돌아가 적극적인 개화 정책을 펼치는 게 미국에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 한 거죠. 다니엘> 그럼 독일도 갔나요? 김수로> 안타깝게 못 갔습니다. 배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유럽의 내륙 깊숙한 곳은 못 갔어요. 중간에 또 폭풍우도 만나고 쉽지 않은 여행이었거든요. 다니엘 씨 아쉬워 마시고, 유럽에선 파리와 런던의 박물관을 관람했어요. 이다지> 로마 유적지도 봤구요. 심지어는 이집트도 갔었어요. 이지연> 이집트요? 아니 지금도 가기가 쉽지 않은데 이다지> 이집트까지 갔다니 놀랍죠. 그런데 피라미드 앞에선 사절단들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이다지> 같이 간 미국인들이 피라미드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고, 저 꼭대기 피라미드까지 올라가 보자고 권했는데 사양했다고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유교 문화권의 선비들이니까 피라미드가 무덤이잖아요, 남의 무덤에 들어가는 거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홍경민> 이게 해외여행 다니다 보면, 이 나라가 내 취향이다 좋아지는 나라가 있잖아요? 거의 전 세계를 도셨는데 민영익 선생님은 어디를 가장 좋아하셨나요? 김수로> 민영익 선생님이 방문하신 나라가 미국 유럽 이집트 스리랑카, 싱가포르 홍콩 등 이었는데요. 조선의 트랜드세터 민영익 선생님은 빠리지앵보단 뉴요커 기질이 있으셨나 봐요. 파리보단 뉴욕이 더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더라고요. 키썸> 저는 그림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림을 그린 분의 이야기도 굉장히 재밌었어요.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조선의 트렌드 세터라니.. 굉장한 신세대였을 것 같은데요, 민영익은 어떤 분이셨나요? 김수로> 민영익 이 분은요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였어요. 얼마나 승승장구했겠어요. 과거에 급제하고 만 18세에 조정의 인사권을 잡았고요. 실제로 하루에 세 번씩 입궐해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뵐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이였다고 알려졌습니다. 박성광> 아니 이 정도면 비선실세 아닙니까? 홍경민> 얼굴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가 민영익 선생님 사진을 들고 왔습니다. 키썸> 아니, 신화의 에릭 선배님 닮았는데요. 박성광>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니! 김수로>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민영익 씨 사진을 보면요, 죄다 한쪽 측면이 안 보이게 찍었어요. 정면이 아니라 비스듬히 찍었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이지연> 점이 큰 게 있는 거 아닐까요? 당시 기술론 점 빼는 게 어려웠던 거죠. 창피하니까 모든 사진마다 돌려 찍은 거 아닐까요? 홍경민> 구레나룻 잘못 민 거 아니야? 김수로> 이분이... 오른쪽 귀가 없으세요. 그래서 사진을 이쪽이 안 보이게 찍었어요. 키썸> 아니, 귀가 없다구요? 원래 태어나실 때부터 귀가 없으셨던 건가요? 김수로> 좀 적나라하게 말씀드리면 칼을 맞았어요. 오른쪽 귀를 제대로 베인 거죠. 박성광> 귀를 베었다고요? 아니 17대 1로 싸움이라도 난 건가? 이다지> 지금부터 수험생들도 늘 헛갈려 하는 파트니까 집중해주세요. 조선 말 서양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화파는 크게 둘로 나뉘어요. 지금도 늦었으니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는 급진개화파와 천천히 기틀을 다지면서 개화해야 한다는 온건 개화파죠. 민영익은 온건 개화파였고요. 민영익의 죽동 집에 자주 드나들며 친구로 지냈던 김옥균은 급진개화파였죠. 이기환> 그러다 갑신정변이 일어나죠. 갑신정변이 뭡니까? 급진개화파가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다른 정부부처 사람들을 공격한 거죠. 이 갑신정변 당시 급진개화파의 공격으로 민영익은 오른쪽 귀를 베이고 여러 군데 칼에 찔리면서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이지연> 그러면 민영익은 왜 난을 그린 거예요? 사실 세상에 화초는 널리고 널렸는데 난초는 좀 대접해주는 느낌이 있어요. 키썸> 그러게요. 저도 난초 하면 우리 소속사 사장님이 생각나요. 방에 들어가면 날마다 엄청 정성스럽게 난초를 닦고 계시더라고요. 박성광> 우리 어머니가 진짜 난을 좋아하세요 난초 화분에 물 주느라고 화장실에 가득 채워 놓으면 변기까지 갈 수가 없어요. 급한데 참아야 해요. 솔직히 우리 집에서 저보다 더 대접받는 느낌이에요. 홍경민>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는 안 해도 눈 뜨자마자 난부터 닦아주는 분들도 계셔요. 이다지> 난은 단순한 꽃 그림이 아닙니다. 깊은 숲속, 그윽한 향을 풍기는 고고함 때문에 바로 군자의 정신을 담았다고 알려져 있죠. 그래서 오랜 시간 선비들이 사랑해왔고요. 다니엘> 그럼 민영익 이 분은 어떻게 난 그림의 대가가 된 거예요? 김수로> 민영익 선생은 김정희 선생께 직접 배운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삼촌이 김정희에게 사사 받은 걸 배웠습니다. 민영익 선생의 난초 그림 역시 “운미란”으로 유명했고요. 이다지> 조선 말 김정희 선생님께 직접 난 그림을 배우고 난 그림으로 유명했던 분이 흥선대원군. 대원군의 호를 따서 “석파란”으로 유명했죠. 흥선대원군의 석파란과 민영익의 운미란은 19세기 조선 난 그림의 양대산맥이었어요. 키썸> 전 나라 잃은 심정을 “뿌리 뽑힌 난”으로 그러낸 것도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요? 이기환> 중국 남송 때 송나라를 침략한 원나라에 결사적으로 저항해온 ‘정사초’란 분이 계세요 그런데 이 선비가 나라를 잃고 난 뒤, 뿌리가 없는 난을 그립니다. 이 그림이 <무근란도>인데, 아마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이지연> 그런데 나라 뺏긴 설움이나 애국심을 예술로 승화하는 건 <노근묵란도> 만은 아닐거 같은데, 혹시 서양에 다른 사례는 없나요? 다니엘> 여러분 작곡가 쇼팽(Frédéric Chopin) 아시죠? 쇼팽은 폴란드 출신 작곡가죠. 그런데 쇼팽이 프랑스에 머무를 때, 폴란드가 러시아 대항해 혁명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잔혹한 진압으로 혁명에 실패하죠. 소식을 들은 쇼팽이 자신의 조국과 동포들을 걱정하며 쓴 곡이 “에튀드-혁명(Étude Révolution)이에요. 키썸> 어? 저 TV 프로그램에서 봤어요. 쇼팽이 폴란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쇼팽의 묘에는 폴란드의 흙이 뿌려졌고, 쇼팽의 심장도 폴란드로 보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기환> 민영익을 이런 사람이다 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개화파였다가 친청파였다가 친러파였다가 중간에 동지였던 개화파에 배신당하고.. 그만큼 난세라 당시 시기를 재단하기도,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을 딱 잘라 평가하기도 어렵죠. 다만 그렇게 복잡하고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냈던 인물을 그림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MC 한상헌> 망국의 아픔을 담은, 난초그림. 노근묵란도에 대해 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김수로 씨 최후의 한마디 들어볼까요? 김수로> 저는 이 그림을 보면요, 뿌리 뽑힌 채 놓인 묵란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수로! 너 인마! 나라가 있는 게 당연한 거 같지? 그런데 절대 아니야!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아?” 내 나라가 있다는 거 정말 소중한 일이죠. 오늘 제가 소개한 이 그림, 여러분 노근묵란도에 새겨진 아픔을 꼭들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여러분, 김수로 씨가 소개한 <노근묵란도>가 마음에 드셨다면, 지금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지금 집계 중이니까요, 잠시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이미 누르신 분들이라 하더라도 집계가 안 됐을 수 있으니 다시 한번 눌러주세요 네! 이제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불을 꺼주시면 됩니다. 천상의 컬렉션 호스트 세 분의 무대가 모두 끝났습니다. 자, 이제 이 멋진 보물들을 소개해 준 세 분을 무대 위로 모셔볼까요. 호스트 세 분 나와주세요. 천상의 컬렉션! 이제 결과를 확인하는 시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이 쟁쟁한 세 가지의 보물 중 현장평가단으로부터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은 보물은 무엇일까요? 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OOO씨의 OOOO가 올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등 하신 OOO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쉽게도 이주의 천상의 컬렉션엔 오르지 못했지만 멋진 무대 준비해 주신 두 분의 소감도 들어봐야죠. 준비하는 과정이 어떠셨나요?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패널 분들의 이야기도 안 들어 볼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OOO 씨 오늘 나온 보물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보물이 있으시다면 어떤 보물이었나요?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000의 00000가 선정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내용: 한국 예술 천년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기적처럼 전해진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 그에 얽힌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호스트의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현장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을 매혹시킬 단 하나의 보물을 선정한다. 배우 김수로가 소개하는 '노근묵란도' 배우 황보라가 소개하는 '백자 달 항아리' 가수 이현우가 소개하는 '감은사지 사리장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