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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길 42편 - 근대 역사의 숨결이 서린 곳 강경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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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물줄기의 끝 ‘강경포구’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시대 최대의 시장이 열리던 곳 치열했던 근대 역사가 추억으로 흐르는 논산시 강경포구 ------------------------------------------------------------------------ <근대 역사의 숨결이 서린 곳 – 강경포구> --------------------------------------------------- 강경포구 na/ 100여 년 전까지 이곳은 조선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논산시 ‘강경포구’입니다. 포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옥녀봉’에 올랐는데요. na/ 번성했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당시 강경의 모습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 금강 남쪽 가운데에 하나의 큰 도회지가 되었다” - 택리지 호남 지방에서 나는 갖가지 농산물과 바닷가 해산물은 이곳 금강을 거슬러 올라 강경장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갔습니다. 반대로 내륙의 특산물은 강경 포구를 거쳐 아래 지방으로 퍼져나갔죠. 중국에서 비단과 소금 등을 실은 무역선까지 드나들었던, 화려했던 포구. 그러나 철도개통으로 내륙 교통이 발달하면서 화려했던 시절은 빠르게 저물어갔습니다. 암각해조문(논산시 향토유적 제24호) na/ 옥녀봉 남쪽 암벽에는 그 시절을 말해주는 흔적 하나가 있습니다. 밀물과 썰물의 발생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해 둔 ‘조석표’입니다. 1860년. 강경지역에 살던 송심두라는 사람이 먼 항해를 앞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조석표.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포구를 이용했을 겁니다. 강경의 옛 모습을 말해주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있는데요, 바로 황산포구입니다. 황산포구 등대 na/ 바다도 아닌 강에 서 있는 등대. 1915년, 수많은 어선과 장사꾼들의 야간 운항을 돕기 위해 등대까지 세웠다고 하니, 포구의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 더불어 이곳을 통해 수많은 농산물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역사도 엿볼 수 있죠. 등대는 1987년, 황산대교가 놓이고 배가 끊기면서 철거됐다가 2008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됐습니다. --------------------------------------------------- 4. 구 강경노동조합 옥녀봉에서 시내로 내려오면 1900년대 초반 근대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 강경노동조합 건물(등록문화재 제323호) na/ 대표적인 것이 이곳 ‘강경노동조합’ 건물입니다. 1920년대까지 강경포구를 통해 대부분의 해산물과 수산물이 내륙지방으로 유통되었으니, 포구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노동자들도 그만큼 많았는데요, 1910년대 중반에 780여 명의 노동자들에 의해 ‘강경노동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강경노동조합 신축 기념사진 (1925년) 당시 근대의 물결 속에서 전통 시장과 민족자본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강경 객주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노동조합이었죠. 지금 남아있는 ‘강경노동조합’ 건물은 1925년에 신축된 건물로, 한옥양식과 외래건축양식이 혼합된 2층 건물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 2층이 파손된 후 1953년에 다시 개축한 모습입니다. 강경포구와 시장을 가득 메웠던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가장 뜨거웠던 공간은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 5.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역사관)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등록문화재 324호) 강경노동조합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은 충남지역의 대표적인 근대시기 금융시설입니다. 화려하고 권위적인 건물의 외관. 그에 비해 소박하게 낸 출입문은 보안에 신경 써야 할 은행건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현판으로 사용한 화강석에는 여러 겹의 글씨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데요, 이 건물에 거쳐간 수많은 은행들의 이름이 남긴 흐릿한 흔적입니다. 강경역사관 강경의 근대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내부를 개조하여 2012년 개관하였다. 이후 이 건물은 한동안 젓갈창고로 쓰이다가 최근에 ‘강경역사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지나간 시대와 지나간 삶이 남긴 손때 묻은 물건들이 이제는 진한 추억의 향기로 남아있고, 벽에는 강경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옛 사진들로 장식되었습니다. ----------------------------------------------------------- 6. 옛 강경 거리 --> 근대거리 조선시대 상권을 주도하며 크게 번성했던 강경 읍내. 그 거리는 최근 강경 ’근대거리’로 새롭게 꾸며지고 있습니다. 강경읍 ‘근대거리’ 지금도 당시 상권을 짐작할 수 있는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등록문화재 제10호)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그 시기의 중심에서 호황을 누렸던 약방이었습니다. 일본양식에 한옥양식을 더한 독특한 구조. 지붕 내부 상량문을 보면 1923년에 지은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약방의 2층 창문으로는 활기 넘치는 장터거리가 내려다 보였는데, # 텅 빈 풍경에서 혼잡했던 과거 사진 남사당패, 약장수 등 그 유명한 강경장의 볼거리는 실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100여 년 전. 조선의 가장 번성했던 포구와 시장. 일본의 자원수탈과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 ------------------------------------------------- 8. 다시 강경포구 1990년. 금강 하굿둑이 생긴 이후 뱃길은 완전히 끊어졌지만 저 너머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배들이 실어 날랐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역사의 물결은 멈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삶의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내용
금강 물줄기의 끝 ‘강경포구’는 금강 하굿둑이 생긴 이후 뱃길이 완전히 끊어졌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최대의 시장이 열리던 곳이자, 치열했던 근대 역사 일본의 자원수탈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과 시대가 진한 향수로 남아있다. 강경포구에 서린 근대 역사의 숨결을 따라 여행을 떠나다.
I801:1605002-015-V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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