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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문화유산 - 류형장군 호패 스크랩 소스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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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 중기의 무신인 류형(柳珩, 1566∼1615) 장군이 당상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가 사용했던 상아에 음각한 호패로, 이름 아래에 생년과 함께 ‘갑오무과(甲午武科)’라 하여 급제 사실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유물이다. 원래 호패법은 호구(戶口)의 파악, 유민(流民) 방지, 각종 국역(國役)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해 시행되었다. 이 호패법은 태종 13년(1413)에 처음 실시된 이래 세조 5년(1459), 광해군 2년(1610), 인조 4년(1626), 그리고 숙종 1년(1675)에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인조 대까지의 호패법은 시행 후 얼마 되지 않아 폐지되어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였고, 숙종 대에 이르러야 호패법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이처럼 호패법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지 못한 것은 각종 국역을 부담하는 양인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정부는 각종 국역을 담당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의 하나로서 호패법의 시행을 추진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인구 파악과 군적 제도의 개혁을 통해, 숙종 1년(1675) 오가작통법의 시행과 함께 종이로 만든 신분증명서을 사용하는 지패법이 실시되었다. 지패는 그 후 상아, 뿔, 나무로 만든 호패로 바뀌는 등 몇 가지 변경이 있었지만, 호패법은 조선 후기 내내 지속적으로 유지,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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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801:1610003-002-V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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