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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6시 내고향] 내고향 문화재 19편 오죽헌 스크랩 소스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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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예술과 학문의 산실 강원도 강릉 오죽헌. 명승 제1호 소금강. 소금강은 강 이름이 아니라 작은 금강산이란 뜻이다. 이곳을 찾은 율곡 이이가 마치 금강산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로 붙여준 이름이다. 소금강 이능암 위에는 율곡 이이의 친필이 쓰여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이자 기호학파의 발상지인 보물 제165호 오죽헌.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있어 오죽헌이라고 지어졌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은 1504년 5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외가였다. 시, 그림, 글씨, 자수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던 신사임당. 신사임당의 뛰어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초충병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호)이다. 19살에 이원수와 혼인하는 신사임당. 당시 존재했던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와서 사는 서옥제도, 남귀여가의 풍습으로 결혼 후에도 20여 년을 오죽헌에서 살면서 7남매를 낳아 기른다. 그중 다섯째가 율곡 이이. 몽룡실은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은 방이다. 조선 시대의 유학자이자 정치가 율곡 이이 (1536~1584). 13세에 진사 초시 장원급제. 9번의 장원급제를 이뤄내 구도장원공이라 불리기도 했다. 성군이었던 중국 주나라의 문왕. 이를 길러낸 어머니 태임을 본받겠다는 뜻의 ‘사임당’. 자녀 교육에 있어서 또 남다른 포부가 있었던 신사임당. “나는 학문의 모든 기초를 나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율곡 이이<선비행장> 율곡 이이가 후학의 교육을 위해 저술한 책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 (보물 제602호). 1788년 강원도 김재찬을 통해서 정조임금의 어명으로 지어진 집 어제각. 천연기념물 제484호 강릉 오죽헌 율곡매. 역사에 길이 남을 두 인물을 탄생시킨 오죽헌. 이곳에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숨결이 진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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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801:1502004-002-V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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