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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주 출토 동종(驪州 出土 銅鍾, 보물 제1166호)
글/사진 이영일 등록일 2018-12-10
여주 출토 동종(驪州 出土 銅鍾, 보물 제1166호)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한 고려시대 범종(梵鐘)이다. ‘청년4년’명 동종(‘淸寧四年’銘 銅鍾), 여주출토청녕4년명동종으로도 불린다. 이 명문(銘文)에서 보이는 청령(淸寧)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며「청령사년무술(淸寧四年戊戌)」은 고려 문종 12년(1058)에 해당되며 이때 주조(鑄造)한 년대(年代)가 확실하다.
동종(銅鍾)은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크기는 길이 84㎝, 입지름 55㎝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龍鈕)는 입안에 커다란 여의주를 물고 머리 위에 쌍각(雙角)이 달려 있는 한마리의 용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소리의 울림을 돕는 용통(甬筒)은 6단의 마디로 구획하였고, 용통의 각 부분마다 덩굴무늬[寶相唐草文]를 양각하였다.
종의 상단과 하단, 9개의 돌출된 모양의 연뢰(蓮蕾)를 둘러싼 사각형의 연곽(蓮廓)에는 가늘게 연이은 구슬 모양의 띠를 돌리고, 그 내부에 모란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연곽내의 연뢰는 꽃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종의 어깨[종견(鐘肩)] 부분에는 운형(雲形)의 입상화문(笠狀花文)을 장식하였고, 상하대(上下帶)와 유곽대(乳廓帶)에는 보상당초문이 유려하게 양각되었으며 그 양가에는 연주문(連珠文)을 둘러 장식하였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乳頭)가 안치되었는데, 복판연화(複瓣蓮花)로 된 유좌(乳座) 가운데에 납작한 유두가 자방(子房)으로 표현되었다.
종의 몸체에는 4개소의 유곽 밑에 각기 1구(軀)씩 비천상(飛天像)을 작게 배치하여 주위 여백을 많이 남기고 있다. 비천상의 2구는 보관(寶冠)을 쓴 보살상이고, 2구는 여래상인데 각기 서로 대칭적으로 마주 대하고 있다. 비천상은 유운상(流雲上)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였으며 머리와 몸체에는 둥근 두신광(頭身光)이 표현되었고, 또 기다란 구름 꼬리가 등 뒤로 뻗어오르고 있다. 이 비천상과 교차되는 네 곳에 당좌(撞座)가 배치되었는데, 당좌는 자방이 있는 중판(重瓣) 16엽 연화로서 둘레에 연주문이 장식되었다. 종 몸체에는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聖居山 天興寺銘 銅鍾, 국보 제280호)의 비천상(飛天像)과 달리 불상과 보살상(菩薩像)을 번갈아가며 부조(浮彫)하였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역시 종 몸체에 불 보살상과 교대로 4곳에 배치하였다.
동종 정상부의 용뉴龍鈕는 ‘S'자형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입 안에 구슬을 물고 있으며, 힘찬 굴곡을 이루는 목은 갈기와 비늘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대롱 모양의 음통音筒은 6단으로 나누어져 각 단마다 연당초무늬[蓮唐草文]가 장식되었다. 상대上帶의 무늬 띠 위로 구름 또는 당초무늬처럼 장식된 띠가 위로 솟아있다. 네 개의 연곽대蓮廓帶는 상 · 하대와 동일한 무늬를 넣었으며, 그 안에는 얕게 돌출된 아홉 개의 봉오리가 있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었다. 연곽 바로 아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불상과 보살상 4구를 번갈아가며 배치하였다. 하대에는 네모난 위패位牌형 테두리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 글자 가운데 ‘청녕淸寧 사년四年’은 1058년(고려 문종 12)에 해당된다. 이 동종은 하대 바로 위에 당좌 撞座가 배치되었고, 상대 위쪽에 솟아 있는 장식대 등을 통해 고려 전기의 과도기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양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종 몸체에 하대 윗부분 한쪽에 구획을 만들어 제작 연대(年代)와 중량(重量)을 알 수 있는 명문(銘文)을 음각(陰刻)하였는데,「특위(特爲) 성수천장지원주(聖壽天長之願鑄) 성김종일구중일백(成金鐘一口重一百) 오십근(五十斤) 청령사년무술오월(淸寧四年戊戌五月) 일기(日記)」고려 문종 12년(1058)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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