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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덕수궁 함녕전(德壽宮 咸寧殿, 보물 제820호)
글/사진 이영일 등록일 2018-11-22
덕수궁 함녕전(德壽宮 咸寧殿, 보물 제820호)은 ‘모두가 평안하다’는 뜻을 가진 전각으로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황제의 생활공간(寢殿)이다. 광무 1년(1897)에 지었는데 광무 8년(1904) 수리공사 중에 화재로 불타, 지금 있는 건물은 그해 12월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68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는 것은 명성황후가 승하한 뒤, 고종이 다시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각(殿閣)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서쪽 뒤로 4칸을 덧붙여 평면이 ㄱ자형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인데 위쪽에 여러 가지 조각을 장식해 놓고 있다. 더욱이 지붕 모서리 부분에 조각들[雜像]을 나열한 점은 침전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특이한 구성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간결하게 장식한 익공 양식이며 구름과 덩굴문양으로 꾸몄다. 건물의 천장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고, 네면 모든 칸에 벽을 두르지 않고 창을 달아 놓았다.

함녕전(咸寧殿)은 조선 후기 마지막 왕실 침전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백범 김구(白凡 金九)의 목숨을 살린 함녕전 대청전화(大廳電話): 1897년에는 고종의 침전과 정부 각 부처를 연결하는 전화가 설치되었다. 함녕전의 대청마루에 전화가 설치되자 고종은 필요할 때마다 대신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전화를 ‘대청전화(大廳電話)’라고 했는데 대청전화 덕분에 김구가 사형(死刑) 직전에 목숨을 건진 일화가 ‘백범일지(白凡日誌)’에 실려 있다. 고종이 김구의 사형집행 서류를 검토 중 형집행 직전에 전화로 사형집행정지(死刑執行停止) 명령(命令)을 내려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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