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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感恩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글/사진 이영일 등록일 2017-12-30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感恩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국보 제112호)은 감은사터(感恩寺址)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 신라(新羅)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은 감은사는 호국사찰로 탑도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친다.
동서(東西)로 마주 서 있는 이 탑은 신라(新羅) 신문왕(神文王) 2년(682)에 세워진 석탑이다. 화강암(花崗岩)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세워진 방형(方形) 중층(重層)의 이 탑은 동서 양탑(兩塔)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하층기단(下層基壇)은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을 같은 돌로 각각 12매의 석재(石材)로 구성하였다. 상층기단(上層基壇)은 면석을 12매로, 갑석(甲石)은 8매로 구성하였다. 탱주(撑柱)는 하층기단에 3주(柱), 상층기단에 2주를 세웠다. 초층옥신(初層屋身)은 각 우주(隅柱)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은 각면이 한 돌, 3층은 전체가 한돌로 되었다. 옥개석(屋蓋石)은 받침돌로 별석(別石)으로 각층 4매씩의 돌로 되었다. 그리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마다 5단의 층급(層級)으로 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양탑 모두 노반(露盤)과 높이 3.3m의 철제(鐵製) 찰주(擦柱)가 남아 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神文王)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西三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366호)가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목조가구(木造架構 )를 모방한 형적(形蹟)을 보이며 옥개석 받침을 층단식(層段式)으로 한 수법은 전탑(塼塔)의 전단계(前段階) 모습을 추정케 한다. 기단을 이중으로 하는 형식은 새로운 형식으로 이와 같은 양식은 이후로 한국 석탑의 규범(規範)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또한 1960년 서탑을 해체 보수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 설치하였던 매우 정교하고 귀중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었다. 탑의 전체높이는 13.4m이다.
경주 감은사지(慶州 感恩寺址, 사적 제31호)는 동해안에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보물 소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28,846㎡)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이태열, 울산광역시북구 향토문화연구소장, 이화찬 울산광역시북구 문화원 회원)
*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東三層石塔 舍利莊嚴具):
http://cafe.daum.net/201s/AYJ5/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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