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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주 서출지(慶州 書出池, 사적 제138호)
글/사진 이영일 등록일 2017-11-01
경주 서출지(慶州 書出池, 사적 제138호, 경북 경주시 남산1길 17 (남산동))는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이다.
남산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炤智王, 재위 479-500)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 갑(射琴匣)을 쏘시오”라고 쓴 편지를 바쳤다. 이에 왕이 궁으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 몰래 숨어 있던 궁주(宮主)와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궁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 이 못에서 글이 나왔다하여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또한 경주 지역에서도 정월 보름날 아이들이 감나무 밑에다 찰밥을 묻어주는 ‘까마귀 밥주자’라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任勣)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지은 이요당(二樂堂)이라는 소박하고 소박한 아름다운 정자를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이태열, 울산광역시북구 향토문화연구소장, 이화찬 울산광역시북구 문화원 회원)
▒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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