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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이야기-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박찬수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목조각장

목조각은 목재를 소재로 각종 기물을 조각하는 장인을 말한다. 나무는 재료적 특징으로 조각대상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특히 오동나무, 소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는 결이 아름답고 견실하여 많이 사용되어 왔다. 조각물로 나무가 활용된 것은 선사시대부터일 것이나 결정적인 약점인 보존의 취약성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예가 드물 수밖에 없다. 다만 ‘농경문청동기’, ‘다뉴세문동경’, ‘울주 반구대 암각화’ 등에 선각된 그림을 통해서 목조각물의 존재를 추측할 따름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이른 시기의 나무 조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의창 다호리 유적 출토 ‘칠기칼집’을 비롯한 여러 점의 칠기류와 광주 신창리 출토 ‘악기편’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불교가 전해지면서 사찰건축과 불상 등 불교의식과 관련된 목조각들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 분실되어 전하는 것은 많지 않다. 목조각은 목재를 깎고 다듬어 유용하게 쓰려는 데서 비롯된 오랜 전통을 가진 기술로서,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민간의 크고 작은 세간뿐 아니라 『경국대전』 경공장조에도 조각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궁중과 관청 등 국가적 차원에서 목조각의 기능이 요긴하게 쓰였음을 뒷받침해 준다. 목조각장 기능보유자 박찬수 선생은 이 가운데서 특히 목조불상의 제작 기능을 특장으로 하고 있다. 삼국시대 이래 신앙은 물론 통치 이념으로 기념하면서 오늘날까지 뚜렷한 정신문화의 줄기를 이루어온 불교는 기술과 조형 활동의 측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장엄과 예배 대상으로서 불교 목공예와 불상 조각은 전통 시대 입체 미술의 영역을 주도해 온 빼어난 기술 문화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죽은 나무에 싹을 띄우는 불교 목조각의 선구자 목아(木芽) 박찬수 선생

평생을 나무 조각에 매진해 온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기능보유자인 박찬수 선생은 경남 산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배고팠던 시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 목조각이었다. 목조각가 김성수 선생의 공방에서 1년 6개월 동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무 깎는 일을 시작하였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박찬수 선생의 재능을 알아본 당시 미술 교사였던 조소과 출신의 이운식(조각가, 강원대 명예교수)선생으로부터 목조, 석조, 브론즈 등 조각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운식 선생이 다른 학교로 전근하자 전학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각에 대한 열정을 쉬지 않던 박찬수 선생은 1974년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일본에서 불상을 만드는 가토 선생으로부터 불교 불상 등 불교 미술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일본에 있으면서 전통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본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비교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대 문화와 조각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선생은 전통문화재 복원수리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1985년 문화재수리 기증 보유자(조각 제772호)로 지정받게 된다. 하지만 목조각 분야에 대한 맥이 끊긴 상태에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수많은 사찰과 문헌,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한국 불교 목조각의 전통을 잇기 위한 외롭고 고달픈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러 어려움을 겪은 끝에 1989년 전승공예대전에 ‘법상’을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통도사 대웅전에 있는 팔각형의 법상을 기본으로 하여 많은 문헌과 스님들의 증언을 토대로 3년 동안 공력을 들여 완성되었다. 법상이란 스님이 대중 앞에서 설법을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고려시대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선생이 재현해 낸 것이다. 고려시대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은 법상을 두 세 번 치며 “천 가지 만 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잊혀져 가는 우리 전통 문화의 한 줄기인 목공예 및 불교 목조각의 전승을 위해 1993년 자신의 호를 딴 목아박물관을 경기도 여주에 설립하였고,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1996년 목조각자로서는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박찬수 선생의 작품활동은 대략 3시기로 구분된다. 1960년대까지는 조각에 입문하여 전 분야의 기능을 전수받는 수련기로 조각가 김성수 선생으로부터 전통 조각, 신상균 선생으로부터 불교조각, 강원대학교 이운식 교수로부터 현대 조각의 지도를 받아 장인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미술의 기초로 할 수 있는 데생을 비롯하여 목조, 석조, 소조, 브론즈 등 다양한 장르의 조각을 접하고 익히는 시기였다. 1970~80년대는 목조 문화재에 대한 연구와 재현에 몰두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조각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시기였다. 자칫 장인으로서는 소홀하기 쉬운 전통문화에 대한 학문적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창작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불교학자인 고 이기영 선생으로부터 불교미술의 사상을 배워 작가 정신과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때부터 선생은 목조각을 전문분야로 정하여 매진하여 왔다. 1990년대에는 새로운 전통형식의 개발과 보급에 전력을 기울였다. 1980년대 말부터 시도된 동자상(童子像)의 현대화와 장승의 보급이라고 하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목조각으로 표현한 일련의 동자상 작품들과 마을 수호신으로서의 장승을 표현한 ‘부처가 되고 싶은 나무’는 전통의 목조각을 현대적 감성으로 조형화함으로써 전통의 창의적 계승의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박찬수 선생의 작업은 나무의 재료적 특성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나무에 대한 남다른 인식은 조각의 부위별 쓰임새에 대한 독특한 적용을 통해 확인된다. 뿌리 부분을불상의 머리로 하고 각 부위 마다의 두께를 다르게 조절하는 등 나무의 성질과 상태를 고려하여 적용함으로써 균열을 방지하고 예배 대상으로서의 불교조각의 의의를 강조하여 왔다. 또한 수종에 따른 성질을 고려하여 작품의 주제에 합당한 나무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목조 기술만이 담당할 수 있는 불교 장엄 목공예 분야에 치중하면서 전통적인 목조 기술의 복원과 재현에 더욱 충실하는 한편 후배 작가의 양성에도 이에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작품으로 잘 건조한 백송을 사용했으며, 겉목 작업 후 작품의 속 안을 파내서 갈라지는 것을 방지했다.


행복 : 결이 고운 비자나무를 직사각형으로 재단하여 행복한 얼굴을 조각하였다.
화합 : 소나무 껍질을 벗긴 후 곱게 원형으로 다듬어서 팽이 모양으로 조각한 후 인간의 얼굴을 조각하여 인간이 화합해야 함을 조각으로 표현하였다.








제작과정

1) 나무의 선택과 채취
묵은 나무일수록 건조하면 수지는 많아지고, 대패질이 힘들 정도로 단단해지지만 어린 나무는 건조한 것이라도 대패질이 잘 먹을 만큼 여리다. 그렇지만 수심에 가까운 부분이 반드시 조각이나 공에품 제작에 적당한 부분일 수는 없다.

2) 건조와 자르기
나무의 가장 큰 단점은 갈라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벌채 후 2~3년 자연 건조를 시킨다. 이후 조각을 하기 위한 본격적인 제재에 들어간다.

3) 밑그림 그리기
재가 끝난 목재 위에 조각하려는 상(像)의 밑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조각에 들어가기 전 옹이를 피하고 나무결이 상의 원하는 부위에 위치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4) 걷목
접목시킨 재목을 우선 크게 쳐내는 작업을 걷목이라 한다. 걷목작업은 공정이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조각상의 전체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므로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조각가의 손이 필요한 부분이다.

5) 조각
걷목과 접목이 끝난 상태에서 실제 조각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 조각과정도 크게 다듬는 부분과 세부를 다듬는 부분의 두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때는 앞서의 자귀나 큰 칼보다는 더 다양하고 예리한 조각용의 칼들이 사용된다.

6) 배접
옻칠이 제대로 먹히도록 하기 위해 바탕을 만드는 작업이다. 배접이 끝난 상태에서 어교와 아교를 혼합하여 배접을 정착시켜야 한다. 배접을 완전히 정착시켜야 하는 것은 나무의 성질상 배접이 딱딱하게 경화된 이후 나무표면과 배접 사이에 공간이 생길 수도 있고 이 때문에 금박이 벗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채색
조각이 끝난 불상은 접착이 완전히 끝나고 나무결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일정 기간을 지나 채색작업을 하게 된다. 천연안료를 아교나 어교에 타서 사용하는데 작업기간이 길고 색을 구하기 쉽지 않지만 변색이 없고 채색 수명이 오래가는 이점이 있다. 또한 작업이 완전히 끝난 후 불상 전체에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을 발라 채색 변질을 예방하고 발색을 좋게 한다. 불상의 채색에 들어가는 색은 의외로 많지 않다. 불교회화나 단청의 색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색의 조합으로 적절한 색상이 만들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천연안료에 아주 연하게 탄 아교를 타서 쓰는데 이미 불상의 굴곡이나 윤곽은 조각을 통해서 완성된 것이므로 채색시에는 적절한 농도를 섞어 쓰면서 강약을 주도록 하여야 한다.

8) 밀랍
일종의 채색방법이다. 조각이 끝난 후 채색이나 개금법 대신 끓는 밀랍에 불상을 담갔다가 꺼내는 방법이다. 밀랍성분이 나무의 세포 사이로 스며들어 견고해지고, 나무의 수지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나무결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9) 옻칠개금
칠(漆)은 옻나무의 수액에 착색제·건조제 등을 섞은 유성도료로 옻칠이라고도 한다. 개금을 하기 위해서는 배접 후 호분을 바른다. 이후 7회에서 12회 정도의 옻칠을 하는데 피막형성을 통해 상(像)의 내구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금박과 금가루를 붙여주는 접착제 역할도 한다.




약력
1949년 출생
1961년 김성수 선생, 이윤식 선생 사사
1973년 신상균 선생, 가또오 선생 불교목조각 사사
1982년 제1회 단원예술제 종합대상 수상
1987년 백만불수출탑 수상 (대통령상)
1989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1993년 목아박물관장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기능보유자 인정
2000년 한국박물관협회 이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200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수상
2002년 대한민국 만해 예술상 수상
월드컵 전야제 목어 설치
2003년 포천중문의과대학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목아전통예술학교 설립
일본 나고야 야외 민속박물관 <목아 박찬수 특별전>
불교미술 40년 회고와 전망전 개인전 및 기념 세미나
2004년 허준동상 제작
2010년 주영 한국문화원 초청 특별전시

* 사진 : 서헌강(문화재전문사진작가)


작성자 : 이치헌 | 등록일 : 2018-11-15 | 조회수 :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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