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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화재] 공방 순례 - 장인의 공방과 도구 '화각장 이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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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공방과 도구
 
굽은 재목을 재기 위해 곧은 자를 구부리랴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角匠) 이재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공구가 개발되고 이에 따른 최첨단 기술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도구와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명장(名匠)’이라 불릴 만한 장인은 예전처럼 많이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도구는 장인의 몸이자 혼이다. 명장의 탄생은 결국 편리하고 예리한 도구가 아니라 그를 다루는 사람의 정신에 달려있다. 그리고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오늘도 묵묵히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는 장인의 공방과 도구들을 만나본다.

화각장 이재만

화각장 이재만.
이재만 장인은 두 손이 온전치 못하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큰 단점을 커다란 장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사라질 뻔 했던 화각공예의 명맥을 오늘에까지 잇고 있다.


이재만 장인은 두 손이 온전치 못하다. 한 살이 조금 지났을 무렵 넘어지면서 두 손으로 화롯불을 잘못 짚어 큰 화상을 입은 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열 손가락 가운데 온전한 손가락이 몇 남지 않았다. 상당수의 손가락이 끝마디 또는 둘째 마디까지 손실되었으니 손끝으로 먹고 살아야 할 장인으로서는 치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유달리 여러 기능을 필요로 하는 화각장이 되고, 기어이 문화재의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그 안에 담긴 땀과 눈물을 능히 짐작케 한다.

하지만 장인은 “너무 어려서 입은 장애이기에 장애 자체가 처음부터 바탕이었다”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런 콤플렉스로 인해 정교한 작업에 더 집중을 하고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라질 뻔 했던 화각공예의 명맥을 오늘에까지 이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정신자세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망가진 손가락으로도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미술실기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거기에는 ‘유전의 법칙’이 작용했다. 그의 조부는 단청장이었고, 그가 세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대목장이었으며, 어머니는 자수를 빼어나게 놓았다.


화각장 도구

화각장에 사용되는 도구들.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공예품”이라는 장인의 말처럼 화각장에 사용되는 도구들은 다양하다. ‘굽은 재목을 재기 위해 곧은 자를 구부리랴’ 했거늘 쓸모에 따라 일부러 구부려 놓은 쇠자가 눈길을 끈다.


만화가를 꿈꾸던 소년은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스승 음일천(1908~1973)을 만나 화각의 길로 들어선다. 음일천은 조선시대 고종 때부터 3대째 쇠뿔을 다듬는 각질장(角質匠)이자 거북 등딱지에 채색을 하는 대모공예(玳瑁工藝) 장인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 하숙을 시작하며 일을 배웠다. 말이 하숙이지 식모나 다름 없었다. 밥하고 빨래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했다. 그때만 해도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화각을 해서 먹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스승은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품을 만들어 놓고도 누가 깎아달라고 하면 그냥 주곤 할 정도였다. 그래도 묵묵히 스승이 돌아가실 때까지 10여년을 모셨다. 스승은 젊은 시절을 고생으로만 보낸 제자가 안쓰러웠는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기셨다.

“이것만큼은 버리지 말아라. 세월이 흐르면 이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게다.”

화각공예는 쇠뿔을 종잇장처럼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뒷면에 색채로 그림을 그려 비쳐 보이게 한 후, 목재로 된 기물 표면에 접착제로 붙여 치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기술은 원래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있었던 대모복채(玳瑁伏彩) 장식기술에서 기인한다. 대모(거북이의 일종)의 등딱지를 얇게 갈아 그림을 그린 후 목공예품의 표면에 붙여 치장하는 당대의 기술이 당(唐)과 교역이 많던 통일신라로 이입되었고, 고려시대 중기 이전까지 성행했으나 수입품인 대모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로 점차 쇠퇴하게 되고, 이후 대모가 쇠뿔로 대체되어 조선시대에 화각공예가 성행하게 된다.


화각장 이재만 화각보석함

화각보석함.
화각공예는 쇠뿔을 종잇장처럼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뒷면에 색채로 그림을 그려 비쳐 보이게 한 후 목재로 된 기물의 표면에 접착제로 붙여 치장하는 것을 말한다.


화각공예는 크게 네 가지 공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쇠뿔과 뼈를 가공하는 골각작업과 목재로 만드는 기물바탕, 즉 백골을 만들기 위한 목공작업, 각지에 그림을 그려 넣고 백골 표면에 그것을 붙이며 각지가 붙지 않는 여백 부분에 옻칠을 하는 채화 및 옻칠작업, 경첩·들쇠 등 금속장식을 만들기 위한 장석 제작 공정 등이다.

주된 재료는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한 각지(角紙)를 만들기 위한 재료인 쇠뿔과, 각지를 이어붙인 경계선 부분에 박는 계선재인 쇠뼈, 이들을 기물의 본바탕인 백골에 부착하기 위한 접착제인 부레풀, 무늬의 채색을 위한 채료(彩料), 각지를 붙이지 않는 백골 부분에 칠하는 도장재인 옻, 그리고 각지와 옻칠된 표면에 윤을 내는 광택제로 나뉜다.

이처럼 복잡한 제작공정과 다양한 재료에 따라 사용되는 도구도 종류가 많고 다채롭다. 뿔과 뼈를 자르거나 켜는데 사용하는 틀톱, 실톱, 계선톱, 과기와 갈기칼부터 이를 백골에 부착하기 위한 조각도, 가위, 평줄과 벌줄 및 금환, 인두와 다리미, 압착기와 누름쇠판 및 누름쇠, 황새집게, 뿔방망이틀, 풍로와 석쇠 및 풍구, 작두, 기타 제도 용구 등이 사용된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라인(수정)
월간 문화재  2018. 08+09. 제389호
<공방 순례>

글. 사진. 유성문. 여행작가

 

작성자 : 김태영 | 등록일 : 2019-08-28 | 조회수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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