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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화재] 문학택리지 - 윤동주 시의 산실, 연세대학교와 누상동 하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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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의 산실,
연세대학교와 누상동 하숙집


올해(2017년)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동경과 경도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독립운동 죄목으로 체포되어 차가운 감옥에서 1945년 2월 16일 젊은 날을 마감하였다. 27년 1개월 남짓의 짧은 인생을 살다간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삶의 전성기를 열었던 그때 그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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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모를 쓴 윤동주 시인. 윤동주는 1938년부터 4년간 연희전문학교를 다녔다. 이때가 그의 시와 삶의 정점을 누렸던 시기다. 이미지 출처: 윤동주 문학관


북간도 시인 윤동주

윤동주가 나고 자란 북간도는 우리 현대사에서 수난과 저항의 이미지를 동시에 거느린 채 존재한다. 대부분의 우리 작가들이 두만강을 건너가 북간도에서 생활을 한 데 비해,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태어나 자란 생래적 이력을 가지고 있다. 파평 윤 씨 집안 증조부 윤재옥이 북간도로 이주했을 때는 우리 민족의 이주 초창기였는데, 그 초기 이주 세력 가운데 하나인 윤하현 장로의 외아들 윤영석과 ‘동만東滿의 대통령’이라 불렸던 김약연의 누이 김용 사이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그 점에서 천상의 ‘북간도 시인’이었다. 그의 영혼 안쪽에는 일송정과 해란강으로 상징되는 북간도 풍경이 깊이 담겨 있었는데, 그만큼 북간도는 윤동주를 낳고 길러낸, 양도할 수 없는 우리의 땅이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윤동주는 지금의 중국 땅에서 태어나 지금의 북한숭실중학과 남한연희전문에서 공부하고 일본릿쿄대학, 도시샤대학에서 유학 중에 죽음을 맞음으로써,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공간 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한중일韓中日에 모두 시비가 세워진 유일한 시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윤동주를 통해 ‘북간도-평양-서울-일본’이라는 공간 확장의 기억 단위를 가질 수 있고, 윤동주의 현재성은 이러한 동아시아적 공간 확장성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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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하숙집이 있던 서촌. 서촌이란 경복궁 서쪽부터 인왕산 동쪽 사이에 위치한 마을을 말한다. 서촌에 들어서면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근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 박노수 가옥,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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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윤동주 시비.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진 시비. 뒤쪽 건물은 윤동주기념실이 위치한 핀슨관이다.


연희전문학교와 누상동 하숙집

윤동주는 이처럼 북간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소학교를 다닌 것을 시작으로 끝까지 학생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학교라는 표상이 매우 중요한 창작적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그가 시와 삶의 정점을 누렸던 시기는 단연 1938년부터 4년간의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일 것이다. 연희전문학교는 해방 후 연희대학교로 개칭하였다가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하여 지금의 연세대학교가 되었다.

지금도 연세대학교 교정과 주변에는 윤동주의 학창 시절 흔적을 여럿 확인할 수 있는데, 1968년 세운 연세대학교 교정의 윤동주 시비는 그 가운데 윤동주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성소聖所로서의 의미를 띤다. 윤동주가 입학했을 때는 원한경 교장이 재직하고 있었고, 유억겸, 손진태, 이양하, 김선기, 최현배 등의 교수진과 김삼불, 강처중, 송몽규, 허웅, 유영 등의 친우들이 있었다. 여기서 윤동주는 데카르트, 릴케, 발레리 등 서구 철학자나 시인들에 몰입했고, 자신의 명편들을 하나 하나 써간다.


입학 후 첫 작품이 된 <새로운 길>에는 연희전문 학생이 된 그의 포부가 선연하게 나타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새로운 길>

이 작품의 세목들은 북간도에서 막 서울에 온 스무 살 청년의 시선에 들어온 연희전문과 그 근처 풍경일 것이다. 이렇게 윤동주의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길’은 연세대학교와 그곳 풍경에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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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언덕. 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 인근에 조성된 시인의 언덕에는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그러다가 윤동주는 3학년 때 학교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 선생 집에서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했다. 정병욱은 다섯 살 터울의 2년 후배였는데, 나중에 윤동주 유고시집을 보관하였다가 일반에 알린 인물이다. 그 하숙집은 지금 서촌이라 불리는 지역에 터만 남아 있다. 윤동주는 이곳에 1940년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남짓 살면서 가끔 인왕산에 올라 사색을 하곤 했는데, 지금 그곳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다. 언덕 바로 아래에는 윤동주문학관이 서 있는데,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만든 독특한 문학관이다. 특히 그는 이 시기에 <별 헤는 밤> 같은 주옥편을 구상했으리라. 윤동주는 졸업반이던 1941년 1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고 스스로 제목을 붙인 친필 시집 책자에 19편의 시를 남겼고, 이는 결국 해방 후에 세상 빛을 보게 되는 유고시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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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야경. 윤동주 문학관 별뜨락까페에서 바로본 서울 야경. 이미지 출처: 윤동주 문학관


언덕에서 별을 헤다

우리 현대시사에서 단연 빛을 발하는 다음 두 명편을 함께 읽어보면, 후대 시인이 선행 시편에서 취한 가없는 신뢰와 계승의 흔적이 자못 선연함을 알게 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쓰・잠’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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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가 있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윤동주 문학관. 3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존재자들을 일일이 호명 하는 두 시인의 목소리는 매우 닮아 있다. <흰 바람벽이 있어>는 1941년 4월 <문장>에 실렸는데, 이 시편을 접한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반이었던 그해 말에 백석의 호명 방법과 세목을 충실히 계승하고 변형한 <별 헤는 밤>을 써서 친필 시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맨 마지막 순서에 넣었다.

비유하자면 <흰 바람벽이 있어>는 골방에서 미리 씌어진 <별헤는 밤>이요, <별 헤는 밤>은 언덕에서 이어 씌어진 <흰 바람벽이 있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별을 헨 이곳이 바로 하숙집 근처 인왕산 언덕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윤동주가 백석 시집 <사슴>1936을 구하지 못해 일일이 필사하고 또 특정 구절에 감상까지 써두었다는 증언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백석이 호명한 대상이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였다면, 윤동주는 그것의 이형동체異形同體들인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를 정성껏 불렀다. 서양시인 두 사람을 함께 나열하는 장면이나, 백석이 어머니와 여인을 생각하듯 윤동주가 어머니, 아이들, 소녀들, 계집애들의 이름을 연쇄적으로 부르는 모습도 퍽 닮았다.

그렇다고 <별 헤는 밤>이 <흰 바람벽이 있어>의 모작이나 아류작이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윤동주는 선행 시편에서 받은 자극을 창의적으로 변형하여 더없이 아름다운 시편을 써냄으로써, 전통의 창의적 계승 사례가 되기에 족한 사례로 남았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와 누상동 하숙집에서 이루어진 한국 현대시의 한 진경進境이었던 셈이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라인
월간 문화재  2017. 08+09. 제383호
<문학택리지>

글.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작성자 : 김태영 | 등록일 : 2019-06-26 | 조회수 :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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