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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여행스케치-전라권] 조선왕조의 풍패지향(豊沛之館) 전주

[문화유산 여행스케치-전라권] 조선왕조의 풍패지향(豊沛之館) 전주



 

풍패지향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풍패(豊沛)는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고향으로 왕조의 고향을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배낭여행자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론리플래닛에 전주한옥마을이
‘아시아에서 가봐야 할 곳 10선’ 가운데 3위로 선정되었다.
경기전(사적 제339호), 오목대와 이목대(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전주향교(사적 제379호), 풍남문(보물  제308호) 등
전통의 흐름이 대하(大河)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전주한옥마을을 찾아본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 전주, 전통은 진행형이다



전주의 핵심 여행지로 손꼽히는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부성 내에 자리한다. 전주부는 태종3년인 1403년부터 1949년 해방이후까지 전주시의 옛 행정명칭이다. 당시에는 지금의 전라남북도와 제주도까지 관할하던 전라감영이 설치되었으며 한양, 평양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도시였다.

1908년 일제가 호남 곡창의 쌀을 더 용이하게 수탈할 목적으로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를 놓으면서 전주부성이 허물어졌다. 이때를 틈타 전주부성 패서문(서쪽문) 밖에 살던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진출하였는데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 한옥과 일본가옥의 대립구도가 벌어진 셈이다.


풍남문

△ 보물 제308호, ‘풍패지향의 남문’이라는 뜻으로 풍남문이라 부른다.



전주부성에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풍남문뿐이다. 현재의 풍남문(보물 제308호,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1)은 고려 공양왕(1388)때 지어졌다가 영조 43년(1767)대화재로 불탔던 것을 재건하면서 ‘풍패지향의 남문’이라는 뜻으로 풍남문이라 하였다.

전주는 역사도시다. 한옥, 한지, 한식, 부채, 판소리 등 전통문화가 준령(峻嶺)의 구비처럼 엮여있다. 그런데 전주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역사도시 전주는 서울 강남스타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괴나리봇짐 진 과객이 다녀야 할 한옥 골목길 역시 평균연령 20대의 젊은이가 활보하는 청춘의 거리로 바뀌었다.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한옥마을을 상상했다면 절대 오산이다. 싱싱한 활어처럼 혈기 넘치는 청춘들이 전주를 누빈다. 그들은 잠들어 있던 옛 도시 전주를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들였다.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곧게 뻗은 태조로를 따라 직진하면 경기전길과 만나는 사거리가 나온다. 한옥마을에서 여행자들로 가장 많이 붐비는 곳답게 한복 입은 선남선녀들이 셀카봉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복 디자인이 이렇게 다양했나 싶을 정도로 놀랍다. 오히려 경기전의 모습은 생경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현재와 담을 쌓은 것 같다. 스스로 고립무원 속으로 들어간 형국이랄까.



경기전 정전

△ 보물 제1578호, 경기전 정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공간이다. 회랑에서 바라본 모습.



새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런 터, 경기전



경기전(사적 제339호,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번지)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시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입구에 여행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서글픈 하마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가 애처롭다. 경기전 앞에 이르면 신분고하, 귀천에 상관없이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함을 알리는 비다. 어진이 봉안 된 곳이니 경기전 하마비의 위엄이 실로 대단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 위엄을 매표원과 검표원이 행사한다.

 
입장객은 표를 보여주시오!
 

어진은 조선 왕실에서 가장 귀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홍살문과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야 대면할 수 있다. 입구와 출구도 지정되어 있다. 동입서출(東入西出)을 따라야 한다. 가운데 문과 길은 태조의 혼령이 오가는 ‘신도’라 하여 신성시 한다. 경기전 정전(보물  제1578호)은 목조 건축물인 관계로 언제나 화재위험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화재예방을 위해 경내에 두무(넓적하게 생긴 독)가 덩그러니 놓였고 물에서 사는 목 없는 거북이가 정전 앞 합각벽에 붙어 있다.



경기전 정전에 모셔진 태조 이성계의 어진

△ 경기전 정전에 모셔진 태조 이성계의 어진. 노년의 모습이지만 강인한 기상이 느껴진다. 



태조 어진은 상당한 권위와 위엄이 느껴진다. 노년의 모습이지만 풍채가 우람하고 몸이 곧으며 얼굴이 밝게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눈썹위에 사마귀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전에 걸려 있는 어진은 모조품이다. 진품은 어진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어진을 그리던 화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대 최고의 화가들도 임금 앞에서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가며 그림을 그렸을 게다. 신하들도 그 과정을 지켜보며 마른 침을 삼켰을 터. 그렇게 완성된 한 장의 그림을 지키기 위해 왕실은 담을 쌓고 경계를 섰다.

경내에는 세종21년(1439)에 사고를 설치하였는데 오늘날까지 이른다. 협문을 통해 나오면 조선 8대왕 예종대왕 태실이 있다. 북쪽에는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를 뒤로하고 조선왕조 어진들이 모셔진 어진박물관이 자리한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오목대에 자리한 비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 쓰여 있다



개국(開國)의 꿈과 재건(再建)의 꿈이 공존하는 곳



오목대 전망대는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탐방 필수코스다. 이곳에 서면 전통의 맥을 잇는 한옥의 처마물결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도도히 흐르는 대하처럼 가슴에 벅찬 감동으로 밀려온다. 곧게 뻗은 태조로 뒤편에 실핏줄 같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그 틈마다 한옥이 옹골차게 들어앉았다. 그 너머에는 아스라이 현대식 고층건물이 솟아 병풍처럼 에둘렀다.

오목대(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는 고려 우왕 때 이성계 장군이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돌아오던 길에 고조부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승전자축연을 열었던 곳이다. 이성계는 여기서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음으로서 정몽주와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오목대에는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이후에 세운 비가 있다. 비문은 황제가 쓴 친필을 새긴 것으로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 적혀 있다. 조선의 몰락을 거부하고 재건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 이안사가 살던 주거지임을 알리는 비다.



오목대에서 육교를 따라 기린대로를 건너면 이목대에 닿는다.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에 살았던 주거지임을 알리는 비다. 1931년 10월 전주~남원간 전라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오목대와 연결되었으나 지금은 흐름이 끊겼다. 이목대 주변 비탈진 곳에는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자만동이 있다. 2012년부터 벽화가 그려지면서 카페, 게스트하우스, 식당 등이 생겨났고 지금은 전주를 대표하는 벽화마을로 자리한다.



전주향교의 동재

△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진 전주향교의 동재.



은행나무와 같은 선비가 되길



은행로를 따라 실개천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이어진 물길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개천을 따라 은행로 끝까지 걸어가면 향교길과 이어진다.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났을 뿐인데 찾는 이의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하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현격히 줄었다. 대신에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들이 바통을 이어받은 듯 늘어서 있다. 그 끝자락에 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전주향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주향교 앞에는 전주천이 흐르고 주변에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져 가을날 은빛물결로 출렁인다.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전주향교(전북 시도유형문화재 제7호, 전주시 완산구 교동 26-3번지)는 창건 당시 지금의 자리가 아닌 경기전이 있는 풍남동에 위치했었다. 그런데 향교에서 경전 읽는 소리가 경기전까지 들려와 시끄럽게 느낀 나머지 불가피하게 화산동으로 이전하였다가 임진왜란 이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향교에는 경기전처럼 어김없이 하마비와 홍살문이 서있다. 만화루 턱밑에까지 민가들이 비집고 들어와서 홍살문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전주향교의 서재

△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진 전주향교의 서재.



외삼문 만화루는 전주향교의 정문이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2층 누각에 올라 주변을 살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은행나무와 켜켜이 이어진 기와지붕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데 특히 가을에는 노란 융단처럼 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장관이다. 만화루를 지나 내삼문인 일월문을 따라 들어서면 대성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이 기다린다. 그 옆에는 서무와 동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현재 건물은 조선 선조 때 건립된 것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위(안자, 자사, 증자, 맹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향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수백 년 된 향교건축물이 아니다. 고고한 멋을 뽐내며 향교의 몸채처럼 버티고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다. 서무 앞 은행나무는 수령이 420년이 넘었다. 나무크기는 둘레가 10.4m, 높이가 32m에 달한다. 향교가 이곳으로 이전할 때 은행나무도 같이 심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은행나무는 오래 살며 병충해에 강하다. 그래서 은행나무를 향교에 많이 심고, 선비나무라 부른다. 은행나무처럼 유혹에 강하고 이익 앞에 부패하지 않으며 성실한 선비가 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명륜당은 오색단청을 칠하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규모가 정면 5칸, 측면 3칸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여서 초라하지 않다. 명륜당 좌우에는 서재와 동재가 뒤편에는 장판각이 담 너머에는 계성사가 자리한다. 계성사는 5성위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으로서 전국 234개소의 향교 중에 제주향교와 이곳 전주향교에서만 볼 수 있다.



 
임운석 작가 소개 - 다양한 매체에 여행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연극배우와 여행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여행(여가)전문 강연가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KBS, MBC, EBS 등에 방송패널로도 참여한다. 저서로는 《내가 선택한 최고의 여행》, 《최고다! 섬 여행》, 《대한민국 사계절 물놀이 사전》, 《여행의 로망, 캠핑카 스토리》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작성자 : 임운석 | 등록일 : 2016-12-26 | 조회수 : 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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