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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여행스케치-경상권] 자연 속으로 성큼 들어가는 길, 화림동 계곡

[문화유산 여행스케치-경상권] 자연 속으로 성큼 들어가는 길, 화림동 계곡



 

함양군 안의면에는 ‘선비 문화 탐방로’가 있다.
화림동 계곡을 따라 징검돌이 놓이듯 아름다운 정자가 자리하는데
그곳을 오가는 길을 이어 호젓하게 걸어 볼 수 있게 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의 정자들은 처음의 모습과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자연 속에 자리한 풍경은 여전해서 언제라도 찾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복잡한 세상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없고
그 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대신 그곳에 머물던 선비들처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세상 속으로 나갈 힘을 얻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5km에 달하는 선비 문화 탐방로를 걸으며 옛 선비들의 자취를 더듬고 그들의 지혜를 빌려보자. 





 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인 거연정 일원

△ 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인 거연정 일원은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으로 명승 제86호로 지정되었다.


 
화림동 계곡의 으뜸, 거연정


 

짧은 무지개 다리 건너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는
하얀 바위와 푸른 물빛과 함께 감탄을 자아낸다.
맞은편으로 건너가 바라보면 그림이 따로 없다.
앉아서도 보고 서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다가가서도 본다.
그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눈이 즐겁다.



맨 처음 그 자리에 집은 지은 이는 조선시대의 선비인 전시서다. 그는 그 곳에 억새 지붕을 인 작은 정자를 지어 머물렀다. 그 곁에는 화산서원이라는 서원도 두었다. 공부를 하는 짬짬이 그곳을 오가며 머리도 쉬고 눈도 쉬는 휴식을 취했다. 곁이지만 먼 길을 온 듯 기분 전환이 되었을 풍경이다. 그로부터 한참을 지난 1872년에 그의 후손이 선조인 전시서를 기리며 지금의 모습대로 정자를 지었다. 아담한 크기의 정자다. 새하얀 화강암 바위 위에 얹은 듯 놓여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어서인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자연스럽다. 들어가 볼 수 있는데 마루 위에서면 배 위에 서서 보는 듯 발 아래로 깊은 물이다.



 화강암 반석 위에 지어진 거연정

△ 화강암 반석 위에 지어진 거연정은 조선 중기에 화림재 전시서가 억새로 만든 정자를 지어 머물던 곳이다.


 

자연에 머문다는 뜻을 가진 거연,
거연정은 자연에 머물도록 해주는 집이다.
오래전 전시서가 그랬고 그의 후손들이 그랬고
지금까지 그 곳을 스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곳에서
자연을 느끼고 여유를 느끼지 않았을까?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 일원, 그 길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물과 돌과 나무와 꽃과 풀이 있는 풍경은 명승 제86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문화재 중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을 기념물로 분류한다. 명승은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면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곳들 중에서 빼어난 가치를 지닌 곳을 말한다. 옮겨 올 수 없고 그 자리에 가서 봐야 느낄 수 있는 문화재다.

 

바람이 분다.
낙엽이 뒹굴고 마른 풀의 냄새가 묻어온다.
안의면 소재지에서 불과 10km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곳은 선비의 길인 듯 신선의 길인 듯 어제의 길들과 다르다.
지척에 있는 군자정으로 발을 옮긴다.




기억된다는 것, 군자정과 동호정


 

거연정이 자연에 머물기 위한 정자였다면 군자정은 군자를 기억하기 위한 정자다.
군자란 누굴까?



이는 1610년에 문묘에 배향된 당대 최고의 유학자 다섯 명 중 한명인 일두 정여창을 말한다. 군자정이 선 맞은편에 봉전마을이 있고 그곳에 정여창의 처가가 있었다. 선생은 처가에 다녀가는 길이면 물 건너 너럭바위인 영귀대에서 쉬었다고 한다. 주변의 선비들과 만나 교류하던 사랑방 같은 곳이었을 듯 하다. 그가 머문 자리를 기려 전시서의 후손이 군자정을 지어 그를 기렸다. 전시서의 후손들이 거연정도 군자정도 새롭게 정비한 것은 전시서가 정선전씨 입향조로 그 일대에 후손들이 많이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고장에 대한 애착과 조상에 대한 존경심의 자취들을 지금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기린다는 것은 누군가 기억한다는 것이고 기억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금이 훗날 어떻게 기려질지 생각하면 살피며 살지 않을 수 없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인 동호정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인 동호정은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주변의 바위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이다.



군자정을 지나 영귀정을 거쳐 동호정으로 가는 길은 과수원도 지나고 다리 밑도 지난다. 물도 건너고 따라 걷기도 한다. 제법 걷는 재미가 있는 길을 걸으면 새하얀 바위가 먼저 보인다. 바위 위로 열 두엇은 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았는데 참새가 모여 앉은 듯 오종종하게 보일만큼 바위가 넓다. 넓은 바위의 이름은 차일암이다. 걷던 길에서 물 위로 놓인 징검돌을 건너 차일암에 오른다. 완만하고 넓은 바위는 섬처럼 떠있다. 그 위에 앉으면 물소리도 가까이 들리고 걷는 사람들도 보이고 동호정의 정면도 보인다. 멀찍이 마주보고 앉아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낸 것처럼 둥글게 파인 바위의 홈을 본다. 그 안에 술을 채워 조롱박으로 떠 마시며 놀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날도 있었겠다.
지금은 고인 물 위로 하늘이 비치고 바람에 날려 온 낙엽이 빙그르 맴돈다. 
고요한 중에 평화가 깃든다.
쉰다는 것은 이처럼 가만히 놓여 보는 것,
자연석 바위에 맞춰 기둥의 바닥을 깎아 세운 정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지난 비와 바람에도 휩쓸리지 않고 바위와 더불어 늙어가는 정자는 마음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다. 차일암과 함께 아름다운 동호정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을 업고 의주로 피난한 동호 장만리를 기려 만든 곳이다. 그의 후손들이 1890년에 세웠다.

군자정도 그렇고 동호정도 그렇고 그 옆에 음식점, 가든이 자리한다. 좋은 경관을 보기 위해 정자를 짓는 마음과 정자가 선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휴게시설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이 같다. 주변 경관이 어지럽지만 사람살이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길을 여전히 찾고 걷고 머문다.



사람 속에서 늙어갈 농월정



달바위와 농월정

△ 달빛이면 족했던 선비들의 풍류를 떠올리며 머물기 좋은 달바위와 농월정이 그림 같다.



농월정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유원지라고 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계곡물에 발 담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모여 놀던 곳이다. 1980~90년대에는 여름철이면 유명한 해변만큼 북적였다고 한다. 그 탓이기도 했던지 농월정은 2003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가을에 새로 올렸다. 세운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기둥들은 아직 생나무처럼 보얗다.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말년에 지은 건물이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와서 유유자적 지내기 위해 정자를 지으며 달빛을 욕심내어 농월정이라 이름 지었다. 하얀 바위 위로 환한 달빛이 드리우는 풍경을 떠올리면 흡족하게 바라보는 노선비의 모습도 보이는 듯 하다. 달바위라 불리는 정자 앞의 바위는 지난 세월을 모두 담고 있어 물에 패인 골은 깊고 물결을 닮아 용의 잔등처럼 굽이굽이 휘어졌다. 농월정이 바위를 닮아 함께 흐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선비 유산길은 여기까지 5km정도다. 걷다 서다 놀며 걸어도 두 시간 남짓이면 된다. 초행길에는 먼듯해도 계곡에는 데크길이 놓였고 평지로 이어진 길이라 걷기에 무리가 없다. 이왕 선비가 된 듯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그 걸음을 이어 조선의 학자이고 선비인 일두 정여창의 흔적을 만나러 개평마을로 간다. 안의 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탐나는 명당, 일두 정여창 고택


 

안의에서 함양 방향으로 버스를 바꿔 타고 10km남짓 떨어진 곳인 개평마을로 간다.
100년 이상 된 한옥이 모여 있는 마을은 입구에선 보이지 않다가
구불한 길을 조금 걸어 오르면 담장이 이어지고 기와지붕이 언뜻언뜻 보인다.
일두기념관과 명가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일두 고택 솟을 대문이 보인다.
높은 대문의 지붕 아래 걸린 다섯 장의 나무판은 나라에서 효자, 충신을 기려 내린 정려패다.
바래어 선명하진 않지만 붉은색의 판에 흰색으로 글씨를 썼다.
높은 대문 끝에 걸린 글을 보려면 고개가 한참 뒤로 젖혀진다.



이 집은 함양 일두고택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정여창은 앞서 말한 군자정의 군자다. 그가 살던 집 터에 후손들이 1570년 경에 지은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도 짓고 늘려 지금의 규모를 이뤘다. 선조 중에 대대로 존경하고 기억할 분이 있다는 것도 큰 자랑이겠다. 솟을 대문 안으로 조심스레 발을 딛는데 개 한 마리 마당 한가운데서 졸음에 겨워 꼼짝도 않는다. 인기척에도 곁눈질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이 절로 웃게 만든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인 일두 고택

△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인 일두 고택은 500년을 이어오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어디에 머물던 아늑한 느낌을 준다.



들어서서 바로 보이는 것이 사랑채다. 다가가면 ‘충효절의’라 쓴 커다란 글씨가 보인다. 사랑채 옆의 곳간이던 곳은 찻집으로 운영 중이다. 그 앞에서 바라보는 사랑채의 옆모습도 아름답다. 뒤편의 너른 안채와 우물이 있는 마당은 고요하다. 안채를 지나 사당과 별당, 안 사랑채를 거쳐 다시 사랑채에 이른다. 사랑채 앞으로 석가산이 있다. 그쪽에서 바라보는 사랑채는 노송과 어우러져 고고한 모습이다.

대문 밖의 담장 안으로 솔송주 문화관과 명가원 고택이 있다. 솔송주는 하동 정씨 가문의 가양주다. 제사나 집안의 행사에 빠지지 않던 가양주는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이어진 술이다. 빚는 법과 함께 집안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은 며느리 박흥선은 집안의 술인 솔송주를 전승하고 널리 알린 노력을 인정받아 경상남도 무형문화제 제35호로 국가 지정 식품 명인 제27호로 지정 받았다. 이곳에서는 술을 빚어보고 고택에서 묵어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집 옆으로 있는 일두기념관에는 그의 일생과 학문, 업적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한 전시물이 있다.


개평마을은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가 모여 살던 집성촌으로 오래되고 낡았지만 정갈한 마을이다. 낮은 담장이 이어진 골목을 이정표를 따라 걸으며 풍천 노씨 종가, 노참판 고택, 오담 고택, 하동정씨 고가를 찾는 재미가 있다. 마을을 두른 지네산 자락에 일두 산책로가 있다. 향긋한 솔 내음을 맡으며 걸어도 좋겠다.



떠나기 전 함양 상림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상림

△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상림은 사람이 조성한 가장 오래된 숲이다.



지나온 숲길, 마을길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상림을 거치지 않으면 아쉽다. 이 숲은 사람이 만든 숲이다. 그것도 신라시대의 학자인 최치원이 만든 숲으로 지금껏 건재해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하천의 범람을 막아 주민들의 수해 피해를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 그 길을 지키기 위해 나무를 싶었다. 그 나무가 숲을 이루어 천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주민들의 일상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귀한 숲은 지난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여전히 사랑받는 숲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찾는 이들이 많다. 낙엽활엽수림 천연기념물인 ‘천년의 숲’ 상림은 늦가을에 절정을 이룬다.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 지방 도시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지금도 귀한 자산이다. 한옥 처마 아래로 난 등굣길의 붉은 벽돌의 성당과 근대 건축물들, 수백 년의 세월에도 짙푸르던 나무의 너른 그늘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마음에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담긴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 몸이 먼저든 마음이 먼저든 움직여야 가능한 여행이 가진 매력을 새롭게 정의하며 살고 있다. 2001년부터 여행 작가로 활동하며 10여권의 공저 작업 및 월간지와 사외보에 여행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작성자 : 유현영 | 등록일 : 2016-12-23 | 조회수 : 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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