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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여행] 화순 고인돌 유적지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핑매바위 고인돌

옛날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전라남도 화순의 한 마을에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센 거인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할머니는 운주 골에서 천불천탑을 쌓는다는 소문에 치마에 돌을 싸서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닭이 울어 탑을 다 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화가 나 돌을 옮기던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 돌이 그대로 멈춰 핑매바위가 되었답니다.

사실 이 재미있는 일화가 담긴 핑매바위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인돌입니다. 핑매바위는 길이 7미터에 높이 4미터,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2백 톤이 넘는 거대한 규모의 고인돌입니다

화순고인들, 고창고인돌, 강화고인돌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발견됐지요. 특히 호남지방에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밀집되어 있으며 그 중 보존 상태가 좋은 화순, 고창,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화순 고인돌유적지 입구

그 중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좁은 지역 내에 가장 많은 밀집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채석과정을 볼 수 있는 채석장이 남아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 없이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핑매바위와 같이 거대한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고인돌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기도 하죠.

작은 고인돌들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그렇다면 집단을 이룬 작은 고인돌들은 무엇일까요?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청동기 시대는 촌락 공동체를 이루던 때였습니다.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혈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묘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고인돌은 지배자 뿐 아니라 누구나 묻힐 수 있는 일반적인 무덤 양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위덩어리

언뜻 보면 바위덩이와 비슷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고인돌. 3천 년 전의 무덤 양식인 고인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장비도 없이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잘라냈던 것일까요?

채석장

고인돌 무덤군 가까운 산기슭에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채석장에는 큰 돌들과 돌을 잘라낸 흔적들이 남아있는데요. 돌을 이용해 구멍을 판 뒤 그 구멍에 마른 나무를 박고 계속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돼 돌이 잘리는 원리를 이용해 고인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3천 년 전에도 돌을 다루는 기술이 새삼 대단하다 느껴지지 않나요?!

능선 아래 고인돌

청동기 시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인돌 문화. 그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이곳을 세계 고인돌 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하고 있습니다. 화순고인돌유적지의 모습을 아래의 더 자세한 내용에서 만나보세요.

동영상 대본보기
대본보기 전남 화순의 핑매바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인들이다. 핑매바위에는 마고 할머니의 전설이 전해진다.
마고할머니는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센 거인이었는데 어느날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쌓는다는 소문에 치마에 돌을 싸서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가는 도중 닭이 울어 탑을 다 쌓았다고 하자 화가 나 돌을 발로 차버렸다. 그 돌을 바로 핑매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핑매바위는 길이 7미터에 높이 4미터,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2백 톤이 넘는 거대한 규모의 고인돌이다.
3-4천 년 전의 돌무덤인 고인돌. 한반도는 고인돌의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고인돌이 남아있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게 3만여 기, 북한 지역의 1만 여기까지 합하면 전 세계 고인돌의 40%에 해당하는 고인돌이 한반도에 남아있다.
고인돌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은 화순, 고창,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언뜻 보면 바위덩이와 비슷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고인돌. 3천 년 전의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한반도에 왜 이렇게 많이 있는 걸까.
화순의 보검재 계곡. 이 계곡을 따라 고인돌 6백 여기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 없이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핑매바위와 같이 거대한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고인돌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기도 한다.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집단을 이룬 작은 고인돌들은 무엇일까.
산 중턱에 자리한 관청바위 고인돌군. 보성 수령이 쉬고 있다가 한 백성이 민원을 올리자 이곳에서 잠시 관청 일을 봤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청바위 고인돌군 주위에는 많은 고인돌이 열을 지어 분포한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많은 고인돌이 모두 지배자의 무덤이었을까.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청동기 시대는 촌락 공동체를 이루던 때였다.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혈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묘역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고인돌은 지배자 뿐 아니라 누구나 묻힐 수 있는 일반적인 무덤 양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거대한 핑매바위 고인돌도 누군가의 무덤이었을까.
고인돌의 바닥을 보면 덮개돌 아랫면을 오목하게 인위적으로 깎고 경사진 아래쪽으로 고임돌을 촘촘히 배치해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핑매바위를 중심으로 보검재 방향으로는 더 이상 고인돌을 발견할 수 없다. 능선의 아래쪽으로만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크고 잘 다듬어진 고인돌이 높은 곳에 위치한 경우 무덤이라기보다는 제단으로서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본다. 여러 집단의 협동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상징적인 기념물이었던 것이다.
청동기 시대, 돌은 신비력을 가진 것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돌무덤인 고인돌은 죽은 이의 혼령이 안식하는 곳이자 살아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핑매바위의 덮개돌은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온 것일까. 고인돌 무덤군 가까운 산기슭에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다. 채석장에는 큰 돌들과 돌을 잘라낸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3천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장비도 없이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잘라냈던 것일까. 그 비밀은 채석장에 남아있는 구멍을 팠던 흔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돌을 이용해 구멍을 판 뒤 그 구멍에 마른 나무를 박고 계속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돼 돌이 잘리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3천 년 전에도 돌을 다루는 기술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청동기 시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인돌 문화.
그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이곳을 세계 고인돌 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하고 있다.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12-23 | 조회수 : 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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