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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여행] 남한산성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남한산성 1부_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는 많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며 2천여 년을 꿋꿋하게 버텨온 남한산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병자호란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 역사는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남한산성의 장구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남한산성 담길_

남한산성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청량산, 연주봉, 망월봉, 벌봉 등을 연결해 쌓은 대규모의 석축산성입니다. 해발 500m가 넘는 지형을 따라 쌓아 조선의 뛰어난 축성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죠.

동영상 대본보기
대본보기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세종대왕의 왼손에 들려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의창제 이유와 글자를 만든 원리가 설명돼 있는 일종의 해설서이다.
세종 28년인 1446년 간행된 이 책은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다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됐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은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계속되던 논란을 일순간에 정리한 사건이었다. 세종은 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을 펴냈던 것일까?
‘이달에 임금이 직접 언문 스물 여덟자를 만들었다... 글자는 간단하고 쉬우나 변화가 무궁하니, 이를 훈민정음이라 이른다.’ 세종실록에 남아있는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기록이다. 1443년, 세종 25년의 일이다. 하지만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만 적어놓았을 뿐,문자에 대한 다른 기록은 없다.
그리고 약 3년 뒤인 세종 28년의 실록에
是月訓民正音成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는 언급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린 세종의서문과 정인지의 서문이 기록돼 있다.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3년 만인 1446년, 해례본의 간행과 함께 훈민정음을 반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는 뜻의훈민정음은 새로운 문자를 가리키는 말이자, 세종이 집현전 학자 8명과 만들어 낸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을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르는 것은 문자의 사용법을 자세히 풀이해놓은 ‘해례’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세종이 쓴 서문과 새 문자 훈민정음을 소개한 예의, 집현전 학자들이 풀이한 해례, 정인지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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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종은 왜 새로운 문자를 만들려고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세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바로 ‘삼강행실도’이다. 세종 10년, 진주 사람 ‘김화’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세종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능지처참의 벌을 내리긴 했지만 형벌만이 능사가아니라고 생각한 세종은 효자, 충신 등의 사례를 담은 삼강행실도의 간행을 지시한다. 책에는 내용에 맞는 그림을 함께 넣어,글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백성이 그림만으로 제대로 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세종의 걱정이 실록에 남아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아직도 쉽게 깨달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그림을 붙이고 이름하여 삼강행실이라 하였으나... 다만 백성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여 책을 비록 나누어 주어도 남이 가르쳐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 뜻을 알아 감동하고 착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으리오’문자의 필요성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라볼 수 있다.
‘삼강행실을 인쇄하여 반포하고 가르치도록 하고 그에 대한 교서를 짓게 하다’
어리석은 백성과 문자에 대해 다시 언급한 것은 세종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이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통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바가 있어도 제 뜻을 나타내지 못할 사람이 많다.이를 위해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배우고 익혀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다.’세종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자 했다.
예조판서 정인지가 남긴 서문에서도훈민정음 창제 이유를 엿볼 수 있다.‘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새로운 문자를 만들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백성이 막힘없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훈민정음 창제의 과정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으로 마무리 된다. 해례본에는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진 원리와실제 적용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자음,천지인을 본떠 만든 모음,기본글자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글자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인지를입증하는 중요한 유산이다.
백성들에게 새 문자를 알리기 위한 세종의 노력은 한글 책 편찬으로 이어졌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듬해부터 조선왕조의 창업을 기리는 노래 용비어천가, 석가모니 일대기를 한글로 펴낸 석보상절,세종이 지은 불교 찬가 월인천강지곡 등 한글로 쓰여진 책들이 만들어졌다.
한문으로 기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도 간행됐다.세종의 서문과 새 문자들을 소개한'예의’편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한문을 몰라도 새로운 문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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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례본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 그 마지막에는 해례본을 함께 만들 이들의 이름과책을 펴낸 이유가 남아 있다.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 신숙주,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과 함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깨우치게 하려고 이 책을 펴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통 11년 9월 상한’이라고이 책이 만들어진 때를 기록해 두었다. 이 기록은 한글날의 지정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상순의 끝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10월 9일이 한글날로 결정된 것이다.
쉽게 배우고 익혀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다’훈민정음 서문에 밝힌 것처럼 세종은 누구나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의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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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1편 자막
훈민정음 해례본(복사본)- 국립중앙박물관
타이틀: 한글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
경복궁 사정전
임금이 머물며 정사를 펼치던 곳, 보물 제1759호
세종실록 권102 1443년 12월 30일
이달에 임금이 직접 언문 스물 여덟자를 만들었다
세종실록 권113 1446년 9월 29일
이 달에 훈민정음(해례본)이 이루어졌다
훈민정음 반포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 표지
훈민정음 해례-제자해
훈민정음 해례 중 세종의 서문
훈민정음 해례 중 예의 부분
경복궁 수정전
옛 집현전 터, 보물 1760호
삼강행실도
세종실록 권64 1434년 4월 27일
삼강행실을 인쇄하여
반포하고 가르치도록 하고
그에 대한 교서를 짓게 하다
정인지의 서문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운다
초성해
자음을 만든 원리
중성해
모음을 만든 원리
합자해
글자를 조합하는 원리
용자해
글자를 사용하는 원리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
한글 전시관
용비어천가
보물 제1463호
석보상절
보물 제523호
월인천강지곡
보물 제398호
훈민정음 언해본
월인석보 권 1, 보물 745호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우치게 하다
정통 11년 9월 상한

병자호란이 끝난 후, 인조는 남한산성에 온조왕을 모시도록 명하고, 1639년 사당을 짓게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온조와 직접 관련을 맺기 이전부터, 남한산성을 백제 온조의 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데요. 그 이유는 방어력이 뛰어난 남한산성의 전략적 입지조건과 수차례의 천도설에 기인한 것입니다.

백제유적지발굴터

하지만 최근 남한산성에서 발굴된 백제의 유물들은 소박할 뿐 아니라, 그 양도 적어 백제의 도성과는 관련짓기가 어렵고 아마도 남한산성 안에, 백제주민의 일부가 정착하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벽 입구

그렇다면 남한산성은 언제 처음 쌓았을까요? 삼국사기에는 (672년) 신라 문무왕 때, 지금의 경기도 광주인 한산주에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장성은 햇빛이 많이 들어 낮이 길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의 남한산성을 말합니다

남한산성 곳곳의 모습

신라문무왕 12년(672) ‘한산주에 주장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이다’ 삼국사기에는 주장성의 둘레가 4,360보, 약 8km라 적고 있다. 신라가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진 주장성은 대규모의 석축산성이었습니다.

공중 전체 모습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고 있어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성벽을 구축하고 있는 전돌, 여장, 옹성, 암문, 수구 등 구석구석 살피며 숨겨진 축성의 비밀을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해 보세요.

동영상 대본보기
대본보기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 해례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40년의 일이다.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책을 간송 전형필이 입수해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든 사람과 문자를 만든 원리를 밝히고 그것을 해설한 책을 펴내는 일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보관돼 있는 간송미술관이다.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을 간송 전형필이 사들여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목판본인 해례본은 33장으로이루어진 한 권의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4장으로 이루어진 예의 부분과 29장으로 돼 있는 해례 부분이다.
각 부분은 글자꼴과 크기가 서로 달라 다른 사람에 의해 작성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큰 글씨로 이루어진 ‘예의편’은 세종이 직접 작성한 서문에 이어 새 문자의 소리값과 운용법에 대해 설명돼 있다. ‘ㅇ’ 은 어금닛소리로 ‘업’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고, ‘ㄷ’은 혓소리로 ‘두’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는 식의 설명이 간략히 정리돼 있다.
집현전 학자들이 쓴 ‘해례편’은 ‘예의편’보다 작은 글씨로 새로운 문자를 만든 원리에 대해설명하고 있다. 초성과 중성, 즉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어떻게 글자를 이루는지차례대로 설명하고, 이어 실제 단어 123개의 예를 들어보였다.
지그렇다면 훈민정음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것일까. 정인지가 쓴 ‘제자해’ 부분에그 원리를 밝히는 구절이 있다. ‘정음 스물여덟 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이 구절로 그간 훈민정음의 기원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정리되고, 상형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각각 그 모양을 본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훈민정음의 초성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어금닛소리인 ‘ㄱ’은 [k]음을 소리 낼 때,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고,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의 모양을 본떴다. ‘ㅅ’은 [s]음을 소리 낼 때의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소리와 발음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은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자음의 나머지 글자는 매우 간단한 원칙에 의해 만들어졌다. ㄱ, ㄴ, ㅁ, ㅅ, ㅇ 의 다섯 글자에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추가해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은 글자 모양이 글자가 담고 있는 소리의 자질과 특질을 보여준다고 해서 자질문자라 불리는데, 음성문자인 영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영어의 b/p, d/t, g/k, v/f 등의 글자들은 소리는 비슷하지만 글자간의 유사성이 없다.반면 훈민정음은 ㄱ, ㅋ, ㄲ 과 같이 자음을 세 계열로 나누고, 소리가 비슷하면 글자 모양도 비슷하도록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발상 같지만 이전의 문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학적이고도 창의적인 특징이다.
훈민정음의 중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하면 중성의 세 기본자인 ?(아래아), ㅡ(으), ㅣ(이)는 우주 만물의 근원인 천지인을 본떠서 만들었다. ?(아래아)는 하늘이 열리는 모양이 둥근 것을 보고 본떴고,ㅡ(으)는 땅이 열리는 모양이 평평한 것을 보고, ㅣ(이)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기록돼 있다. 기본적인 세 글자를 조합하면 단순모음 4개와 이중모음 4개가 만들어진다.
합자해에서는 초성, 중성, 종성의 세 소리가합쳐 글자를 이루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풀어쓰기를 한 로마자와 달리 낱글자들이 네모난 공간 안에 모여 글씨를 이루는 것이다.
한글의 모아쓰기 방식은 글을 좀 더 쉽고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쓰기 쉬울 뿐 아니라 읽기도 쉬운 한글이 완성된 것이다.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모든 글자를 만들 수있는 한글. 누구나 배워서 익히기 쉽다는 것은 한글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한글의 과학성과 체계성은 해외에서더욱 주목받고 있다. 말은 있지만 고유문자가 없는 인도네시아 원주민 찌아찌아족은 2009년부터 한글을 배워 부족어를 한글로 표기하고 있고, 볼리비아의 아이마라 인디언 부족들에게도 한글이 보급됐다.
유네스코에서는 매년 세계 각국에서 문맹퇴치에 뛰어난 공적을 쌓은 사람이나 단체에 상을 수여하고 있는데, 그 상의 이름이‘세종대왕 문해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쉽고 체계적인 문자로 여겨지는 한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글의 과학성과 체계성은 컴퓨터, IT산업의 발달과 함께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한글은 컴퓨터 자판에서 자음은 왼손으로 모음은 오른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로알파벳 발음기호를 이용하는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업무능력에 있어 7배 이상 앞선다고 한다.
휴대폰의 문자입력 방식에서도한글의 과학성은 두드러진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이 26개나 되는 반면,한글은 기본 자음과 모음이 불과 14개로 압축돼 버튼 수가 한정된 휴대폰에선 큰 장점이 된다.
자음과 모음의 숫자는 적지만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원리대로 획을 추가하면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한글의 과학성은 한국이 IT강국으로 나아가는데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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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차지한 자가 한반도를 차지하리라.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매 시기, 격전의 현장이었던 남한산성은 한강유역과 수도에 대한 방어 기능을 담당한 천혜의 요새로, 우리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봉암성 연결

적에게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다는 철옹성, 남한산성! 그 당당한 역사 속에는 이름 모를 숱한 사람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습니다. 그들의 노고 위에 천혜의 자연환경과 최고의 축성술이 더해져, 산성의 걸작 남한산성이 만들어졌습니다. 역사의 고비고비, 위기의 순간마다 그 중심에는 남한산성이 있었습니다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12-23 | 조회수 : 2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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