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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주영하 교수님과 함께한 한국인의 밥상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여러분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내일의 점심과 저녁 메뉴를 고민해본적은 없으신가요?
저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 밥은 매우 중요한데요.

차이나는 클라스 91화에서는 이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음식과 문화를 연구하는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교수님께서 한국 100년의 음식사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최근 몇 년간 아주 핫한 아이템인 먹방은 유튜브부터 TV 속 수많은 채널까지 차지하며 영어로 'Mukbang'이라는 고유명사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요?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어떻게, 왜 '다식의 민족'이 되었을까요?
 
 
조선 사람들은 많이 먹는 것을 곧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식사량은 1리터 쌀밥으로, 이는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 1860년대 조선 방문한 프랑스 다블뤼 신부 -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농사사를 천하의 근본이라고 생각해 밥으을 많이 먹고 힘을 내어 농사를 짓고자 했다는 주영하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가장 풍성한 상차림을 받는 임금님의 수라상은 그 외에도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 알고 계셨나요?
 
#감선

감선이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임금이 수라상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부터 10일 동안 감선할 것이니,
아! 너희는 위로 대관에서부터 아래로는 초야에 이르기까지
잘못과 빠뜨린 것을 바로잡고 보좌해 부덕한 나를 돕도록 하라


 

영조

조선의 스물일곱 왕 중 가장 오랜 세월을 누리며 52년간 왕의 자리를 지킨 영조. 검박했던 영조는 감선을 가장 많이 행했던 왕이기도 합니다.

왕은 지방방에서 올라오는 특산물들로 구성된 수라상을 보고 지방의 상황을 두루 짐작하여 재료들이 마땅치 않거나 나라가 가뭄이나 홍수 등에 처해 있을 때는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을 행하여 애타는 백성의 마음을 달래고 임금으로서 자책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음식으로 나타냈습니다.


당파


또한 당파 간 싸움이 심하던 영조 시기에는 신하들의 분쟁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감선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밥상조차 온전히 개인적으로 즐길 수 없었던 조선의 왕들, 왕의 수라상은 음식을 통해 백성과 나라를 돌아보는 행위였고 정치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처럼 왕의 수라상이 왕의 건강뿐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니, 한국인의 밥상의 중요성은 우리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것이었네요. 

왕의 수라상과 한국 전통음식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문화유산채널 영상과 함께 알아보아요!

 
대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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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1737년 영조 13년 9월.삼남 지방에 큰 기근이 들자 영조는 10일 동안 감선할 것을 선언하였다. “오늘부터 10일 동안 감선할 것이니, 아! 너희는 위로 대관에서부터 아래로는 초야에 이르기까지 잘못과 빠뜨린 것을 바로잡고 보좌해 부덕한 나를 돕도록 하라.” 감선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임금이 수라상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애타는 백성의 마음을 달래고 임금으로서 자책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음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 왕의 수라는 단순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었다.백성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통치의 또 다른 수단이었다.조선시대 왕은 하루에 몇 번 식사를 하였을까. 보통 하루 네 차례의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 6시 경 죽과 마른 찬을 차린 초조반상, 9~10시 경에 아침 수라, 국수 등으로 간단하게 요기하는 점심의 낮것상, 오후 다섯 시경 받았던 저녁 수라 등이다. 여기에 주다소반과와 야다소반과 등 면이나 약식 등을 올리는 간식상까지 더하면 하루에 6~7번의 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흔히 알려진 12첩 반상은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을 말하는 것이다. 12가지의 찬품은 조리법이 겹치지 않고 주요 재료가 겹치지 않게 만들어졌다. 조선의 스물일곱 왕 중 가장 오랜 세월을 누리며 52년간 왕의 자리를 지킨 영조. 검박했던 영조는 하루 세 차례의 상만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감선을 가장 많이 행했던 왕이기도 하다. 당시는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시기로, 영조는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신하들의 분쟁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감선을 이용하였다. “임금은 하나인데 신하는 셋으로 나뉘었으니, 장차 어느 임금을 섬기려 하는가? 신하로 하여금 무상하게 하는 것은 임금의 허물이다. 강한 신하에게 견제를 받아 감선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왕이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며 반성하고 있다고 선언하면 신하들은 감히 푸짐한 밥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감선을 거두시라 한 목소리로 주청을 드려야 했다. 왕이 감선에 들어가면 신하들은 일단 정쟁을 멈추고 임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왕은 이를 적절히 정치에 이용하였던 것이다. 왕의 건강 뿐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수라. 왕의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수라를 책임지는 부서는 사옹원이었다. 사옹원은 대전, 대비전, 세자전의 수라간을 모두 책임졌다. 대조전 옆에 자리한 수라간. 왕비의 수라가 만들어지던 곳으로 1920년대 현대식 부엌으로 개조되었다. 나인과 상궁들로 분주했을 수라간. 하지만 궁녀들이 궁의 모든 음식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1605년 선조가 지원한 잔치의 풍경을 담은 기록화 선묘조제재 경수연도. 두 번째 그림인 조찬소에 임시 부엌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음식을 만드는 이들이 모든 남자들이다. 조리를 담당하는 각색장이라는 관노들이다. 칼을 들고 있는 이는 육고기를 담당하는 별사옹, 밥을 짓는 이는 반공이라 불리었고, 고기를 굽는 일은 적색, 술과 음료는 주색이 담당했다. 각색장은 14개 분야에 걸쳐 철저히 분업화 돼 운영되었다. 이들을 관리하며 음식을 책임진 주방장은 종9품의 임부나 팽부였다. 그렇다면 수라간의 궁녀들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궁녀들은 근력과 체력을 요하는 조리보다는 음식을 차리고 간식을 만드는 일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수라상.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은 대부분 지방에서 진상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경기도의 햅쌀, 함경도의 미역, 충청도의 멧돼지, 강원도의 은어, 제주도의 전복 등 각 지방의 특산품이 철마다 올라와 수라상을 채웠다. 왕은 재료의 상태를 보고 지방의 상황을 두루 짐작할 수 있었다. 나라가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난에 처해있을 때는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을 행하고, 진상을 멈추도록 지시하였다. 밥상조차 온전히 개인적으로 즐길 수 없었던 조선의 왕들. 왕의 수라상은 음식을 통해 백성과 나라를 돌아보는 행위였고, 정치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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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요리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서, 오랜 생활습관이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알고 싶다면, 그 나라의 요리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요리는 문화를 담아내는 맛있는 그릇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의 혼이 담긴 요리 문화를 지키고 이어온 맛의 달인!  전통요리전문가를 만나볼까요? 아름다운 한옥 집...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국 전통 식당 하지만 주방은 불 길에 달아오르고 칼질 소리로 분주합니다. 정신없이 바쁜 한식 요리사들 카리스마 넘치는 바로 이분이 김도섭 팀장님. 오늘의 주인공 김도섭 팀장님입니다.
Q.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김도섭>전통요리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직접 조리하기도 하고요. 요리방법을 여러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Q. 한국의집은 무엇 하는 곳?
김도섭> 여기는 한국의 집이라고 하는데... 한국전통 궁중음식문화를 보급하고 전통음악, 춤, 연극, 의식, 놀이 등 한국고유의 예술을 공연기도하는 곳입니다.
김도섭 팀장님이 일하는 이곳은....단순히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데요..
Q. 왜 음식만 팔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는가?
김도섭> 음식이란 게 단순히 먹기만 한다고해서 제대로 즐길 수 있게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맛을 볼 때 진정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죠。
전통요리전문가는 요리를 만드는 역할을 넘어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전통요리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지녀야 할까요? 우리 고유의 맛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선조들이 남긴 조리법을 열심히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레시피 연구는 어떻게 하나?
김도섭> 가끔 새로운 조리법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문헌 같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조리법을 습득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래된 레시피인지라, 세밀하지가 않고.... 또 재료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Q. 어떤 사례가 있나?
김도섭>예를 들어 OOO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흔한 재료였지만, 요즘에는 정말 구하기 힘든 재료거든요. 이런 것들은 비슷한 맛을 내는 OOO 같은 다른 재료로 대체를 해줘야 하는거죠.
반대로 예전에는 굉장히 귀했던 재료가 저렴해지면서 한결 수월해지는 경우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재료들 사이에서 우리의 맛을 찾아내는 응용력이 전통요리전문가에게는 필수적인 자질입니다
Q. 어떤 요리인가? 예전 요리라고 믿을 수 없게 스타일리시한데?
김도섭> 전통요리라고 해서 예전 조리법 그대로 만드는 게 아니다. 요리란 먹는 사람이 맛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요리의 특징은 지키되 현대적인 입맛에 맞춰서 조금씩 발전해 가는거다.
전통요리전문가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재료를 확보하는 겁니다. 매일 매일 신선한 재료를 확보해야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겠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니 재료 준비도 결코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조리사들 좋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 만으로 요리는 절반은 성공한 셈이랍니다. 이제 본격적인 조리 시간... 이제부터는 체력과 집중력 싸움입니다
Q. 제일 중요한거?
김도섭> 체력과 끈기...
Q. 왜?
김도섭>일단 무거운 걸 많이 들어야 해요. 한국 전통요리는 특히 더 그래요. 그리고 불 쓰고 칼 쓰는 공간이라 조금만 방심해도 다칠 수있어요. 체력이 좋아야 집중력도 오래갑니다. 마침내 하나 둘 요리가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손님들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걸립니다. 우리 요리를 널리 알리고 전파하는 것도 전통요리전문가의 중요한 일 중 하나... 우리 전통 요리를 사랑 할 수 있도록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Q. 어떤 사람들 대상으로 전통요리를 가르치나?
김도섭> 다른 셰프들을 가르치는 것도 하나.. 성인이나 아이들에게 체험 교육을 하기도 하고
Q. 가르치는 것 외에 전파 활동은?
김도섭> 외국에서 귀빈이 왔을 때, 가서 한국요리를 선보여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음식점들이 새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치있는 맛은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죠. 우리 고유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한식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들. 전통요리전문가! 전통요리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요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으로도 OK! 물론 기본적인 요리 솜씨를 갖추어야겠지만, 체력과 끈기, 응용력과 사명감을 겸비해야 진짜 전통요리전문가로 인정받을수 있다구. 전환되는 템플릿 스타일의 레이아웃 전통의 맛으로 현대와 교감하는 맛의 아티스트! 요리에 대한민국의 문화를 정수를 담아내는 전통요리전문가! 그 명예로운 요리의 세계는 여러분에게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9-08-22 | 조회수 :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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