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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김호 교수님과 함께한 ‘억울함을 없게하라’, 조선의 정의 심화학습 (#제주목관아 #흠흠신서 #다산_유배길)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이번 도깨비 문화유산 여행에서는 차이나는 클라스 78화 <'억울함을 없게하라' 조선의 정의>에 대한 심화학습을 진행해보려 합니다. 김호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던 조선의 법의학,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죠?
'억울함을 없게 하라'라는 제목처럼, 철저한 수사를 위한 나름의 체계와 객관적 증거를 위한 과학전 접근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에 기반하여 도깨비 문화유산이 뽑아본 심화학습 문화유산의 키워드는 '제주목관아' '흠흠신서' '다산_유배'의 세 가지입니다! 키워드 하나하나 즐기러 가보실까요?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제주목관아, #흠흠신서, #다산_유배길



첫 번째 키워드, '관아'입니다.


관아란 고을을 관리하는 관원들이 정무를 보던 건물을 이르는 말입니다. 김호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시피, 고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고 관리햇던 주인공들이 바로 이 관아에서 일했던 관원들입니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 현령부터 부윤까지 나눠지는 수령, 사또를 필두로 고을을 위해 관원들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했던 장소가 관아입니다. 관아에는 왕의 궐패와 전패를 모셔둔 객사, 조세를 위한 창고 등 다양한 부속 건물이 있었습니다.

 
동헌
△ 임경업 장군이 업무를 처리했을 동헌(낙안읍성 관아)
 
동헌


이 중에서 수령이 주재하며 집무를 보던 동헌이 바로 사건의 판결을 내리는 재판장이었다고 합니다! 높은 마루에서는 수령이 판결을 내리고 마당 바닥에서는 판결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관아는 현재 읍성과 함께 해미, 수원, 강화, 낙안, 홍산등에 잘 남아있는데요! 그 중 떠나고 싶은 섬, 제주도의 '제주목관아'에 대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문화유산 여행스케치에서 제주목관아에 대한 여행 가이드를 받아보세요^^)


[문화유산 여행스케치-제주권] 제주민의 손길로 재건된 탐라 천년 통치의 심장부, 제주목 관아


두 번째 키워드는 '흠흠신서'입니다.


정약용의 대표저작 중 하나인 흠흠신서는 조선의 형법서입니다. 편생 민중을 위했던 학자인 만큼 정약용은 수령들이 법에 밝지 않아 백성들이 억울한 판결을 받는 상황을 주의하고자 했습니다. 때문에 흠흠신서에는 당시 법전에 대한 요약 및 해설과 함께 다양한 사례들을 담고 있어 최초의 율학 연구서이자 실무 지침서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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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오취리 > 안녕하세요? <꿀잼! 문화유산여행은 처음이지?> 샘 오취리입니다.
자막> 샘 오취리 대한 가.나.인
최한나 > <꿀잼! 문화유산여행은 처음이지?> 역사지기 한나샘입니다.
자막> 최한나 역사 크리에이터
캠벨> 안녕하세요? 궁금쟁이 초등학생 캠벨입니다.
자막> 캠벨 에이시아 역사 궁금쟁이 / 진정한 한국 사랑 대.한.가나인 / 한국문화 전도사 샘 오취리
자막> 안녕하세요. 한나 TV의 한나입니다. 누적 조회수 2000만뷰 역사 크리에이터 교과서 밖 역사 이야기 한나의 역사스캔들 저자 섹시&발랄 역사샘 최한나
자막> 문화유산 스토리 여행 재밌어요^^ 역사 궁금쟁이 부산소녀 캠벨 에이시아
자막> 오취리 셜록 사건 의뢰인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 증거를 찾아야해! 제발 범인 좀 잡아주세요. 진짜 억울합니다. 알아냈어. 범인은 바로 너!!! 뭐라카노??? 내가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고! 완전범죄였는데..
자막> 오늘의 주제는 과연?
최한나> 오늘 얘기할 인물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인물이에요.
자막> 오늘의 주인공은 유명한 인물??? 한나샘이 제일 좋아하는 인물???
최한나> 제가 우리나라 역사 위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에요. 누굴까요? 힌트 드릴게요. 조선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막> 힌트 1 조선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 발명도 하고 책도 쓰고~ / 많은 책을 쓴 사람???
최한나> 발명도 하고, 책도 쓰고, 법의학서도 쓰고 참 많은 책을 쓴 사람이에요.
자막> 힌트 2 정조의 조력자!!!
최한나> 정조의 조력자, 정조의 오른 팔.
오취리> 아~ 저도 정조 좋아하잖아요!
자막> 힌트3 수원화성을 거중기로 지은 사람은?
최한나> 수원화성을 거중기로 지은 사람!
자막> 정.약.용 / 정답!!
최한나> 바로 정약용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자막> 정약용 완전정복 조선 과학수사 흠흠신서
최한나> 정약용은 어마어마한 책을 남겼죠. 그리고 정약용은 책도 한가지만 쓴 것이 아니라, <목민심서>라고 있어요. 목민 간의 도리!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서 500여 권의 책을 냈어요.
자막> 정약용 (1762~1836) 조선 후기의 천재 실학자. 경제,의학 법학 등 모든 방면에 능통
오취리> 500권이면 아파트를 몇 개..!
자막> 역시 대한.가나인 다운 발상
최한나> 지금으로 치면, 작가로서 원고료를 톡톡하게 받았을 텐데...
자막> 지금으로 치면 베스트셀러 작가 O 쓴 책만 500여권 O 베스트셀러 작가 O 오취리가 아파트 뭐라고 함
최한나> 그치만 그 돈을 유배에 가서 썼다는 거예요.
자막> 유배???
오취리>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최한나> 고향에서 떨어져서 멀리~
자막> 막간퀴즈 정약용이 유배 간 곳은? 강.화.도? X 오취리는 알듯 말 듯~ 무슨 정약용이라고 하죠?
최한나> 정약용의 호가 유명하잖아요~
자막> 부.산이죠~ 부.산 정약용!! X
최한나> 비슷했어요!
자막> 뫼산?? 낙하산(중얼중얼)
최한나> 정약용이 유배됐던 강진의 뒷산에서 차가 많이 나왔대요.
자막> 정약용이 유배간 곳에 차가 많이 났다고 함
캠벨> 차산?
자막> 차를 한문으로 하면? 아.차,산 ㅎㅎㅎㅎㅎㅎ
최한나> 차를 한자로 하면 ‘다’라고 하거든요.
자막> 차의 한문 다(茶) 다산(茶山) 정약용
최한나> 만약에 에이시아도 유배를 당해서,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멀리 강화도나 섬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자막> 부산 초등학생 에이시아 오마이갓~
캠벨> 부모님이랑 떨어져 산다는 게 상상이 안돼요.
자막> 상상하기 싫어요 참 좋은 아이네요~ 해방이다 유후~ 부모님 사랑합니다(하트)
최한나>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어른이지만 유배를 가다는 것 자체는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몰라하고 막 살지 않고 책을 꾸준히 써서 500여 권을 썼다는 거예요.
자막> 그럼에도 아 몰랑~ 하고 살지않고 유배 가서 500여 권의 책을 썼음
오취리> 솔직히 저는 유배를 당했으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자막> 유배를 갔다면 괴롭지 않았을까?
최한나> 네,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외로워하면서 막 살고 그런 사람도 있었는데, 정약용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예요. 책도 보면 대단한 책들이 있는데, 제가 3가지만 소개해드릴게요. 1표 2서라고 하는데~
자막> 정약용의 1표 2서 (一表二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최한나> 제 기준으로 제일 감동적인 것은 흠흠신서예요. ‘흠흠’이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는 뜻인데, 법의학서예요. 시신을 법의학적으로 검사하고,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CSI라고 할 수 있어요.
자막> 欽欽新書 조심할흠 조심할흠 조선시대 C.S.I O신중하고 신중하라 O조선시대의 C.S.I 길 그리섬 반장 O조선 슈퍼 히어로 / 흠흠신서: 조선 시대에도 법의학이 발달했다는 증거
최한나> 독을 먹고 죽었다고 쳤을 때, 그 독을 먹고 죽었는지 알아 볼 수 있는 게 ~
자막> 독살일 경우 은비녀를 이용해 수사 질소나 화합물과 반응하는 은의 성질을 이용. 반계법 시신에 생쌀을 넣었다가 꺼내서 닭에게 먹이는 법 / 무서워 (울음)
최한나> 그리고 식초를 묻혀서, 핏자국을 다 닦으면 요즘 과학수사할 때처럼 그런 식의 법의학이 흠흠신서에 나와 있다는 거죠.
자막> 고초액(강한 식초와 물을 섞은 용액)을 활용. 고초액을 바르면 혈흔이 나타남. 흡사 이런 느낌???
최한나> 흠흠신서에 지금으로 치면 사랑과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불륜 사건이 있어요.
자막> 흠흠신서에 조선 시대판 사랑과 전쟁이 실려있다? 너무나 좋아하는 오취리 리액션 대박
오취리> 사랑과 전쟁 여배우와 촬영한 적이 있거든요. ‘사랑과 전쟁’ 매니아 오취리 불.륜??
자막> ※ 잠시, 화면조정 시간입니다. 잠시 정약용 선생님 발명품 감상하시죠. 죄송합니다 선생님 ㅜㅜ 신중하고 신중하라
최한나> 흠흠신서에 나왔던 박여인 사건이라고 있는데
자막> 흠흠신서 사건파일 박여인 사건의 전모
최한나> 정조가 박여인 사건이 너무 뭐가 찜찜하다 싶어서 정약용에게 한 번 더 수사하라고 했어요.
자막> 정조 曰 ‘박여인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라’
최한나> 왜냐하면 박여인이 목을 맨 채 발견이 됐는데, 분명히 목을 매서 자살한 걸로 나왔어요.
자막> 목을 매 죽은 채 발견된 박여인
최한나> 그래서 시어머니가 하도 구박을 해서 자살해서 죽었다.
오취리> 그런데 보통 자살이면 목에 줄이 ...
자막> 자살이면 보통 목맨 흔적이 있을 텐데..
최한나> 그렇죠 목맨 자국이 있었겠죠! 그런데 목에 칼자국도 있었다는 거예요.
자막> 박여인의 목에 칼자국이 4개나 발견 진짜???
최한나> 목을 매서 죽었는데 칼자국은 왜 있는 걸까?
자막> 자살인가 타살인가 끔.찍.해 / 흠흠신서에 실린 조선시대 과학수사법 /1) 물로 시신의 목을 축축하게 적신 다음 2) 파의 밑동을 찧어서 살짝 데친 후 목조인 흔적이 있을만한 부위에 바른다 3) 그래도 흔적이 안 나오면 다시 시신을 덮고 술찌게미를 바른다 4) 초주를 뿌리고 한참 후 걷어내서 조사를 하면 목을 맨 흔적이 나온다
최한나> 그러니까 과학적인 기법인거죠. 그런데 이런 기법을 사용했음에도, 목을 졸린 흔적이 안 나왔다는 거죠.
자막> 박여인의 시신에서 목을 맨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최한나> 사람이 죽을만큼 목이 졸렸으면 엄청난 흔적이 나와야하는데, 죽은 상태에서 목을 걸은 거죠...
자막> 박여인이 죽은 상태에서 누군가 매달았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최한나> 아 이것은 타살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목에 난 상처를 살펴봤어요. 그래서 너희들이 죽인 게 아니냐고 시어머니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다. 목을 졸랐는데도 안 죽으니 우리 며느리가 목을 은장도로 찔렀다.”라고 말한 거예요.
자막> 박여인의 시어머니 曰 ‘ 목에 있는 칼자국은 며느리가 찌른 것이다’
최한나>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걸 또 발견한 거예요. 만약에 오취리가 칼로 목을 찔러서 죽었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찌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취리> 나는 아플 것 같은데요..?
최한나> 한 번만 찔러도 아야 아파..
오취리> 아야! 나는 안 죽을래
최한나> 맞아 바로 후회하고
최한나> 아무리 찔러도 한번 찌르고 두 번째부터 힘이 없어져요. 이를 ‘주저흔’이라고 해서 자살할 때 주저하게 된다 해서 주저흔이라고 하는데 주저흔 없이 4개가 빵! 빵! 빵! 찔려있다는 거죠.
자막> 박여인의 칼자국에는 주저흔이 전혀 없었음
최한나> 그래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 결론을 내고 내막을 알아봤더니
자막> 타살이라 결론을 내고 박여인의 시어머니를 취조하니.. 시어머니 너가 죽였지!!!
최한나> 시어머니가 자백을 한 거예요. 알고 보니 시어머니에게 내연남이 있었던 거예요.
오취리> 아~ 바람?
자막> 박여인의 시어머니에게는 내연남이 있었고
최한나> 시어머니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며느리가 본 거예요. 아무래도 19금적인 장면을 봤겠죠?
자막> 시어머니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박여인 헐
최한나> 빼도 봐도 못하는 거죠.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입을 막기 위해 죽인 거였죠. 며느리의 입을 막기 위해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 억울하게 죽은 박여인 사건을 해결했던 것이 흠흠신서에 나와 있습니다.
자막> 억울한 박여인의 한(恨)을 과학수사로 풀어줌. 누구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정약용 / 조선 제일의 명.콤.비 이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 흠흠신서(欽欽新書)
자막> 조선의 정의를 구현하다 / 나중에 꼭 읽어야징~
최한나> 흠흠신서 읽고 싶어지죠? 여러분, 정약용의 저서는 요즘에 다시 나와도 베스트 세러가 될 정도로, 정약용은 하나 하나 감동적인 스토리 있는 책을 500여 권이나 썼다라는 거죠.
자막> ‘정의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책 흠흠신서. 이런 책을 500여 권이나 쓴 정약용
최한나> 에이시아는 어땠을 것 같아요? 왜 책을 썼을까? 도대체?
캠벨> 제 생각에는 후손들에게 자신의 그대로를 물려주고 싶다고 해야 하나?
자막> 후손들을 위해 책을 쓰신 거 같아요
최한나> 뭔가 남겨주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기는~ 아들들이 아파하면서 맨날 병도 생기고 복숭아뼈가 문드러질 정도로 책만 쓰는 정약용에게 “왜 아버지는 책만 쓰세요?”라고 물어봤더니, 정약용이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자막> 정약용의 아들이 묻길 ‘왜 아버지는 책만 쓰세요’ / 내가 책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나를 유배 간 죄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수많은 책을 남겨놓으면 미래 후손들은 나를 이 책으로 기억할 것이다
최한나> 그러니까 이 책 속에서 나를 기억할 거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소름이 끼쳤어요. 존경스러운 느낌이 나잖아요
자막> 너무 멋있어~ 내 이상형이야 (하트)
오취리> 제가 봤을 때 먼 미래 가나 사람이 여기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상상을 한 번도 해보시지 못했을 텐데...
자막> 먼 미래에 가나 사람이 이런 이야기할 줄은~ 정약용 선생님 존경합니다
최한나> 맞아요! 자신에 대해서 가나 사람이 이야기 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겠죠! 이야~ 가나 사람도 존경하는 정약용! 최곱니다.
자막> 오취리도 존경하는 정.약.용 선생님 최고에요! 꼭 메모하세요~
최한나> 여러분 그럼 그 유명한 정약용이 살았던 곳은 어디다? 바로 남양주정약용생가
자막> 정약용이 살았던 곳 남양주정약용생가!! 그리고 수원화성
최한나> 또? 수원화성 여러분~ 정약용생가와 수원화성 꼭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자막> 정약용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여러분도 꼭 가보세요! 꼭 메모하세요
오취리>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200년뒤에!!
자막> 이것이 한.류.스.타의 연기다!!!
오취리> 큰 환란이 일어날 것이요!
자막> 무학대사의 현란한 손드립 / 참자 웃음 / 또 애드립(맛들림) 애드립 그만 좀 해요
자막> 오취리의 드립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최한나> 동향한다는 소리는 내 듣지 못했오, 남쪽을 바라봐야 하오! (죄송합니다)
자막> 죄 송
오취리> 미안해 미안해 하지마~ 내가~
자막> 미안해 미안해 하지마 눈코입 오취리 버젼 ㅋㅋ 이것이 가.나 원빈의 연기다! 한나샘 연기 쉽지 않죠? ㅎㅎ / 웬 돌고래 소리가 나 어느새 병맛 연기에 심취 ㅋㅋ 이 맛이 병맛 미춰버리겠네 ㅋㅋ 이게 우리 연기의 흑역사로 남을지 몰라...


신중할 흠자를 두 번이나 사용하는 흠흠신서는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생각할만한, 법의 중요성과 영향력에 대한 경고같이 느껴지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흠흠신서, 천상의 컬렉션에서 윤두서 자화상, 고려 은제주전자와 함께 만나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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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을 매혹시킨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합니다. 세상에 없던 문화재 배틀쇼, 천상의 컬렉션! 오늘도 저희 무대엔 세 개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진, 아름다운 보물들이 오르게 되는데요. 100분의 현장평가단은 호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쏙 들었을 때, 이 보물이 진짜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여러분 옆에 있는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과연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어떤 보물이 오르게 될까요? 지금, 만나보시죠~
 
이현우> 제가 오늘 소개할 그림은요. 아~주 귀한 그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딱 하나!!뿐인 국보 자화상이에요. 그런데 이게 좀 기이합니다. 한 사내의 얼굴이 허공에 붕- 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 없습니다. 머리 윗부분? 싹둑- 잘려 있죠. 제 자리에 있어야 할 두 귀? 역시, 없습니다. 수염은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 아래엔 목도, 상체도, 온 데 간 데 없어요. 무슨 그림에 없는 게 이렇게 많죠? 이 자화상의 주인, 누굴까요? 왕? 아닙니다. 장군? 아니에요. 그럼 누구냐? 다산 정약용 아시죠? 정약용의, 어머니의, 외할아버지! 윤두서입니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과 어깨를 나란히 한, 뛰어난 화가예요. 이 자화상은 윤두서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무려 3년 동안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는 터럭 하나 함부로 하지 못하던 시대에 귀를 떼어내고, 신체를 생략해 그린다? 그것도 명문 사대부 출신이? 이거, 이거,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대체 윤두서는 왜 이런 이상한 자화상을 그렸을까요. 떵떵거리는 집안에서 태어난 윤두서는 스물여섯에 진사시에 급제할 정도로 머리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었어요. 그 힌트가 바로 이 자화상에 숨어 있습니다. 여기! 머리에 관모, 왜 잘렸을까요? 그가 살았던 숙종 시대는 조선 역사상 당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어요. 당시는 서인 집권기! 남인 출신인 윤두서! 벼슬? 꿈도 못 꿉니다. 목숨을 부지한 게 천만다행이죠. 평생 벼슬한 적이 없으니 관모가 없었겠죠. 그래서 그 부분을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참 당당해 보이죠? 사실 제가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다들 너무 깜짝 놀라시는 거 아닌가요? 아니 왜 이러시나? 저 그림! 좀 잘! 그립니다. 제가 가끔 자화상을 그리는데요. 참 이상한 게 제가 평소 콤플렉스로 여기는 부위는 아주 작게 그리거나 아예 안 그리게 되더라고요. 벼슬 못한 거.. 윤두서에겐 이게 평생의 한! 콤플렉스였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이 잘려진 관모에 반영된 것, 아닐까요? 자, 벼슬이 없으니 세상일은 꿈도 못 꿉니다. 그럼 뭘 했냐? 당시 아주 천하게 여겨진 그림을 그립니다. 현실 도피로 우아하게 그림이나 그린 것 같죠. 그런데 윤두서의 그림, 아주 날카롭습니다. 이 그림 한번 보세요. 둘 다 윤두서의 그림인데 ‘다른 부분’이 딱 한 군데 있죠. 찾으셨나요? 주인공이 다릅니다. 이건 양반, 이건 서민. 낮잠 자는 선비에서 짚신 삼는 서민으로! 당시 세상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천대받던 서민이 화폭에 등장합니다. 터치가 아주 섬세하고 세밀해요. 얼굴 표정이나 동작은 어찌나 사실적인지 마치 그 당시 사진을 보는 것 같죠. 나물도 캐고, 돌도 깨고, 목각도 깎고, 밭도 갑니다. 모두 서민이에요. 또? 엄청 ‘열일 중’이죠. 이름 없는 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건 엄청난 혁명입니다. 그야말로 대박 사건!! 김홍도, 신윤복보다 무려 반세기나 앞서 ‘최초로’ 서민을 그린 화가, 윤두서는 조선 땅, 조선의 사람들, 조선의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사람, 그림만 잘 그린 게 아니에요. 서민을 대할 때 거짓이나 꾸밈이 없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하루는 어머니가 윤두서에게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준 수천 냥의 빚을 받아오라고 시킵니다. 그래서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가난하더래요. 윤두서가 어떻게 했을까요. 그 자리에서 채권을 모두 불살랐다고 합니다. 얼굴만 보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데 마음 씀씀이는 조선 최고의 휴머니스트입니다. 넘치는 재능, 고귀한 인격, 뜨거운 열정까지 가진 이 멋진 남자! 하지만 세상으론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리고 윤두서의 주변에는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많았어요. 스물둘, 윤두서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이 무려 아홉 명이나 차례로 하늘나라에 가요.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은 것도 서러운데, 유일한 ‘내 편’이 하나둘, 허망하게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늘 참 무심하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죠. 슬픈 운명을 타고난 한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봅니다. 그가 마주한 자기 자신,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윤두서의 자화상을 자세히 보면요. 열일곱 개의 주름이 있습니다. 돌돌 말아서 눌린 자국입니다. 그림을 그리다 돌돌 말아두고, 또 다시 펴서 그리고.. 이걸 3년 내내 반복했어요. 그림 좀 그린다는 윤두서도 자신의 얼굴만큼은 한 번에 그리지 못한 겁니다. 자신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없이는 절대! 그릴 수 없는 게, 바로 이 자화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주름이 수많은 나날, 고뇌의 흔적처럼 보여요. 잘려진 탕건, 사라진 두 귀와 목, 그리고 상체.. 윤두서는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저는 이 그림을 보면 볼수록 추상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감하고 단호한 생략.. 그래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지 않나요? 남인이라는 신분도, 세상이 주는 벼슬도, 부유한 집안이라는 배경도.. 세상이 주는 이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깨달음의 표시, 아니었을까요. 사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완성이냐? 아니냐?’ 치열하게 논의될 만큼 분명 이상하고 기묘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화상이 완벽하게 완성된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이 자화상에 윤두서가3년 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 그 치열한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어떠십니까. 윤두서의 자화상.. 삶이 버거워도 외면하지 않았고, 괴로워도 불평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주저앉지 않았던, 자신의 현실을 누구보다 당당하게 마주보기 원했던 한 사내의 인생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MC 한상헌> 자, 이현우 씨가 소개한 윤두서의 자화상! 이제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윤두서 알면 알수록 개척자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시대를 앞서 간,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현우 씨가 소개한 윤두서의 자화상. 최후의 한마디를 들어볼까요? 이제 이현우 씨의 <윤두서 자화상> 투표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이현우 씨,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현이> 우아합니다. 그리고 기품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전자로 불리는 이 작품.베르사유 궁의 샹들리에 조명 아래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영국 버킹검 궁에서 여왕의 티타임에 쓰였을 것 같기도 한 이 아름다운 보물은 과연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요? 빅토리아 시대, 2백 년 전이죠? 르네상스 때도 4-5백 년 전 이에요. 그런데 이 주전자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거의 천 년 전, 9백 년 전에 탄생됐습니다. 이 유물 어디서 만들었을 것 같으세요? 세상에 딱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은 고려! 의 은제금도금 주전잡니다. 혹시 우리에게 이런 유물이 있던 걸 알고 계신 분? 생소하시죠? 주전자는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인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놓여 있는데, 관람객들에게 인기 만점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주전자는 한 장인께서 그 작품을 그대로 복원한 것인데요. 한 번 천천히 이 걸작을 볼까요? 주전자 몸체를 이루고 있는 이 문양. 대나무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꽃잎 한 장 한 장이 살아있는 듯 화려하게 핀 연꽃 위로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쳐 날아오를 것 같은 이 봉황이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은 한 장을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펴고 쪼아서, 이런 정교한 모양들을 만들었단 겁니다. 이 주전자를 한 번 본 사람들은 이것이 한국에 있었다면 당연히 국보가 됐을 거라고 얘길하죠. 그런데 이 주전자는 어쩌다가 저 멀리 미국까지 건너가게 된 걸까요? 아니, 메이드인 고려가 맞기는 한 걸까요? 자, 이 주전자를 한번 봐주세요. 이게 청자로 만들어진 주전자인데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12세기 고려의 보물입니다. 보세요. 봉황 연꽃 대나무... 정말 모양이 쌍둥이같이 똑같죠? 어쩌면 이 두 주전자는 같은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졌거나, 혹은 고려에서 유행하던 명품스타일을 본 딴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은제주전자가 고려에서 왔다는 건 보스톤미술관의 기록에도 남아있는데요. 때는 1935년. 일본 최대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상회의 뉴욕지점에서 동양 예술품이 경매가 열립니다. 동양의 유물들이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으로 팔려나갔죠. 보스턴 미술관은 당시 돈으로 1만 달러에 이 은주전자를 구입합니다. 흙을 뒤집어쓰고 녹이 잔뜩 슬어 처음엔 은이 아닌 청동으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고 해요. 주전자와 함께 야마나카상회에서 받은 정보는 단 하나.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훼손된 왕과 귀족의 무덤들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누가 발견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야마나카 상회가 이 주전자를 손에 넣었는지 안타깝게 기록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어요. 우리는 그동안 ‘한국의 미’ 하면 뭘 배웠나요? 고졸한 멋! 소박한 아름다움! 이런 것만 배웠었잖아요.
그런데 이 주전자를 보니 어떠세요? 그동안 우리 문화재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부수는 보물 같지 않나요? 그럼 대체 고려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기에, 이토록 화려한 물건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걸까요? 고려왕 의종과 청자기와 이야기 먼저 이 아름다운 주전자가 탄생할 무렵에 전해지는 전설을 하나 들려드릴게요. 이게 뭔지 아시겠어요? 기왑니다. 기와는 기완데 청자로 만든 기와예요. 모란꽃 문양까지 새겨 넣은 것이, 거의 작품 수준이죠. 고려 왕 의종이 정자를 하나 세우는데 청자를 기와로 만들어서 아름다운 정자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에이~ 어떻게 청자로 건물을 지어? 그냥 전설로만 여겼죠. 그런데! 1965년, 실제로 발견됩니다. 대구에서 진짜 고려청자 기와가 나온 거예요. 그 귀한 고려청자로! 믿어지세요? 우리에게도 이토록 아름답고 화려한 시대가 있었던 겁니다. 그럼 의종은 왜 이토록 화려한 건물을 세웠느냐, 고려에서는 문벌 귀족들이 왕보다 더 힘이 셌어요. 문신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의종이 청자로 덮은 화려한 정자에서 연회를 열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죠. 예술로서 힘을 과시한다. 재밌지 않나요? 그리고 권력 투쟁이 가장 치열해지는 12세기! 고려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무후무의 예술이 탄생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고려의 예술을 신의 경지까지 끌어냈느냐, 바로 정치격변이었어요. 드라마 <도깨비> 보면 문벌 귀족들이 천한 무신 주제에~. 라면서... 공유 씨 무시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문벌들에게 천대받던 무신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합니다. 무신정변이죠. 그렇게 칼로서 권력을 잡았지만 과연 백성들, 또 문신들이 그들을 하루아침에 인정해줬을까요? 아마 택도 없지 않았을까요? 힘으로서 나라를 ‘장악’할 순 있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으니까요. 이때 고려 무신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바로, ‘아름다움’에 투자합니다. 정권을 잡은 고려 무신들이 공예가들을 찾아가서 자신들을 위한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 시작해요. 무신들한테 이 예술은 단지 취향이나 취미가 아니었어요. 자신의 존재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던 거죠. 칼보다 훨씬 강한 무기 말이죠. 이때부텁니다. 너도나도 훌륭한 장인들을 섭외하려고 난리가 난리가 나요. 중국 예술품보다 더 뛰어난, 더 정교한 예술품들을 만들어달라고 팍팍 지원합니다. 고려의 특허기술, 상감기법이 나온 것도 이때구요. 베트남, 이란, 필리핀까지 고려 명품이 입소문이 나면서 Korea 코리아가 세계에 불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땝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들의 열등감이 한국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기를 열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찬란한 시절은 우리에게서 잊혀졌습니다, 오죽하면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고려청자를 몰라보고 이 자기는 우리나라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까지 해요. 그리고 그거 아시나요? 우리 손으로 고려 무덤을 열어본 일이 거의 없다는 거? 개성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고분이 일본도굴꾼에 의해 파헤쳐 졌습니다. 우리는 고려에 대한 많은 기억을 송두리째 강탈당했죠. 고려 탱화 160점 중에 150여점이 외국에 있습니다. 그 수많은 고려청자 중에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건 많지 않죠. 그리고 딱 한 점. 딱 한 점. 남아 있는 고려의 은제주전자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놓여 있습니다. 잊혀져버린 시절입니다. 송두리째 빼앗긴 기억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보스턴 미술관에 놓여 있는 이 은제주전자가, 존재로서, 우리 역사에 다신 없을 찬란한 시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죠.
MC 한상헌> 이현이 씨 오늘 은제주전자 못지않은 화사한 자태로 무대에 서주셨군요. 준비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이현이> 프리젠팅 준비하면서 은제주전자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그냥 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어떡해서든 화려한 고려의 12세기를 표현할 수 없을까 노력을 해봤습니다.
MC 한상헌> 우리에게 이토록 찬란한 고려의 시간을 일깨워준 은제주전자! 이현이 씨의 <고려 은제주전자>는 현장평가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이현이 씨의 최후 한마디와 함께 여러분의 투표를 마감하겠습니다.
이현이 > 우리 주전자를 다시 한 번 봅시다. 주전자의 주둥이 부분까지도 막 솟아 자라나는 죽순으로 생생하게 표현했어요. God is in the detail.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했죠. 과감하죠? 그리고 정말 아름답습니다. 같은 시대 지구상 어디를 뒤져도 찾을 수 없는 명품 중에 명품이죠. 칼보다 강한 예술. 우리에겐 잊혀진 르네상스. 이제는 사라져버린 찬란한 고려의 시절! 지구상에 단 하나 남은 고려 은제 주전잡니다.
MC 한상헌> 이현이 씨의 <고려 은제금주전자> 투표를 마감합니다! 자, 이현이 씨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공형진> 한 여인이 있습니다. 백주대낮에 이웃집 남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죠. 그런데 희한합니다. 이 여자가 살인자치곤 너무 당당해요. 심지어 큰 소리까지 칩니다. “내 남편을 죽인 살인자를 벌했을 뿐이다!” 라고요. 오 소름 돋죠. 이웃집 남자가 자신의 남편을 살해했고, 자신은 그 복수를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사건을 조사 하던 사람들이 단체로 멘붕에 빠져요. 과연 이 여인은 잔인한 살인자인가 남편의 원수를 갚은 열녀인가- 하고 말이죠 자, 지금부터 이 미스터리한 여인의 진술을 되짚어 볼게요. 먼저 그녀의 주장! 이웃집 남자가 자신의 남편을 칼로 살해했다는 건데요. 첫 번째 단서죠? 살인 도구였다는 칼입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해요. 상당히 무뎌요. 떡을 자를 때 쓰는 칼이더라고요. 그리고 또 두 번째, 시신에 난 상처! 보세요. ‘왼쪽 복사뼈 아래, 4센티미터 정도의 긴 상처가 났다.’ 자 누구를 죽이려고 해요. 어떻게 하겠어요? 보통은 찌르죠? 그럼 폭은 좁은데 깊이는 깊어집니다. 그런데 남편 몸에난 상처는 정반대예요. 길이는 긴데 깊이는 얕은 상처들만 있거든요. 즉 베인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변인들의 증언! 남편은 그 베인 상처가 생긴 후에도 한 달 동안 멀쩡히 일을 했대요. 평소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죽은 겁니다. 그럼 이게 뭐다? 타살이 아니라는 거죠. 결국 그 남자는 그 여자 남편을 죽이지 않은 거예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여자한테 죽임을 당한 거죠. 그런데 이 사건은 사실 조선시대에 벌어진 일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사건을 단박에 풀어냈느냐, 조선 시대에 작성된 수사노트 덕분인데요, 그럼 이 수사노트의 주인이 누구냐. 궁금하시죠. 남자인 제가 봐도 멋진 형님인데요, 사실 오늘 그 분의 이름이 한 번 나왔습니다. 누굴까요? 네. 맞아요! 정약용입니다. 사실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고을 군수는 이 여자를 남편의 원수를 갚은 여자라고 무죄로 풀어줬거든요. 하지만 정약용이 이를 뒤집은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판결합니다.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살인범이 될 뻔 했던 이웃집남자의 억울함은 풀리고 여인은 죗값을 치르게 되죠. 대단하죠? 정약용은 당대 최고의 실학자이자 의술에, 법에, 공학에 이건, 뭐 빠지는 것 없는 시대의 엄친아 중 엄친아! 입 아프지만 이 정 형이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시대를 뛰어넘어 보기 힘든 천재거든요. 게다가! 심지어! 조선의 프로파일러이자, 강력계 형사. 또 판사였다는 사실, 몰랐던 분들 많으시죠? 그가 쓴 이 수사노트 이름도 범상치 않아요, 흠흠신서. 흠흠, 헛기침 소리가 아니에요.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수사할 때는 물론 형벌을 가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을 기하라는 뜻입니다. 자그마치 30권에 달해요. 게다가 모두 살인사건이에요. 살인사건만 535개! 엄청나죠? 사건 개요부터 사건 해결 방법까지 몽땅 담아 프로파일링을 한 겁니다. 그가 쓴 당시의 ‘살인사건 실무 지침서’ 우리나라 최초로 등장한 율학 연구서예요, 이게. 그럼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을까요? 1년? 10년? 놀라지 마세요. 무려 22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약용이 형조참의, 지금으로 치면 법무부 차관을 지내던 시절 임금 정조가 정약용을 불러 내린 명이 그 시작이었어요. 억울하게 죽는 백성이 없도록 하라- 그렇게 시작한 일이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20년이 지나서야 완성된 거죠. 제가 평소 탐정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특히 이 정 형을 만나기 전 까지 제가 푹 빠져있던 캐릭터가 있었는데 바로 영국의 셜록 홈즈입니다. 다들 아시죠. 근데 정약용 형님과 셜록홈즈가 묘하게 닮은 부분이 많아요. 첫째, 사소한 거에 집착합니다. 아무리 작은 단서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우리 정 형- 증거를 위해서라면 굴검! 시신이 묻힌 무덤을 파헤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죠.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털끝이라도 갈라보고 작은 가시라도 쪼개 보라“고 합니다. 그게 수사관의 자세라는 거죠. 아. 피곤한 캐릭터예요. 두 번째, 똥고집입니다. 남의 말 안 듣고 눈치도 안봅니다. 게다가 어찌나 꼿꼿하기 그지없는지. 임금이 내린 판결이라도 비판합니다. 형수와 바람핀 남자를 살해한 시동생이 있었어요. 당시 조선의 국법은 불륜을 저지른 자를 가족들이 처벌하는 걸 허용했다는군요. 무섭죠? 철저한 유교사회였으니까요. 이 사건을 최종 판결했던 정조도 살인을 저지른 시동생을 용서해줍니다. 그런데 정약용은 정조의 판단을 이 흠흠신서에서 대놓고 비난해요.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다고 마음대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폭력이 조선 땅에 난무하겠냐는 거죠. 정의에 어긋나는 문제라고 여기면 왕에게도 나서서 맞서는 이 바로 그가, 우리 정형. 정약용입니다. 이 흠흠신서를 썼을 땐 정약용이 그렇게 잘 나가던 때가 아니에요. 유배를 당한 17년의 기간 중에 썼으니까요. 아무도 그의 말에 주목하지 않을 때죠. 그 와중에 무려 20년에 걸쳐 이런 방대한 책을 쓴 그 이유! 흠흠신서의 서문에 적혀있습니다. “살려야할 사람은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고 서도 태연하고도 편안할 뿐만 아니라 비참함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도 구제할 줄 모르니 이것이 깊은 재앙이 아닌가.” 당시 백성들...힘들었습니다. 수사를 맡은 고을 관리들이 주먹구구식 수사에, 고문에, 심지어 죽이기까지... 별의별 수탈을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이는 백성에게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게 정약용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함봉련이라는 머슴이 있었거든요, 이 사람이 누구냐면 주인 양반을 대신해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던 상황이었어요, 어이없죠? 그 죄명이 뭐냐, 살인이었어요. 그러니 이 함 씨가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계속 억울하다 해도 다들 외면했던 거죠. 허나 정약용은 이때도 나서서 재수사합니다. 그리고 역시나 공정하게 판결을 뒤집고 머슴 함봉련을 무죄로 석방하죠. 그의 범죄 기록까지 모두 불태워줍니다. 그리고 깨끗한 옷 한 벌을 선물해줘요. 조선시대, 노비거든요? 그에게도 역사에 죄인으로 기록되지 않을 인격이 있다는 거예요. 이 남자, 진짜 배려심 돋지 않습니까? 결국 이 흠흠신서! 단순한 사건 기록물이 아닙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약용의 끊임없는 물음이었고, ‘이 땅의 정의를 실현해야할 이들’에게 보내는 엄중한 가르침이죠. “지금 온갖 도둑이 땅위에 가득하다. 토지에서 토지세를 도둑질하고 굶주린 백성들의 양식을 도둑질 한다. 그리고 그 지위가 높을수록 도둑질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쌀 한 줌 훔친 굶주린 백성의 죄는 따지면서 더 큰 도둑질을 하는 사회 지도층의 정의는 누가 묻느냐는 겁니다. 대체 진짜 도둑이 누구냐는 거죠. 분명 조선 시대 얘긴데 뭔가 낯설지 않죠? 정약용의 답은 한결 같습니다. 신중하고 신중하라. 과연 나는 이 땅의 정의를 실현할 자격이 있는가-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묻고 또 물으라. 어쩌면 그의 이 한 마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나요. 정약용의 흠흠신서입니다!
MC 한상헌>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정의를 고민하며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정약용의 흠흠신서. 과연 얼마나 많은 현장참여단들이 그의 생각에 공감했을까요? 공형진 씨의 최후의 한마디와 함께 투표 마무리하겠습니다.
공형진> 정약용 한 사람이 당시 조선의 정의를 구현하려던 의지! 얼마나 높았는지 다들 보셨죠. 한 사람이 사회 전체를 바꿀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정약용은 시대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약 20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요. 사실 수사 과학 기술은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발전했죠. 엄청납니다. 그런데 억울한 시민이 없게 하려는 국가의 의지나 책임은 어떤가요? 정약용이 살던 시대보다 도리어 후퇴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시 백성의 원망이 없는 세상을 간절히 바랐던 우리의 정 형, 정약용. 그가 흠흠신서에 담은 정신이 진정 필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요.
MC 한상헌> 자, 여러분 지금까지 공형진 씨의 <흠흠신서> 투표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멋진 무대 준비해주신 공형진 씨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자, 이제 호스트 세 분의 경연이 모두 끝났는데요. 이현우의 윤두서 자화상, 이현이의 고려 은제주전자, 공형진의 흠흠신서, 다들 어떻게 보셨나요? 이제 잠시 후엔 최종 투표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 전에, 먼저, 패널과 현장평가단 100인이 선택한 중간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위 OOO 씨의 OOOO가 OOO 표! 2위 OOO 씨의 OOOO가 OOO 표! 3위 OOO 씨의 OOOO가 OOO 표! 자, 이제 대단한 보물들 가운데 선택을 해주셔야만 합니다. 이번에는 중복 투표는 불가능하고요. 세 개 중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현장 평가단 여러분,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차마 단 하나만을 고르기 어려운 마음, 너무나 잘 이해되지만... 이제는 결정을 하실 땝니다. 자, 이제 최종 투표로 들어가도 되겠죠? 지금!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에 불을 밝혀주세요! 천상의 컬렉션! 이제 마지막 결과를 확인하는 시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과연 어떤 보물이 이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될까요? 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OOO씨의 OOOO가 올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등 하신 OOO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과 단 하나의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다산_유배길'입니다.

김호 교수님의 말씀에서 들었던 것처럼, 대명률을 따랐던 조선의 형벌은 태형, 장형, 도형, 사형 그리고 유배형까지 총 5형제도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남겨준 형벌제도는 단연 유배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배지의 거처와 그 곳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예술작품들은 유배당한 인물들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사료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 흠흠신서의 저자 정약용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냈습니다. 긴 유배 세월동안 1표 2서라 불리는 대표저작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써내려갔습니다.

 
다산 유배길
 
다산 초당


다산의 유배지는 거리도 엄청나 전라남도 강진까지 내려갔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사법기관 의금부의 터였던 서울 제일은행 본점부터 강진의 다산 초당까지 이르는 다산의 유배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영상으로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사람들 걷는 모습... 영상구성으로. 여기, 유배길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200여 년 전, 다산이 떠난 유배길을 몸소 체험하고자 길 위에 선 사람들... 그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길 위에서, 다산의 후예들을 만나다]
지난 11월 21일..초겨울 날씨가 제법 쌀쌀한 어느 주말 오후.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Q. 지금 어디로 이렇게 걷고 계신 것인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길을 몸소 체험하고자.. 이렇게 ?일째 걷고 있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이었던 다산 정약용.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긴 다산 선생은,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하는 등 실학을 집대성 하였으나,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 때 장기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그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지난 5일, 스무 명의 후예들이 처음으로 유배 길에 나선 것이다.
Q. 다산 유배길 아카데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참여 인원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강진군이 주최하고 다산 동호회가 주관하는 이번 여정은 서울 제일은행 본점 → 숭례문 → 남태령 → 과천 → 진위 → 평택 → 공주 → 계룡 → 정읍 → 장성 → 나주 → 영암 → 강진 사의재 도착 →다산초당 1801년, 당시 조선시대의 사법기관인 의금부 터였던 서울 제일은행 본점에서 출발해, 숭례문, 남태령, 과천, 진위, 평택, 공주, 계룡, 정읍을 거쳐..오는 22일이면.. 유배지인 강진에 도착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먼 길을 두 다리에 의지해 오직 걸어간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Q. 이번 유배길 체험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 다산 선생이 유배되어 내려가던 그 길을 직접 걷는 느낌이 어떤가? / 힘들진 않으신지? 발에 물집 생기거나 하진 않았는지? / 다산 선생이 유배되어 내려가던 그 길을 직접 걷는 느낌이 어떤가?
-200년 전..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길도 안 좋고.. 어려웠을 텐데.. 길을 이렇게 혼자 내려오셨구나.. 힘들면.. 아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몸소 느끼는 거죠.
Q.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인지?/해가 져서.. 더 걷기엔 무리가 있을 듯.. 오늘 여기서 숙소 잡고 하루 묵고..내일 다시 출발해야 할 거 같다.. 내일이면 강진에 도착할 수 있을 듯..
Q. 오늘은 몇 키로 정도 걸으신 건가? / 발이 이렇게 돼서 어떡하나... 가족들이 걱정은 안하는지? / 힘들면 포기할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는 이유.
그때.. 배낭에서 무언가 꺼내 들고 오는 사람.. 목민심서. 목민심서였다.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저술한 것으로 유배가 끝나는 해인 1818년 완성된 그의 대표 저서. 지방관이 지켜야 할 지침과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비판한 책이다.
Q. 그건 무슨 책인가. 그 책은 어디에 쓰시려고? - 낮엔 걷고.. 밤엔 목민심서를 한 장이라도 보면서.. 그 뜻을 되새기려고 노력..
Q. 목민심서에 대해 잠깐 설명해 주신다면... / 목민심서는 특히, 강진으로 유배되어 내려가신 이후.. 유배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집필하신 책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 더 느낌이 남다를 것 같기도 하다. 어떤가?
다음날 아침,아침 일찍부터 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들..
Q. 오늘은 어디까지 걸으실 예정인지? -오늘이면 강진에 도달할 예정.. 가슴이 벅차다
드디어 강진...마지막 남은 힘까지, 더욱 박차를 가하는 사람들..
Q. 드디어 도착이다. 17일간의 대 장정을 마친 소감이 어떤지?
사의재(四宜薺)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도깨비 문화유산의 심화학습 키워드 잘 확인 하셨나요? 서울 제일은행 본점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에 퍼져있는 조선 형법에 관련한 문화유산들! 김호 교수님의 수업을 기억하며 직접 만나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9-08-02 | 조회수 :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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