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문화유산채널

영상공모전
on air

주메뉴 시작

메뉴 열기, 닫기
검색어 입력

여행기

홈 문화유산뉴스 여행기

인쇄 공유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박환 교수님과 함께한 잊혀진 독립운동가 심화학습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독립기념관)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73회, 잊혀진 독립운동가 편 모두 보셨나요? 광복 73주년을 맞아 지난 광복절에 방영되었는데요. 박환 교수님과 함께한 차이나는 클라스 73회는 안타깝고 숭고한 마음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힘썼던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알려진 분들이 아니고서는 잘 알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분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봄으로써 다시금 우리의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도깨비가 선정한 키워드 3가지. 역사의 아픔이 담긴 '서대문형무소',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탑골공원', 독립의 발자취 '천안 독립기념관'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독립기념관


먼저,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로 가보겠습니다.
 
1908년, 일제는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형무소를 세웁니다. 김구, 유관순 등 우리가 잘 아는 독립운동가 분들이 이곳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옥사를 보면, 소수의 감시자가 수많은 수감자들을 감시하기에 아주 효율적인 구조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어른 다섯 명이 들어가기도 좁았던 방에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수감되어 있었을 만큼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


현재 서대문형무소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운동의 자료와 유물들을 전시하여 당시의 아픔을 배울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갖은 고문과 수모를 당해도 꿋꿋하게 신념을 지켰을 독립운동가 분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가슴 한 편이 묵직하게 아파옵니다.

 
이번 주말, 독립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자막> 문화유산채널의 새로운 프로그램
최한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역사지기 한나샘입니다.
오취리 / 안녕하세요? 정말 문화유산 처음인.. 샘 오취리입니다.
캠벨 / 안녕하세요? 궁금쟁이 초등학생 캠벨입니다.
자막> 진정한 한국 사랑 대.한.가나인 / 한국문화 전도사 샘 오취리 / 가슴이 아프다 / 오취리가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 안녕하세요. 한나 TV의 한나입니다.
최한나 / 안녕하세요. 한나 TV의 한나입니다.
자막> 누적 조회수 2000만뷰 역사 크리에이터 / 교과서 밖 역사 이야기 한나의 역사스캔들 저자 / 섹시&발랄 역사샘 최한나 / 역사강의 이보다 쉬울 수는 없다!! / 톡톡 튀는 입담 역사샘 최한나 / 문화유산 스토리 여행 재밌어요 / 역사 궁금쟁이 부산소녀 캠벨 에이시아 / 솔직 리액션! 호기심 많은 초딩 / 재미있는 문화유산 이야기 속으로~
자막> 서울 구[舊] 서대문형무소 (사적 제324호).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감옥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최한나 / 여기가 이제 60~70년대까지도 교도소로 사용했어요. 원래 독립군들을 가뒀던 교도소였는데 우리나라도 교도소로 썼던 거죠.
자막> 설렘 / 분노의 오취리 ※ 여러분은 잠시 후 분노한 오취리를 보시게 됩니다 / 마냥신기 / 오만상 ※ 여러분은 잠시 후 이런 표정을 짓게 됩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안으로 / 살면서 이런 곳 처음이다
자막> 한나샘)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면 여기로 끌려왔던거죠 / 에이시아가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유관순 열사도..
자막> 수감자들이 신었던 고무신 / 지하고문실로 가는 중
자막> 한나샘) 각종 고문들이 있어요 / 한나샘) 물고문도 있고... / 한나샘) 오취리는 느낌이 어때요?
자막> 살면서 절.대 오고 싶지 않아요!!! /  아까 올때는 설렌 표정이던데
자막> 오취리) 여기 갇혀있으면 / 오취리) 왠지 절대 나올수 없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최한나 / 우리 수영하다가 코에 물이 들어가도 괴롭잖아요? 거꾸로 세워놓고 코에 계속 물을 붓는 거예요. 고춧가루 물도 넣고. 너무 심하게 물고문을 당해서 폐에 물이 차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자막> ※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고통스럽게 사망하기도 했음 / 에이시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에이시아 / 너무 심해요!
최한나 / 꼬챙이가 지금 준비가 되어 있죠. 꼬챙이 있고.. 저기에 손목을 못 움직이게 넣은 거예요.
오취리 / 다 말해서 고문을 그만..
자막> ※ 정보를 제공해도 고문은 계속되었음
최한나 / 다 말한다고 해서 고문을 그만둔 건 아니에요. 차라리 자결하거나 죽여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결하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어요.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수감자들 사진을 보면, 특히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보면 얼굴이 되게 부어 있어요.
자막> 온갖 구타와 고문으로 얼굴이 부은 유관순 열사의 사진.1916년 이화학당 (지금의 이화여고) 재학 시 사진  /  유관순 열사
자막> 에이시아)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 할 때가 18살이었다고 들었는데.. / 에이시아) 고등학생이 그 고문을 다 참아냈어요???
자막> 한나샘) 참아내다가 결국은 순국하신거죠
최한나 / 여기 보세요. 상자에 사람을 넣고 잠도 못자게 하고...
자막> 이름하여 상.자.고.문 /한나샘) 상자에 사람을 넣고 / 한나샘) 발로 차고 흔들어서 / 한나샘) 꼬챙이에 찔리게 하는 거죠
자막> 에이시아 상자고문 체험 / 엄마 보고 싶어 엉엉 / 안되겠다..(깊은 탄식)
자막>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벽.관.고.문 체험 / 엄청 작음 / 하~~~~~~(겁안남) / 카메라도 안나옴
자막> 아~~~~~(공포) / 3분 후 / 난리도 아님
자막> 아수라장 / ※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화면임
오취리 / 으악악 대한민국 만세
자막> ※ 연기 아니었음 / 잠도 잘 수 없는 공간
최한나 / 왜 구멍을 뚫었냐면, 잠을 못자게 하려고 물을 뿌리려고..
자막> 얼마동안 있어요? / 한나샘) 24시간에서 48시간 / 헐..
에이시아 / 전 절대로 못버틸 것 같아요.
자막> 죽었다 살아나온 오취리 열사 / 한나샘) 일부러 더 잔인하게 고문하고 / 한나샘)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면 다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자막> 침울 / 에이시아) 광복이 돼서 진짜 다행이에요 / 일제 강점기 시 서대문형무소 내부
자막>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여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의 <그날이 오면> 中
최한나 / 자, 이제 중앙사로 들어가볼게요.
자막> ※ 서대문형무소는 광복 이후에도 교도소로 사용되었음 / 서울형무소로!
최한나 / 서울형무소로 사용해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학생들도 이곳에 수감되었어요.
자막> 여깁니다~ / 오~~~~ / 여기 꼭 보셔야 해요 / 으리으리한 중앙사의 모습 / 딱 봐도 감옥 / 어서와 이런 곳 처음이지
자막> 이달의 독립운동가 전시
최한나 / 이게 뭐냐면, 위급 시에 내려놓는 거예요. 아프다던가 생명의 위협이 있다던가.
자막> 패통 감방 안 위급한 상황을 간수들에게 알리기 위한 도구
최한나 / 그 때는 소통을 할 수가 없으니까.
자막> 감방 안을 살펴보기 위한 감시창 / 직접 체험해보는 에이시아
최한나 / 그리고 사실 여기 안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서로 벽을 퉁퉁 쳐서 소통을 했었어요. 이를 타벽통보법이라고 해요.
자막> 타벽통보법/ 감방 벽을 두드려 미리 정해 놓은 암호로 수감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자막>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김정련 선생이 타벽통보법을 알려주다가 간수에게 들킴
자막> 김정련 선생이 똥통을 뒤집어엎고 소란을 피워 위기 모면 / 그때는 얼마나 추웠을까..
최한나 / 심지어는 이 추운 곳에 아이랑 같이 있었던 분이 계셨어요.
에이시아 / 아, 여성 독립운동가
최한나 / 안경신 선생님은 애기가 갓 태어나자마자 여기가 갇혀서, 아기가 춥고 영양실조에 걸려 눈이 멀었다고 해요.
자막> 안경신 (1888.7.22 ~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와 교섭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침
자막> 경찰 1명을 죽이고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하여 체포됨 이때 안경신은 임신 5개월된 임산부의 몸이었다
자막> 때는 일제 강점기 슬프도다 나라를 잃은 설움에 오취리 나카야마 간수
자막> 도대체 왜!!! / 일본도청과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거야? 조선사람이 독립운동을 해서 잘 살겠다는게 무슨 죄냐 아직 정신 못차리고 있구먼  완.벽.빙.의 연기 독한 X 대한독립 만세, 대한 독립만세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자막> 다음 코스는 독방 일명 먹.방
최한나 왜 독방을 먹방이라고 했을까요? 어둡다, 깜깜하다.
자막> 단 한줌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먹방
최한나 / 에이시아 저게 뭐처럼 보여요? 하수구처럼 보이는 게 화장실이에요. 저기서 용변을 해결했어요. 정말 최저의 생활을 하신거죠.
자막> 불과 0.75평 몸조차 누일 수 없는..  들어가시죠 /  (누워서 못잠) /  안 보이고 깜깜하고.. / (외롭) (쓸쓸)
자막> 오취리 열사 독방 감금되다! / 같이 독립운동한 사람이 누구야!!! / 김태우?? / 나(박지성)??
자막> 바로 불어버리는 오취리 열사 / 와.. 이게 (할말잃음) / 이번엔 에이시아 차례 / 진짜 추워 / 느낌이 어때요? / 안 들어갈 거예요
자막> 에이시아) 독립운동하신 분들이 존경스럽고 저는 (독방에서) 1분 밖에 못 버텼는데 그분들은 하루, 이틀 버텨냈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고 너무 존경스러워요
오취리 / 여기 오면서 가나 독립운동가 분들을 생각하게 됐어요가나 독립운동 당시에 가나를 독립시키기 위해서 희생했고 목숨도 걸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막>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 여러분 태극기 보십시오! 그분들의 피와 희생으로.. 하.. (깊은 탄식)가슴이 먹먹
자막> 이번엔 또 어디로??
최한나 / 우리가 고문실도 보고 감옥도 봤는데, 가장 잔인한 곳이 있죠. 사형장...
자막> 가장 잔인한 곳??? / 헉.. / 으스스 / 이곳이 바로 사형장 /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곳
최한나 / 실제로 여기서 사형된 분들 중에 알려지신 분이 강우규 의사가 있어요. 노인의 몸으로 폭탄을 던진 분이에요. 65세 때, 3대 사이토 총독 마차에 폭탄을 던졌어요.
자막> 강우규 (1855 ~ 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어 사형
자막> 시체 처리??? 이번엔 또 어디로?
최한나 / 너무 심하게 고문을 당한 시체는 보기에 잔인해서, 외부에 유출되면 안될 수도 있잖아요? 이곳이 시체를 처리했던 시구문 입니다.
자막> 시구문 (屍口門) 일제 강점기 사형 집행 후 시신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한 통로 구타, 고문 등으로 시신에 흔적이 많은 경우,사형 사실을 외부적으로 공개했을 때  사회적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등에 이용
자막> 애국지사들의 시신을 감추기 위해 끌고 갔던 통로 / 소.름.돋.음 /  충격 / 자체 리버브 효과 / 얼마나 많은 시신들이 이곳에서 끌려갔을지...
자막> 1992년에 독립공원 조성 시 발굴 / 하.. (안타까움) / 뒷문으로 끌고 가서 대충 묻는거죠 / 말도 안돼 / 많이 놀란 에이시아
자막> 이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오취리 / 아 진짜.. / 복잡한 감정의 오취리 / 안타까움 슬픔 / 분노
자막> 벽만 봐도 으스스하고.. / 묵념의 시간을 갖기로~ / 죄송합니다 잊고 살아왔습니다
자막>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 도산 안창호- / 나라에 바칠 목슴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유관순 열사 - / 조선사람이 독립운동을 해서 잘 살겠다는게 무슨 죄냐  - 안경신 의사-
자막>그리고..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신 모든 분들 여려분의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여러분들도 서대문형무소에 오셔서 독립운동의 현장을 느껴보세요
자막>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자막> 서울 구(舊) 서대문형무소 (사적 제324호)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관람시간: (3월 ~ 10월) : 09:30 ~ 18:00(11월 ~ 2월) : 09:30 ~ 17:00      ※ 매주 월요일


이제 종로로 자리를 옮겨보겠습니다!

 
탑골공원 팔각정(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
△ 탑골공원 팔각정_김영자 사진작가


1897년 영국인 브라운에 의해 조성된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자 대한민국의 사적 제354호입니다. 3.1운동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공원 안에 있는 팔각정이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장소라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대원각사비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교통편도 좋아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니,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다녀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을 비롯한 그 당시 독립운동의 흔적들을 영상으로 만나보겠습니다.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NA / 서울 옛날 사진자막서울의 과거를 기록한 외국인이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세계에 최초로 알린 미국 언론인 그는 UPI통신 서울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이다.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목격자
 그가 본 3·1운동의 숨겨진 이야기를 보다.
<문화유산 여행길 - 푸른 눈의 목격자 3·1운동에 숨겨진 이야기>
NA /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어느 언덕에 그 옆 나무낡고 오래된 서양식 벽돌집, 딜쿠샤가 있습니다. 붉은 벽돌의 이층집...  건물 내부랑 낡은 흔적들여기 저기 낡은 흔적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는데요. 이곳은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입니다. 광산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테일러는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브루스와 함께 약 2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는데요. 그는 UPI통신 서울 특파원으로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최초로 보도하였습니다. 1923년그는 서울 행촌동에 집을 짓고 딜쿠샤라는 이름을 지었는데요. 딜쿠샤는 희망의 궁전, 이상향을 뜻하는 힌두어로 조선을 사랑한 그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줄곧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써온 앨버트 테일러는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는데요... 그가 본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서울 도심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공원이 있는데요. 서울 최초의 근대 공원, 탑골공원입니다.
자막 / 서울 탑골공원 (사적 제 354호) 1897년 영국인 브라운에 의해 조성된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현재는 옛 지명을 따서 탑골공원이라 불리고 있다
NA / 많은 이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한 이곳은 1897년 영국인 브라운에 의해 최초의 도심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요,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 불리던 고찰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원각사로 중건된 곳입니다.
자막 /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보물 제 3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제 2호)
NA / 삼일운동기념비, 동상NA탑골공원이 널리 알려진 것은 삼일운동의 발상지이기 때문인데요. 공원 내에 있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삼일운동을 기념하는 기념탑 등은 독립운동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공원 중심에 있는 팔각정은 삼일 만세운동을 이끈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으로 유명한데요. 이곳에 서니 우리 민족의 투철한 독립 정신이 느껴집니다. 서울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난 이후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는데요,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의 보복이 일어났습니다.
자막 / 3·1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 ‘제암리 사건’ / 일제는 사과를 핑계로 사람들을 교회에 모으고 사격을 가한 뒤 석유를 얹어 교회를 불태웠다. 그로인해 23명의 마을 주민들이 희생되었고 제암리 사건은 일제가 자행한 만행 중 하나이다.
NA / 일본 군인과 경찰들은 화성 제암리를 찾아와 마을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사격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것입니다. 며칠 뒤 이곳을 지나던 스코필드와 언더우드, 테일러 일행이 잿더미가 된 제암리의 참상을 우연히 목격하여 일제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막 /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 관련 재판 과정을 법정에서 취재한 서양 언론인이기도 했다.
NA / 현재는 제암교회 뒷산에 20여 구의 유해가 안장되었는데요. 삼일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독립운동의 또다른 장소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습니다. 1908년에 경성감옥으로 개소하여 해방 이후 1987년까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을 수감하였는데요. 지금은 지나온 역사를 보여주는 교육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당시 취조와 고문 현장을 보여주는 전시관과 감옥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옥사를 개방하여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른 다섯 명이 들어가기도 좁은 방에
함께 있었던 35명의 수감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서대문형무소의 옥사는 형무소 작은 모형도한눈에 모든 곳을 볼 수 있는 부채꼴 구조인데요. 이러한 구조는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의 수감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막 / 파놉티콘 (Panopticon) 영국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 건축양식으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이다
NA / 앨버트 테일러는 수감 생활 동안미루나무 앞에 서서 그의 집 딜쿠샤를 바라보았다고 하는데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에 심어진 미루나무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를 붙잡고 통곡하였다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 불리고 있습니다.애국지사들의 한이 서려서인지 시간의 흐름만큼 자라지 못한 나무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6개월의 수감 생활 후 결국 미국으로 추방당한 테일러는
한국에 돌아올 날만 기다리다 건강이 악화되어 1년 만에 숨을 거두었는데요.죽는 순간에도 한국 땅에 묻어달라고 할 만큼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외국인. 그는 미국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입니다.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나라를 지켜낸 애국선열들... 오늘은 역사 속 그들과 함께 애국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으로 떠납니다!

 
독립기념관은 1982년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국민성금모금운동을 통해 설립되었습니다. 각종 유물은 물론 모형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아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람료도 무료라고 하니 순국선열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살고 있었다면, 당시의 독립운동가 분들처럼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었을까요?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분들은 어느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 기억하고, 새겨야 할 분들입니다. 독립기념관과 관련된 영상을 함께 보면서, 다시금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자막  /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  - 매헌 윤봉길 의사 유언 中 -
자막 /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 유관순 열사 유언 中 -
<문화유산 여행길 - 뜨겁게 뛰는 애국지사의 심장을 찾아>
NA / 1945년 8월 15일.우리 민족이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의 순간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잃었던 국권을 되찾는 날이 오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투쟁과 희생이 뒤따랐는데요.오늘은 독립운동에 힘쓴 애국선열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천안 독립기념관입니다.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국민성금모금운동을 통해 설립된 곳으로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자막 / 천안 독립기념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 95
NA / 전시관은 독립운동가가 남긴 각종 유품과 일제의 고문현장 등을 기록한 사진과 각종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애국지사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김좌진 장군이 승리로 이끈 청산리 대첩도 있습니다.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 장군이 이끈 대한독립군 등이 중국 청산리 일대에서 6일 동안 일본군과 십여 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자막 / 청산리대첩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을 주력으로 한 연합부대가 중국 지린성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 대부대와 격전을 벌인 끝에 대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NA / 이때 훈련된 군인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이 함께 참여했는데요. 부상병을 치료하고 주먹밥을 나르는 등 우리 동포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무엇보다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데에는 김좌진 장군의 공이 컸는데요.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오직 나라만을 위해 살아온 독립운동가였습니다.1889년 충청남도 홍성군 양반집에서 태어난 김좌진 장군. 그는 어렸을 적부터 글공부보다는 활쏘기와 말 타기 등 무예훈련을 즐겼다고 합니다.
자막 / 김좌진장군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 76호)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 546번길 12
NA/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김좌진 장군은 양반과 일반 백성 모두 힘을 길러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여, 자신의 집안에서 거느리고 있던 30여 명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땅을 나누어 준 후,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자막 / 청백전가팔백년(淸白傳家八百年) 청렴하고 결백함을 전하는 가문은 800년에 이른다
NA / 김좌진 장군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군인을 양성하기도 하였는데요. 독립운동을 위한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던 중 일본 경찰에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갇히기도 했습니다.
자막 / 김좌진 장군 (1889년 ~ 1930년) 1889년 충청남도 홍성군 출신으로 평생을 항일전투에 힘쓴 대한제국 후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대한제국 광복단에 가입하여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만주로 건너갔다. 그 후 김좌진 장군은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이 되었고 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이끌었다
NA /  감옥에서 나와 중국 만주로 건너가 일본군과 싸울 준비를 한 김좌진 장군. 1920년에 일궈낸 청산리대첩의 승리는 이후 독립군의 사기를 북돋아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끊임없이 독립운동에 매진한 그는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하였는데요. 죽는 순간에도 나라 걱정뿐이었던 김좌진 장군. 그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독립기념관 한 편에 낡은 회중시계가 있는데요.도시락 폭탄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의 것으로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자막 / 백범 김구와 매헌 윤봉길 의사. 선생님, 이 시계는 제가 어제 6원 주고 산 시계입니다.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과 바꾸시지요.저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NA 거사를 치르기 전, 김구 선생에게 건 낸 시계. 윤봉길 의사에게 조국의 독립은 그 어떠한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 왕의 생일이자 상하이 침략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 날. 거사를 치르기 위해 행사장에 잠입한 윤봉길 의사. 그는 일본 헌병들을 제치고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무대를 향해 던집니다. 무대 중앙에 떨어진 폭탄으로홍커우 공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노무라 중장과 많은 일본군사들이 중상을 입는 등 의거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는 그 자리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히게 됩니다.일본은 윤봉길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 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사형당하기 직전. 조용히 노래를 부른 윤봉길 의사. 그는 우리 노래를 부르며 죽는 순간에도 한국인의 자긍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자막 / 윤봉길 의사(1908년 ~ 1932년)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행사에서 폭탄을 던져 의거에 성공한 독립운동가이다. 이 사건으로 시라카와 대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과 일본군 다수가 중상을 입었다
NA / 윤봉길 의사의 의거 성공으로 우리민족의 독립 의지는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꺾였던 독립군의 사기도 되살아납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끈질긴 투쟁 끝에 드디어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은 비록 광복된 이 땅에서 만날 수 없었지만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그들의 정신이 서려있는 유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주 독립을 외쳤던 우리 선조들. 그들이 부여잡은 태극기에는 독립을 갈망한 뜨거운 숨결과 숭고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9-07-26 | 조회수 : 217

SNS 로그인 페이스북 로그인하기 트위터 로그인하기 네이버 로그인하기 카카오 로그인하기 로그아웃

(0 / 300)

댓글등록
전체댓글수 0

quick menu

quick menu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