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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궁궐의 도시, 서울 '조선의 숨결’ (2)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유홍준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서울의 궁궐 이야기.
저 도깨비와 함께하는 시간도 벌써 세 번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동궐', 즉 창덕궁과 창경궁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궐을 보았으니 오늘은 서궐을 볼 차례입니다.
어떤 궁궐을 서궐이라고 부르는지 아시나요?
이 궁궐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지 오늘도 흥미진진한 서울의 궁궐 이야기 속으로 떠나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단종 부석사 고씨동굴



# 경희궁


'서궐'이라고 불리었던 궁궐은 바로 경희궁입니다. 지난 시간 경복궁과 창덕궁의 양궐 체제가 시작되었다고 설명드렸습니다.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고 전쟁이 끝난 뒤 광해군이 경희궁을 지어 양궐 체제가 이어졌습니다. (지금의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중건).

 
경희궁 숭정전

경희궁 숭정전 @ 이영일


경희궁에서는 왕의 즉위식이 열렸는데, 즉위식은 대개 상 중에 열려 떠들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런 큰 규모였던 경희궁은 안타깝게도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철거되고, 궁궐의 모습을 잃고 맙니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뒤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는 경희궁. 경희궁은 1987년 응화문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궐에 비해 서궐의 규모가 작은 이유를 알고 나니 슬퍼집니다.


# 덕수궁


덕수궁이 만들어진 것도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후 한양으로 돌아와 덕수궁을 만들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이미 궁궐이 4개나 되는데 왜 또 만들었을까요?
 
 
덕수궁 전경


경복궁이 불에 탔을 때, 임금의 거처로 경희궁을 만든 광해군.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겪은 선조 시기의 후임자인 광해군이 경희궁을 짓기 전까지 임금이 머물렀던 곳이 바로 덕수궁입니다. 월산대군의 집을 덕수궁으로 사용하였기에 새로 지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덕수궁은 광해군이 경희궁을 지어 그곳을 임금의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인조를 거치면서 궁궐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중요성을 잃어가던 덕수궁이 우리 역사에서 다시 등장하여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고종 때의 일입니다.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은 자신도 궁궐에서 일본인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아관파천). 2년 뒤인 1897년, 환궁을 하게 된 고종은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으로 환궁합니다. 바로 이 덕수궁에서 고종은 조선의 마침표를 찍고 자주 국가 건설을 꿈꾸며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고종은 덕수궁이 제국의 궁궐로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덕수궁 주변에는 영국, 독일 등 대사관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에 이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꾀하면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근대 제국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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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MC 도심 빌딩숲 한가운데 둘러싸인 덕수궁은 한국 근대의 출발점이자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황제국의 궁궐로 사용된 곳이다.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원래 이름은 대안문으로 나라와 백성이 모두 태평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붙여졌다.“대한”은 큰 하늘이라는 뜻을 담아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인데 대한제국이 지향하는 바를 호기있게 담고 있다.
덕수궁도 여느 궁처럼 정문을 지나면 금천교가 보인다.‘임금을 만나기 전 다리를 건너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가 담긴 다리다. 그런데 다른 궁에 비해 정문에서 금천교까지의 길이가 굉장히 짧다. 그 이유는 1968년 태평로의 확장으로 원래의 대한문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도로 한가운데 있던 대한문은 2년 뒤 서측으로 밀려 오늘날의 위치로 옮겨지게 된다.
270여 년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조선의 마지막 궁궐,덕수궁의 새로운 역사적 변화는1896년 아관파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밀리에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덕수궁의 수리를 명한다.
그리고 이듬해 러시아공사관을 나온 고종은 덕수궁을 새로운 거처로 삼는다. 덕수궁을 본궁으로 삼은 것은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성정이란 뜻의 중화.조선을 두고 세계열강이 각축전을 벌이던 당시 세계 질서 속에 당당하게 자리 잡겠다는 대한제국의 의지가 담겨 있다. 중화전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임금이 지나는 길 '답도'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이다. 용은 황제를 상징하는데,봉황 대신 용이 새겨진 답도는 덕수궁이 유일하다.
중화전의 황금색 문살 또한 황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대한제국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월대에 놓여있는 드므.자세히 보면 만세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만세는 중국에서 황제를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던 말이다. 조선은 천세라는 말을 사용했는데,고종 즉위 이후 만세란 표현으로 바꾸면서 대한제국이 황제국임을 널리 공표했다.
중화전 뒤쪽으로 전통 궁과는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건축물이 눈에 띈다.중화전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음에도 서양식의 건축물이라 이방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석조전은 바로 고종이 지향했던 강력한 근대국가 모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석조전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었지만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무늬, 오얏꽃을 새겨넣었다. 석조전은 근대국가의 상징적인 건축으로 지어졌으나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됨으로써 황궁의 전각 역할은 수행하지 못했다.
대신 완공 후에 태황제인 고종이 귀빈들을 접대하고 만찬을 행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돌로 지은 집이란 뜻의 석조전.돌집을 짓는다는 것은 곧 서구문물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고종은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등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고종의 자주적인 근대화의 노력이 힘 있게 진행됐던 시기가 대한제국 전반기였다. 정관헌은 대한제국 황궁의 위상을 갖게 되면서 지어진 양관의 하나다. 러시아 풍의 건물이지만 금속난간을 장식한 건 소나무, 사슴과 같은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들이다. 뿐만 아니라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천도복숭아를 물고있는 박쥐도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정관헌은 고종이 역대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례를 지낸 신성한 곳이다.
하지만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한 이후 1912년 황제가 직접 역대왕의 어진을 중화전으로 옮기게 되었다.
대한제국의 영광과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마지막 황궁! 덕수궁이 지켜본 13년간의 역사는 근대한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제국의 굳건했던 의지이다.

하지만 이런 고종의 꿈은 일본에 의해 좌절되고 맙니다. 덕수궁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마지막까지 대한제국의 자주적인 근대화를 원하던 고종. 그의 꿈이 담긴 건물이 덕수궁 석조전입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한 건물로, 당시 건축된 서양식 건물 중 가장 큰 건물입니다. 고종은 다른 제국처럼 자주 국가를 세우고 싶은 마음에 석조전을 짓게 했지만 석조전이 완공된 해인 1910년, 대한제국은 최후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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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NA / 덕수궁 돌담길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덕수궁! 덕수궁은 고종 황제의 명으로 세워진 대한제국의 정궁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의 모든 궁이 불타 없어졌을 때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해 국난극복의 장소라는 상징성 또한 지니고 있는데요. 덕수궁에 가면 대한제국 당시 세워진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막 /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의 장소였던 덕수궁
     석조전(石造殿) 근대식 3층 석조 건물로 고종의 명으로 영국인 G.R.하딩이 설계하여 1910년에 완공하였다.
     현재,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석조전
NA / 지금은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에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몇 가지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타이틀 석조전 – 대한제국 근대화의 꿈]
한은정 / 여기 덕수궁에 있는 이 석조전은 1900년에 짓기 시작해 1910년 완공되었는데요. 안타깝게도 바로 그 해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 고종은 석조전에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순 없었습니다.
자막 / 1900년에 짓기 시작해 1910년에 완공된 석조전
     대한제국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
한은정 / 어찌 보면, 대한제국의 아픔이 서려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석조전에 담긴 고종의 뜻!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자막 / 18세기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지닌 3층석조건물 당시 건축된 서양식 건물 중 가장 큰 건축물
NA /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으로 1910년 완공되었습니다. 이오니아식 기둥 장식을 지니고 있으며 18세기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는 3층 석조 건물인데요. 당시 건축된 서양식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입니다.
자막 / 1층은 접견실 및 대식당 등 공적인 공간/ 2층은 침실 및 서재 등 사적인 공간
김재은 / 조선의 전통적인 궁궐을 보시면 전각별로 해서 서로 다른 용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화전은 공식적인 행사 등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면, 석조전의 경우에는 모든 용도가 다 들어가 있는 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고 지금 계신 1층의 경우에는 접견 혹은 접견 이후의 만찬 이런 것들이 이루어졌던 공적인 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2층에는 반면에 황제의 침실이라던지 황후 침실, 황후의 거실 그런 사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기능이 복합되어있는 건물이 석조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막 / 중앙홀. 접견실과 대기실이 연결된 공간. 이곳의 탁자는 석조전 준공 당시의 가구
NA / 국권을 빼앗기고 난 후 황실의 가구들은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석조전 안에 있는 가구들은 그 당시 사진들을 철저히 고증하고 당시 가구를 주문했던 회사에 남은 자료들을 참조해서 다시 만든 것들이 많은데요. 커튼 하나, 카펫 하나도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자막 / 서양식 욕실과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던 석조전
NA / 황제와 황후의 침실 옆에는 욕실이 있는데요. 서구식 욕조와 세면대가 들어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 석조전에는 조선을 근대적인 자주국가로 만들겠단 고종황재의 투지가 담겨 있는데요.
자막/근대 자주국가를 향한 고종의 의지가 반영된 석조전. 아관파천 당시 덕수궁 (당시 경운궁) 수리를 명한 고종
NA / 1895년 명성황후 시해란 참변을 당한 뒤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피하고 경운궁 즉, 지금의 덕수궁 수리를 명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여있고 자신의 신변조차 불안한 상태에서 왜 고종은 덕수궁 수리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을까요?
[석조전에 담긴 고종의 숨은 뜻은?]
NA / 고종황제 당신이 덕수궁에 그리고 석조전에 품은 뜻은 무엇입니까!
고종 / 과거 임진왜란을 극복했던 국난극복의 장소인 경운궁에서 근대적인 자주 국가의 틀을 만들고야 말겠소.
안창모 / 사실 석조전 건설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이던 서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음으로써, 돌로 지었죠. 돌로 지음으로써 대한제국이 이제는 서구식 근대국가로 나아간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그런 서양식 근대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을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상징적인 행위였다고 봅니다.
자막 /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고종은 덕수궁을 대한제국 정궁으로 삼았다
NA /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서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합니다. 덕수궁을 대한제국 정궁으로 삼고 황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자막 / 대한제국 근대국가의 의지를 담은 건축물
NA / 그중에서도 석조전은 대한제국이 근대국가를 표방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건물로 건물 곳곳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을 새겨 넣었습니다. 또, 우리나라 전통 집짓기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돌을 재료로 사용했는데요. 이는 서구문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대한제국의 정치적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막 / 강력한 근대국가를 향한 고종의 열망이 담긴 건물
NA / 석조전 앞 분수대에는 4개의 물개조각상이 있는데요. 이 조각상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자막 /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과거 석조전 분수대
한은정 / 얼마 전 공개된 1920~30년대 사진자료를 통해서 당시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서양식 분수가 이미 존재했었고, 조각상도 물개가 아닌 다른 조각상 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조각상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교체된 것일까요? 그리고 물개 조각상으로 교체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자막 / 분수대 물개 조각상으로 교체된 이유는?
[석조전 분수대의 조각상이 바뀐 이유는?]
자막 / 덕수궁 미술관. 일제강점기 1938년부터 한국 고미술품과 일본 근대미술품을 전시하였던 기관으로 이왕가미술관의 후신
NA / 지금 이 사진은 1920년대에 찍은 덕수궁 석조전 사진입니다. 그런데, 석조전 앞 연못에 대형 거북 조각상이 놓여 있습니다. 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미술관 공사설계도를 국내에 있는 도면과 비교해 봤습니다.
자막 / 1936년 6월 작성된 최초의 덕수궁 배치도 둥근 점선으로 표신된 부분이 거북상 자리 이후에 작성된 ‘덕수궁 정원 배치도’는 거북상이 철거된 것으로 바뀌어 있음
NA / 1936년 최초 설계도에는 사각형 연못이 그대로 있는데, 1년 뒤, 연못을 메우고 타원형의 분수대를 만드는 걸로 계획이 바뀐 걸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거북상이 없어지고 물개상으로 교체된 겁니다.
일본인 / 거북상이 고종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세워진 걸 우리가 모르는 줄 아시오? 조선은 일본 땅이고 일본 천황 폐하가 있는데. 이걸 가만히 둘 수 있겠소? 그래서 조용히 거북상을 물개상으로 바꾼 것뿐이오.
김종헌 / 이 거북상은 왕과 황제를 상징하는 동물인데 1938년도에 덕수궁 석조전 서관, 지금은 덕수궁 미술관으로 알려진 건물을 일본의 나카무라 요시헤이라는 건축가가 설계를 했는데 갑자기 1938년도에 물개상으로 대체가 됩니다. 그래서 이 거북상이 고종을 연상시키고 덕수궁의 상징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제거하려고 했던 노력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자막 / 중심축이 어긋나있는 중화전과 석조전
NA / 석조전이 지닌 또 하나의 비밀은 바로 중심축에 있습니다. 석조전 옆에는 덕수궁의 정궁인 중화전이 있는데요. 이상하게도 이 두 건물의 중심축이 비스듬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이 두 건물은 모두 대한제국 출범 직후 건설된 것인데요. 대한제국 당시 세운 두 건물의 중심축이 어긋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석조전의 중심축이 중화전과 다른 이유는?]
자막 / 중화전영건도감의궤. 경운궁 중화전의 신축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경운궁중건도감의궤. 경운궁을 중건한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NA / 문헌에 따르면 석조전은 1898년 영국인 하딩이 설계를 시작한 것으로 나옵니다. 중화전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01년 설계에 들어갔는데요. 그러니까 중화전을 설계할 때 이미 석조전과 중심축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두 건물의 중심축을 다르게 설계했을까요? 설계도면을 살펴보면, 석조전은 서쪽 대지 경계선을 기준으로, 중화전은 과거 인조가 왕이 되었던 즉조당을 기준으로 중심축을 삼고 있습니다.
자막 / 대지 조건을 기준으로 한 석조전. 역사적인 기준으로 설계한 중화전
NA / 석조전은 대지조건을 기준으로 중화전은 역사적인 기준으로 설계했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두 건물의 중심축이 달라진 겁니다.
김종헌 / 덕수궁 석조전 축과 그리고 중화전 축은 당시 상황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두 힘들이 충돌하고 있는, 전통을 보수하려는 힘과 새로운 근대적 국가 또 서양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의지. 이런 것들이 뒤섞여서 당시의 충돌과 새로운 의미를 확장하려고 하는 의지가 그 안에 담겨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NA / 덕수궁은 서쪽에 서양식 건물이, 동쪽엔 전통 건물들이 있는데요. 중화전과 석조전의 중심축이 어긋난 것도 격동의 시기였던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막 / 격동의 시기가 빚어낸 중심축의 어긋남
안창모 / 석조전의 가치를 우리는 그동안 잘 몰랐어요. 서구식 건물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외세 침탈의 상징으로 잘못 알고 있었죠. 석조전이 이제 그 건물 하나의 가치를 넘어서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근대사를 일본이 써준 근대사가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를 우리의 눈으로 해석하고 이제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측면에서 석조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서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막 / 격동기를 살다간 고종 그 파란만장한 역사가 서려있는 석조전
NA / 고종은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이 석조전에서 잠을 청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대한제국 역사의 뼈아픈 마지막 페이지를 담고 있는 곳. 바로 석조전입니다.
한은정 / (문화유산 X-파일 프리젠터) 10여년간 석조전의 완공을 손꼽아 기다렸던 고종 황제는 이 석조전에서 대한제국을 향한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고종황제는 나라를 빼앗긴 뒤 9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고종 황제의 못다 한 꿈이 서려있는 곳 덕수궁 석조전이었습니다.
자막 / 고종황제의 꿈이 서려있는 곳 석조전
   


오늘 본 궁궐들은 그 시작과 최후가 전부 일본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 속에서 수난을 겪은 궁궐들을 보며 다시 한번 우리 역사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이렇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까지! 서울의 5대 궁궐을 모두 살펴봤습니다. 조선시대가 600년 동안 번성한 만큼 간직한 이야기도 아주 많네요. 5대 궁궐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큰별샘 최태성 선생님과 샘 해밍턴, 오취리 등 방송인들이 함께하는 문화유산원정대를 따라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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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na : 때는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 대한민국에 세계 각국의 지구촌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다는데, 자신들이야 말로 글로벌 인재라 주장하며 당당히 과거시험에 응한 이들이 있었으니... 외모만 외국인, 샘 해밍턴. 국어국문과 출신, 아비가일. 믿을 건 국적뿐, 황현희. 꼴지만 면하자, 샘 오취리.
해밍턴과 오취리 : 요즘 외국 사람들이 워낙 한국말 잘하니까.
오 : 형. 요즘 경쟁이 되게 심해졌잖아. 너무 잘하니까.
해 : 너는 글씨 잘 못쓰잖아.
오 : 나는 그런 약점이 있지. 확실히. 나는 왕 이름만 외워왔는데 확실히 나올 것 같아.
해 : 왕 이름 다 외웠어? // 오 : 다 외웠죠.
해 : 누구누구 있어? // 오 : 태 씨도 있고, 정 씨도 있고.
아 : 많지. // 오 : 세 씨도 있고, 그 다음에 문 씨도 있고.
해 : 지금 여기 있는 자리가 어딘지 알아? // 오, 아 : 창덩궁!
아 : 그러면 한국에 궁 몇 개 있어요? // 황 : 한국에 여기에는 3개 있죠. 덕수궁, 창덕궁, 경복궁.
해 : 에? 5개! // 오 : 창덕궁, 경복꾼, 종녹꿍, 덕수궁, 인사동궁
해 : 위치상 여기 하나 있고, 광화문 앞에 경복궁, 시청 앞에 덕수궁, 대한축구협회 옆에 하나 있고, 하나 또 어디 있더라?
na : 이때, 이 모든 논란을 잠재워 줄 사람이 등장했으니... 한국사에 관해서라면 누구의 눈높이든 맞춰준다!
최 : 오늘 과거시험을 볼 텐데요. 과거시험에 시제라 그래가지고 시험문제가 출제될 겁니다. 그 문제를 먼저 맞히시고 오늘 좋은 결과를 한번 가져가 보시기 바랍니다.
오 : 저는 동문서답이라 모르겠어요.
최 : 아, 걱정이 되긴 한데. 동문서답. 문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자막 :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아는 대로 쓰시오   
na : 시제를 보고 순간 혼란에 빠진 유생들. 하지만 이내 신중하게 답을 써내려 가는데...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모두 맞히는 유생이 있을까? 혹시 여러분들은 정답을 알고 계시는지?
최 : 각자 지금 정답을 적으셨는데 왜 그런지 한번. 샘부터 한번 이야기 해보시죠. 경복궁, 불국사, 석굴암, 남대문. 저게 뭐죠?
해 : 10원짜리 탑. // 최 : 10원짜리 탑!
해 : 이름을 잘 몰라가지고요. // 최 :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음, 이번엔 오취리 씨?  
오 : 경복궁. 그 다음에 설굴암. // 최 : 설굴암? 아 석굴암.
오 : 그 다음에 저는. 독립문. // 최 : 독립문. 이순신 거복?
오 : 거북이 보트. // 최 : 거복 보트. 거북선. 그래도 저 중에도 답이 또 있습니다.
아 : 기억나는 대로
최 : 불국사, 창덕궁, 거북선, 경복궁, 해녀, 남대문,  DMZ, 훈민정음. 우와 대단하시네. 황현희 씨 같은 경우에는 뭐 올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들어주십시오.
황 : 요 정돕니다. 첫 번째는 일단 뭐 다들 많이 적으셨네요. 석굴암. 석굴암 맞습니다. 등재 돼 있고요. 불국사. 그다음 훈민정음. 이건 뭐 100%입니다.
최 : 정답들을 다들 열심히 써주셨는데요. 이것이 바로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na : 현재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모두 12곳!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만이 등재될 수 있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 했다. 12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외에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한반도 곳곳에 남겨져 있는 다양한 유적들... 한국인의 정체성이자 이 땅에 새겨진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 그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최 : 다음 문제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관련된 왕이 있어요. 왕. 그렇죠. 그 왕이 누구인지를 맞추시면 되겠습니다. 자, 첫 번째 힌트 나갑니다. 자, 두 번째 힌트. 갑니다.
해 : 이 영화 못 봤어요.
최 : 마지막 힌트를 하나 드릴게요. 뭐 마지막 힌트를 보시면 아~ 저 왕이구나, 아실 거예요. 자 마지막 힌트 나갑니다.
황 : 아니 그런데 사도랑 뭔 연관이 있습니까?
최 : 사도. 이 사람은요. 바로 이 유아인 씨의 아들입니다.
아 : 그 그거 아니에요? 그거. 그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그것은 홍길동이오~
아 : 홍길, 홍길... 아... // 황 : 정답~ 단종
최 : 단종! 아니, 현희 씨, 이렇게 방송 나가도 괜찮나요? 굉장히 걱정이 됩니다. 지금 제가.
황 : 단종은 유배된 분이시죠? 아 잠깐만... 정답! 성종
최 : 정답은 정조입니다. 정조. 오늘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갈 곳이 어디냐면 바로. 아까 유네스코 세계유산 있었잖아요? 그중에서 네 군데를 갈 겁니다.
해 : 제주도 데리고 가는 거예요?
최 : 네 군데가 어디냐면. 제주도는 없고요.
오 : 경주. 경주 가는구나.
최 : 정조와 관련이 있는 곳. 그 곳을 갈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은 왕의 길! 자, 우리가 오늘 왕의 길을 걷잖아요. 첫 번째 장소가 어디냐면 바로 이곳 창덕궁입니다.
오 : 궁궐이 왜 이렇게 많아요?
최 : 좋은 질문인데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5대 궁궐 중에서 센터, 법궁이라고도 하는데, 정궁이라고도 하는데, 제일 중요한 데. 정말 제일 중요한 데가 경복궁이에요. 이게 센터예요, 센터. 아니 그러면 경복궁이 중심인데 하나 있으면 됐지, 왜 또 지었느냐, 그걸 물어보셨잖아요. 이유는 간단해요. 만약에 전쟁이 났어요. 또는 화재가 났어요. 또는 그 궁궐에 전염병이 돌았어요. 그럼 왕이 어딘가를 딴 데 가야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왕이 아무 민가나 백성 사는 집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쉽게 이야기하면 스페어.
황 :별관 같이 // 최 : 맞습니다. 별장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na : 서울에 있는 궁궐은 총 5개. 법궁인 경복궁과 조선 후기 왕들의 주요 거처였던 창덕궁, 그리고 창경궁과 경희궁, 덕수궁까지. 궁궐은 국왕의 거처이자 조선왕조의 핵심이었다.
해 : 유네스코 세계유산 되어있는 궁은, 여기가 돼 있잖아요. 왜 경복궁은 안 돼 있죠?
최 : 좋은 질문하셨는데, ‘이상하다. 경복궁이 정궁이라면서, 중심이라면서 왜 여기가 세계유산이 안 됐을까.’ 이 창덕궁이 우리나라 궁궐 건축의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중국의 자금성은 어마어마하게 커요. 엄청 큽니다. 뭔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거든요. 우와 이런 느낌.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은 뭐냐면, 좀 달라요. 우리나라는 자연 그리고 인간의 조화. 함께 가는 그런 모습이 있어요.
na : 창덕궁은 가장 오랬 동안 왕들이 머물며 사랑했던 궁궐이다. 정전인 인정전을 비롯해, 푸른 기와가 인상적인 왕의 실질적인 집무실, 선정전...대조전은 왕실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공간이었다.이 외에도 자연 속에 맞춤하게 자리한 다양한 건축물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 조선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곳에는,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군주, 정조가 있었다.
최 : 자, 휴대폰 있으세요? 그러면 시민들과 함께 물어보셔가지고 이곳을 찾으셔가지고 사진을 찍어 오시는 거예요. 자 일단 제가 보여드릴게요. 사진은. 이곳입니다. 이곳.
자막  : 정조가 새로운 조선을 설계한 곳이자 정조의 야망이 깃들인 곳은?
최 : 이곳은 바로 정조가 신하들과 정말 열심히 공부한 곳입니다. 세종 때 경복궁에 집현전이 있다면, 정조 때는 창덕궁에 이곳이 있습니다.
해 : 가도 되죠? //  최: 출발하세요.  // 해 : 물어볼 거 물어봐. // 황 : 여기 어딘지 아세요?
여 : 저도 처음 왔어요. 김해에서. // 황 : 그래요? 저도 처음이라. // 여 : 서울에서 살잖아요.
황 : 저도 여기 처음 왔어요. 서울에 살아도 여기 잘 안와요. // 여 : 여기 아무 데나 맞다고 우기면 될 텐데.
황 : 정조 때 실학을 연구한 곳이라는데 혹시 아세요? // 여 : 죄송해요. 힘내세요.
황 : 정말 모르시나 보다.
Q : 어딘지 알아요? // 해 : 대충 어디인지 알 것 같아요.
Q : 어딘데요? // 해 : 이거 호수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요.
Q : 가 봤어요? // 해 : 네. 여기 많이 와 봤어요.
해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문 좀 닫을게요.
na : 벽에 붙는다고 가려질 것 같지도 않은데... 1등을 향한 샘의 놀라운 결단!
해 : 이야. 여기는 진짜. 너무 좋다. 아~ 너무 좋아.
na : 길찾기의 정석, 지도를 살피는 아비가일.
아 : 수강재? 수강재 같은데? 수강생들이 가는 데가 수강재 아닌가? 예전에 공부했던...
시 : 세자가 머물면서 공부했던 성정각요? // 아 : 어디? 어디?  // 시 : 성정각.
아 : 아닌 것 같은데? 
오 :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 찾고 있습니다. 정조 왕님이 열심히 공부하셨던 곳이라고 하는데요.
안 : 올라가면 됩니다.
오 : 올라가면 됩니까? 감사합니다. 혹시 샘 해밍턴 형 지나갔어요?
안 : 네. // 오 : 아이 참. 안되겠다.
황 : 어디요? 저기요? // 시 : 저 안쪽인데. // 황 : 저 안쪽이라고요?
해 : 찾았다.
na : 미션의 장소는 바로 창덕궁 후원에 자리 잡은 주합루.
오 : 안 돼 안 돼 안 돼 형. 보내지마. 혀어어엉! // 해 : 끝났다!
na : 간발의 차이로, 샘 해밍턴 1등.
황 : 아줌마 왜 뛰어와요. 갑자기. 왜 저래. 무슨 운동선수같이. 여기가 맞나본데 그러면. 저렇게 뛰어가는 것 보니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 안에 이곳이 있나요? 아마 규장각인 것 같은데.
직 : 규장각. 이쪽으로 내려가면 주합루. 제일 꼴찌예요 // 황 :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 외국인들 진짜!
황 : 그러면 차라리. 어차피 늦은 거 같으니까 그냥 이 사진을 찍어서
해 : 못 찾았어? // 아 : 사진 찍었어?
해 : 아니야. 이쪽이래. 진짜야. 안내데스크에 물어봤어. 돌아가라고. // 아 : 아니래? // 해 : 이쪽으로 가라고
오 : 아이 진짜. 괜히 왔다. // 아 : 맞네. 저렇게 말하는 거 보면 진짜 맞아요. 아 : 저기 있네.
na : 조선의 왕들이 사랑했던 정원, 후원. 북한산과 응봉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에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자연스레 어우러진 조화의 공간이다. 영화당 앞마당에서는 과거시험이 치러졌다. 왕들은 이곳에서 젊은 인재들을 바라보며 조선의 밝은 미래를 그렸다. 아름다운 정자 부용정을 포함해 한국정원의 특징을 고스란히 품은 곳, 창덕궁 후원이다.
최 : 네, 너무 예쁘죠?
na : 함께 후원으로 향한 원정대원들. 후원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끊이질 않는데...
최 : (E)아름답죠? // 황 : 이런데 살고 싶어요.
최 : 왕이 되셔야 합니다. // 황 : 왕이 돼야 하는군요.
최 : 여기가 부용지, 부하고 용이 뭘 의미하느냐면 연꽃을 의미해요. 연꽃이 피어있는 그런 곳이다. 여기 가만히 보시면, 섬이 하나 보이시잖아요. 가운데 그게 인공섬이예요. 시험 문제를 낸 단 말이죠. 빨리 제시간에 못 푸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아 : 저기 갔다 오기. // 최 : 그렇죠. 유배 보낸 것이죠. 하하하
na : 사진 속 장소인 주합루. 정조가 강한 조선을 꿈꾸며 인재를 양성했던 곳이자, 정조시대 문화와 정치의 중흥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최 : 저 건물이 2층 건물인데 저기가 어떤 곳이냐면 왕실 도서관이에요. 도서관. 책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고요. 거기서 책들을 빼어 다 공부를 한 다음에, 저 2층이 바로 주합루라는 곳인데요. 올라오면 저 안에서 문 다 열어놓고 저기서 토론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학문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그런 곳. 최 : 여기가 지금 어수문이라는 건데요. 어는 뭐냐면 피쉬, 물고기. 수는 워터.
해 : 문은 도어.
최 : 여기가 왜 이런 곳이냐면, 정조 입장에서 봤을 때 물고기는 누구이며 물은 누구냐. 누구일 것 같아요? 물고기는 누구고 물은 누구일 것 같아요?
황 : 물고기는 신하, 물은 왕. // 최 : 정답! 맞습니다. // 황 : 박수 좀 치세요~
최 : 정조시대의 문화융성을 보여주는, 정조시대의 르네상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이곳 주합루였습니다.  
자막 / 왕의 길 - 두 번째 여정, 남한산성
na /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왕의 길, 그 두 번째 목적지인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천 사백 여 년간
수도방위의 견고한 보루였다.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지형을 따라 전체 11.7km에 이르는 성곽은 한국 축성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산성 건축의 표준이자 요새화 된 성곽도시의 탁월한 사례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왕의 길을 따라 그 두 번 째 여정을 시작한 원정대원들.
최 : 자 여기가 이제 남한산성 남문에 해당하는 그런 곳입니다. 이곳 남한산성 같은 경우에는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한테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아픈 상처가 있는 그런 곳이기도 해요.
황 : 굉장히 굴욕적인 것 아닙니까?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 최 : 이렇게 다 아시잖아요.
해 : 갑자기 이렇게 잘 아시지? // 아 : 어떻게, 어떻게. 조금 더 자세하게. // 황 : 들으세요. 들으세요.
최 : 저 북쪽에서 중국의 청나라가 있었어요. 청나라가 쳐들어옵니다. 쳐들어왔을 때, 서울에서 급하게 이쪽, 이곳으로 피난을 오죠. 이곳으로 피난해가지고 47일 동안 이곳에서 끝까지 항전을 했던 그런 곳이 바로 이 남한산성인데요. 우리 오늘 어느 왕의 길을 따라온다 했죠?
모두 : 정조 // 최 : 정조였죠. 정조도 역시 이곳에 오셨어요.
na : 1779년, 정조는 7박 8일의 장거리 거둥을 단행한다. 도성을 8일이나 비우는 파격적인 일정. 정조는 이중 4박 5일을 바로 이곳 남한산성에 머물렀다. 외부와는 격리된 느낌마저 주는 산성 내부...
최 : 혹시 하멜 아세요? 하멜? // 오 : 하멜, 알죠. 네덜란드 // 최 : 우와, 어떻게 아세요?
오 : 나가사키로 출장 가다가 폭풍인가 만나서 파선을 당해서 이리로 왔죠. 또 여기서 14년 정도를 억류됐다는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해 : 웬일이에요? 잠깐만 잠깐만요. 잠깐만요. 웬일이래요? 방송하면서 대본 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오늘 대본 봤어요?
최 : 맞아요. 와 진짜 잘 아네. 와 깜짝 놀랬어요. 배를 타고 나가사키. 타이완을 출발해가지고 나가사키를 가다가
오 : 나가사키 // 해 : 짬뽕
최 : 배가 이제 바람을 맞으면서 결국 가지고 못하고 제주도에 표류를 한 거예요. 표류돼서 이제 잡힌 거죠. 잡혀가지고 이제 서울로 압송을 해가지고 딱 봤는데, ‘어! 외국인들이야. 그럼 무기를 잘 만들겠네.’ 옛날에 여기 남한산성에서 싸우다가 항복했다 그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무기를 만들어서 우리가 힘 있는 나라가 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 외국인들이 온 거예요. ‘그럼 너희들 무기 좀 만들어봐.’ 라고 한 건데. 문제는 뭐냐면 그러면 안돼요.
모두 : 왜요?
최 : 왜냐면 중국 청나라가 절대로 무기 개발 같은걸 허락하질 않아요. 할 수 없는 일인데 몰래 어떻게 훈련을 시킨 거죠. 그러다가 중국에서 사신이 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황 : 숨겨야죠.
최 : 숨겨야죠! 과연 이 외국인 한 35명 되는 외국인을, 하멜을 중심으로 이 외국인을 어디다 숨길까?
황 : 여기여기 // 최 : 맞습니다. 바로 남한산성에.
해 : 이 마을에서. // 최 : 이 마을에서 너희들 꼭꼭 숨어있어라.
최 : 여러분들은 자발적으로 오신 건가요? // 해 : 제 여권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오 : 진짜 지금 외국인등록증이랑 여권 없어요. // 최 : 샘 해밍턴 표류기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혹시.
해 :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황 :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갈려고 했어도 잡아 놓으려는 방법 중에 하나가 한국여자랑 결혼 시켜 놓으면. 대표적인 예가 이분 아닙니까.
해 : 애도 낳았어요. 며칠 전에. 낚였다. 낚였어.
최 : 자, 그러면 제가 지금부터 미션을 드릴 거예요. 퀴즈를 드릴 텐데. 문제 나갑니다. 문제는요, 이렇게 찍으시면 되요. 이곳입니다.
자막 : 정조가 군사훈련을 직접 점검하며 살펴 본 이곳을 찾아라
최 : 우리 정조가 아까 그 남문으로 들어왔잖아요. 그 이후에 4박 5일간 여기 머문다고 했는데 머무는 도중에 여기서 군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한 곳이 있어요. 참관 장소를 찾으시는 겁니다. 출발하세요.
na : 사진 한 장 씩 손에 쥐고 씩씩하게 출발하는 원정대원들.
최 : 아이고, 이리로 올라가면 안 되는데. 한참 돌아가야 할 텐데.
na : 원정대원들이 가야할 목적지는 수어장대. 일반적으로 평탄한 성곽길로 올라가는데 이들이 향한 곳은 엉뚱한 행궁 방향.
해 : 어디 가냐? // 오 : 아니 물어보려고. 사람 있는데 가야죠. // 해 : 왜 날 따라해.
오 : 혹시 이쪽 잘 아세요? 저희가 여기 가서 사진 찍어야 되는데, 혹시 어딘지 아세요?
여 : 여기 수어장대야? // 남 : 저 꼭대기인데. // 여 : 수어장대. 위로 올라가야 되는데.
오 : 올라가야 되요? 많이 올라가야 되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 내 얘기 좀 엿듣지 마 형.
해 : 고맙다. 오취리!
na : 수어장대라고 알려줬는데도 무조건 직진, 남한산성 행궁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
황 : 여기 몰라요? 어딘지? // 아이들 : 우와 우와
해 : 오취리 사진 찍고 싶대. 오취리에게 가서 사진 찍어 달라고 그래. 오취리한테. 오취리한테.
아 : 쓸데없이 여기 왔네요. 여기 아니다.
오 : 저희가 이곳을 찾고 있는데 혹시 어딘지 아세요?
남 : 수어장대. 이리로 나가셔가지고 담을 나가시면서 좌측으로 이렇게 돌아서 요쪽으로 능선길이 있어요.
오 : 거기 있어요? // 남 : 예, 거기로 올라가면 대략... // 오 : 알겠습니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황 : 여기 어디예요? 정조가 옛날에 군사훈련 할 때 지켜보던 곳이라고.
여 : 연무관, 연무관 // 황 : 연무관요? // 빨 : 여기가 연무관이라고? 남문 아니야? 연무관. 파출소 앞에
황 : 파출소 앞이요?
na : 험한 샛길로 빠져든 아비가일과 오취리. 황현희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해밍턴은 여전히 헤매고 있는데...
황 : 어 파출소다. 파출소. 어! 대박. 이거 아니야? 연무관. 어, 맞아요. 맞아. 서울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근데 이게 맞는 거죠? 이모님. 이게 여기 맞아요? 근데?
빨 : 여기 아닌 것 같아.
황 : 불안한데. 아 이 와중에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아, 틀렸다고 문자가 왔네요.
오 :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3분 안에 올라간다고. 거의 10분 올라왔는데. 아직 1km 남았대. 1km
남 : 거기 올라가려면 한 30분이면, 한 30분이면, 30분
오 : 안녕하신지요. 저희가 여기 찾고 있습니다. 어디인지 아세요?
남1 : 수어장대. 오케이~ 조금만 가시면 1km. 오케이~  // 오 : 1km? 아까 밑에서 1km 남았다고 했는데.
남2 : 여기서 바로 올라가서 바로 왼쪽으로만 가면 돼. // 오 : 알겠습니다.
여 : 이렇게 이렇게 요렇게 요렇게  
아 : 수어장대 어느 쪽에 있어요?  // 여 : 수어장대. 이쪽으로 쭉 올라가시면
아 : 많이 머나요? // 여 : 15분 정도? // 오 : 15분?  
na : 어찌하다보니 샛길 입구까지는 겨우 따라온 샘 해밍턴. 곧잘 오르나 싶더니... 쉴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샘.
해 : 난 원래 역사 안 좋아했어요. 뭐 아까 내가 1등 했으니까 뭐. 다른 애들 하면 되는데.
na : 창덕궁에서 1등 한 걸 위안으로 삼아보는데...
남1 : 인증 샷. 인증 샷. // 남2 :올라가다가. // 여 : 실물이 훨씬 멋있다.
해 : 뭘로 찍으세요? // 남1 : 언제 나와요. 이거? // 한 추석 때 나올 것 같은데요? 하나 둘 셋 //남1 : 땡큐~
오 : 안녕하세요. 여기 수어장대 맞죠? // 시민: 네
na : 수어장대는 군사를 지휘하고 적을 살피기 위해 설치한 5개의 장대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쪽 장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정확한 장소를 찾는 두 사람. 어차피 같이 도착했으니 이제 결과는 사진이 말해준다.
최 : 아이 잘 생겼다. 어유. 거기도 아니야~
na : 신중하게 장소를 찾는 아비가일.
최 : 왔어요. 아비가일. 그래요 아비가일 오케이~ 이렇게 힘들게 올라오신 이곳이 바로 수어장대 라는 곳이죠. 바로 이곳에서 이제 군인들이 군사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고 저 위에서 정조가 딱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na : 이곳에서 정조는 군대사열식을 직접 챙기며 남한산성의 방어력을 점검하고 군사체계를 정비했다. 수어장대 옆에는 그 의미를 더하는 유물이 한 점 보존돼 있다.
최 : 무망루라고 하는 건 뭐냐면 잊지 말자 라는 의미에요. 잊지 말자. 청나라에 항복을 했던 항복을 결정했던 그런 곳이기 때문에 그 아픔을 잊지 말자라고 해서 그 이후에 여러 왕들이 오면서 그런 것들을 기념을 해요. 그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곳에 오셔가지고 이렇게 무망루 라고 이름을 지어가지고 온 겁니다. 잊지 말자. 여기가 지금 서울을 지키는 곳이라 그랬잖아요. 서울 어떻게 지키는 곳인지 제가 한 번 보여드릴게요. 딱 보시면 서울이 쫙~ 한눈에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오 :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최 : 아라리가 났네. 가시죠. 따라오시죠.
황 : 갑자기 뭐야? 쟤 나랑 좀 잘 안 맞아요.
해 : 진짜 얘는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어.
na : 산성을 지키는 문이라고 하기엔 비교적 입구가 좁은 서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서문 옆 언덕이 남한산성의 마지막 목적지다.
황 : 진짜 여기 올라 올만 하다.
na : 서문 옆 언덕은 남한산성 최고의 전망대.
최 : 근데 아까 왜 우리가 작은 문 하나 통과하셨잖아요. 바로 그 문으로 인조가 병자호란 때 항복을 하러 나온 문이에요. 그러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되게 작잖아요. 말을 타고 통과할 수가 없겠죠. 말에서 내려가지고 걸어서 내려왔던 곳이 바로 서문인데. 자, 어디로 가서 항복을 했냐면 바로 삼전도라는 곳에 가서 항복을 합니다.
오 : 삼전도
최 : 삼.전.도. 라는 곳인데 삼전도를 여기서 찾을 수가 있어요. 삼전도가 과연 여기서 어딜까요? 그냥 바로 보여요. 딱 보시면 여기서 제일 눈에 띄는 건물이 있어요.
모두 : 잠실. L사 // 최 : 거기에요. // 오 : 아, 진짜?
최 : 네, 바로 그 앞입니다. 바로 그 앞. 딱 저 옆에 삼전도. 그러니까 인조가 여기서 걸어 나가가지고 거기까지 쭉 가서, 저 옆에서 이제 항복식을 거행했던.
아 : 거기까지 걸어가신 거예요? 거기까지?
최 : 그럼요. 정조가 이곳에 와서 분명히 정조도 아마 이곳에서 저길 바라봤을 거예요.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 많이 슬펐겠죠.
최 : 그러니까요.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 라는 어떤 그런 결의를 갖고, 바로 여기서 군사훈련도 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na : 지금도 남한산성에는 호국의 의지를 다졌던 정조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전해진다.
자막 : 왕의 길 - 세 번째 여정, 화성 
na : 정조의 야망이 가장 잘 드러난 장소이자 정조의 계획도시, 화성! 총 5.7km에 달하는 성곽에는 4개의 성문과 다양한 방어시설이 100m 마다 설치돼 있다. 군사용으로 지어졌지만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 실학의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불리는 과학적인 건축공법까지, 조선의 과학과 문화가 총 집결된 곳이다.
최 : 해밍턴 씨가 여기가 왜 중요하냐 라고 이야길 했는데 저희가 정조, 왕의 길을 보고 있는 중이잖아요. 우리가 앞에서 창덕궁에서 정조가 열심히 공부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걸 보셨죠?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와서는 어떤 군사적인 것도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조도 봤죠? 그러한 정조의 관심과 그러한 정조가 키워낸 인재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총합. 그 결과물이 이곳 바로 수원화성에 있는 거예요. 여기 엄청난 과학기술이 다 들어가 있고, 여기 엄청난 인재들이 다 동원되었고, 또 군사적인 중요성이 부각된 곳.
오 : 여기가요? // 최 : 그렇죠. 바로 이 수원화성. 그런데 요 구멍들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 : 화살 // 황 : 화살 아니야, 화살 아니야. 대포.
아 : 뜨거운 물을 뿌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 최 : 우와, 아비가 정답이였어요.
아 : 진짜? // 최 :  몇 개인지 보세요. 구멍이 몇 개 인지.
모두 :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개.
최 : 네, 다섯 개 해서 오성지라고 하는데 어떻게든 문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들어오면 뜨거운 물 부을 수 있고, 불이 들어오면 차가운 물 부을 수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서 여기를 막아내는 그런 기능.
오 : 선생님 이거 효과 있어요? // 해 : 너 밑에. 너 여기 들어오려고 하는데 뜨거운 물 부어봐 봐.
오 : 아악아악 // 해 : 그럼 효과가 없겠냐고. 당연히 있지.
황 : 한번 해보자. 잠깐 내려가 봐. 
최 : 그래서 이곳은 보시면 알겠지만 그냥 만들어 진 성이 아니라 군사적 기능을 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설계된 그런 성이였구나.
na : 동북공심돈 역시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의 역할을 하던 군사시설인데, 세련된 곡선이 독특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황 : 뭔가 그동안 봤던 건축물이랑 다릅니다. // 아 : 뭔가 밥통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가마솥
해 : 일단 동그랗게 된 건물 많이 없잖아요.
최 : 겉으로 볼 때는 이렇게 1층 2층 3층 이렇게 보이는데 실제로 이 안에 들어가면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거죠.
황 : 그러니까 용도가 뭡니까? // 최 : 용도가 뭐냐면?
아 : 뭔지 알 것 같아. // 최 : 뭘까요. 용도가 뭘까요?
아 : 그냥 그 적들한테 약간 낚시를 하는 거죠. 우리 여기 있다. 이렇게 뻥 같은. 위장 같은. 아 거기를 공격하면 되겠다 했는데 사실은 여기가 비어 있는 거지. 메롱 여긴 없지롱.
최 : 우와 진짜 맞아요. // 아 : 우아 진짜 맞아요? 예~
최 : 이게 어디에서 포를 쐈는지를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도대체 화살은 어디서 쏘는 건지, 총은 어디서 쏘고, 포를 어디서 쏘는 건지, 알 수가 없도록 만들어 놓은 거예요.
황 : 굉장히 과학적이네요.
최 : 사실은 이 수원화성을 맨 처음에 만들려고 했을 때 계획을 잡았을 때 이 계획이 10년 정도 예상을 했었어요. 그런데 몇 년 만에 이 수원화성을 지었을까요? 완성을 시켰을까요?
해 : 5년 // 오 : 샘 오취리! 6년 // 황 : 또 찍었는데, 너 맞추면 사기꾼이야.
아 : 3년 // 최 : 하하하. 3년. 정답! // 황 : 약간 쟤 신기 있는 것 아냐?
아 : 아 웃겨 진짜로? 말도 안 되잖아요. // 최 : 정확히 2년 8개월. 가장 가까운 근사치를 맞추셨는데. 대단합니다.
황 : 아니 외국인 출신 무속인이 있어요? 전 세계 최초로 외국인 첫 번째 무속인이 될 수 있는.
최 : 그 비결이 뭐였냐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걸 만드는데 우리 전통만 고수한 게 아니고요. 서양의 과학기술도 과감하게. 외국의 과학도 과감하게 받아 들였어요.
na : 화성의 또 다른 특징은 동서양 건축술의 만남이다. 동양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서양의 건축방법과 기계들을 활용해 완성됐다. 난공불락의 성곽도시이자 조형의 미를 살린 예술적 감각까지...이처럼 화성은 수려한 자태 속에 강력한 공격시설과 방어시설을 감춰 두었다. 축조 220년... 조선시대의 독자적인 디자인을 창조한 성곽 건축의 백미가, 바로 화성이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뜻을 지닌 정자, 방화수류정.
최 : 자 에어컨 있다고 분명히 제가 말씀드렸어요.
모두 : 우와~ 시원하다. 
최 : 신기하죠? 그저 계단을 올라왔을 뿐인데.
na : 주위를 감시하던 곳이자 휴식 공간인 이곳은 수양버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압권이다.
최 : 지금 정조의 왕의 길을 찾고 있잖아요. 왜 이 곳일까요. 왜 왕의 길에서 정조는 이곳 수원을 택한 것일까요?
오 : 저도 정조 왕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 아 : 원래 정조가 태어난 곳이 아닐까요?
최 : 태어난 곳은 서울이겠죠.
황 : 저는 약간 그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지금 정조를 며칠 동안 공부하면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름이 있어요. 그 분과 연관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세자.
최 : 아! 사도세자 누구라고 아시죠? // 아 : 이산
해 : 사도 // 최 : 사도세자는 누구일까요? // 오 : 그 할아버지.
아 : 유아인. 유아인. 유아인. 유아인
최 : 맞습니다. 사도세자가 바로 유아인. 정조의 아빠가 되는 거죠. 그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곳 화성에 옮겨요. 정조가. 
황 : 아, 옮긴 겁니까?
최 : 영조가 죽고 나서 정조가 이제 왕위에 오르잖아요. 왕위에 올랐을 때, 내가 딱 왕이 됐을 때 했던 말이 뭔지 아세요? 어떤 말을 했을까요. 왕위에 딱 올랐을 때.
아 : 내가 왕이다. // 해 : 할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를 다 잊어라.
아 : 내가 세자의 아들이다. // 최 : 내가 세자의 아들이다. 정답! 와~
최 : 아비가 진짜 잘해. 정확하게 뭐라고 그랬냐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너희들, 내 아빠 사도세자야. 확실히 모셔야 돼’ 라고 선언을 한 거예요. 그래서 능도 아주 좋은 곳으로 옮긴 거죠. 그게 바로 여기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곳이 아버지가 있는 곳이 된 거잖아요. 이 아버지가 있는 곳을 내가 확실하게 근사하게 만들어주겠다.
na :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긴 뒤 총 13차례 능행차를 떠났다. 특히 1795년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환갑연, 그리고 정조의 즉위 20주년 까지 함께 기념한 조선 최대 행렬이 이뤄졌다. 당시 참여 인원만 6천여 명... 이날의 능행차는 아들 정조의 절절한 효심의 절정이었다.
최 : 이게 바로 서장대라는 건데, 우리 지금 정조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증거가 여기 있어요. 정답 맞추신 분은 제가 3점씩 드리겠습니다. 오취리 씨, 분발하셔야 해요. 점수가 지금 0점이에요. 정조의 흔적. 자, 오취리?
해 : 그냥 빵점으로 가자 // 오 : 간판이...
최 : 간판. 정답으로 하겠습니다. 정답! 맞습니다. 여기 현판을 보시면 화성장대라고 있는데요, 정조가 직접 쓴 글이에요. 정조가 직접 쓴 글이에요. 드디어 여기서 정조가 직접 쓴 글을 만나봅니다.
na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의 꿈이 펼쳐진 곳, 이곳 화성이다.
자막 : 왕의 길 - 마지막 여정, 조선왕릉    
na : 아버지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가 나란히 누워있는 영원한 사부곡의 무대, 융건릉. 융건릉을 포함해 조선 27대 왕과 왕비의 능 42기가 지금껏 보존되고 있는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의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한 왕조의 무덤이 500년 이상 후손들에 의해 그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사례가 바로 조선왕릉이다. 조선왕릉은 단순한 왕의 무덤이 아니라 조경, 석조미술, 풍수지리는 물론 제례에서 의전까지 아우르는 야외 종합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융릉으로 향하는 원정대원들... 잘 가꿔진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사도세자의 능이 있다.
해 : 지난번에 창덕궁 갔을 때 옛날의 비밀 정원이라고 했잖아요. 여기도 살짝 그런 느낌이 나요. 진짜 들어올 때 갑자기 신세계 발견하는 밝혀진 느낌이거든요. 주변에 이렇게 숲도 많고 약간 숨어있는 느낌이라. 
최 : 맞습니다. 딱 그렇게 이곳을 만든 것이에요. 그렇게 만든 것이고 그 느낌을 느끼신 거죠.
na : 그런데 융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정자각 뒤로 일직선상에 있어야할 능침이 옆으로 틀어져 있어 봉분이 바라보인다. 
최 : 이게 원래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정자각 뒤쪽에 딱 있는 게 맞죠. 맞는데, 풍수지리. 풍수지리를 잘 모르실 텐데.
해 : 머리가 어떤 방향으로 누워야 되고, 집 지으면 어떤 방향으로. 물이 있으면 안 되고.
최 : 원칙엔 좀 어긋나지만 트는 게 좋다라고 해서 튼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좋은 거라면 뭐든지 하겠다라는 정조의 어떤 마음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오 : 저는 방금 생각이 났는데 사도세자 같은 경우에는 조그만 상자 안에 계속 고생하다가 죽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세상을 제대로 구경하거나 그렇게 못했을 거거든요. 그래서 쉬시면서 편안하게 구경을 하시라.
최 : 앞에 전망을 딱
오 : 그렇죠. 구경하시라는 의미로.  
na : 정조의 지극한 효성이 만들어낸 파격과 정성의 공간이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이다. 왕의 길 마지막 목적지, 건릉.
최 : 정조를 만나러 왔잖아요. 바로 여기가 정조 대왕이 있는 능이 되겠습니다.
아 : 드디어 만났네요.
최: 사실 저 뒤쪽에 물이 흐르고 있죠? 물이 흐르고 저기가 금천교라는 곳인데요. 금천교를 기점으로 저쪽 바깥쪽이 인간사는 세상, 그리고 금천교부터  여기 지금 건물이 하나 보이죠. 여기까지는 인간과 신이 함께 있는 공간. 저 공간을 넘어서면 신이 있는 공간. 이렇게 세 공간으로 나뉘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가 이 앞을 쭉 걸어 올라갈 거거든요. 앞에 보시면 길이 2개가 길이 있어요. 약간 높은 곳 있죠? 이 높은 곳은 향로라고 합니다. 로라고 하는 것은 길 로 자를 의미하거든요. 향로고요. 이쪽 길은 좀 나지막한 길은요, 어로라고 합니다. 어는 임금 어 자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이 낮은 길은 임금이 가는 길이고요. 제사를 지내러 온 거잖아요. 그러면 누군가가 대상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대상을 모신 길이예요. 그러니까 혼령이 가는 길이죠. 그래서 향과 축문이라고 해서 혼령을 모신 축문이 있거든요. 그것을 모시고 이렇게 올라가는 길. 그래서 향로. 그리고 이곳은 임금이 가는 어로가 되는 겁니다. 
na : 정자각 너머는 망자의 평온한 안식처... 특별히 허락된 그 은밀한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다.
최 : 여기가 이제 정조대왕께서, 우리가 그렇게 정조의 길을 찾으러 쭉 왔다 갔다 했는데 정조대왕께서 누워있는 공간입니다. 정조대왕께서 누워있는 그런 공간이 되겠습니다. 저도 지금 여기에 이렇게 정조대왕을 가까이서 본 건 저도 처음이라서 사실은 좀 떨려요. 만날 역사 속에서 정조를 이야기 했는데. 그냥 감격스럽고요. 요 앞에 어떤 바둑판처럼 생긴 게 하나 있어요. 상 같죠? 혼유석 이란 것 이예요. 혼이 여기서 노닐면서 여기서 쉬는 그런 공간.
na : 강건한 석물들이 망자의 평온한 영면을 지켜 주는 곳... 그래서 조선왕릉은 신들의 정원이자 안식처다.
최 : 이런 어떤 틀들이 건릉뿐만 아니라 융릉도 마찬가지고. 42개의 능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다 이런 형식을 통해서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이런 형식을 통해서 600년 동안 보존돼 왔다 라고 하는 것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뷰포인트 사진을 찍고 있잖아요. 정조대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지만, 쉬시니까 정조대왕이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즉 정조대왕의 시선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시선, 정조대왕의 시선 속에 우리가 들어가 있는 거죠.
황 : 이번 촬영을 통해서 역사에 대한 눈이 많이 트이지 않았나. 문화재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해 : 저는 반성 많이 해야 돼요.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대충 많이 알고 있지만 정조 왕님은 처음 들어봤거든요. 여러분들도 그런 역사 다시 한번 살펴보고 알아보고 공부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최 : 장원 급제자 한명을 발표하겠습니다. 점수 공개하겠습니다. 1등. 1등은 바로 아비 씨입니다. 감축 드립니다. 정말 잘 맞추셨어요.   
황 : 꼴지는 누가했습니까? // 최 : (손짓)...
아 : 파라과이는 지금 200년이 됐거든요. 역사가. 한국은 5천 년이 되잖아요. 제가 봤을 때 엄청 대단한 거예요. 하나씩 하나씩 다 보존하고 싶고 아끼고 싶고 이거 없어지면 안 되는 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기 것이니까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 : 만약에 친구나 가족이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이제 여기 와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자신감이 확실히 생긴 것 같습니다. 또 우리 인생에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깨달았습니다.
최 :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본질적으로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아 재미있구나. 사람을 만나니까 또 이런 걸 배울 수 있구나 하는 본질적인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이런 것들이 바로 왕의 길이라는 코스를 통해서 익힐 수 있지 않았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보네요.


다음 편에서는 창덕궁 후원으로 떠납니다.
서울 이야기의 마지막을 기대해주세요!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9-07-06 | 조회수 :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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