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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추사 김정희 심화학습(2) (#세한도 #후지즈카)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하는 차이나는 클라스 ‘추사 김정희 편’ 두 번째 이야기!
저번 도깨비 문화유산 추사 김정희 편(1) 잘 보셨나요?


추사 김정희의 인생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문화유산채널에서 선정한 문화유산 키워드는 총 두가지!
그럼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단종 부석사 고씨동굴
 
세한도
 

#세한도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 세한도는 언제 그리고 왜 그려진 걸까요?
 
 
언제?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안동 김씨에 의해 대역 죄인으로 몰려 제주도로 유배를 간 시절 그려집니다. 유배 형벌 중에서도 중죄인에 대한 형벌인 위리안치가 되었는데요,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유배지에서 외부출입을 할 수 없도록 가시울타리를 쳐놓고 집안에만 있도록 하는 형벌이라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에 세워진 유허비
 
 
왜?

 
이 가혹한 형벌을 받으며 추사 김정희는 견디기 힘든 고독함을 겪게 됩니다. 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어주었던 이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이상적’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조선 후기의 문인입니다.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의 유배생활 동안 새로 나온 책들을 보내는데, 그것도 한권이 아니라 수레 가득 담아도 모자랄 만큼 보내줍니다.
 
김정희의 유배생활에서 유일한 낙이었던 독서를 가능케 했기에 김정희는 이상적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세한도를 선물합니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 그가 유배생활에서 느끼는 쓸쓸함을 담아 편지와 함께 이상적에게 보냅니다. 


 
세한도에 쓴 글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걸 안다더니
그대의 우정이 귀양살이 전이나 후나
덜한 것이 없네 이에 감사해서 이 그림을 그려준다.
쓸쓸한 노인 완당이 쓴다.”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의 우정으로 만들어진 작품, ‘세한도’.
자세히 감상해보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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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시리도록 새하얀 설원, 그 안에 자리 잡은 사람 하나 없는 토담집 한 채,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싼 네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
쩍쩍 갈라지는 갈필로 거친 종이 세 장을 이어 붙여 그린, 초라하기까지 한 수묵화 한 점.
추사 김정희의 걸작인‘세한도’다. 유배지에서의 시리디 시린 삶은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모든 것을 잃고 철저히 고립되었을 때 발견한 진실한 우정. 그 송백처럼 변함없는 신의가 추사 일생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1840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된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조선 최고의 문사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온 그를 기다린 건 유배형 중에도 극형인 위리안치형이었다.
가족조차 만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아무런 희망도, 힘도 없는 늙은 호랑이 추사. 그런 그를 변함없이 대했던 이가 있었다. 우선 이상적. 중인 출신이었으나 출중한 능력으로 열 두 차례나 연경에 다녀온 조선 최고의 역관이자 시인이었다. 우선은 추사의 오랜 제자이기도 했다.
추사는 세한도 한 켠에 제목과 함께 ‘우선 감상하게나’라는 뜻의 글을 덧붙였다. 그리고 세한도를 그리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만학과 대운 두 책을 보내주더니, 올해는 또 황조경세문편을 보내주었다 고된 귀양살이를 버티게 한 추사의 유일한 낙은 서책이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새로운 서책과 정보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문에 대한 추사의 갈증을 해소해 준 건 이상적이 연경에 다녀올 때마다 전해주는 귀중한 서책들과 연경학계의 소식이었다.

절해고도에 갇혀 아무런 힘도 없던 늙은 스승. 누구도 찾지 않던 추사에게 우선은 변함없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사실 우선의 의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1830년, 효명세자의 죽음은 그 측근이었던 추사 부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추사의 부친인 김노경이 유배를 떠난 후 막 연행에서 돌아온 우선은 추사를 찾아가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어느 가지에 내려앉을지 결정하지 못한 채 바람 속을 맴돌던 까치처럼 이상적도 추사를 찾아가며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추사와 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당시 집권세력의 눈 밖에 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추사를 찾아갔다. 권력보다 의리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뒤에도 이상적은 추사와의 의리를 지켰다.

추사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상적의 신의에 답하였다. 추운 계절이 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안다. 추사는 이 글을 해서체로 써 내려갔다. 예서체의 느낌이 남아있는 해서는 강한 울림을 남긴다.

고난의 세월을 겪으며 알게 된 진실한 우정을 기리기 위해 그린 세한도. 이 작품은 추사의 작품 중 유난히 거친 종이에 그려졌다. 심지어 짧은 종이 세 장을 이어붙이기까지 했다. 유배지에서도 질 좋은 종이를 고집했던 추사는 거친 종이를 통해 자신의 궁핍하고 어려운 처지를 극대화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세한도는 그림 자체도 추사의 처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림의 나무들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백송을 제외한 나무들은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결국 그림의 중심은 백송이다. 몸통은 썩고 구부러진 가지 하나만 남은, 유배 생활에 지친 추사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가지는 추사의 이름을 받치고 있다. 결국 백송은 이상적의 절개를 표현하는 동시에 자신의 외롭고 힘든 처지 역시 보여주고 있다.

이상적은 스승의 그림 세한도를 연경에 가지고 가 문사들과 시사회를 가졌다. 세한도의 전체 길이는 14미터. 그림 자체는 1m 남짓하지만 세한도를 본 청의 문사들, 그리고 이후 작품을 본 문사들의 제영이 이어 붙여져 14m나 되는 대작이 되었다. 세한도를 본 이마다 그림 속 절개와 추사가 일궈낸 문인화의 경지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추사의 처지에 가슴아파하며 제영을 남겼다.
이후 귀국한 이상적은 중국의 문인들이 남긴 제영들을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이 제영들을 본 추사는 크게 기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한도는 어쩌면 절망 속에서 보낸 추사의 구조신호였을 지도 모른다. 추사는 세한도를 마무리하며 장무상망이라 새겨진 인장을 찍었다.‘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다. 텅 빈 설원을 가득 채워준 벗들의 신의와 우정. 그것은 노쇠한 대가가 계속 정진해 나아갈 힘이 되었다.


#후지즈카


그렇다면, 추사 김정희가 이상적에게 준 세한도는 어디로 갔을까요? 일제강점기, 명성황후의 집안에서 소유하였고, 그 이후에는 경매시장에 나왔습니다. 이 세한도를 일본인 경성제국대학 교수 ‘후지즈카’가 구매합니다.
 
 
김정희 컬렉터 후지쓰카 지카시


일본인이 세한도를 구매했다는 말에 많은분들이 모두 걱정을 했는데요. 그러나 그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후지즈카는 추사 김정희의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추사 김정희의 팬이었던 손재형 선생이 세한도를 갖고 싶어 후지즈카를 찾아갑니다. 원하는 값을 줄테니 제발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합니다. 처음에 후지즈카는 이를 거절했지만, 결국 손재형에게 값도 받지 않고 세한도를 넘깁니다.
 
내가 세한도를 돈을 받고 판다면
지하의 완당 선생이 나를 뭘로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 분을 함께 공부하고 따르는
동문 아닙니까.
 
추사 김정희를 단순히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 만나고 이해하게 되면서 ‘세한도’를 양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후지즈카의 아들이 아버지가 모았던 김정희 관련 자료를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합니다.
 
추사 김정희를 진정으로 이해했던 후지즈카. 그는 어떻게 추사 김정희의 팬이 되었고, 얼마나 추사 김정희를 존경하고 좋아했던 걸까요? 문화유산채널에서 제작지원한 ‘천상의 컬렉션’으로 만나보세요. 영상의 19분 30초부터 추사 김정희와 후지즈카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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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보통 예술 작품은 두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창작자에 의해서, 그리고 또 한 번은 그 예술 작품을 느끼고 향유하는 사람을 통해서죠.
첫사랑에 빠지듯 온 정신을 집중해 예술작품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컬렉터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들의 특별한 안목과 열정이 탄생시킨 명품 컬렉터 특집!
총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선택으로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이 결정될텐데요, 세 호스트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가장 마음에 드는 보물에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과연 어떤 보물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까요? 지금 만나보시죠. (CUE)
1. 김수로 <인왕제색도>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는데 ‘만남’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사람의 인생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곤 하죠. 오늘 저는 전설이 된 어떤 ‘만남’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만남의 주인공이 누구냐. (비디오월 가리키며) 바로 이 두 분입니다.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 여러분이 다 아는 사람입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죠. 그럼 맞은편에 앉아있는 다른 한 남자, 누굴까요?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사천 이병연입니다. 조선 영조 때 최고의 시인이면서 중국의 유명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조선 최고의 컬렉터였죠. 오늘 제가 들고 나온 이야기는 이 두 남자의 ‘만남’입니다.
자 일단 먼저 뒤를 한 번 보시죠! 정선이 그린 조선 최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입니다.
거장 겸재 정선이 정말이지 자신이 평생토록 갈고 닦은 모든 기량을 쏟아서 만든 작품이고요 회화 중에는 몇 개 안되는 국보 중에 하나죠.
‘인왕’은 인왕산을 그렸다는 얘기고요. ‘제색’은 큰 비가 온 후 막 갠 풍광을 말합니다. 비가 온 직후의 풍경을 그린 거죠.
그런데 여기 폭포 보이시나요? 좀 이상하죠? 사실 인왕산에는 폭포가 없어요. 그런데 폭포가 생기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여름비가 넉넉하게 내리고 난 뒤죠.
그런데 좀 특이한 게, 정선은 인왕산의 하얀 화강암 바위를 까맣게 칠했어요? 이거 좀 이상한거 같아서 인왕산에 대해서 좀 찾아봤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됐죠. 비가 오고 나면, 인왕산 바위는 검게 젖어들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선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린 겁니다. 이런 그림들을 ‘진경산수화’라고 하는데, 대표 화가가 누굽니까? 네! 겸재 정선이죠. 대표작? 네! 바로 이 <인왕제색도>돕니다.
그런데 거장 정선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조선의 컬렉터 이병연이었던 겁니다.
사실 정선과 이병연의 관계는요 친구로만 정의하기엔 부족해요. 저는 이병연에게 이 닉네임을 붙여주고 싶어요. 겸재 정선 프로듀서~ 이병연!
이병연은 중국 그림을 수집하던 컬렉터였어요, 보는 눈이 있었으니, 친구의 재능도 단박에 알아봤던 거 같아요. 그는 착착!! 정선을 조선의 슈퍼스타로 만드는 계획에 들어갑니다.
스타가 되려면 뭐가 중요합니까? 연습생 때 다양한 경험이 중요합니다.
일생에 단 한번 금강산 여행 해보는 게 조선 양반들의 소원이었던 시절, 이병연은 정선에게 그 경험을 하게 해줘요. 자기가 금강산 근처로 발령이 나니까, ‘야 한번 놀러와’ 초청하는 거죠.
사실, 화가에게 ‘보는 것’만큼 좋은 연습이 없는데, 기기묘묘한 금강산의 풍경을 오감으로 쫙~ 흡수해서 진경산수에 대한 영감을 준거죠.
거기다 이병연이 이 양반이 시를 잘 썼는데, 여기 저기 유람하면서 본 풍경을 비단에 시로 써서 정선에게 보내요. 그래서 뭐가 탄생하냐! 시와 그림의 콜라보! 이병연이 시를 써서 보내주면, 그 시 내용을 주제로 정선이 그림을 그리죠. 이 기막힌 콜라보가 바로 <경교명승첩>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실력만 있다고 뜨는 거 아니죠. 뭐가 중요합니까? 홍보죠, 마케팅!
이병연은 정선을 당대 조선을 주름잡는 사대부들 앞에 소개합니다. 본격 조선 사교계 데뷔!!
소개도, 아무한테나 하지 않아요. 우리도 데뷔 무대, 출연하는 프로그램 같은 거 기획사에서 세심하게 관리하잖아요.
조선 최고의 컬렉터 이하곤! 문화계를 주름잡던 안동김씨 김창집 형제에게 정선을 소개해요. 조선 사교계가 ‘정선’ ‘정선’하고 찾게 만드는 거죠.
그림 수집에 욕심이 많던 이병연은 중국 그림도 꽤 많이 소장했다고 해요. 하지만 누구 그림이 가장 많았겠습니까? 그렇죠! 베프 정선의 그림이었겠죠.
아까 제가 말씀드린 콜라보 작업의 결과물 <경교명승첩>을 소장했고요, 영남의 경치 좋은 영남첩 같은 진경산수도 가졌고, 해악전신첩, 금강도첩도 이병연이 소장했다고 합니다.
요즘 아트펀드가 뜨잖아요. 이분은 거의 삼백년 전에 아트 펀드를 알았나봐! 당시 조선의 톱스타였던 정선의 그림이 얼마였냐? 집 한 채! 이병연은 정선의 그림을 되팔거나 중개를 해서 생긴 돈으로 중국책을 샀는데요. 그 양이 무려 1500여권이나 됐다고 합니다. (*돈 만지는 느낌) 이거.. 좀 만지신거 같죠?
서로가 서로를 키워주고, 도와주는, 둘도 없는 사이..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건 1751년입니다. 정선에게 있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친구, 이병연이 노환으로 몸져누워 있을 때였어요.
정선은 아마 알았을 겁니다. 육십년을 함께 해왔지만 이제 둘 앞에 놓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절친이 병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정선은 붓을 듭니다. 그리곤 비가 갠 뒤의 인왕산을, 빗물을 머금고 뻗어나가는 기운찬 풍경을 그려 나갑니다.
“인마 그만 일어나! 어서 훌쩍 털고 일어나!“ 하고 말하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 인왕산이었을까요? 북한산도 있고, 금강산도 있잖아요.
저는 이 그림에서 답을 찾아냈습니다. 이 풍경 속엔 ‘그리움’이 담겨 있어요. 그것도 아주 지독한 그리움이요...
인왕산은 정선에게 그냥 산이 아닙니다. 어릴 적 자신의 집이 있었고요, 죽마고우 이병연의 집이 있었던 공간입니다. 나와 내 친구가 함께 자란 공간... 이곳에서,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죠.
<인왕제색도>에 정갈한 기와집 한 채가 그려져 있어요. 아마, 이 둘의 만남이 시작됐던 곳이겠죠.
정선은 자신의 곁을 떠날 친구에게 그들의 만남이 시작됐던 곳을 그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너랑 함께 해왔던 60여년의 시간이 미치도록 그립단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게 일흔 여섯의 노화가는 그동안 자신이 갈고 닦은 모든 기량을 쏟아 이 작품을 그려 나갔습니다. 함께 했던 인왕산의 풍경을 영원으로 남기기 위해서..
두 지기가 육십여 년 간 함께 봐 왔던 인왕산의 모습은 그렇게..., 전설이 되었습니다. 겸재 정선이 남긴 <인왕제색도>입니다. (CUE)
MC 한상헌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두 친구의 우정이 담긴 전설의 그림 인왕제색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이었습니다. 자 이제 김수로 씨의 최후의 한마디 들어볼까요?

김수로 저는 이 그림에서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였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그대, 사천 이병연이었다” 일생을 결정지은 벗과의 만남이 담긴 그림 <인왕제색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김수로 씨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MC 한상헌 자, 그럼 다음은 어떤 호스트가 어떤 보물을 소개해 줄까요. 지금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2. 방은진 <김정희 편지>
여기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후지쓰카 지카시, 경성제국대 초대교수이자 유학자였고, 일본에서 내놓으란 동양철학자였죠. 그런데 이 후지쓰카가 청나라 학문에 대해 연구하던 즈음,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지요. 청나라 학문에 조선 북학파 선비들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걸요. 그러다, 그는 또 다른 한 남자를 알게 됩니다. 19세기 청나라에서 월드 스타 대접을 받던 대학자! 추사! 김정희를 말입니다!

처음엔 그냥 전공에 대한 연구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방향으로 파도, ‘김정희’, 저 방향으로 파도 ‘김정희’가 나와요. 도대체 자신이 김정희를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이 사람이 누굴까 하는 호기심은 열렬한 팬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가 얼마나 추사 김정희의 광팬이 되었냐면요, 아들의 말로는 경성대 교수로 있던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인사동 거리를 누볐답니다. 이유는! ‘김정희’란 이름이 남은 문서와 그림을 쓸어 모으기 위해서지요.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도 바로 이 때 구했다고 합니다.

후지쓰카가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선요, 자신이 모은 추사선생 자료 중 일부는 방공호에 숨겨놨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소중했으면 학교 연구실이 아니라 방공호에 숨겨 놨을지...

이렇게 고이 모셔둔 자료는 도쿄 공습 때도 무사히 보존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정희 선생을 흠모하는 팬심 덕에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무사했던 보물... 바로 오늘 제가 들고 나온 <김정희 편지>입니다.

약 1미터 정도 길이 종이에 쓰인 이 편지는 조카 민태호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추사란 이름에 걸맞게 서체도 예사롭지 않죠? 제가 몇 문장 낭독해보겠습니다.

산촌의 비가 아침에 개었으니 아마도 북엄의 온갖 꽃망울이 다 터져나왔을 듯 싶구나. 비가 옷을 적시던 일이 눈에 선하고 옛 이끼에 나막신 자국 박히던 것도 떠오르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참으로 아름답죠? 수려합니다. 그런데 특히 이 부분은 애교 또한 넘칩니다. 당대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부분인데요.

<범사도>를 이렇게 보내주니 노안이 번쩍 뜨인다 후지쓰카는 편지를 읽으며 당대 명작을 보고 감탄하는 추사의 모습을 떠올렸겠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추사의 편지를 읽으며 감탄하는 자기 모습을 떠올렸을 거예요. ‘야~ 추사 선생님도 나랑 비슷한 면모가 있네’

이 편지들을 통해 그는 ‘대학자 김정희’가 아닌 ‘인간 김정희’의 모습을 훔쳐보는 쾌감을 느꼈을 것이 고 참으로 짜릿했을 겁니다. 후지쓰카는 단순한 수집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모은 스물 세통의 편지에 제목도 달고요 시기별로 분류도 하고, 정리까지 해놨죠. 특히 이 편지는 정말 정성스레 표구를 해둔 것이 눈에 띕니다. 아마 후지쓰카가 가장 아꼈던 편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서글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늙은 홀아비의 처지가 볼수록 처량하니 어찌해야겠습니까. 먹고 있던 차가 다 떨어져 달리 빌릴 곳이 없고 또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죽기 4년 전, 제자인 이상적에게 차를 부탁하면서 힘든 걸 하소연하는 모습이죠. 이걸 읽었을 때, 어땠을까요? 위대한 학자의 외로운 말년... 참으로 안타까웠을 겁니다. 내가 지금 마시는 이 차 한 잔, 당장 올리고 싶은 마음 이었을 겁니다.

사실 후지쓰카는 편지만 모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에 너무너무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기면 뭘 할 것 같으세요? 추사가 살았던 집? 찾아갑니다! 가서 후손까지 만나고 사진까지 찍습니다. 추사의 묘? 당연히 방문했죠. 비석하나 없던 묘 앞에 푯말까지 세워줍니다.

구할 수 없던 추사 김정희의 작품? 사진을 찍어서라도 보관해 놓습니다. 실제로 당대 조선의 최고 컬렉터 장택상이 추사 글씨를 갖고 있단 소식을 듣고, 편지를 씁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추사의 글씨를 볼 수 있겠냐고. 어떻게 안되겠냐고 말입니다. 조르고 또 조르죠. 결국 후지쓰카는 장택상에게 추사의 글씨를 사진으로 받아냅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라면, 사진으로라도 저장하는 거죠.

후지쓰카의 박사 논문? 당연히 추사 김정희가 주제죠! 추사, 추사, 추사, 추사... 그렇게 후지스카는 김정희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수집해 나갔습니다.

아까 제가 현재 우리나라 <세한도>를 후지쓰카가 손에 넣었다고 말씀 드렸죠? 이 소식을 들은 서예수집가 손재형 선생이 세한도를 자신에게 양도해달라고 후지쓰카를 찾아갑니다. 추사의 걸작이자, 대표작인 세한도... 마침내 그는 정말 놀라운 결정을 내려요. 양보합니다. 조건 없습니다. 다만 단호하게! 이렇게 말하죠.

(약간 연기톤) "내가 세한도를 돈을 받고 판다면 지하의 완당 선생이 나를 뭘로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 분을 함께 공부하고 따르는 동문 아닙니까” 와아.. (감탄)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후지쓰카는 김정희에 대한 연구만 한 게 아닌 거죠. 공부하고 연구하고 파고들다보니~ 어느새 김정희를 ‘인간’으로써 만나게 된 거죠. 김정희를 자신의 스승으로서, 이해하게 된 겁니다. 그리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겁니다. ‘김정희 선생께선 이 그림이 조선 땅에 있는 걸 좀 더 기뻐하시겠지...?’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거죠. 내 손에 쥐고 있고 싶지만, 그 마음을 넘어서서, 양보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몇 십 년 뒤, 후지쓰카의 아들이 아버지가 모았던 김정희 편지를 포함한 모든 관련 자료를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합니다.

그의 아들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평생을 추사 선생을 연구해왔던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을 결말을요... 이 아름다운 양보의 미덕으로 우린 추사의 깊은 면모까지 연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때로 어떤 보물은 수집가의 진심이 더해져 그 가치가 커지는 보물도 있습니다. 후지쓰카 부자는요, 김정희 선생의 편지나 자료들을 결코 돈이나, 재화로서 재단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해왔던 노력은 진정으로 추사 선생을 존경하고, 이해하고자 한 것이었죠.

어쩌면 진정 추사의 위대함을 완성한 건 그를 인간으로서 아니, 인간을 넘어 전우주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고 흠모해왔던 후지스카같은 후대의 팬들이 아닐까요?

김정희에게 푹 빠졌던 한 남자가 일생을 바쳐 정성스레 수집해왔던 보물, <추사 김정희 편지>였습니다.(CUE)

<최후의 한마디> ‣ W2-2 : 후지쓰카 가족사진+후지쓰카 사진 저는 이번에 후지쓰카 선생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 정도까지, 김정희를 사랑할 수 있는가? 이렇게 까지 아끼고 존경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김정희 선생을 흠모하다가 어느덧 선생의 인품과 정신까지 닮아버린 후지쓰카 부자의 이야기. 이런 마음들이라면, 이런 사람들이라면, 우리를 얼어버리게 만든 위안부 협의 문제도 외면하지 않게 할 수 있을 텐데...

사람이 먼저라는, 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이 이야기를 보물처럼 하나씩 가지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방은진 씨의 <추사 김정희 편지>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MC 한상헌 자, 그럼 이제 오늘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줄 보물만이 남았는데요. 어떤 보물인지, 바로 만나보시죠!

3. 윤상 <백자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윤상 먼저 소개된 컬렉터들, 대단하죠. 그런데 제겐 좀 먼 얘기처럼 느껴집니다. 제 마음을 움직인 컬렉터는 주변 친척 중에 닮은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 평범해 보일 수도 있어요. 저희 삼촌을 닮았어요.    하지만 수집 덕력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전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죠. 그의 아버지는 사실 아들의 수집벽이 집안을 망하게 할까 노심초사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수집 ‘마이 웨이’를 갑니다. 무려 40년이 넘도록 말이죠. 그가 빠진 물건은 무엇이었을까요? ( 월 가리키며 ) 바로, 이 백자였습니다. 오늘 컬렉터 특집의 마지막 주인공, 수정 박병래 선생입니다.

때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지도 교수가 그에게 접시 하나를 보여주며 묻습니다. “어느 나라의 것인지 아는가?” 당황한 그는 우물쭈물 합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때! 교수가 던진 한마디! “조선인이 조선의 접시를 몰라서야 되겠나!” 수치심을 느낍니다. 화도 났죠. 그 길로 선생은 박물관에 다니며 도자기를 공부하고 접시를 사 모으기 시작하는데요. 처음에는 분명 싸고, 흔하고 투박한 것들 이었겠죠? 멋을 잔뜩 부려 눈에만 확 들어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선생은 자연스레 백자의 매력에 빠집니다. 백자가 주는 평온함에 매료된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백자의 가치를 알아보는‘안목’도 갖추게 되고, 진흙 속 보물을 찾아내는 쾌감도 느끼게 됩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백자 수집이 시작된 거죠.

제가 오늘 소개할 보물은 선생이 모았던 백자 컬렉션 중, 청화백자의 정수를 보여주는 산수무늬 항아리! 입니다. 도자기의 균형 잡힌 곡선미도 아름답지만, 푸른 안료로 명암을 표현한 산수화가 멋집니다.

도자기도 보고, 그림도 감상하고 1석 2조의 작품이죠. 선생의 컬렉션에는 유독 청화 백자가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의 그림은 아주 세밀하고 수준이 높습니다. 백자의 양면엔 18세기 조선에서 유행하던 산수화가 그려져 있죠. 청에서 유행하던 산수화, ‘소상팔경’ 중 두 가지 풍경을 그린 것인데요. 달밤 아래 고즈넉한 누각을 그린 ‘동정추월’!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풍경 속 두 사람의 모습은 ‘산시청람’입니다. 산수화 사이엔 매화와 대나무도 그려져 있습니다. 어떠십니까. 정말 화려하면서도 담백하죠?

그런데 선생은 이런 명품 청화백자를 어떻게 손에 넣게 됐을까요? 일단 당시는 안목만 있으면 좋은 백자도 저렴하게 살 수 있던 시절였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발품 팔다 보면 운 좋게 좋은 백자를 싸게 구입하기도 했죠. 게다가 선생 주변엔 골동품 수집의 조력가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골동품 동호회쯤 되겠죠. 당대 최고 수집가들은 틈만 나면 당시 유명한 수집가였던 장택상 씨 사랑방에 모였습니다. 그 때부터 쉬지 않고 품평이 이어집니다. “자네, 이 골동품은 정말 잘 샀네, 그려~” “아니, 어떻게 그 돈 주고 이걸 샀단 말인가?” 그렇게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늦어지면, 설렁탕이나 단팥죽을 시켜 먹으며, 골동품 이야기로 밤을 샜습니다.

때론 사랑방 손님들과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호회가 모였던 사랑방 주인 장택상씨와 작은 연적을 두고 맞붙게 된 거죠. 당시, 박병래 선생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렇죠. 더 사고 싶죠. 단 하나 뿐인 리미티드 에디션! 못 사면 두고두고 한이 될 일었습니다. 당시 연적 가격이 500원. 선생의 월급은 200원이던 시절이었죠. 어떻게 했을까요? 맞습니다. 바로 지릅니다. 그리곤 5개월 할부로 값을 치릅니다. 눈앞에 있는 소중한 자기를 진정한 백자 덕후가 놓칠 수 없었겠죠. 백자에 대한 수집 열정과 함께 박병래 선생은 자신만의 컬렉션을 완성해갔습니다. 골동품 수집 전성시대의 한 가운데서 말이죠

다시 한 번, 백자청화 산수무늬 항아리를 볼까요? 전 이 작품에서 컬렉터 박병래 선생의 실용성이 느껴집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네 가지 매력적인 그림을 감상할 수 있으니 이리 봐도 좋고 저리 봐도 좋은 거죠. 수준 높은 공예품인 동시에 상당한 필력의 회화까지 그려진 이 도자기! 처음 보곤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을까요?

선생의 자서전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좋은 걸 사게 되면, 한밤중에 일어나 불빛에 비춰보곤 했는데 보통 한 보름가량은 흥분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 백자를 구입하고선 한 달 넘게 잠을 못 이뤘을 것 같죠.

40년 간 모아왔던 수 백 점의 백자. 하지만 그는 돌연 큰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백자 컬렉션 362점을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한 겁니다. 이 청화 백자를 포함해서 말이죠. 국내 최초, 대규모 기증이었습니다. 아까운 마음이 드셨을까요? 아닙니다. 기증 후 과년한 딸을 시집보낸 것처럼 기쁘다고 얘기했거든요. 자신이 백자를 통해 느꼈던 인생의 행복을 죽기 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거죠

박병래 선생은 수집이란 자신의 취미를 이렇게 설명했죠. ‘덧없는 인생에 더 없는 양념’! 청화 백자도 감동적이지만 저에게 진짜 감동은 그의 컬렉터로서의 태도와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컬렉션을 기분 좋게 사람들과 나누며, 그 소중한 보물들을 ‘삶의 양념’이라고 표현한 그의 소박함까지 말이죠. 오늘날, 여러분들의 삶을 응원하고 지탱해주는 인생의 멋진 양념은 무엇입니까. 40년 수집광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 박병래 선생의 백자청화 산수무늬 항아리입니다!

<최후의 한마디> ‣ W3-1 : 오프닝 – 1930년 경성에 불어닥친 골동품 열풍 ‣ W3-3 : 박병래 선생 사진 ‣ W3-7 : 박병래관 스무 살 무렵, 도예를 전공했었는데 음악에 빠져 곧 그만두었어요. 오늘 선생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제야 오래된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어요. 선생의 백자 컬렉션을 통해 느낀 감동을 곡에 담았습니다. ## 윤상 인사 후 퇴장 ## 음악 PLAY 끝나고 난 뒤 MC 한상헌 박병래 선생의 컬렉션을 보고, 감동 받아 직접 작곡해주신 곡입니다. 다시 한 번 윤상 씨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도깨비 문화유산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문화유산 키워드도 기대해주세요!
다음에 만나요.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9-07-05 | 조회수 : 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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