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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기자단이 만난 사람-한국문화재재단 백경환 부팀장

   

한국문화재재단 국제교류팀 백경환 부팀장님 인터뷰- 문화유산 ODA 사업 A to Z
 
안녕하세요! 징검다리 기자단 7기 3조입니다.
저희는 한국문화재재단 국제교류팀의 업무와 주력 사업인 문화유산 ODA 사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국제교류팀 백경환 부팀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생생한 경험담과 현장이야기가 담긴 인터뷰, 지금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우선 부팀장님이 계신 국제교류팀의 업무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희 국제교류팀은 ① 세계유산 보존관리지원사업 ② 무형유산 ③ 교육 및 역량강화사업 ④ 국제교류업무 등 크게 4 가지 파트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문화유산 ODA라고 통칭되는 세계유산 보존관리지원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캄보디아 프레아피투 사원, 미얀마 바간 유적 보존관리지원사업, 보존처리 장비 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답니다. 무형유산 ODA는 라오스, 카자흐스탄, 캄보디아의 무형유산을 대상으로 인벤토리 작성 지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등을 지원하는 업무입니다. 교육 및 역량 강화 사업에는 DR콩고 국립박물관 운영 역량강화 지원사업과 협력국 초청연수, 석사과정연수 지원, 문화동반자 사업 등이 있고, 국제교류업무로는 유네스코 자문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의 업무는 사업의 성격, 대상국가 등에 따라 서로 상이하고 다양합니다. 하지만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ODA 대상국의 세계유산을 보존 및 복원하고, 보존과 관련된 장비를 지원하고, 거기에 연수과정을 접목시킴으로써 지원 종료 이후에도 대상국이 스스로 문화유산 보존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Q2. 문화유산 ODA! 정말 뜻깊은 사업인 것 같습니다. 부팀장님께서는 그 중 어떤 사업을 담당하고 계시나요? 해당 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A. 저는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보존복원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ODA는 사업의 특성상 국내/해외 업무로 나뉘어집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라오스 사업으로 설명드리자면 1년중 5개월은 국내에서, 7개월은 해외에서 진행됩니다.(9월~다음해 4월) 이렇게 나뉘게 되는 이유는 총 3가지입니다. ① 가장 큰 요인은 기후문제입니다. 라오스에는 우기가 있는데, 이 시기 동안에는 폭우로 현장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② 문화적 측면의 이유도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라오스인들은 하안거(카오판싸)라는 문화에 따라 7-9월 동안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위험을 삼가기 위해 외부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③ 그리고 이 시기는 농번기(6-10월)라 농경작업에 인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복원사업현장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1년 내내 현장작업은 불가능하죠.
 
Q3.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A. 기본적으로 해외현장에서 조사된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 주된 업무입니다. 실측야장 및 모니터링 데이터를 디지털자료화하고, 복원도면을 수정하는 등의 작업을 합니다. 한국의 첨단기술력이 필요한 연구가 진행될 때는 카이스트 등 주요 연구기관들과 협력하기도 합니다. 해외 현장에서 빠듯한 일정동안 다양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다음 현장작업에 대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거기에 맞춰 공정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이나 장비 등을 준비합니다. 특히, 라오스는 인프라가 열악한 편인데요. 복원을 위해서 필요한 중장비, 공사자재, 조사용품, 보존처리용품 등을 현지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 준비해서 라오스로 배송해야 해요. 그런데 라오스가 내륙국가인 관계로 배송에만 ‘1-2달’이 걸립니다. 정말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죠. 이에 못지않게 행정업무도 중요한데요, 그동안 미진했던 행정 업무들을 처리하고, 기획재정부 · 외교부 · 문화재청 등 정부 부처와 예산과 계획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Q4. 국내에서도 이렇게 업무가 많으시다니, 놀랍습니다. 해외 업무도 설명부탁드려요!
A. 현장에서 유적을 실제로 복원하는 업무가 메인입니다. 현장에서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서 일을 진행해야 해요. 발굴조사 · 지반조사 · 고증연구 등 기초조사가 선행되면 보존복원현장까지 진입로를 구축하고, 작업로를 개설하는 등 가설공사를 진행합니다. 이후 부재수습 · 해체조사 · 부재 보존처리 등의 복원공사를 합니다.
 
Q5. 해외업무 시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A. 네. 저희 사업의 모든 과정은 ODA 사업 취지에 맞게 라오스의 수원기관인 ‘왓푸세계유산사무소’ 직원들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그들과 공동조사를 통해 기술을 전수하기도 합니다. 현지 스텝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실측교육, 보존 처리장비 활용교육 등 여러 연수과정도 운영합니다. 협력해서 진행해야하므로 독단적인 결정은 있을 수 없죠. 중요한 결정이나 계획 수립 이전에는 유네스코, 국제협력팀(프랑스 · 일본 · 인도)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유산센터(World Heritage Centre)의 모니터링을 받고, 라오스 정보문화관광부, 수원기관과의 수시 협의가 필수적입니다. 
 
       

Q6.
해외 현장에서 작업하실 때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셨다면 소개해주세요!
A. 라오스 인들의 순수한 신앙심과 관련된 일화예요. 그들은(홍낭시다가 소재해 있는 시골마을 주민) 아픈 경우, 치료가 아니라 사원에서 기도를 드려요. 기도가 아픈 몸을 낫게 해준다고 믿고 있거든요. 제가 현장에서 돌을 옮기는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적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짚고 일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본 현지 주민들은 모두 제게 기도하라고 조언하더군요. 수 일이 지나고 허리가 자연스럽게 낫게 됐는데, 주민들이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기도로 낫게 되었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어요. 주민들은 정말 순수하게 기뻐해 주시더라구요. 비슷한 상황이지만 또 다른 면도 있는데요. 저희 현장사무소 관리원으로 일하시던 분이 농사일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통증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셨어요. 차마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서 통증이라도 조금 덜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비상약으로 가져갔던 진통제를 반 알 쪼개 드린 적이 있어요. 평소에 약을 잘 안 드셔서 그런지 그 약을 먹고 금새 통증을 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제가 현장사무소로 출근을 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준 약을 먹고 통증이 사라졌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거였어요. 다들 알다시피 진통제라는 것이 치료가 아니라 통증을 잊게 만들어주는 것인데,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 월드컵 당시 라오스 현지 스태프들이 한집에 모여서 브라운관 티비로 한국경기를 보며, 응원하다가 다 같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온 적이 있는데요. 우기동안 한동안 못 보던 얼굴들을 보니까 반갑고, 그리고 멀리서 한마음으로 응원까지 해주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Q7. 재밌는 일화들도 많지만, 1년 중 7개월이 소요되는 해외 업무인 만큼 불편한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A. 오지에서 생활해야 하니까 어려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석회질 성분이 많은 물 때문에 항상 배탈과 치아손상을 조심해야 하는 점, 여러 해충, 뱀, 멧돼지 등의 출몰 등등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또, 현장에서는 40도가 넘는 땡볕더위에서 일을 해야 하구요. 또한 라오스인들의 기술 숙련도가 한국과 같지 않다보니 일 진행이 조금 더딘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 연구진들은 항상 한 두 스텝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현지에서의 어려움 외에는 장기간의 해외 출장으로 가족, 지인의 경조사에 참여가 어렵고 가족과 오래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점이 힘든 것 같습니다.
 
Q8. 해외 업무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겪었던 곤혹스러운 상황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라오스인들은 한국인들과 많은 부분에서 성향 차이를 보입니다. 아무래도 무더운 기후에서 생활하다보니 빨리빨리 움직이기보다 느긋하고 천천히 움직입니다. 라오스인들이 가장 즐겨쓰는 ‘보뺀냥’이라는 말이 있어요. 한국어로 “괜찮아” “문제없어” 라는 의미입니다.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말이죠. 어떤 일이 잘못됐을 경우,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맙고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것이 지나칠 경우 한국의 ‘빨리빨리’문화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저희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여유가 넘치고 느긋한 성향은 라오스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행정 처리에도 반영이 되어있죠. 필요 이상으로 느긋한 태도는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저희 입장에서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Q9. 혹시 일상의 경험이 업무에 도움이 된 기억이 있으셨나요?
A.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생소한 언어를 듣게 되면 곧잘 따라하거나 중얼거려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센트가 중요하고 무려 성조가 6개인 라오스어를 빨리 익히는 데 이런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있는 현장이 외딴 시골이다 보니 제가 익힌 라오스어는 수도인 비엔티안에서는 안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태국이나 비엔티안에서 라오스 남부사투리를 쓰면 굉장히 신기해하고 반가워하는데요. 라오스인들에게 어쩌면 한국의 ‘로버트 할리’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어요. 라오스 정부 측 관계자들과 미팅을 할 때 가벼운 인사를 라오스어로 했는데 굉장히 좋아하고 호감을 보이셨어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고전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러한 관심사가 국제협력팀 중 하나인 프랑스 팀과 대화를 나눌 때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Q10. 생생한 현장 경험 스토리 정말 감사드려요. 그렇다면 라오스 홍낭시다 사업을 비롯한 ‘문화유산 ODA 사업’의 전체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한국문화재재단의 문화유산 ODA 사업이 ‘특히’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위 세 국가는 우선 공통적으로 ODA 중점협력국입니다. 해당 국가들은 우리나라가 ODA 사업을 진행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와 문화적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크고, 지리적으로도 가깝다는 점이요. 또한 세 국가는 상호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불교국가라는 점과 지리적으로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다는 점 등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Q11. 문화유산 ODA에 종사하려면 어떤 역량이 가장 필요할까요?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겪으시며 느끼셨던 점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문화유산에 대한 전문성 · 능통한 외국어 구사 능력은 기본이자 필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량은 ‘조율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유산 ODA 사업담당자는 때에 따라 외교관이자 세일즈맨, (수원국의)대변인이자 (수원국에게)악덕업주가 되어야 합니다.
악덕업주요? 한국의 시스템에 따라서 일을 진행해야 할 경우, 정해진 기한과 양식 등이 있습니다. 수원국 측은 아직 그런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데 독촉해야 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 측면을 혹시 라오스 측에서는 저를 악덕업주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표현해 본 거예요. 저희는 수원국과 공여국의 중간에서 중재의 역할을 잘 해야만 해요. 서로 다른 문화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인 셈이죠. 여러 면에서 서로 너무나 다른 라오스와 한국 양측을 다 이해시키고 다 만족시켜야 하는 일들을 해내야 하니까요.
 
Q12. 문화유산 ODA 사업 진행에 있어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첫째, 일방적인 원조, 한국형 ODA의 강요보다 양방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수원국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는, 상생적인 방향의 ODA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수원국과 공여국의 입장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하고,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수원국 고유의 문화유산인 만큼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IT 첨단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전수하려 드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원국의 환경을 고려하고 앞으로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맞춤형 기술을 개발하고 소개시켜주고, 비록 그 과정이 느리더라도 그들이 충분히 스스로 익히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첨단 기술, 최신 재료의 도입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지속가능한 발전입니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부분입니다. 사업 시행 시 항상 그 파급효과를 먼저 생각하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13. 혹시 그동안 진행해 왔던 여러 문화유산 ODA 사업 중 아쉬움이 남았던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A. 주로 홍낭시다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지금도 열중하고 있는 터라 아쉬움이 남은 프로젝트는 없네요. 다만, 시작조차 해 보지 못해 아쉬웠던 프로젝트는 있습니다. 2017년 탄자니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잔지바르 석조도시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인데요. 세계은행(World Bank)의 ODA 자금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탄자니아에서 다른 ODA를 담당하던 한국 분께서 탄자니아 당국 공무원에게 저희 재단을 소개시켜준 인연으로 검토하게 된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락을 너무 늦게 받아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그 당시 우리 재단이 수행하기에는 아직 경험과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훗날을 기약했던 적이 있습니다. 국내 정부부처 예산으로만 ODA 사업을 추진하던 재단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제기금으로까지 재원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아쉬웠습니다. 또 아까 질문에서 언급하셨듯이 재단의 ODA 사업이 동남아시아 국가로만 치중되어 있는데, 그 대상을 아프리카까지 확대 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했구요.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재단의 역량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사업경험도 축적되고 있으니, 머지않아 다시 기회는 오겠죠?!
 
Q14. 국제교류팀이 문화유산 ODA 사업에 있어서 지향하는 목표가 있나요? 그리고 부팀장님은 팀의 일원으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A. 문화유산 ODA 사업 선두기관으로 재단의 입지를 다지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팀의 목표입니다. 국내외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ODA 사업의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조직의 체계화, 업무의 세분화 등 앞으로 거쳐나가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Q15. 부팀장님의 개인적 목표도 궁금합니다.
A. 개인적으로는 문화유산 복원, ODA 사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까지 저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미륵사지 석탑 팀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미륵사지 석탑을 몇 층으로 복원할 것인지에 관해 학계, 전문가 간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그 때 이러한 논쟁이 왜 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이뤄져야 하는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TV 100분 토론과 같이 대중들도 함께하는 토론의 장에서 정치·경제 문제와 같이 이런 문화유산과 관련된 토론이 다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 홍낭시다 사업을 함께하는 분들은 한국 문화유산 각 분야(건축, 발굴, 보존 등)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지만 ODA 사업의 취지와 의의를 믿고 생소한 분야인 동남아시아 불교 유적, 크메르 건축과 미술 등을 공부하시며 사업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그 분들과 같은 문화유산 분야 인재들이 유입될 수 있는지, 이 사업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문화유산 ODA 사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고,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크메르 유적에 대해 공부할 수 있고, 이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가 계속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문화유산 ODA 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Q16. 매 질문마다 문화유산 ODA 사업에 대한 정말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분야로 진로를 계획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당부 혹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A. 저의 좌우명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시대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이고,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문화유산을 대하는 자세로 소개된 유명한 구절인데요. 비단 이 분야의 진로를 희망하는 청년뿐만 아니라 사회초년의 모든 청년들에게 필요한 말 같습니다. 문화유산을 대할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어떤 이를 사랑할 때도 이 문장을 떠올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백경환 부팀장님의 업무에 대한 사랑과 열정,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부팀장님의 생생한 현장경험담에 저희 3조는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주셔서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주신 부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징검다리 7기 3조
남민정

작성자 : 징검다리 7기 3조 | 등록일 : 2018-10-19 | 조회수 : 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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