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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궁궐의 도시, 서울(1) '조선의 품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안녕하세요, 문화유산채널입니다.
이번 도깨비문화유산에서는 차이나는 클라스 33화 - 궁궐의 도시, 서울 '조선의 품격' 편을 살펴봅니다.

경복궁, 경희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 5대 궁과 종묘가 있는 서울은 전세계에서 궁궐이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유홍준 교수님께서 들려주는 서울의 궁궐 이야기.
그 중에서 오늘은 
#한양도성 #경복궁 #종묘 에 대해 더 알아봅니다.

#한양도성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개경에있던 도읍을 옮깁니다. 태조는 한양을 도읍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대신들은 계룡산 신도안을 추천하고, 그곳에 공사를 시작했죠.
하지만 다른 신하들이 반대하여 태조가 직접 도읍지를 살피게 되고, 도읍지를 살피는 과정에 무학대사로부터 '도성을 두를 것'과 '대신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 두 가지 조언을 받게 됩니다. 이에 태조는 정도전에게 한양도성과 궁궐의 건축을 맡깁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한양도성’은 전쟁에 대비한 성벽이 아닌, 도시의 경계를 나타내는 성벽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양도성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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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각 대문에 인 의 예 지(仁義禮智) 한자로 표시
(동: 흥인지문 仁/ 서: 돈의문 義
남: 숭례문 禮/ 북: 숙정문 智)
자막. 조선시대 유교 이념이 구현된
동서남북의 4대문
조선의 국시(國是)
인 의 예 지
자막.
성곽城郭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는 것으로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태조실록』 6권 태조3년(1394년)
자막. 산과 평지의 성을 융합한 한양도성. 도심 속 자연과 역사의 조화 한양도성-600년 역사를 걷다
NA. 조선시대 10만인구가 살던 한양을 지켜주던 보호막.
600년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곳. 한양도성입니다.
정보 자막. 서울 한양도성 (사적 제10호)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태조 5년(1396),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능선을 따라 둘러쌓은 조선시대 성곽
NA. 인왕산 구간으로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계단길 어우러진 모습
NA. 겸제 정선의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한 인왕산은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입니다.
정보자막. 정선필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
NA. 이런 탓에 자연 암반이 성벽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요.
웅장한 산세가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NA. 거대한 두개의 바위는,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참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바위라 불리는데요.
자막. 선바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4호)
NA. 대자연이 빚은 기묘한 자태 때문인지, 소원을 비는 치성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NA. 조선 건국 당시 선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밖에 두느냐를 두고, 불교의 무학대사와 유교의 정도전 간의 논쟁을 담은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자막. 창의문(자하문)
NA. 창의문을 지나 백악구간으로 이동합니다.
정보자막. 백악구간으로 가기 위해 창의문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NA. 가파른 경사를 따라 끝없는 계단이 이어지는데요.
NA. 한눈에 들어오는 도심의 풍광에 마음까지 뻥 뚫리는 듯합니다.
NA.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
상처를 입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정보자막. 1.21 사태 소나무
NA. 이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걸까요?
NA. 1968년 북한군 31명이 청와대 기습공격을 목적으로 서울에 침투합니다.
그때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죠,
정보자막. 1.21 사태
NA. 15발의 총탄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오늘도 묵묵히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NA 혜화문을 통과하고 낙산구간으로 들어섭니다.
NA. 한양도성에서 가장 편하게 걸을 수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죠.
NA. 한참을 걷다보면 성벽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습이 모두 제각각 인데요.
시대에 따라 성돌의 모양과 축조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태조 5년 (1396년)
NA. 초기에는 화강암이나 편마암 등의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크기가 달라 돌과 돌 사이의 틈은 작은 돌로 메웠는데요.
자막. 태조 5년 (1396년)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NA. 이후, 직사각형에 가까운 돌로 다듬어 큰 돌에서 작은 돌 순으로 쌓아나갔습니다.
자막. 세종 4년 (1422년)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다
*숙종 30년(1704년) NA. 숙종 때는 석재를 정사각형으로 규격화해 견고하고 치밀하게 쌓아올렸습니다.
벽면이 수직이 되도록 했죠.
근대화된 축성기술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막. 숙종 30년 (1704년)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다.
NA. 600년 전 한양에는 10만 명 정도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18km가 넘는 긴 성곽을 쌓았을까요?
그 비밀도 이 성돌 안에 있습니다.
자막. [한양도]
성벽에 새겨진 글자는 백성들의 출신지로, 전국 각지에서 노역에 참가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보자막. 각자성석
성벽축조 당시 공사구역, 공사담당 군현, 책임자 등의 이름을 새겨 넣은 글자. 성벽이 무너지면 담당한 곳에서 다시 쌓아야 했다
NA. 성곽을 둘러본 뒤 한양도성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자막. 한양도성박물관
NA. 서울의 역사와 함께 많은 변화를 거친 한양도성.
이곳에서는 한양도성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만날 수 있습니다.
NA. 과거의 사진과 문서자료들은 우리를 시간 속으로 안내하는데요.
NA. 근대화를 거치며 부분 철거가 되는 등의 아픔이 있기도 했지만, 오늘날엔 과거의 늠름한 모습대로 복원되어 새롭게 우리를 맞이하고 있죠.
자막.
도성의 둘레는 40리 인데, 이를 하루 만에 두루 돌면서 성 안팎의 꽃과 버들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질 무렵에 다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유득공 『경도잡지 京都雜志』
NA. 과거 한양사람들은 하루 만에 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놀이를 통해 자연을 감상하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NA. 오랜시간 우리의 곁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한양도성.
순성 놀이를 하며 서울의 역사를 온 몸으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경복궁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는 우리나라 궁궐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경복궁의 건축을 맡은 정도전이 세운 원칙이었습니다.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는 문장은 경복궁의 모습을 정말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경복궁을 구경하는 동안 바닥에 깔린 돌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서 만들었다는 ’박석‘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화강암을 가져다 까는 것만 해도 그 당시에는 힘든 일이었을 텐데, 왜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박석을 만들어 바닥에 깔았을까요? 박석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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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이 곳에서 왕의 즉위식과... 조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조정대신들이 모이는 근정전 앞마당의 바닥이 참으로 오묘하다.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서 만든박석을 바닥에 깔아... 햇빛이 강한 날에는 눈부신 것을 막고...가죽신을 신은 대신들이 밟고 다녀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비 오는 날에도 박석은 특별한 기능을 한다.
(보다가)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뒤를 살짝 올려, 비스듬히 경사지게 박은 박석의 삐뚤삐뚤한 모양을 따라...
빗물이 돌고... 돌면서 물길의 속도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복궁에는 조선 최고의 건축미학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근정전이 있다.
영제교... 임금의 영역으로 가는 다리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 마주보이는 흥례문을 들어서면... 근정전으로 통하는 근정문이 보인다.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는 영제교라는 돌다리가 있다.
금천이라 불리는 개울을 만들어 임금이 사는 곳과 외부를 구분 짓고 그 위에 상징적인 다리를 놓은 것이다. 영제교를 지날 때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있다.경복궁을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 서수다.
그런데, 혀를 빼문 표정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근엄해야 할 궁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조선 장인의 해학미와 이를 허용한 조선왕조의 너그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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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은 임금 내외와 세자, 중국 칙사만 출입할 수 있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열고 평소에는 닫아두었다.
근정문의 오른쪽에는 학 무늬 옷을 입은 문신들이 다니던 일화문. 그리고 왼쪽으로는 무신들이 다니던 월화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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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
조선왕조의 정전이자 법전인 근정전... 근정이란, 부지런히 백성을 위해 정치에 힘쓰라는 뜻이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그렇지 못하면 폐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아침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정도전은... 부지런해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겨, 임금의 부지런함을 강조했다.
임금의 즉위식과 문무백관의 조하를 비롯한 중요 의식을 거행하고,외국 사신을 맞았던 근정전...
이곳에서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등 조선전기, 여덟 왕이 즉위했다.
근정전 마당은 조정이라 했다. 신하들은 품계석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비가 오거나 햇볕이 강한 날에는 마당에 박아놓은 고리에 차일을 걸어서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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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은 밖에서 보면 중층이다.
그런데 그 안은 확 트인 통층으로 되어 있다.
옥좌 뒤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일월오악도’가병풍으로 펼쳐져 있다.
해는 임금을, 달은 왕비를... 오악은 왕이 다스리고 보살펴야할 국토를 뜻한다.
국토를 잘 다스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천장에는 한 쌍의 황룡이 노닌다.
황룡중에서 가장 격이 높은 칠조룡이다.
원래 제후국에서는 발톱이 네 개인 사조룡만 쓸 수 있는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칠조룡을 달았다. 외세에 굴하지 않고 왕실의 자존을 세우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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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오른쪽으로는 삼족정이 있다.
삼족정은 법궁에만 있는 솥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것이 임금이 할 일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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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은 2층의 기단위에 자리한다... ‘월대’라 불리는 이 기단 위에는 서른 여섯 개나 되는 다양한 동물석상이 자리하고 있다.
월대 아래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왕실을 지키는 듯한 쌍서수 한 쌍이 보인다. 그런데 그중 어미가 새끼를 품고 있다. 아마도 왕실의 번영과 계승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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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 난간 위에는 방위를 나타내는 사신상을 세워 동서남북 각 방향을 지키게 했다.
또한 시간을 나타내는 십이지신상도 세웠다. 개와 돼지를 제외한 동물들이 나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게 근정전을 지킨다.
이중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원숭이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임금에게 이처럼 백성을 생각하며 정치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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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중심인 경복궁에서도그 핵심인 근정전...
이곳에는 왕이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다양한 상징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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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서쪽으로 난 문을 따라 나가면, 경회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님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사람이 살아야 빛이 나는 법이고, 문화재는 가까이서 보고 향유할 때 그 가치를 아는 것이기에, 다수의 문화재를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람할 수 있게 하셨고, 그 중 하나가 경북궁 경회루입니다. 현재 경회루 특별관람이 시행중으로, 인터넷 예약을 통해 경회루에 방문하실 수 있답니다!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천여 명이 한 번에 모일 수 있는 연회 공간이었는데요, 경회루에서 열리는 연회의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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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국가의 공식적인 연회장소인 경회루... 어느날... 집현전에서 공부하던 말단관리 구종직은,멀리서 경회루를 바라보다...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떨치지 못한다.
임금의 초대 없인 넘볼 수 없는 경회루에, 몰래 들어간 구종직... 그 아름다움에 그만 감탄하고 만다.
그런데 때마침, 경회루를 산책하던 세종임금과 마주치게 된다.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세종은 뜻밖에도, 경전을 외워보라 했고, 구종직은 그 자리에서 춘추를 막힘없이 술술 외웠다 한다.
경회루에 몰래 들어 온 죄로 벌을 받는 대신, 임금의 칭찬을 받고, 더 높은 벼슬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선비도 넋을 잃었다는 경회루! 경복궁의 꽃, 경회루를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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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경복궁의 꽃,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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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는 궁중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나라의 공식적인 연회장소였다.
근정전, 종묘 정전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인 경회루는 우리나라 누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초 쉬고) 마흔 여덟 개의 육중한 돌기둥 위에누마루를 수평으로 깔고, 장엄한 팔작지붕을 씌운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경회루는 우리나라 건물 중 잡상이 가장 많다. 추녀마루에, 열한 개나 자리하고 있다.. (앞에 좀 보다가) 경회루는 당대 최고의 토목건축가인, 노비 출신의 박자청이... 태종의 명을 받아 8개월 만에 완성한 대역사다.
이층 누마루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인왕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연못 풍경이 펼쳐진다. 넓은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즐겼다. 동으로는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에 이르는구중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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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를 가장 많이 방문하고 이용한 임금은 세종이었다. (잠시 쉬고) 가뭄에는 기우제를 올렸고,무과 시험을 주재했으며 무사들의 활쏘기 시범도 이곳에서 관람했다. 왕들은 경회루에서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종친과 신하들을 위한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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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는 세종의 손자, 단종이...자신을 옥죄어오던 숙부,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곳이기도 하다.
세조는 특히 활쏘기를 좋아해 연못 너머에 과녁을 설치한 후 경회루에서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연못에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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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에게 경회루는 쾌락의 공간이었다.연못 서쪽에 만세산이라는 인공섬을 만들고 경회루 아래층에는 비단 장막을 치고 전국에서 뽑아 올린 기생들에게 춤과 노래를 하게 했다. 이중 특별히 선발된 기생을 ‘흥청’이라 했는데 연산군은 황룡주에 흥청을 태우고 연꽃 사이를 누비며 패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재물을 마구 써버린다는 ‘흥청망청’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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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못에는 크고 작은 세 개의 인공 섬이 있다.두 개의... 네모난 작은 섬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그 중 가장 큰 섬 위에... 경회루가 자리한다. 못에 비친 그림자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회루. 여기에는 특별한 과학이 숨어있다. 북악산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연못 전체를 순환하게 되어 있어 항상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경회루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세 곳이 있다. 하나는 북쪽 호안에 조각된 용머리로, 그 입을 통해 물이 들어온다. 동쪽 돌다리 밑으로도 또 다른 물줄기가 흘러들어온다. . 북쪽 연못 바닥에서도 지하수가 솟아 나온다. 못의 바닥이 약간 기울어져 있어, 강제순환 장치 없이도 연못을 맑고, 잔잔한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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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국가의 여러 행사를 거행한 공식적인 연회장소, 경회루!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룬 그 아름다운 자태는..가히 경복궁의 꽃이라 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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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조선 왕조 국가이념의 기반이 된 곳입니다.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으로 되어 있고, 태조부터 순종까지 19명의 왕이 정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27명의 왕 중 19명이 정전에 모셔져 있는데, 나머지 8명은 단명했거나 사후 왕으로 추존되어 영녕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정전은 19실로 지어졌고, 영녕전은 16실로 지어졌는데 조선왕조의 끝인 순종과 영친왕이 각각 정전과 영녕전에 모셔짐으로써 만실이 되었습니다.

조선왕조가 이때 끝날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합니다. 정말 놀랍죠!

종묘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건축가들이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종묘. 어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건축가 승효상이 소개하는 종묘를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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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릴레이 인터뷰-내가 사랑한 문화유산 승효상편
한국 건축의 본질 ‘종묘’
# 종묘 부감
# 걸어가는 승효상
# 프로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
# 작업실 비움과 절제를 통해 빈자의 미학이라는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완성한 그는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 건축의 본질을 찾았다.
# 작품 빈자의 미학을 구현한 첫 작품, 유홍준의 자택 수졸당을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까지 자신의 모든 건축에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승효상. 그에게 종묘는 문화유산 그 이상이다.
# 인터뷰 서울은 한국은 우리는 이 종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번잡하고 물신이 극성을 부리는 요즘의 세대에 우리에게 이 종묘는 축복입니다.
# 종묘 걸어 들어가는
# 종묘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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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한국 건축의 본질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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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대 걷는
# 인터뷰
제가 건축을 선택한 이유도 건축이 예술적인 부분일거 같아서 선택했고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게 건축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건축을 하다 보니까 건축의 본질은 그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공간을 축조하는데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동안 알아왔던 한국 건축들을 다시 되짚어보기 시작했죠. 그 중에 가장 다가온 게 종묘인데 종묘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하나의 공간을 가지고 전체를 에워싼 것이기 때문에 그 성질을 가장 잘 요약해서 알려주는 건축이라서 금방 알 수가 있었죠.
# 하늘 틸 다운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 종묘. 종묘의 상징인 정전은 가로 길이가 101m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목조 건축물이다.
단순 반복과 절제의 아름다움이 일으키는 정제된 장엄함- 종묘는 조선왕조의 정신과 건축적 아름다움이 동시에 살아있다.
# 인터뷰
전에는 종묘 정전. 100m가 넘는 저 길이가 물체처럼 다가왔는데 그 다음부터는 종묘 정전은 잘 보이지 않고 앞에 있는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아 건축을 이제부터 새로 시작해야겠구나 그런 결정적 마음을 갖게 했죠. 저한테는 굉장히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 정전 올라가보는
# 인터뷰
건축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마당을 형성하기 위해서 건물이 에워싼 그런 형태예요. 월대라는 것도 월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담장이나 정전이 둘러싼 거죠.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면 혼령을 모시고 있는 종묘 정전이 목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혼령을 모시고 있으면 저거는 그냥 어떻게 생각하면 박제된 공간일 수밖에 없어요. 월대가 있음으로 해서 혼령을 불러내서 우리가 만나는 공간이니까 만나기 위한 시설이 종묘니까 월대가 여기서는 주인공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 월대 보는
# 인터뷰 혼령을 위한 건축이니까 혼령이 바라보는 풍경이 주 풍경이겠죠. 다른 건축하고 틀려요.
# 월대 틸업 얇은 돌을 쌓아 만든 월대는 가로 109m, 세로 69m의 드넓은 마당으로 종묘를 살아있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 인터뷰 월대라고 하는 공간은 지금 보시면 높이 차이를 보시면 바닥에서 1m정도 올라와 있잖아요. 그리고 저 혼령을 모시는 공간에서 1.5m정도 내려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은 이 입구의 바닥은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 인간이 사는 공간이고, 혼령을 모시는 공간하고 그 사이에 월대가 있으니까 산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이죠. 월대가 비워져 있잖아요. 그렇지만 여기에 행위가 일어날 때는 전혀 다른 풍경이 이 안에서 벌어집니다. 아주 감동적입니다. 그게 비어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지 여기 만약 무슨 시설이 채워져 있다고 하면 감동이 없고 그 행위도 불가능하죠. 그래서 월대는 우리 마당의 아주 원형질적 공간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 종묘제례
# 인터뷰
일본도 마당이 있고 중국 건축도 마당이 있고 심지어는 중동에 짓는 건축도 마당이 있는데 한국의 마당이 가장 신비롭습니다. 일본의 마당은 쳐다보는 대상으로서의 마당이에요. 아무도 못 들어가요. 중국의 마당은 위계질서 때문에 만듭니다. 가운데는 주인만 가고 옆으로는 하인만 다녀야 하고. 이런 공간이고요. 중동에 있는 마당은 자연조건이 혹독하기 때문에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 반사광선을 받기 위해서 마당을 만들어요.
그 마당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살지를 못해요. 그런데 한국의 마당은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아요. 애들이 놀아도 되고, 제사를 지내도 되고, 축제를 해도 되고 노동을 해요 돼요.
그 사건들이 끝이 나면 거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게 한국 고유의 마당입니다. 우리의 마당은 원래 아무것도 없어요. 마사토만 깔려서 아무 시설도 안둡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행위를 하기 위해서 장치를 가지고 와서 퍼지고 넓히고 하면서 자기 용도대로 쓰는 거죠. 그게 불확정적 비움이라는 말인데 그 것의 다른 실체로서의 형태가 월대라는 겁니다.
# 사진 찍는 승효상
# 현장음
아 대단하다
# 정전과 월대
# 인터뷰
도시는 번잡한 곳도 있어야 되지만 경건한 곳도 있어야 도시가 지속적 환경이 됩니다. 그런데 보통 경건한 곳이라고 하면 종교시설이나 혹은 죽은 자가 있는 무덤이나 이 두 가지 시설인데 서울 한복판에 56,000평이라는 비움의 장소가 존재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서울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 아닌가 생각되어서 참으로 우리에게는 다행한 장소라고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인터뷰
건축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오브제, 물체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건축이라서 안 보이는 공간에 그 본질이 있는 게 우리나라 건축의 전통적인 특질입니다. 그 중에 그 공간의 가장 원형질적 형태가 종묘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묘는 우리 모든 건축의 출발일 수 있고 비단 건축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의 바탕이라고도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 인터뷰
나에게 문화유산이란 내가 물려받은 피다. 저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도 우리의 옛 건축에서 훨씬 더 건축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교과서이기도 하고 해서 옛날의 건축에 대해서 저는 선조에게 제 건축적 빚을 엄청나게 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 걷는 # 인터뷰
건축적 정체성에 다시 의문이 들 때 여기 와서 한 바퀴 돌고 가면 마음의 평화를 다시 얻어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곧잘 됩니다.

한양도성, 경복궁, 종묘까지 둘러본 오늘의 도깨비 문화유산. 하지만 서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유홍준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서울의 문화유산 이야기! 다음 시간에 만나보겠습니다.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8-04-13 | 조회수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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