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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차이나는 클라스 따라잡기 - 추사 김정희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하는 차이나는 클라스 ‘추사 김정희 편’!

차이나는 클라스 55회 보셨나요?
유홍준 교수님이 설명해주시는 추사 김정희 이야기에 푹~빠졌는데요. 높은 경지의 예술에 다다른 추사 김정희 이야기, 궁금하시죠?


문화유산채널에서 선정한 문화유산키워드는 총 세가지!
#추사체 #진흥왕 순수비 #추사고택


#추사체

'추사체' 하면 "들어는 봤는데..."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요. 추사체란 무엇일까요?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글씨
- 유홍준 -


즉, 추사체는 기존의 한자 글씨체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분방한 글씨체입니다.
그러면 직접 추사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까요?



이 글씨는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봉은사 판전 현판인데요.
이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사망하기 3일 전에 쓰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듯 무심하고 단순하면서도 추사 김정희의 예술혼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추사체를 만들어낸 추사 김정희는 도대체 언제부터 서체에 재능을 보였을까요?
김정희가 6살에 대문에 붙인 “입춘대길” 글씨를 보고 지나가던 박제가가 들어와 김정희의 스승이 되기를 자처했다고 합니다. 와~ 정말 대단하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청나라 문인들도 추사 김정희의 실력을 높이 사,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귀국할 때 아쉬워하며 송별연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송별연을 열어주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재능...정말 대단하죠?



가운데에 갓 쓴 사람이 보이시나요? 갓을 쓴 사람이 바로 추사 김정희입니다.
당시 연경은 군관의 신분으로 갈 수 있었던 곳으로, 추사 김정희도 군관의 신분으로 가서 군복을 입고 있답니다.

여기서 잠깐, 추사 김정희는 청나라 연경을 정말 가고 싶어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추사 김정희는 연경에 가서 누구를 만났을까요?
바로, “완원”과 “옹방강”입니다. 완원? 옹방강? 생소하신 이름이실텐데요.
완원과 옹방강은 어떤 사람이었길래 추사 김정희가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들일까요?

이 둘과 얽힌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 영상으로 확인해보러 가볼까요~?
대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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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1856년, 봉은사에서 화엄경 경판을 보관할 전각의 현판을 김정희에게 청했다.
추사는‘판전’이라 쓴 후, 그 옆에 행서로‘칠십일과병중작’이라고 썼다.‘71세에 과천에서 병중에 쓴 작품’이라는 뜻이다. 추사는 이 글씨를 쓰고 나서 사흘 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아이가 쓴 것처럼 어떤 기교나 서법도 드러내지 않은 글씨. 오랜 연구와 깊은 통찰력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 추사체를 만든 김정희.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씨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단순하고 무심하다.
1809년. 24세의 나이에 생원시에 합격한 추사는 부친 김노경을 따라 고대하던 연행을 떠난다. 연경에서 체류하는 2개월 동안 추사는 이름난 청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대학자 완원을 만나 당시 최고조에 이른 청나라 고증학과 경학을 전수받았다. 추사의 또 다른 호인 완당은 스승인 완원에 대한 존경을 담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한편 추사가 진정 만나길 고대했던 이는 금석학의 대가 옹방강이었다.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귀국을 며칠 앞두고 마침내 노학자와 마주했다.
이 만남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중 일부를 전하는 필담서다. 이 필담 후 옹방강은 추사의 비범함에‘경술문장 해동제일’이라 극찬한 후 사제의 예를 맺게 된다.
꿈같은 2개월이 지나고 귀국길에 오를 때가 되었다. 추사의 귀국을 아쉬워하며 청의 문인 10여명이 송별연을 열어주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청의 문인들이 청년 김정희를 얼마나 높이 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옹방강과의 한 차례 만남은 김정희가 금석학에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다.
1816년 7월, 북한산 비봉에 오른 추사는 그곳에서 진흥왕 순수비를 찾아냈다. 그리고 1817년 다시 순수비에서 마모된 글자들을 살펴 68자를 읽어내는 쾌거를 거둔다.
옹방강과는 서신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학문을 전수받았다. 추사는 과거도 미룬 채 사실에 기초하여 사물의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조선의 비와 탁본을 고증하고 연구했다.
1819년 김정희는 대과에 합격한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특히 1827년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며 추사의 가문은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1830년 효명세자가 급사하며 추사의 가문도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추사 나이 55세에 제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제주에서의 유배생활. 홀로 지낸 8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추사는 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곱씹고 되새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추사체가 완성되었다.
그의 글씨는 단순히 ‘자’를 넘어 그림이자 시이자 노래였다. 글 속에 담긴 감정을 필획의 굵기, 글씨의 크기, 운필의 속도, 글씨의 배치 등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표현했다.
추사체의 아름다움은 ‘죽로지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나무 화로가 있는 서재라는 뜻의 글자. 추사는 그림을 그리듯 글씨를 썼다.
추사는 그림을 그릴 때는 글씨를 쓰듯 그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시서화의 일체를 보여주는 작품 ‘불이선란’도. 난화를 중심으로 초서, 예서, 행서 등의 다양한 글씨체를 조화롭게 담아내 추사 말년의 걸작으로 꼽힌다.
몇 줄기의 극도로 절제된 필선으로 글씨를 쓰듯 그려낸 난의 줄기. 그림과 글씨를 넘나드는 추사의 필법은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한 추사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열개의 벼루를 닳아 없애고 일천 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며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한 추사 김정희, 추사체는 그가 일생동안 쌓아온 학문과 예술의 총체이자 무엇보다 노력의 결정체였다.


#진흥왕 순수비

완원과 옹방강 이야기, 확인해 보셨나요?
추사 김정희가 스승 완원을 존경해서 “완”자를 따 자신의 호를 “완당”이라고 지은 사실을 영상으로 확인하셨죠? 그러면 옹방강의 이름을 본따 지은 호는 없을까요?

답은! 있습니다~
옹방강의 호 “담계”와 “보소재”를 본떠 “보담재”라는 또 다른 호가 있답니다.
이렇게 존경하는 스승 옹방강!



그는 금석학의 대가였는데요, 금석학은 비석에 적힌 글자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금석학의 대가인 스승을 만난 후 금석학에 빠지게 됩니다.
이 금석학에 빠지기만 한게 아닙니다. 금석학을 토대로 “우리의 비”를 연구했는데요,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에 자리한 “진흥왕 순수비”가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네? 이게 무슨 소리냐구요?

추사 김정희가 이 사실을 밝혀내기 이전에는 진흥왕 순수비가 아니라 무학대사비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탁본을 떠서 연구해본 결과, 진흥왕 순수비로 확인되었습니다.
글씨만 잘 쓴게 아니라, 잊혀져 있던 역사를 꺼낸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의 실사구시 정신으로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를 영상으로 확인해 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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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비봉에 올라 세상을 호령하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巡狩碑址
북한산(北漢山)
서울 북쪽에 위치한 화강암 산으로 도시와 어우러진 기암들이 절경을 이룸
비봉(碑峯)
북한산 남쪽 능선에 위치한 암봉으로 비석이 있는 봉우리라는 의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사적 제228호
진흥왕 순수비의 옛 자리에 원형을 그대로 본떠 만든 표지석이 서 있다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로 조선 순조 때 추사 김정희가 판독해 세상에 알려짐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국보 제3호
국립중앙박물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보존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
세상이 내려다 보이는 곳, 북한산 비봉
이곳에 올라 기상을 높였을 선조를 생각한다


#추사고택

충청남도 예산에 가면 추사 김정희가 어렸을 적 살던 추사고택이 남아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살던 곳이라..어떤 곳이었을까요?

힌트! 추사 김정희는 경주 김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는 영조대왕의 사위(화순옹주의 남편)였다고 하는데요. 사위사랑은 장인이라고 하죠? 영조대왕이 무려 53칸에 달하는 대저택을 선물해 주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세월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헐리기도 하면서 지금은 20여 칸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추사 고택에 가면, 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사 김정희의 묘와 그의 증조할머니 화순옹주의 묘, 그리고 1809년 추사 김정희가 25살 때 청나라 연경에서 가져와 심은 백송도 있습니다.
와, 무려 200년이 넘은 나무인데요, 천연기념물 제106호로도 지정됐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흔적이 남은 곳, 추사고택.
사과꽃이 만개한 5월의 향기가 담긴 추사고택 영상. 지금 확인해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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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추사고택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전통 한옥이다.
추사의 증조부가 지은 집으로 우리나라 양반문화의 정갈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건물사이의 돌계단과 축대, 깊은 고랑은 멋스러우면서도 세심하게 잘 짜맞추어져 고택이 기품을 더한다.
사과꽃이 만개한 5월 예산에서 추사의 체취가 느껴지는 추사고택을 살펴보자.

오늘의 추사 김정희 문화유산 키워드는 여기까지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56회에서 유홍준 교수님의 추사 김정희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그러면 다음 문화유산키워드도 기대해주세요~!

 

작성자 : 전체관리자 | 등록일 : 2018-04-10 | 조회수 : 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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