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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꽃, 무궁화(無窮花)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대한의 꽃 무궁화.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국화(國花)라는 사실은 너무나 기초적인 상식이지만 하필 많고 많은 꽃 중에 무궁화가 언제 어떠한 이유로 국화가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1989년 7월, 청량리 길가에 핀 무궁화

1989년 7월, 청량리 길가에 핀 무궁화

무궁화는 그 꽃이 크고, 색상 또한 자색, 홍색, 분홍색, 백색 등으로 다양하여 일찍부터 정원의 관상수와 울타리나무로 사랑을 받았다. 고대인들은 어린잎을 이용해 국을 끓여먹기도 했고, 풍을 치료하는 중요한 약제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 차로도 만들어 마셨는데, 이것은 불면증에 효능을 보이는 등 그 쓰임이 다양했다.

또한 무궁화는 예부터 동양인들과 세월을 함께한 꽃으로 문인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다’<br/><br/>어떤 여자와 수레를 함께 타니<br/>얼굴이 무궁화 같네<br/>나는 듯 날렵하게 걷는 맵시<br/>저 아리따운 맹강 같은 여인이여<br/>참으로 아리땁고 어여쁘네<br/><br/>어떤 여자와 길을 함께 가니<br/>얼굴이 무궁화 같네<br/>나는 듯 날렵하게 걷는 맵시<br/>패옥 소리 장장하네<br/>저 아리따운 맹강 같은 여인이여<br/>그 덕음을 잊지 못하여라<br/><br/>-[시경,정풍,유녀동거]-<br/>


앞서 나오는 ‘순화(舜華)’와 ‘순영(舜英)’은 무궁화의 처음 이름이다. 여기서 ‘순(舜)’이란 ‘순(瞬)’의 의미로 아침에 피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지는 무궁화의 순간성을 반영한 것이다.


동원의 꽃들 향기로운 때를 즐거워하고<br/>못 가의 풀은 봄빛이 아름답지만<br/>오히려 무궁화가 옥계 옆에 아리땁게 서 있는것만 못하네<br/>향기로운 꽃을 어찌 빨리 시듦을 재촉하는가<br/>영락함이 순식간에 있네<br/>어찌 경수의 가지처럼<br/>세월 다하도록 무성함만 같겠는가<br/>-이백 영근-


‘근(槿)’은 무궁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백은 무궁화가 동원의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지만 빨리 시듦이 안타깝다고 노래했다.


시골 거처 적막하게 푸른 이끼만 자라는데<br/>문득 아름다운 꽃이 시야를 비추며 피었네<br/>붉은 작약은 비록 번화하지만 속됨을 면하지 못하고<br/>한매는 너무 담박하여 비웃을 만하네<br/>풍요한 피부의 합덕이 향기롭게 목욕하였고<br/>뺴어난 미색의 항아가 달빛으로 내려왔네<br/>가장 덧없는 꽃들이 다 지나가 버린 때<br/>노란 국화보다 앞서 깊은 술잔을 띄우<br/>-임수간 [영백근화]-


조선 임수간(1665-1721)은 이 시에서 흰 무궁화를 작약이나 매화보다 낫다고 칭송하며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붉은 무궁화 피어 가을을 더욱 재촉하니<br/>아침에 피어 저녁에 떨어지고 또다시 아침에 피네<br/>사랑스럽구나 연속하여 피어나 다하지 않으니<br/>사랑하는 임이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는것보다 낫네<br/>-서거정 [영홍근화]-


조선 서거정의 『붉은 무궁화』라는 시이다. 계속하여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무궁무진한 무궁화가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임보다 나음을 말하고 있다.

“무궁(無窮), 다함이 없어라”

‘순화(蕣華)’, ‘순영(蕣英)’, ‘근화(槿花)’ 외에 목근(木槿), 주근(朱槿), 조균(朝菌), 조화(朝花), 일급(日給), 중태(重台), 왕증(王蒸), 화상화(花上花), 일급(日及), 번리초(藩籬草), 평조수(平條樹), 청명리(淸明籬) 등 이 모두가 무궁화를 일컫는 말들이다.
‘무궁화’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만 썼다. 그 사실은 이규보의 글과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로(長老) 문공(問公)과 동고자(東皐子) 박환길(朴環吉)이 각자 근화(槿花)의 이름에 대하여 논하였다. 한 사람은 ‘무궁(無窮)’이라고 말하며, 무궁의 의미는 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무궁하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은 ‘무궁(無宮)’이라고 말하며, 무궁의 의미는 옛날 군왕이 이 곷을 사랑하였는데, 육궁(六宮)의 궁녀들이 무색(無色)하여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각자 고집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로 인하여 백낙천(白樂天)의 시를 찾아서, 그 운(韻)을 취하여 각자 한 편씩을 짓고서 또한 나에게도 회답하도록 권하였다.


근화의 두 이름이<br/>내 두 벗에게서 나왔는데<br/>한 가지를 고집하여 각자 바꾸지 않으니<br/>좌우에서 대치한 듯하네<br/>내 장차 새 용기를 시험하여<br/>양 적을 한 손으로 깨뜨리려고 하네<br/>일찍이 듣자니 옛 사람이<br/>장난삼아 구를 구로 삼았다는데<br/>궁과 궁 또한 장난인 듯하네<br/>처음에 누구 입에서 전해왔던가<br/>나는 홀로 곧 결단할 수 있으니<br/>순주와 이주를 분별하는 것과 같네<br/>이 꽃은 잠깐 동안 피었다가<br/>오히려 하루 동안도 오래가지 못하니<br/>사람들이 덧없는 인생 같다고 꺼려하며<br/>꽃이 전 후를 차마 보지 못하네<br/>도리어 무궁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br/>아마 무궁함이 있기를 바래서 이리라<br/>두 사람은 내 말을 듣고 놀라서<br/>입을 다문 것이 찢어진 창문 같네<br/>나의 설음 참으로 기댈 수 있으니<br/>그대들에게 가부를 묻고 싶네<br/>만일 장차 조정으로 옮겨간다면<br/>또한 해수를 말할 수 있으리라<br/><br/>-이규보 [문장로와 박환길이 근화를 논한 것에 차운하고 아울러 서를 쓰다]-


무궁(無窮). ‘다함이 없다’라는 뜻이다. 무궁화는 여름 내내 피고 지고 다시 피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생명력 또한 강하여 가지를 꺾어 거꾸로 꽂아놓으면 이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난다. 끝없이 피어나는 꽃과 질긴 생명력을 가진 무궁화, 그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무궁화나라”
예부터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근역(槿域)’이라는 것은 ‘무궁화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말의 근거는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군자국(君子國)이 그 북쪽에 있다. …… 훈화초(薰華草)가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

-『산해경(山海經)ㆍ해외동경(海外東經)』中-


이 기사에 나오는 ‘훈화초’를 후대의 주석가들은 ‘목근(木槿)’이라고 상정했는데 이는 곧 무궁화를 말한다.
또한, 신라 최치원이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지칭한 용례도 있다.


鳥獸哀鳴海嶽嚬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악도 찡그리는데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세계가 이미 멸망 하였네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하니
難作人間識字人 인간세상에서 지식인 노릇이 어렵 구나


-황현(黃玹) 『절명시(絶命詩)』-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음독 자결한 순국시인 매천(梅泉) 황현의 『절명시』이다. 여기서 황현은 우리나라를 ‘근화세계(槿花世界)’ 즉, 무궁화나라로 표현했다.

“무궁화를 새기다”
근대에 와서 무궁화는 복식을 비롯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널리 사용되었다. 무궁화 문양은 대한제국기에 개정되는 서구식 군복(軍服)과 훈장, 문관의 대례복(大禮服) 등에 활용되었는데, 처음 등장한 것은 1892년 닷냥 은화에 그 꽃가지가 묘사된 것이다.


(왼)은화 왼쪽 확대부분, (오) 무궁화 가지가 묘사된 닷냥 은화

이 주화 전면의 중심에 금액의 숫자가 쓰인 부분에 오른쪽으로는 오얏꽃 가지, 왼쪽으로는 무궁화 가지가 쓰였고, 꽃잎이 네 장이나, 무궁화의 특징인 수술이 높게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아 무궁화를 형상화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많은 꽃들 중 왜 하필 무궁화가 국가와 관련된 문양으로 쓰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공식적으로 국화(國花)가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서 등장한 시조 속 무궁화의 모습들과 함께 ‘나라꽃’ 또는 ‘겨레꽃’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었던 인식이 무궁화를 국화로 채택하게 되는 배경을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1895년 육군 복장에는 무궁화를 형상화한 문양이 더욱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훈장에도 무궁화 문양이 쓰였다.


자응장

자응장

자응장에서는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무궁화 꽃과 잎이 사방으로 놓인 모습이 나타난다.


훈장 증서의 태극, 오얏꽃, 무궁화 문양. 1902

훈장 증서의 태극, 오얏꽃, 무궁화 문양. 1902

훈장증서 장식 테 문양의 왼쪽에 무궁화 꽃가지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부수적인 문양으로 쓰였던 무궁화는 1901년 발행된 이화우표의 시쇄우표(試刷郵票)에서 중심 문양으로 자리 잡는다.


무궁화 문양 시쇄우표

무궁화 문양 시쇄우표(試刷郵票)

무궁화 문양이 가장 전면적으로 사용된 것은 서구식 문관 대례복에서였다. 1900년대에 외교관을 지낸 박기종(朴琪淙,1839-1907)의 대례복에는 가슴 전면에 무궁화 자수가 좌우로 4송이, 여밈에 3송이가 큼지막하게 놓여 있다.


무궁화 자수가 수놓인 박기종의 대례복. 20세기 초, 부산박물관

무궁화 자수가 수놓인 박기종의 대례복. 20세기 초, 부산박물관

1910년 11월에 미국에서 발행한 국민회 입회 증서에서도 태극을 중심으로 무궁화 꽃가지를 두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국민회 입회증서, 1910

국민회 입회증서, 1910

“나라꽃 무궁화”
1908년 『해조신문(海朝新聞)』에 실린 <애국가> 가사에는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국가 가사 후렴이 그대로 나와 있다.

一. 성자신손 오백 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二. 충군하는 열성 의기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일편단심 동해같이 깊어

三. 천만 인의 오직 한 맘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 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 우리 나라 우리 황실 항천이 도우사 만민공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해조신문(海朝新聞)』 大韓隆熙 二年 五月 二十六日(1908.5.26자)-

후렴구에서 대한 사람의 꽃인 무궁화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신문인 『신한국보(新韓國報)』의 “乾元節慶祝盛況”이라는 기사에서도 가 국가(國歌)는 아니지만, 국가에 버금가는 노래로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一. 승장신손 천만년은 사롱공상 귀천업시 직분만 다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 이 보전하세

二. 충군하는 일편단심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심심의기 동해같이 깊어

三. 천만인 오직 한 마음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 우리나라 우리님금 황천이 도우사 군민동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해조신문』은 1908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간행된 순한글 일간지이고, 『신한국보』는 당시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민국회(民國會)가 발행하던 신문이었다.

국내에서 발행하지 않았던 신문에서 ‘무궁화’가 국토의 상징으로 쓰인 가사가 실렸다는 것은 당시 국가 상징이 억압받던 상황에서 무궁화가 민간에서 나라의 꽃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일제 강점기에는 남궁억(南宮檍)을 중심으로 무궁화 심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조선국화(朝鮮國花)」무궁화의 내역(內歷); 조생석사(朝生夕死)로 영원(永遠)……금수강산(錦繡江山)의 표징(表徵), 고래로 조선에서 숭상한 근화가 무궁화로 변해 국화가 되기까지”라는 기사에는 대한제국의 국화가 무궁화였는가 한 독자들의 물음에 답하는 방식의 무궁화가 국화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동해 쪽에 줄기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의 자수 지도는 무궁화가 국토를 상징하는 도상으로 자리 잡았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무궁화 자수 지도(1920-1930년대), 독립기념관

무궁화 자수 지도(1920-1930년대), 독립기념관

이렇듯 무궁화는 당시 국가라는 개념적 외연을 상실한 시대 상황을 반영, 국토의 상징으로 무궁화를 대입시키고자 하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궁화는 ‘나라꽃’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대신 민족을 투영하여 ‘겨레의 꽃’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침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5일까지 ‘2011년 나라꽃 무궁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하니 행사에 참여해 무궁화에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체험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궁화는 단순한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억압과 고통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숭고한 꽃이다. 애국가 후렴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한국 땅이다. 어쩌면 무심하게 흘려들었을 그 가사를 들으며, 그냥 지나쳤을 길가에 핀 무궁화를 보며, 한번쯤은 길고 긴 역사를 함께해온 그 꽃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오소미 기자 wassup1984@heritagechannel.tv

2011.8.11

작성자 : 한국문화재재단 | 등록일 : 2011-10-04 | 조회수 : 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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