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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공회 성당




성공회 성당

성공회 성당


덕수궁과 서울시의회 건물 사이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3층의 서울 성공회성당 건물이 있다. 이 성당은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일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세워진 서양식 건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터너(A.B.Turner)주교가 처음 건립을 발의하였다. 당시 영국 왕립건축학회 회원인 아더 딕슨이 설계하고 영국인 브록크가 감독을 맡았다. 1922년, 제3대 주교 트롤로프가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1차 완공되었다.

부분 완공

이 건물을 설계할 때는 하나의 성가대석과 일곱 개의 주간(柱間, Bay)을 가진 신랑(身廊) 그리고 두 개의 날개부분(Trancept)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건물을 준공할 때는 신랑은 겨우 세 개의 주간을 갖추고 날개 부분도 일부분만 완공시켰다. 이는 당시 총 건축비 삼만 원 중에 국내에서 육천 원, 영국에서 팔천 원만이 모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계자는 자신의 설계에 따라 건물 전체가 완성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제한된 부분만을 건축하더라도 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성공회 성당 뒷모습

뒷모습



두 개의 십자가

두 개의 십자가



대한성공회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3년 4월, ‘서울주교좌성당’ 완공을 위한 건축운동이 시작되었다. 즉 딕슨이 처음 설계한 것을 완성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서울시 지방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 받은 건물이므로 건축을 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미완성 건물을 완성하려는 것’이라는 성당 측의 호소에 문화재청은 ‘미완성인 형태로 문화재 지정이 되었으므로 변형은 불가능하다. 사실을 증명할 원 설계도가 없는 한 증축을 허락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건축도면을 찾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1993년 7월) 미사 중에 영국 관광객이 찾아와 본국의 도서관에 이 성당의 건축도면이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갔다. 이에 성당 대표들이 영국으로 날아가 런던 교외 렉싱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성당의 건축도면을 발견하였다. 이것을 복사하여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자 이를 확인한 위원들이 마침내 증축을 허가하였다. 1994년 5월 27일 증축공사를 시작하여 착공 2년 만인 1996년 5월 2일, 트롤로프 주교가 미완성의 성당을 지었던 그 날에 대성당을 완공하였다. 이로써 주교의 꿈이 칠십 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실내

실내



헌금자 기념판

헌금자 기념판

대지 면적 1,346평에 건평 300평으로 지은 3층의 성공회 성당 건물은 벽체를 붉은 벽돌로 쌓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정면에 아치로 된 출입구를 만들고 그 위의 네이브 부위에는 원화창을 두었으며 좌우 아일부에는 튀어나온 출구가 있고 그 위에 반원 아치창이 나 있다. 건물 상부에는 큰 종탑과 작은 종탑이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건물 내부를 보면 제단 양측 벽면의 가운데에 쌍기둥을 세우고 후진(건물 동쪽 끝에 내민 반원형의 부분)이 생동감 있게 연결되었으며 모자이크로 예수그리스도상을 만들어서 모든 시선을 처리할 수 있게 하였다.

중세와 현대, 동양과 서양

‘성’같은 견고함과 웅장함을 보여주고 잇는 서울성공회 바깥은 전통 한옥 세 채가 성당을 보듬듯이 감싸고 있다. 이 한옥 건물들은 대한제국 때 덕수궁의 소유인 수학원 건물이었는데 1920년대에 이전한 것이다. 남쪽의 한옥은 경운궁 ‘양이재’로 일명 ‘영빈당’인데 교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 등록문화재 제267호로 지정되었다. 가운데의 한옥은 주교관인데 ‘ㄷ’자의 특이한 형태이다. 북쪽의 한옥은 수녀원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서울 도심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중세와 현대, 동양과 서양이 조화를 이루는 곳임에 분명하다. 1999년 4월 성공회의 상징적인 수장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주교관

주교관


양이재

양이재



수녀원

수녀원



시월 유신 말기인 1979년 9월부터 이 성당은 ‘선교 자유를 위한 기도회’라는 이름의 초교파적인 기도회와 농성장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신군부 통치 십 년 동안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는 공간으로 제공되어 역사적 조명을 받았으며 ‘민주 성지’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교관 건물에는 ‘유월 민주항쟁 진원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1987년 6월 10일 이곳에서 발원된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6월 10일 대한성공회 유월 민주항쟁 10주년사업 범국민 추진위원회에서 세운 것이다.



유월항쟁기념비

유월항쟁기념비

장진영 jyj3347@heritagechannel.tv

2011.11.17

작성자 : 한국문화재재단 | 등록일 : 2011-11-17 | 조회수 : 8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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