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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이 열리다 창덕궁 달빛기행

창덕궁과 도심의 야간 풍경

사진 _ 달빛을 가득 머금은 보름 무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과 도심의 야간 풍경






 

비밀의 문이 열리다



창덕궁 '달빛기행'



 



달이 채워지면 굳게 잠긴 창덕궁의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간 관람객은 왕에게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 달밤에 고궁을 거

닌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궁궐 중 유일

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을 산책하고 전통공연을 즐기는

대표적인 궁궐 야간 프로그램이다.

보름달이 뜨는 며칠만 허락된 창덕궁 야

간 출입, 과거를 살아보는 듯한 신비한

시간 체험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입소문이 자자한 대표적인 궁궐 야간 프로그램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창덕궁 달빛기행은 일몰 후 잠자던 궁궐을 깨워준 최초의 야간 프로그램이다. 2010년 2월 시범운영 기간을 포함하면 벌써 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관람권이 오픈되자마자 매진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153회에 걸쳐 외국인 포함 1만 7000여 명이 창덕궁 달빛기행을 함께 즐겼으며, 올해는 횟수를 대폭 확장해 상반기에 35회 차까지 성공리에 마친 상태다. 하반기는 8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창덕궁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궁궐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고요한 궁궐의 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며, 은은한 달빛 아래 다과와 함께 한국 전통예술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창덕궁 달빛기행은 매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돈화문을 파수하는 수문장을 배치하고, 창덕궁 전각과 후원을 밝혀주는 조명들을 매해 새롭게 디자인하여 보강하고 있다. 또한 전문해설자들을 교육하고 배치해 해설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프로그램에 다양한 스토리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상량정에서 대금 연주를 추가해 고즈넉한 궁궐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돈화문 입구에 마련해둔 청사초롱



사진_ 왕의 손님으로 초대된 100여명의 관람객을 위해 돈화문 입구에 마련해둔 청사초롱



 



문을 여시오.



왕의 손님이 되어 인정전을 마주하다



 



달빛기행은 어둠이 살짝 내려앉는 밤 8시에 시작된다. 돈화문을 파수하는 수문장들이 아직 굳게 닫힌 창덕궁 앞을 지키고 있다. 한복을 차려입은 커플, 퇴근 후 바로 온 직장인, 편안한 복장의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하나 둘 모여들고 조별로 입장할 준비를 한다. 



7시 50분. 나각 소리와 함께 "문을 여시오" 외침과 함께 잠겨 있던 창덕궁 문이 열린다. 관람객들은 줄지어 놓인 청사초롱을 하나씩 들고 한복을 갖춰 입은 전문해설사를 따라 조용한 궁궐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다.



 



여러분은 오늘 왕의 특별한 손님이 되어 창덕궁에 초대받았습니다.



 



해설사가 속삭이듯 전하는 말 한마디에 관람객들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400년 넘은 천연기념물 회화나무를 지나 현존하는 궁궐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금천교를 건넌다. 



 



그리고 마주하는 인정전.



 



인정전



사진_ 사방이 어스름해지자 야간 조명을 밝히며 낮과는 또 다른 멋을 풍기는 인정전



 



2층 높이의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조회, 외국 사신 접견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다. 거친 감촉이 살아 있는 자연석 바 닥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인정전 앞에 서니 남산의 N타워가 녹색 빛을 띠고 있다. 과거의 공간에서 현재의 공간을 바라보니 기분이 남다르다. 전문해설사는 한국의 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인정전의 버선코 모양 처마, 소나무 끝에 걸린 고즈넉한 달 등 자칫 놓치기 쉬운 풍경을 알려주며 감탄을 이끌어낸다. 



 



낙선재



사진_ 경관 조명이 들어온 길을 따라 걸으며 낙선재로 이동하는 관람객들



상량정의 대금 소리



사진_ 고요한 궁궐의 밤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상량정의 대금 소리



 



낙선재에 다다르자



울려 퍼지는 구슬픈 대금 소리



 



헌종 13년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진 낙선재에 가까이 다가서자 멀리서 대금 소리가 들려온다.



 



올해부터 상량정의 대금 독주 프로그램이 추가되어 달밤의 정취에 깊이감을 더했다.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 등 주로 왕실 여성의 거주 공간이었던 낙선재는 궁중 여성의 한을 더듬어볼 수 있는 아름답지만 슬픈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복을 부르는 박쥐 문양, 끝없이 연결된 고리금 문양 등 달빛이 비치면 방바닥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하는 다양한 창호 문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금 소리를 따라 특별히 달빛기행에서만 허락된 상량정으로 향한다. 낙선재 후원에 우뚝 서 있는 육각형 누각 상량정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 전체가 내려다보여 도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달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위치에서 관람객들은 보름달 아래 소원을 비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순종이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슬퍼하며 울었다는 이곳에서 감상하는 대금 연주가 더욱 애잔하게 들린다.



 



부용지 속 물그림자에 마음을 뺏기다



 



담장길을 따라 왕의 휴식처로 사용되었던 창덕궁의 아름다운 후원으로 들어간다. 창덕궁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는 후원은 낮에도 정해진 시간에 한해 해설사가 동행해야 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따라오는 달을 따돌리며 마침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의 천원지방 사상에 따라 조성된 연못 부용지에 다다른다. 후원에 있기 때문에 왕의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 부용지. 그 연못 위에 축조되어 있는 부용정과 북쪽의 주합루는 조명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영화당 안에서 느린 곡조를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물그림자에 비친 주합루를 바라보는 잠깐 동안의 자유 시간은 창덕궁 달빛기행의 하이라이트다.



 



부용지



사진_ 어둠이 내린 부용지와 주합루 사이를 청사초롱의 가느다란 불빛에 의지해 거닐며 야간 궁궐 체험을 추억으로 새기는 관람객들



 



거문고 연주



사진_ 달빛기행의 클라이맥스에 걸맞게 부용지 옆 영화당에서 울려 퍼지는 거문고 연주



 



달빛기행의 여운, 음악으로 기억하다



 



하나의 통돌을 깎아 세운 불로문을 통과해 애련지를 지나 연경당으로 들어간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자 지은 곳으로, 고종과 순종 시절에 연회 공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점에 착안해 연경당에서 펼쳐지는 전통예술 공연은 달빛기행의 여운을 음악으로 담아갈 수 있게 마지막에 배치했다. 청사초롱을 잠시 반납하고 전통 여름음료 생맥산을 손에 들고 자리를 잡으면 한복을 차려 입은 연주자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나무에 둘러싸인 연경당 마당에서 아리랑 한 가락에 가슴속 울림을 들어보기도 하고,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노래하는 판소리에 ‘얼씨구’ ‘좋다’ ‘잘한다’ 추임새를 넣어보기도 한다. 봉산탈춤의 취발이춤은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기에 충분했고, 우리 귀에 익숙한 드라마 OST를 편곡한 합주에는 앙코르가 이어진다. 합주, 판소리, 전통무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평소 접하기 힘든 한국 전통공연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해는 다양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계절별로 시기에 맞는 공연을 구성하고, 독무와 함께 처용무, 봉산탈춤, 여명의 빛 등 역동적인 공연을 추가했다. 



 



공연이 끝나고 은은한 달빛과 청사초롱 불빛을 따라 숲길을 걷다 보니 달빛기행 시작점인 돈화문이 보인다. 밤의 창덕궁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름다운 궁궐의 숨겨진 모습을 보기에 2시간은 너무 짧았던 걸까. 여전히 비밀을 간직한 듯 달빛을 머금은 밤의 창덕궁은 몇 번이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분명하다.



보춘정의 모습



사진_ 왕세자가 안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듯 환하게 불을 밝혀둔 보춘정의 모습



글. 서상인 / 사진. 정경애



 

작성자 : 한국문화재재단 | 등록일 : 2016-08-29 | 조회수 : 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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