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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 국보 제 119호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사진

적어도 우리는 몇 년 전의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약간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인 과거의 자신과 죽은 후의 자신에 대해서는 기억도, 예측도 불가능하다. 불교는 그 과거와 미래를 인정한다. 석가모니 붓다는 지금부터 2500년 전에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삼아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늘나라인 도솔천에서 기다리면서 때에 맞춰 인간의 모습으로 출현하셨다. 이 분은 인간세에 오셨던 붓다 중에서 일곱 번째 붓다이다. 여덟 번째로 내려오실 미륵불은 보살의 모습을 하고 지금 도솔천에서 대기하고 있다.

불교가 이론적으로 발전하면서,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미래에도 한 분의 붓다가 아닌 다수의 붓다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한다고 믿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을 현세라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시간적인 단위인 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현겁이라고 한다. 또한 이 다수의 붓다를 1000이라는 숫자로 나타내어 천불 사상이 출현하였다.

50여 년 전인 1963년에 도로공사를 하기 위하여 돌을 나르던 강갑순씨(작고)가 처음 이 불상을 발견하였다. 불상은 그다지 크지 않은 16.2cm의 크기지만, 예배 대상으로서 갖추어야 할 종교성은 그 어떤 불상보다 뒤지지 않는다. 다름 아닌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이 그것이다.

왼쪽 - 연가칠년명 금동불입상 정면 모습
가운데 - 연가칠년면 금동불입상 측면 모습
오른쪽 - 연가칠년명 금동불입상 후면 모습

연꽃잎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불광 속에 포근하게 감싸인 듯 서 있는 불상은 머리와 손발이 몸에 비해 큰 편이다. 법의(옷)는 양쪽 어깨를 덮고 아래로 흘러 내렸는데, 옆으로 펼쳐진 八자 모습이다. 얼핏 보면, 옷주름의 처리가 단순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군의(치마) 아랫단의 옷주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관찰력과 묘사력이 요구된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사색적인 모습은 종교적인 숭고미와 함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는 불상을 만든 장인이 붓다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오른손은 들어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인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을 취하였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소원을 들어 주마’라는 여원인을 결하였다. 이러한 손 자세는 초기의 불상에서 많이 보이는데, 아마 불교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일반 대중들에게 두려움을 없애주고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 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친근감을 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광이 연꽃잎 모양을 하거나 대좌가 연꽃으로 장엄되는 것은 불상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정립되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적인 꽃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고대 서양에서는 태양, 희망, 탄생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을 불교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제 이 꽃이 붓다를 장엄하는 가장 성스러운 꽃이 된 것이다.

금동여래입상은 옛 신라의 영역인 경상남도 의령에서 발견되었지만,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이유로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불상이 이곳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의 불광 뒷면에 47자의 명문은 이 불상이 고구려 작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간략하게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연가7년인 기미년에 고구려의 수도 낙랑(지금의 평양) 동사의 주지와 사도 40명이 함께 현겁(현재 세상)의 천불을 만들어 유포하려 하는데, 이 중에서 29번째 인현의불은 비구인 도영(혹은 의)이 공양한다.”

명문에 보이는 기미년은 539년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지 이미 100년이 지난 시기이며,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지 약 170년이 되는 해다. 불상에 보이는 여러 표현 내용들은 불상 조성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붓다의 모습과 그 가르침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상당하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 또한 사도 40인이 불상을 만드는데 참여하였다는 내용은 승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도 조직 체제가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러한 모습은 5세기 전반에 조성된 고구려 장천 1호분 예불도의 행렬 장면에서 이미 초기적인 형태가 확인된다.

우리는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결한 초기의 불상을 대체로 석가모니불상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잣대로 보면, 이 불상도 석가모니불상이 된다. 그러나 명문에서 현겁 천불 중에서 29번째 붓다인 인현의불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에게 친근한 석가모니불은 현겁천불 중에서 4번째 붓다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왜 그들이 29번째 붓다인 인현의 불상을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고구려 불교 사상이나 신앙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만한 기록이나 증거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하나 궁금한 점은 29번째 붓다를 만들었다면, 이 불상뿐만 아니라 현겁에 계시는 천개의 불상을 만들었을 법도 한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이 불상과 닮은 몇 존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6세기 전반에 고구려 사람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였던 국보 119호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은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계인을 향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붓다께서 던지는 21세기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글, 사진=배재호
배재호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하버드대학 방문학자, 대통렬실 정책자문위원(문화재),
용인대학교 문화재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당대불교조각>(2003), <중국의 불상>(2005), <동양미술사>(2003, 공저),
<세상은 연꽃 속에>(2006), <연화장세계의 도상학>(2009)등이 있다.
’배재호의 국보와 보물로 알아보는 불상’소개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정수는 조각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성된 많은 불상 중에서
역사성, 예술성, 희소성을 갖추고 있는 최고의 작품 20점을 선별하여 그 속에 담긴 시대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종교성을 초월하여 한국 문화의 한 분야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이 글이 추구하는 바다.

작성자 : 배재호 | 등록일 : 2011-11-09 | 조회수 : 5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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