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여행

[도깨비문화유산여행]평창 월정사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부처의 마음을 본다 번뇌가 사라진다

평창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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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쭉 뻗은 전나무 숲을 지나 돌계단을 차곡차곡 걷다보면 어느새 전해지는 오랜 승가의 얼..., 한국 불교의 주춧돌이 자리하고 있는 강원도 평창 오대산으로 안내합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동쪽 계곡, 이곳 울창한 수림 속에 월정사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월정사는 산내암자인 상원사를 비롯해 8개의 암자와 64개의 말사, 구불하게 이어지는 전나무 숲까지 포함해 우리나라 사찰 중에 가장 너른 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팔각구층석탑

월정사는 서기 643년, 신라불교의 위대한 고승인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이래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을 겪었습니다.한국전쟁 때는 모든 전각이 불타 사라지는 아픔을 치렀지만, 1964년 재건 후 지금까지 천년 고찰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국보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당당한 풍모와 위엄을 자랑하고 있지요.

상원사 가는 전나무숲길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의 풍광 덕에 승가 주변은 사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월정사를 지나 세조가 참배를 드렸다는 상원사까지는 약 9km. 산길을 따라 약 2시간 30분을 걸어야하는데요.

멀지만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전나무의 곧음과 숲의 푸름을 느끼며 수행하듯 천천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걷는 것이 힘들다면 차량 이동도 가능합니다

상원사 모습

월정사 창건 60여년 후인 705년 세워진 상원사는 고풍스런 풍모와 사연들로 향기가 깊은 절입니다. 조선 7대왕 세조와 월정사에 얽힌 이야기는 이 승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데요. 상원사 초입 계곡 쪽을 보면 작은 표시석이 먼저 눈에 띕니다. 세조가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걸어뒀다는 ‘관대걸이’입니다. 이 관대걸이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온답니다.

관대걸이,세조와 문수보살 목욕장면

어느 날 월정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세조가 신하들을 물러나게 한 후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 달라고 합니다. 이 동자승은 사실 문수보살이었습니다. 덕분에 고질병이던 피부병을 깨끗하게 완치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하고 상원사에 봉안하게 했다고 합니다. 문수보살은 왜 세조에게 나타난 것일까요? 세조와 문수보살에 얽힌 월정사의 사연은 <세조, 문수보살을 만나다> 동영상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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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아름다운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사찰 월정사.
월정사는 산내암자인 상원사를 비롯해 8개의 암자와 64개의 말사, 거기에 전나무 숲까지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너른 땅을 소유한 사찰이다. 그러나 너른 땅보다 더 깊고 풍부한 인연의 향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바로 조선의 제 7대 왕, 세조와 월정사와의 특별한 인연이다.
월정사는 서기 643년, 신라불교의 위대한 고승인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여러차례 화재와 전란을 겪었지만 국보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당당한 풍모와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 때 모든 전각이 불타 사라진 것을 1964년 재건하면서 천년고찰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월정사에서 말사인 상원사까지는 약 9km. 지금은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생겼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수행하듯 천천히 전나무 숲길을 걸어 상원사로 향한다.
월정사 창건 60여년 후인 705년 세워진 상원사는 고풍스런 풍모와 사연들로 향기가 깊은 절이다.
상원사 초입의 계곡에 있는 작은 표시석, 관리의 옷을 걸었다는 관대걸이다, 곧 세조가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걸어뒀다는 관대걸이다. 어느 날 월정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에 가던 세조가 신하들을 물러나게 한 후 계곡에서 몸을 씻었다.
그리고 때마침 지나가던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 달라 부탁한 후, 동자승에게 당부 한마디를 남긴다.
그런데 이 동자승의 대답이 남달랐다
동자승으로 현신한 문수보살 덕분에 고질병이던 피부병을 깨끗하게 완치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하고 상원사에 봉안하게 했다는 것이다. 상원사가 문수보살을 주존불로 모시고 국내 유일의 문수동자상을 모시는 이유도 세조와의 이런 연관성 때문인데, 그런데 1984년, 문수동자상을 도금하는 과정에 뜻밖의 복장유물이 발견됐다.
복장유물이란 불상내부 빈 공간에 넣는 유물로, 문수동자상에서 발견된 것은 불서와 불경, 수정구슬 등 총 스물 세점, 그중 특별히 이목을 집중시킨 유물이 하나 있었으니...
비단으로 만든 얼룩투성이 속적삼이었다. 대체 이 얼룩들은 무엇일까, 조사결과 옆구리와 목, 소매 끝의 얼룩은 피고름의 흔적으로 밝혀졌고 바느질의 상태와 옷감, 함께 보관된 발원문 등을 종합한 결과, 비단 속적삼은 바로 세조의 어의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처럼 정말 세조는 이곳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던 것일까.
상원사 기록에 따르면, 1464년, 주지 신미대사가 세조를 위해 상원사를 중창했는데, 이때 세조가 시주와 함께 자신의 옷을 하사했다.
이후 세조의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를 위해 문수동자상을 만들고 그 속에 세조의 옷을 넣었다는 것이다.
세조와의 인연은 상원사 구석구석에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문수전 옆 돌계단에 있는 석물 한 쌍,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묘상, 고양이 석상이다. 이 묘상에도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피부병을 고친 세조는 이듬해 상원사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예불을 드리려는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곤룡포 자락을 물고 잡아당기는 게 아닌가, 이상한 예감이 든 세조가 즉시 법당 주변을 수색하게 했더니 불상 탁자 밑에 세조를 노린 자객들이 숨어 있었다.
세조는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기리기 위해 석물로 만들어 안치하고, 고양이를 위한 논까지 하사했다고 한다.
이렇게 월정사와 그 말사인 상원사에 특별한 빚을 진 세조가 월정사의 주지와 함께 산 정상에 올라 나눈 이야기도 전해진다.
실제로 실록에는 강릉의 저수지 일대를 상원사에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상원사가 14만평에 달하는 너른 농토를 관할했다는 얘기가 지방 유생들의 기록에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세조는 피의 쿠데타를 통해서 왕이 됐다. 어쩌면 세조는 그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위로를 받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여, 월정사 상원사에는 마음의 병이 깊었던 한 임금과 그 마음을 어루만져준 문수보살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도깨비의 돌발 질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은 무엇일까요? 네? 에밀레종이요? 에~~~이 아니죠! 이곳 상원사에 있는 동종이랍니다. 에밀레종인 성덕대왕 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서 제작됐습니다. 용뉴 아래 신라 성덕왕이 재위하던 725년에 만들어졌다는 정확한 기록이 새겨져 있지요. 가장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동종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관대걸이,세조와 문수보살 목욕장면

그런데요. 이 동종을 자세히 보면 사방으로 9개씩 총 36개의 유두 돌기 중 하나가 떨어지고 없습니다. 누가 떼어 간 것일까요? 어디로, 왜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살펴보시려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 상원사 동종>동영상을 클릭해보세요. 동종에 돌기가 하나 없는 이유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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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한 타종에 중생을 구제하고 또 한 타종에 해탈을 꿈꾼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간절한 소망을 담아 울렸던 종, 오대산 산자락을 넘어 온 세상으로 울려 퍼졌던 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 상원사에 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어낸 까닭에 현재는 보호를 위해 타종을 하지 않고 똑같은 모양으로 재현된 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 이를 증명하는 건 종에 새겨진 명문이다. 용뉴 아래 신라 성덕왕이 재위하던 725년에 조성됐다는 정확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범종이자 '에밀레종'으로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서 제작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역사만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원사 동종.
그런데 마치 옥의티 처럼 눈에 띄는 모습이 하나 있다. 사방으로 9개씩 모두 36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떨어지고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상원사 동종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부터 나타나는데..
경상도 안동의 역사를 기록한 <영가지>에 따르면 안동의 어느 사찰에 가장 오래되고 소리가 아름다운 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태종 때 불교를 박해하면서 그 종은 안동 도호부의 남문 누각으로 옮겨져 시각을 알리는 인경으로 사용되었다 .
세월이 흘러 왕위에 오른 예종은 아버지 세조와 인연이 깊었던 상원사를 왕실의 사찰로 삼고 노비와 전지를 내리고 조세를 면제하는 명을 내린다.
그리고 팔도에 수배령을 내려 상원사에 봉안할 종을 찾던 중 안동의 그 종을 선정한다. 문제는 험한 죽령길을 통과해서 오대산까지 종을 이동시키는 일이었는데, 급기야 죽령을 넘던 종이 마치 뿌리라도 내린 듯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대체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혹시 안동을 떠나기 싫어서 영험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결국 종의 유두 하나를 떼어서 안동으로 보냈더니 거짓말처럼 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천킬로그램이나 되는 동종은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상원사로 옮겨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나라마다 종이 있지만 한국의 범종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조형 때문에 한국 종, 코리안 벨이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학명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상원사 동종은 한국 범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높이 167cm에 무게 2천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종에서 먼저 눈에 띄는 건 종의 가장 윗부분, 용의 모양을 한 용뉴다. 용뉴는 종을 매달기 위한 장치로 종을 치면 이 용이 놀라 큰 소리를 질러 우렁찬 종소리가 세상에 퍼진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굵은 대나무 모양의 음관, 음통이다. 음통은 맑은 소리를 나게 하면서 한국종에만 있는 특징, 곧 종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밖에 몸통 전체를 둘러 네 개의 유곽을 배치한 것과 넓은 여백에 비천상과 당좌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다른 나라의 종과 다른 점이다.특히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은 정교하고 환상적인 세공이 돋보인다.
종신의 모양도 몸체의 3분의 2정도되는 배 부분까지 서서히 불러 오르다가 종의 끝부분이 안으로 오므라드는 형태를 하고있다. 이같은 상원사 동종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종의 기본을 이루는 대표적인 유형으로, 이후 만들어진 한국종에 모두 계승되었다.
세상 모든 번뇌를 벗어나 해탈을 꿈꾸며 천년을 이어온 소리,오대산 상원사에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종이 있다...

다시 부처의 마음을 담아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적멸보궁으로 이동합니다. 숲은 더 깊어지고 속세와는 점점 멀어지는 듯합니다. 적멸보궁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로운 궁전이라 불립니다.

정사,상원사,사자암,적멸보궁 지도표시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로 유학을 갔던 자장율사가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한 후 전국 다섯 개의 사찰에 나누어 모셨는데요. 이곳 월정사 적멸보궁은 5곳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적멸보궁의 모습

적멸보궁을 둘러다 보면 건물 뒤쪽 작은 언덕에 표지석 하나가 서있습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뜻의 ‘세존진신탑묘’이죠. 자세히 보면 네모난 비석에 탑 모양이 새겨져 있을 뿐입니다. 사실 이 탑의 자리도 진신사리를 모신 정확한 자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이 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동영상에서 들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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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예부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나라 안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산 중 하나로 손꼽혔던 오대산. 어떤 재앙이 닥쳐도 안전한 땅이라 믿었던 이곳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신성한 장소가 있다.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로운 궁전 바로 적멸보궁이다.
월정사에서 산길을 따라 약 2시간 30분을 걸으면 말사인 상원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적멸보궁까지는 다시 1.5 킬로미터... 숲은 더 깊어지고 속세와는 점점 멀어지는 길, 계단과 언덕을 지나 30분쯤 걸으면 가파른 사면에 층층이 지어진 사자암이 눈에 들어온다. 적멸보궁의 수호암자인 사자암은 산세 험한 오대산 자락, 해발 1050미터 높이에 자리한 까닭에 건물이 계단식으로 지어졌다. 자연지형 그대로 산을 깎거나 허물지 않고 건축하여 완성하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다.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비로전 앞 월대를 지키는 동물은 사자다.
불교에서 사자는 용맹과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동물이자 문수보살이 타는 동물이다.
비로전 안으로 들어가면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서 모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탱화도 특이한데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닌 나무로 천 분의 문수보살과 문수동자를 조각한 목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내 발걸음에 부처의 말씀을 실어걷는다.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와 사자암을 지나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을 말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로 유학을 갔던 자장율사는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했고, 전국 다섯 개의 사찰에 나누어 모셨다. 그 5대 적멸보궁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이곳 오대산 적멸보궁이다. 적멸, 곧 모든 번뇌가 불이 꺼지듯이 사라진 상태니 열반의 경지다.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기 때문에 부처님이 항상 존재하는 곳, 그래서 적멸보궁에는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안치하지 않는다. 불단을 금색으로 표시한 것은 그 너머 부처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대신, 적멸보궁 건물 뒤쪽으로 가보면 작은 언덕에 표지석 하나가 서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뜻의 ‘세존진신탑묘’다.
탑이라고 하지만 특이하게도 네모난 비석에 탑 모양을 새겨 넣었다. 그런데 이 탑의 자리도 실상 진신사리를 모신 정확한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적멸보궁은 대개 사리탑을 만들어 그 안에 진신사리를 모시는데 월정사의 적멸보궁은 전체가 무덤과 같은 인도탑 양식으로 되어 있어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옛날 어느 스님이 이곳에 진신사리를 묻었고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 왜 오대산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감추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번뇌없는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뜻일까. 깊고 높은 오대산 자락에 적멸보궁을 모신 이유도 그때문이었을까.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진 건물도 작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 건물이다. 겉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의 형태인데 안쪽은 조선 초기, 바깥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안팎이 다르다. 산세가 험한 오대산의 중턱에 있어 비바람의 피해를 받기 쉬운 까닭에 건물 전체를 일종의 보호막으로 만든 것이다.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겹겹이 쌓아서 보호하고 싶었던 보물, 신라 이후, 천오백여년간 수많은 중생들이 부처의 사리를 보기 위해 산을 올랐지만 그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십악팔사(十惡八邪) 열 가지 악한 것과 여덟가지 사사로운 것을 물리치면 마음이 곧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우리들 마음안에 있는 적멸보궁-그것이 바로 진신사리를 모신 위치조차 감춘 월정사 적멸보궁의 가르침이다.

아무도 그 자리를 모른다는 것은 여기일 수도 있고 거기 일 수도 있는 것이죠. 어쩌면번뇌 없는 마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라는 뜻은 아닐까요. 번뇌 없는 마음, 우리들 안에 있는 적멸보궁으로 말입니다.

세존진신탑묘
도깨비팁
위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등산리 63
연락처
033)339-6800
주별 볼거리
오대산 국립공원, 만원산 동대 관음암, 오대산 사고
관련 홈페이지
http://www.woljeongsa.org
가는 길
자가 이용 :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에서 15분
대중교통 이용 : 진부 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 월정사행 버스 출발
서울 출발 시 동서울터미널 진부행 시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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