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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숨겨진 강릉의 비경-용연계곡 (명승 제106호) 스크랩

작성자
한국문화재재단
작성일
2013-06-17
조회
8083


숨겨진 강릉의 비경-용연계곡 (명승 제106호)

영동지방의 지형은 가파르다. 백두대간의 등줄기가 한반도의 동쪽 끝으로 치우쳐 뻗어내려 가기 때문에 대간의 동쪽지형은 급히 바다로 흘러든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동지방은 남북으로 좁은 선형의 지형을 이룬다. 이처럼 좁은 폭을 지니고 있는 이 지방의 지세는 대부분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대간에서 분지된 지맥의 산줄기들이 뾰족하게 날이 선 험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날선 산줄기에 장단을 맞추듯이 산줄기 사이를 파고 든 계곡은 모두가 하나같이 깊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비경을 지니고 있다.

영동지방의 중심을 이루는 강릉은 영동에 위치하고 있는 다른 도시보다는 넓은 터전을 지니고 있다. 내륙으로부터 강릉을 연결하는 고갯길은 대관령이 가장 잘 알려진 고개다. 그 북쪽으로는 오대산 바로 아래를 넘는 진고개가 있다. 진고개를 넘어가면 명승 제1호로 지정된 소금강계곡을 만날 수 있으며, 대관령을 넘으면 명승 제74호로 지정된 대관령옛길로 연결된다. 소금강계곡과 대관령옛길은 모두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영동지방의 지형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명승이다.

남쪽의 대관령 고갯길과 북쪽의 진고개 사이에도 아름다운 계곡이 숨어있다. 오대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은 진고개를 지나 대관령으로 연결되면서 그 등줄기가 다시 황병산으로 솟아오른다. 황병산의 동쪽 사면부에 깊은 골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골짜기가 바로 용연계곡이다. 용연계곡은 소황병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릉의 매봉으로부터 동북동 방향으로 분지되어 운계봉으로 이르는 능선과 동남동 방향의 곤신봉, 대공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 사이를 깊게 파고 든 계곡이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용연계곡은 강릉 시내와 북쪽의 연곡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사천면에 위치하고 있다. 강릉과 북강릉 사이에 자리한 사천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사천천을 따라가면 사기막리에 이르게 되고, 사기막리 마을을 지나면 계곡 사이를 가로막은 용연저수지에 다다른다. 용연저수지를 지나면서 계곡은 점점 깊어진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용연계곡은 점점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점입가경을 이룬다.

용연계곡은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온 구역이다. 계곡의 하천을 따라 나있던 옛길은 거의 폐도가 된지 오래여서 중간 중간 끊겨져 있고 나무와 풀이 얽힌 가시밭길이 되어 있어 아무나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옛길은 상당 구간에 걸쳐 남아 있다. 지금은 용연계곡 입구에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고, 저수지 중간부분의 산기슭에는 용연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저수지 위로는 용연사를 제외하고는 전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 이처럼 용연계곡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이며 또한 입산을 통제해 온 곳이기 때문에 이 계곡 하천주위의 자연은 천연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계곡의 모습은 이처럼 자연 상태로 회복되었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옛길은 그대로 방치되어 여러 곳이 단절되고 훼손되었다. 현재 옛길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구간이 대부분 유실되었고, 계곡을 따라가는 구간은 상당부분이 보존되고 있다.

용연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여러 곳의 소(沼)와 폭포를 만나게 된다.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들은 우뚝우뚝 거대한 입석과 석벽을 이루고 있으며,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계곡을 흐르는 물은 수정같이 맑다. 용연계곡은 골이 매우 깊어 긴 구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암반, 계류, 폭포 등이 수없이 반복되며 아름다운 연계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계곡의 지형은 아래에서부터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점차 올라갈수록 경사는 점점 가파르게 된다. 따라서 계곡의 아래 부분은 계류, 담, 그리고 낮은 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용소를 지나면 계곡의 경사는 점점 급해져 물의 흐름이 빨라지고 폭포의 높이도 높아지며, 양지폭포에 이르러서 용연계곡은 계곡경관의 절정을 이룬다.

양지폭포의 여름, 겨울 풍경 - 용연계곡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폭포로 약 20m 높이에서 S자 형태로 쏟아져 내린다.

용소의 여름, 겨울 - 사기막골 마을사람들이 동제를 지냈다고 하는 소인데 검푸른 물빛이 수심이 매우 깊다는 것을 나타낸다.

용연계곡 소와 담의 여름, 겨울 모습 - 용연계곡에는 많은 소와 담이 형성되어 있다. 골이 깊은 용연계곡은 폭포, 계류, 소와 담이 계속 이어진다.

골이 깊은 용연계곡 일대는 현재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다. 이 계곡의 넓은 사면을 덮고 있는 숲은 우리나라 중북부에 전형적으로 형성된 2차림으로 매우 잘 발달된 숲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산중턱으로 난 임도에서 보면 곳곳에서 특정한 종류의 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순수한 임상의 형태를 보이며, 굴참나무, 졸참나무, 말채나무, 신갈나무, 가래나무, 피나무 등의 활엽수가 곧은 형질의 소나무와 섞인 혼효림은 자연스런 모습의 수림지의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용연계곡을 따라 계류 변에는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더욱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데, 하천변의 이 숲은 계곡경관의 풍취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용연계곡에서 숲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사계절의 산림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단풍철과 흰 눈으로 뒤덮인 늦가을과 한겨울의 계곡경관은 정말 신비스러운 비경을 보여준다.

용연계곡 전경 - 가을단풍이 짙게 물든 용연계곡을 백두대간의 능선부에서 내려 본 풍광

용연계곡 산림경관 -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용연계곡의 산림지는 나무가 울창하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림지의 아름다운 가을 풍광

용연계곡 하천변 풍경 - 가을단풍으로 빨갛게 물든 용연계곡 하천변의 아름다운 풍광

용연계곡 암석경관 - 계곡 물의 흐름에 의해 매끄럽게 수마된 자갈과 바위가 용연계곡의 경관을 한층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용연계곡에는 옛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화전민이다. 이 계곡 안에는 예전에 소수의 화전민들이 산비탈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보다 앞선 시기에는 이 계곡에서 사기를 굽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용연동계곡은 행정구역 상 사기막리에 해당한다. 지역의 행정지명이 ‘사기막리’일 정도로 용연동계곡은 사기막 도요지와 관련이 깊은 계곡이다. 용연사 옆 계곡에는 사기막리 백자도요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용연동계곡 내에는 다수의 사기막 도요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기막 도요지와 관련된 요업문화는 용연동계곡을 상징하는 중요한 하나의 장소성이라 할 수 있다. 순태골에 위치하고 있는 사기막 도요지 가마터에 대한 발굴결과를 토대로 사기막골의 문화 환경을 유추하고, 용연동계곡에 묻혀있는 사기막 도요지를 찾아 복원하면 앞으로 좋은 문화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지폭포 아래 계곡에는 수심이 깊은 용소가 자리하고 있다. 용소에서는 예전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마을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동제는 용연계곡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문화행위다. 이러한 제의행위는 장소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자원으로서, 용소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소중한 문화경관요소라 할 수 있다.

사기막 도요지 사기조각 - 사기막골에는 도요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태골 도요지에서 발견되는 사기조각들

용연사는 오늘날 용연계곡에 현존하고 있는 환경자원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못이 있었는데, 이 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여 용연(龍淵)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전설에서 용연사와 용연계곡의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 한다. 용연사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초창했다는 설과 1650년 조선 인조 때 옥잠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그리고 조선 중엽인 1670년 현종 때 창건되었다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용연사는 6. 25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었으나 전후에 대웅전과 요사채, 원통보전과 삼성각등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가 그다지 큰 사찰은 아니지만 용연계곡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전망 좋은 가람이다. 용연사 안에는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39호로 지정된 용연사석탑이 있다.

근래 용연사는 주지를 맡고 있는 설암스님에 의해 크게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활달한 성품의 소유자인 설암스님은 마치 불도져 같은 추진력을 가진 스님이다. 스님의 적극적인 의지에 의해 오롯이 숨어있던 용연계곡은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용연계곡이 명승으로 지정된 것에는 스님의 노력이 매우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명승자원의 발굴은 본시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진행해야 하는 사안이다.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모두가 소홀한 일을 설암스님이 앞장서서 배전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용연계곡은 명승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연계곡이나 용연사는 현재 강릉지방에 내려오는 연화부인 설화와 직접 관련된 곳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용연사는 별연사와 관련이 있는 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조금 더 고증이 필요한 일이지만 연화부인 설화와 관련해서 장소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스토리를 충분히 창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선계를 의미하는 사천동천(沙川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도 발견되어 용연계곡이 신선이 사는 경승지라는 의미를 한층 더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용연계곡은 아름다운 경관과 경관 속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밝혀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명확히 하고, 또한 적절한 수준에서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활용방안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글, 사진 김학범. 현 한경대 조경학과 교수, (사)한국전통조경학회 고문. 전 문화재위원, 지정문화재 조경 수리기술자, 저서마을숲, 문화재 대관 명승. 보고서 명승 우수지원 지정 정밀조사. <br/>/ 김학범의 한국의 명승소개 <br/>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에는 수 없이 많은 명승이 자리하고 있다. 사적이나 천연기념물과 같이 국가지정문화재의 중요한 하나의 종목인 명승은 10여 년 전까지는 전국에 불과 7개소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뿐이었다.<br/> 2003년 이후 문화재청에서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밝히는데 자연유산 정책의 중점을 두어 명승지정을 확대해 오고 있다. 새롭게 지정되기 시작한 한국의 명승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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