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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기자단

봄이 온 사찰, 봉은사에 가다. 2018-05-09 스크랩

도심 속에 자리한 봉은사에 봄을 기다리던 이들이 모였다. 봉은사를 대표하는 홍매화와 봄의 대명사 목련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껏 피어났다. 그리고 이 봄꽃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봄꽃의 향에 취해 셔터를 누른다. 꽃도 꽃이지만 이곳 봉은사는 1200년이라는 역사가 있는 사찰로 문화재도 백미라 할 수 있다. 봉은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 추사 김정희의 절필 작 판전의 현판, 선불당 등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로 가득하다. 봉은사 입구, 진여문부터 문화재를 따라 걸어보자.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을 일주문이라고 하지만 봉은사는 ‘진여문’이라고 부른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라는 이 문 앞에 서서 사람들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인사를 올린다. 진여문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색색의 등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뒤로 사찰의 중심,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에 들어가면 보물 제1819호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과 그 앞에서 간절히 자신의 소망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옆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니 이곳 봉은사에는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200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많은 소원들이 쌓였겠구나, 싶다. 건물 그 자체로 소원인 대웅전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면 새하얀 목련이 봄을 알린다. 눈으로 보기에 아쉬운 듯 많은 이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봄을 담고 있다. 목련과 어우러지는 지장전도 눈에 들어온다.
지장전 건너편의 선불당에서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4호 선불당은 일반 대중을 위한 선방으로 1941년에 지어져 연대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구조와 크기를 갖춘 귀중한 목조건물이다. 선불당을 지나 작은 소원이 담긴 돌탑을 지나 걸어가다 보면 판전이 나온다.
이곳 판전이 바로 추사 김정희가 사망 3일전에 쓴 현판이 걸린 곳이다. 어떠한 기교나 서법도 드러나지 않는 글씨. 오랜 연구와 깊은 통찰력으로 만들어낸 독창적인 서체다. 이 현판을 자세히 보면 행서로 ‘칠십일과병중작’이라고 써져있다. ‘71세에 과천에서 병중에 쓴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씨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무심하고 단순하다. 김정희 서 ‘판전’ 편액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83호로도 지정됐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걸린 이곳, 판전은 어떤 곳일까. 봉은사의 승려인 남호영기 스님은 거의 평생 동안 『화엄경수소연의본』 80권을 목판에 새겼는데, 이 목판이 보관된 곳이 바로 판전이다. 따라서 남호영기 스님의 판각 작업이 없었다면 판전도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판전 글씨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판전 앞에 서서 남호영기 스님의 판각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되새겨 본다.

봉은사를 즐기는 방법에는 사찰음식을 먹어보는 것에도 있다. 봉은사에서는 신도가 아닌 일반인은 2천원을 내고 사찰음식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오랜만에 채식을 하니 속도 마음도 편하다. 또한 남김없이 먹어야하기에 애초에 많이 받지 않으니 과식하지 않게 된다. 같은 배추로 만든 반찬이 맛도 식감도 다르다. 하나는 기름에 볶은 듯한 맛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다른 하나는 묵은지맛이 계속 손이 가게 한다. 콩나물은 반찬으로도 만들고 밥에도 넣어 활용한다. 밥에 넣은 콩나물은 식감도 좋아 싹싹 비우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반찬은 배로 만든 김치다. 배의 새콤달콤한 맛과 매콤한 맛이 잘 어울린다. 국에 든 나물은 부드러워 잘 넘어간다.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삼삼한 간이지만 속은 든든하고 편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남기지 않고 먹는다. 사찰음식을 먹으며 다 같이 그릇을 비우며 마음의 수양을 쌓아 간다. 넘치지 않게 적당히 반만 채우는 불교의 정신을 음식에서 느껴본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옷도 몸도 가벼워진 요즘, 봄이 온 사찰 봉은사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오래된 역사를 담은 이 곳을 걸으며 마음의 휴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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