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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기자단

국왕께서 친히 수문장을 낙점하다_2018 조선시대 수문장 임명의식 2018-04-23 스크랩

봄의 기운을 만끽하기엔 조금 이른 4월 1일의 오후 두 시, 경복궁 흥례문에서 조선시대 수문장 임명의식이 재현되었다.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 임명의식은 수문군 입장 및 배치, 국왕의 수문장 임명 및 수문장패 하사, 무고무 공연, 명예수문장 위촉, 검무 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의식이 치러진 50여 분간 내외국인과 많은 관광객들은 자리를 지키며 행사를 지켜보았다.
이 날 의식의 주인공, 경복궁 수문장은 국왕과 조정이 있던 법궁, 경복궁의 궁문을 지키는 무관이었다. 수문장의 인재상은 심지가 순근하면서 무예가 있는 인물로, 명종실록에 따르면 ‘성실하고 재간이 있으며 용맹스러운 무신’이었다고 한다. 수문장은 궁성문에서 금란과 통행 표신 검사, 잡인 출입 금지 등을 통해 궁성을 안전하게 지켰다. 특히 조선왕조는 군주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도성문 및 궁성문의 숙위 및 시위에 대해 국초부터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언제나 비상시를 대비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고, 궁문의 출입을 엄격하고 정당히 해야 정치와 인사 등 국사(國事)가 올바르게 된다는 인식이 있었던 만큼 수문장이라는 관직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복궁 수문장 임명의식은 수문장제도가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했던 15세기 조선 전기를 배경으로 한다. 예종 대에 남이 모반사건을 계기로 궁위제도에 대한 개혁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수문장 관련 제도가 정비되었다. 그 과정을 거쳐 수문장직제는 성종 초에 경국대전 (을사대전) 병전에 실리면서 명시되기 시작했다. 수문장은 무관 4품 이상의 자로 낙점함을 원칙으로 하고 신분보장이 이뤄지도록 하였다.
수문장 임명의식이 가지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명예 수문장의 임명식이다. 평소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마크 테토 씨가 명예 수문장으로 임명되었다. 마크 테토 씨의 임명은 관람객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동안 명예 수문장에는 소방사, 경찰관, 시청각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등 사회에 공헌한 인물들이 임명되었는데, 마크 테토 씨 또한 해외반출 문화재를 자비로 구입하여 반환한 공로가 인정되어 외국인 최초로 명예 수문장의 영예를 안았다.
수문장 임명 의식은 재현 외에도 다채로운 볼 거리가 많은 행사였다. 수문장부터 갑사, 기수에 이르기 까지 모두 출토복식을 활용해 고증한 의복을 선보이고, 악사들의 연주, 무희들의 무고무와 검무공연까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도 즐길 요소가 많았다.
조선의 법궁이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리는 아픔을 겪었고, 고종대에 이르러 중건되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곳곳이 크게 훼손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던 경복궁. 그 경복궁의 궁문을 지키는 수문장 임명 의식의 재현행사는 역사적으로도 뜻깊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의미와, 볼 거리, 즐길 거리를 모두 갖춘 경복궁 수문장 임명의식은 아쉽게도, 1년에 한차례 개최된다. 그러나 내년 봄 까지 기다릴 시간이 너무 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경복궁 휴관일인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시, 14시에 수문장 교대의식이 회마다 20여 분 간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생문 밖에서는 수문군의 공개 훈련이 9시 35분, 13시 35분에 각 15분씩 진행된다. 또한 수문군청 일원에서는 직접 수문군의 복식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의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당일 선착순 접수이기 때문에 조기에 신청이 마감될 수 있다는 점 유의하도록 하자.

참고문헌
한정수, 「여말선초 궁술인식과 수문장제도의 성립」,2011
한국문화재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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